• 노대통령 위험한 도박은 무지의 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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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4월 04일 01:4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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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라만상이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희망을 노래하고 있어야 할 지금, 한국사회는 노무현 대통령과 3-4명의 경제 관료가 벌이는 위험천만한 도박으로 엄청난 논란과 걱정에 휩싸여 있다. 이른바 참여정부가 새해 들어 한미FTA 협상을 시작도 하기 전에 스크린쿼터 축소 등 미국 정부의 4가지 선결요구를 순순히 받아들이는 조치를 취한 뒤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는 많은 단체들이 사흘이 멀다 하고 한미FTA에 관한 토론회를 열고 있다.

    복잡한 경제 이론이나 한미관계 등에 대한 이해나 지식을 갖지 않은 사람도 마음만 열고 토론회에 한번만 참석해 주제발표자와 토론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미FTA가 노무현 정부의 친미 개방 경제론자들의 장밋빛 전망과 정반대로 국가적, 민족적 재앙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생각이 지배하게 된다. 지금까지 한미FTA를 둘러싼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해 아무리 따져 봐도 우리에게 이익보다는 손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최근 필자는 “한미FTA저지를 위한 시청각미디어분야 공동대책위원회”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작년까지 노무현 대통령 밑에서 한미FTA 문제를 담당하다가 지금은 야인으로 한미FTA 저지를 위해 온 힘을 쏟겠다는 정태인 전 경제비서관을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만약 지금처럼 한미FTA가 진행되면 우리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그는 “간단하게 말해 IMF외환위기 10개가 한꺼번에 닥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고 답했다. 그는 최근 노무현 대통령과 만나 2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한미FTA에 대해 얘기했지만 “나도 대통령을 설득시키지 못했고 대통령도 나를 설득시키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이 그토록 한미FTA에 집착하는 연유를 조급증에서 찾는 것 같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무현 대통령의 집착이나 집착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미FTA 집착원인을 둘러 싼 8가지 가설

    그러다 보니 노무현 대통령의 한미FTA 집착원인을 둘러싸고 여러 가지 가설과 시나리오들이 나돌고 있다. 그 중에서 몇 가지를 살펴보자.

    첫째가 좁은 의미의 국익론으로 한미FTA가 경제적 관점에서 이익이라는 것이다. (경제적 관점의 국익론)

    둘째가 한국정치와 도박판의 공통점과 작동원리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을 것으로 관측되는 노무현 대통령이 2007년 대통령선거 등을 앞두고 던지는 정치적 승부수일지 모른다는 것이다. (국내 정치승부수론)

    셋째가 현재 교착상태에 빠진 6자회담과 미국의 북한 선제공격(preemptive strike) 내지 국제적 고립화를 통한 김정일 정권의 해체 등이 가져올 민족적 재앙을 막기 위한 노력으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정치외교적 관점의 국익론)

    넷째가 한미FTA가 반대론자들이 주장하듯이 당장 이익보다는 손해가 더 크다고 할지라도 경제 등에 관한 각종 제도 개선과 세계적 기준들(global standards)을 도입함으로써 장기적으로는 우리 경제체제를 한 단계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경제체질 개선 혹은 Upgrade론) 이 같은 주장은 이광재 의원을 중심으로 한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 의원들의 모임인 ‘의정연구회’가 펴낸 2004년 국정감사 자료집 등에 나타나 있다.

    또 정문수 청와대 경제비서관이 사무처장으로 겸직하고 있는 국민경제자문회의가 올 1월 노무현 대통령에 제출한 “동반성장을 위한 새로운 비전과 전략”이라는 제목이 붙은 보고서(부제: 일자리 창출을 위한 패러다임의 전환)에도 이같은 배경이 잘 나타나 있다.

    다섯째가 노무현 대통령이 외교통상부와 경제부처 등의 일부 친미 관료들에 포위당해 눈과 귀가 멀었다는 주장이다. (친미관료들의 포위론) 이는 노무현 대통령이 한미FTA에 대해 너무 확고한 태도를 갖고 있는 것에 대한 이유와 배경이 등장할 때 반드시 언급되는 대목이다.

    여섯째가 노무현 대통령이 역대 대통령들과 자신을 비교할 치적거리를 찾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다. 말하자면 역대 대통령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개혁성으로 기대를 받았던 노무현 대통령이 자신의 추락한 인기를 만회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던 중 한미FTA에서 그 실마리를 찾으려는 것일 수도 있다는 관점이다. (총체적 치적론) 이 같은 가설은 노무현 대통령을 보좌한 적이 있거나 잘 아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 나온다.

    일곱째가 노무현 정부가 미국 부시 행정부, 특히 네오콘(Neo-Conservatives)의 협박에 굴복한 것 아니면 미국의 중국견제를 중심으로 한 세계전략 혹은 동북아전략에 말려든 것이라는 관점이다. 이것은 미국 정부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무기로 1석3조의 효과를 거둔 것이라는 관점이다. (부시 정부의 협박론)

    여덟째, 노무현 대통령의 외교적 무지론이다. 우리의 국력과 국익 및 국제 사회의 냉엄한 외교현실을 도외시한 노무현 대통령의 이상주의적 외교관(外交觀)이 빚은 결과라는 주장이다. 이는 여섯번째 가설과도 맥이 닿아 있는 것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초기에 언급한  ‘대미 자주외교’가 임기 중반 들어 발표한 ‘동북아 균형자론’ 등이 부메랑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가설이나 관측 가운데 어느 것이 사실에 부합할지 필자는 잘 모른다. 또 하나하나 검증하는 것도 쉽지 않아 보이고 이 또한 필자의 능력 밖이기도 하다.

