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대권력 ‘삼성왕국’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책]『삼성 독재』(이종보/빨간소금)
        2018년 02월 06일 11:1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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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 한국 사회를 일컬어 “삼성 공화국”이라고 비유하는 것은 그리 어색한 일이 아니다. 삼성이 어떻게 해서 우리 사회를 지배했고, 그 힘이 얼마나 막강한가에 대한 다소 ‘신화적인’ 말들도 자주 들을 수 있다.

    오늘(2018년 2월 5일) 사법부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 중이었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대부분 관련 혐의를 불인정하고, 이 사건에서 “전형적 정경유착을 찾을 수 없다”며,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사실상 거의 모든 혐의를 모른 척해준 것이다. 이 자를 판사라고 할 수 있을까? 빤하지만 예상했던 대로다.

    많은 시민들이 분노하고 있다. 수백억 원의 뇌물을 주고받았고, 그 대가로 민중의 혈세로 모인 국민연금에 개입케 해 자신의 경영 세습에 동원했다. 지난 겨울 촛불항쟁을 거치며 밝혀진 이 사실은 이미 온 국민이 알고 있을 정도로 자명하다. 한데 법원이 왜 위험을 무릅쓰고 이재용에게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해줬을까? 총체적 난국이다.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해보지 않았다면, 아주 현상적인 사실들로만 가늠할 뿐,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인지, 역사적으로 어떻게 해서 이런 시스템을 갖출 수 있었느냐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 한다.

    지난해 출간된 《삼성 독재 : 삼성권력 80년, 민주주의를 지배하다》(이종보 저, 빨간소금)는 삼성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해서 소위 ‘삼성 왕국’을 건설했느냐에 대해 설명하는 책이다. 불과 220여 페이지에 불과하고, 내용 역시 어렵지 않아서 ‘삼성’이 한국 사회에 어떤 해악을 끼쳐왔는지, 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문제였는지 알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읽어보기에 나쁘지 않은 책이다.

    이 책은 1부 ‘이병철 시대’, 2부 ‘이건희 시대’, 그리고 3부 ‘새 시대를 향해’로 구성돼 있다. 1부와 2부는 주요한 사실들을 꽤 잘 다루고 있지만, 이재용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는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청문회 당시의 이재용을 둘러싼 에피소드들만이 소략적으로 소개돼 있을 뿐, 거의 생략돼 있다. 이를테면 이재용의 ‘스마트 리더십’이라든가, 그의 3세 세습(지배구조 개편) 전략과 전망 등은 보이지 않는다. 현재 진행 중인 사건이기도 하고, 사태가 오리무중으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일 텐데, 그렇더라도 아쉬움은 남는다.

    하지만 이병철 시대와 이건희 시대의 역사에 대해 알고자 한다면 나쁘지 않은 교양서라 할 수 있다. 특히 이병철 시대에 그가 행한 정경유착 경영 행태는 알 만한 사람들은 알아도, 대중적으로는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많기 때문에 이 책처럼 장벽을 낮춘 책이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특히, 삼성에서 일하는 원‧하청 노동자들이 자신의 위치를 어느 정도 가늠하는 데 있어서 확실히 유용하다.

    저자는 한국의 재벌이 “탄생부터 정치적 기업”이었으며, 개발독재는 “재벌의 성장을 일방적으로 돕는 시스템”에 다름 아니었다고 말한다. 재벌과 독재정권의 동맹으로 운영된 개발독재의 본질은 “정치에서 노동자·시민의 배제와 박탈”이었다. 노조 파괴 등 무소불위의 폭력이 이어졌다. 어디까지나 이는 “재벌의 이윤과 자본축적”을 위한 것이었지만, 정부는 ‘발전국가’란 이름으로 포장했다. 저자는 소위 ‘발전국가론’ 자체에 대해 비판적이다. 발전국가론은 “경제성장의 지도자로서만 정부의 개입을 강조함으로써 실제로는 노동자와 시민에 대한 억압을 제대로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삼성은 일제 지배자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노태우, 김영삼-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져오는 수십 년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정치권력과 관계를 맺고, 끈덕진 정경유착을 이어왔다. 저자는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격정적 어조로 이병철-이건희로 이어지는 삼성그룹 이씨 일가에 대해 비판한다.