    다만 필자는 노무현 대통령의 대미 자주외교 내지 동북아균형자론 같은 이상주의 냄새가 풍기는 접근방식이나 언행이 엄청난 정치, 경제, 외교적 부메랑을 가져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미 자주 외교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고려 없이 불필요한 말로 치르지 않아도 되는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제사회의 냉엄한 외교 현실을 미처 이해하지 못한 노무현 대통령의 신중하지 못한 언행이 미국 정부의 전략적 유연성 채택이라는 정책변화나 한미FTA 추진을 가져온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보지는 않지만, 적어도 이 같은 외교적 실수(blunder)가 한미관계를 악화시켜 우리의 입지를 좁히고 FTA협상 개시 결정과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했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고 보는 것이다.

    대미 외교로 본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여기서 냉엄한 국제 현실을 언급하기 전에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의 대외정책을 비교, 평가해 보는 것도 현재 국면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지 모른다.

    김영삼씨가 1993년 2월 25일 대통령 취임사에서 “어떤 우방도 민족에 우선할 수 없다”고 얘기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반독재 투쟁을 통해 본 그의 정치 스타일에 비추어 과감한 대북 정책 전환을 예고하는 것으로 받아들였고 기대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는 한완상씨를 통일부총리에 임명한데 이어 이른바 비전향 장기수인 이인모씨를 북한에 돌려보내고 김일성 주석과의 정상회담 계획을 발표하는 등 획기적인 남북관계 개선책을 추진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의 이런 정책은 어느 순간부터 바뀌기 시작한다. 자신의 당선에 앞장선 조선일보가 먼저 그의 대북 정책에 포화를 퍼붓기 시작했고 마침내 김영삼 대통령은 한완상 부총리를 경질하는 것으로 취임사에서 당당하게(?) 밝혔던 남북 화해 협력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해 보지도 못하고 접게 된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 단순하게 자신의 가장 큰 후원자였던 조선일보가 무서워서 통일정책 사령탑인 한완상 부총리를 경질했을까? 필자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다.

    나중에 알려진 일이지만 미국 정부는 김영삼 대통령의 취임사와 이인모씨 송환 등을 통해 나타난 대북 화해 정책을 보면서 대응책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정부는 김영삼 대통령 등 우리 정부 수뇌부를 동해상의 항공모함에 초청, 화력시범을 보여줌으로써 한국 정부에 메시지를 전달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적어도 외교에 있어서 김대중 대통령은 전임자인 김영삼과 달랐다. 김대중 정부는 내용적으로는 김영삼 정부의 대북 정책과는 근본적으로 차원이 다른 ‘햇볕정책’을 추진하면서도 일관성과 진지함을 바탕으로 현실주의적인 노선을 채택, 미국의 정책결정자들과 관계자들을 집요하게 설득함으로써 적어도 미국이 햇볕정책을 근본적으로 반대하지 않는 상황까지 만들어 냈기 때문에 남북관계가 실질적으로 개선될 수 있었다고 본다.

    한반도 외교 정책 DJ를 참고하라

    김대중 정부가 햇볕정책을 펴면서 대미 자주외교 노선을 입 밖에 낸 적이 없다. 그렇다고 김대중 대통령이 미국이나 미국 정부에 대해 비굴한 적도 없다. 그만큼 외교는 어렵고 현실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외교관 사이에는 “강대국에게는 국제법이 필요 없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특히 미국에는 국제법이 필요 없다.

    그렇다면 노무현 대통령은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외교 노선 혹은 접근방식 중 어떤 길을 가고 있는 것일까? 어느 쪽에 가까울까?

    적어도 지금까지 상황으로만 놓고 볼 때 노무현 대통령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전철을 밟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영삼 대통령이 “어떤 우방도 민족에 우선할 수 없다”고 큰소리치다가 미국의 엄청난 위력(?) 앞에 사실상 무릎을 꿇은 것이 노무현 대통령이 대미 자주 외교를 부르짖다가 어느 날 갑자기 명쾌한 설명 없이 저자세 외교로 돌아선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자신의 생애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하는 동안 미국의 어떤 위력(?)을 눈으로 직접 경험하고 난 뒤, 미국이 6.25때 도와주지 않았으면 자신은 아마 지금쯤 수용소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얘기한 것은 아닐까?

    YS와 같은 점과 다른 점

    노 대통령이 김영삼 전 대통령의 도움과 요청으로 정계에 입문한 인연 때문인지 정치 스타일이 김영삼 전 대통령과 닮았다는 얘기를 듣고 있지만 김 전 대통령과 다른 점도 있다.

    비록 나라를 외환위기에 빠뜨린 김영삼 전 대통령도 1994년 미국이 내놓은 투자보장협정(BIT) 초안이 너무 불평등하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BIT와는 비교할 수 없는 포괄적이고 거의 모든 산업과 서비스 시장을 미국에 내주게 될 한미FTA를 사전에 국회와 국민의 동의나 토론도 거치지 않고 철저한 사전 준비도 없이 추진할 정도로 무모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노 대통령의 이 같은 무모함은 어디에서 오는가? 무지인가? 조급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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