    하지만 이 책은 단점이 있다. 그 첫 번째 결함은 삼성 자본을 변화시키기 위한 ‘대안’ 제시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요컨대 최순실 게이트로 구속된 이재용 부회장이 부재한 상황에서 사회운동은 삼성에 대해 단순히 ‘처벌하라’ 혹은 ‘문제는 정치다’라고 말하는 것을 넘어, 처벌하고 정치를 강화한 후 삼성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처벌은 하더라도, 그 다음엔 어쩌자는 건데?”라는 질문이나, “정치적 해결을 통해 삼성의 경영 세습을 막더라도 외국계 투기 자본이 삼성을 장악하면 어쩔 건데?”라는 질문에 대해 나름의 대안을 갖고 답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엔 그런 고민이 부재하다.

    두 번째로, 삼성 내의 또 다른 주체로서의 노동자의 문제, 즉 기업 권력에 저항하는 내부 주체로서의 ‘노동자’에 대한 고민이 미비하다는 점이다. 이따금 노동조합 결성 움직임이나 제일모직 파업 등 꽤 알려진 사건들에 대한 서술이 있지만 지나치게 소략하다. 삼성왕국을 바꾸는 ‘투쟁’이 ‘1%’에 맞선 ‘99%의 계급투쟁’이자 ‘자본독재에 맞선 시민의 정치가 필요함’을 역설하지만, 지나치게 두루뭉술하다. 구체적으로는, 어떻게 하면 100만이 넘는다는 삼성 원청-하청의 노동자들이 단결할 수 있는가의 문제에 대해서 큰 문제의식이 없어 보인다. 그 때문에 최근 삼성전자서비스 하청 노동자 노조 결성이나, 삼성 웰스토리나 에버랜드 등에서의 노조 결성에 대해 아무 언급이 없는 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결국 삼성을 변화시킬 주된 내부 동력은 삼성 노동자 자신이 되어야 하고, ‘삼성 왕국’이 만든 한국 사회의 해악 역시 삼성 노동자들 자신의 단결과 저항을 통해서 극복해야 한다면, 이 문제에 대해 우회할 수 없다. 삼성 권력 해체는 단순히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법 제도적 개선 및 집행을 정상화하는 것을 넘어 한국적인 자본주의 체제의 특이성, 한국 사회를 개혁할 견인차가 되어야 할 ‘대안 주체’를 형성하는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셋째로, 삼성 자본의 사회 지배에 대해 다루고 미래 과제에 대해 논하려면, 삼성의 동아시아 글로벌 생산네트워크 진출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한국을 떠나 중국과 베트남으로 간 삼성이 현지에서 노동자들을 어떻게 착취하는지, 나아가 한국에서 하던 경영 전략을 어떤 방식으로 펼치고 있는지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물론 이는 이 책이 다룰만한 범주가 아닐 수 있지만, 우리가 넘어서야 할 문제와 모순들에 대해서도 제시할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그럼에도 이 책은 저자가 얼마나 진심으로 삼성의 자본독재에 분노하고 이를 바꾸고자 하는지 느낄 수 있게 하는 ‘뜨거운 책’이다. 책을 읽다보면 저자의 분노가 불쑥 불쑥 튀어나와서 깜짝 놀랄 정도다. 그런 점에서 책의 뒷부분은 하나의 정치 팸플릿처럼 느껴진다. 보통은 이런 점이 단행본의 매력을 삭감시키기도 하지만, 이 책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큰 매력이다. 삼성 노동자들이나, 삼성 문제에 대해 개략적인 스케치를 그려보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면 읽어봄직 하다. 가벼운 책읽기 모임에서도 충분히 함께 읽고 토론할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이 다루지 못했거나, 소략한 쟁점들은 아마도 저자 이종보 박사의 또 다른 책 《민주주의 체제하 ‘자본의 국가 지배’에 관한 연구: 삼성그룹을 중심으로》(한울)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은 저자 자신의 박사 논문이기도 하다. 풀란차스나 밥 제솝의 이론 틀을 가져와 한국 사회에서 자본의 국가 지배가 어떻게 이뤄졌는지를 역사적·이데올로기적으로 분석한 작업으로 보인다. 몇 달 전 사놓고 아직 읽지 못 했는데, 매우 궁금하다.

    필자소개
    월간 '오늘보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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