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회, "FTA? 우린 몰라, 선거해야지"
        2006년 04월 03일 05:4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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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FTA 본 협상이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한국사회의 틀을 완전히 바꾸게 될 운명의 시간이 한 발자국씩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회는 아무 생각이 없다. 온통 선거 얘기거나 상대방의 부정과 비리를 폭로하는 진흙탕 정치뿐이다. 국가의 존망이 걸린 중대사가 목전에 있음에도 국회는 무관심, 무지,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 2월 임시국회 폐회일인 3월 2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여야의원들이 비정규직 관련 3개 법안과 금융산업구조개선법 개정안을 제외한 53건의 법안을 처리하고 있다.(서울=연합뉴스)
     

    한미FTA는 포괄적 ‘경제통합’ 협정

    한미FTA가 우리 사회에 미칠 영향은 측량이 불가능하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는 "한미FTA는 자유무역협정이라기보다, 포괄적 ‘경제통합’ 협정이라고 보는 것이 현실에 부합한다"면서 "그것이 미칠 영향은 현재로선 측정 가능한 범위를 넘어선다"고 말했다.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바 있는 정태인씨는 한미FTA를 한일합방에 비유했다. 한미FTA란 한국경제와 미국경제의 완전한 합병을 뜻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중대한 역사적 시간을 앞에 두고 대한민국 국회는 무엇을 했을까. 없다. 무엇을 계획하고 있을까. 그것도 없다. 민망한 일이지만 사실이다. 국회는 우리 정부의 협상 전략이나 가이드라인조차 모르고 있다.

    한미FTA에 대해 아는 것도, 하는 것도 없는 국회

    2 월 16일 외교통상부의 국회 통외통위 업무보고에서 ‘FTA를 추진하겠다’는 ‘보고’를 들은 게 전부다. 당시 외통부는 협상 일정과 향후 계획, 지극히 원론적인 수준의 기본 협상 방향 등에 대해서만 간략히 보고했다.

    여야를 막론하고 그 이후에는 좀 더 구체화된 내용을 들은 것이 전혀 없다. 협상 내용에 관한 한 국회의원이 아는 것과 일반 국민이 신문을 통해 아는 것 사이에 별 차이가 없다고 보면 된다. 하다못해 한미FTA의 파급 효과에 대한 정부의 공식 보고서 하나 받은 것이 없다. 권영길 의원실 이승원 보좌관은 "통상교섭본부에 보고서를 요청했는데 갑자기 못주겠다고 말을 바꿨다"며 황당해했다.

    여당 의원들도 다르지 않다. 열린우리당 의정연구센터는 지난 2월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을 초청해 토론회를 가졌다. 김현종 본부장은 이날 FTA의 파급 효과에 대한 몇 개의 통계치를 제시했다. 그러나 정부의 공식 보고서는 아니었다. 여러 국책 기관들이 내놓은 각종 추정치를 조합해놓은 수준이었다. 그나마도 토론회가 끝난 후에는 다 걷어갔다.

    이화영 의원실 관계자는 지난 2월과 3월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연달아 발표한 보고서는 정부의 공식 보고서가 아니라고 말했다. 여러 보고서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 얘기는 정부 정책의 준거가 되는 공식 보고서가 아직 없거나 최소한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협상을 선언하기 전에 협상 이후의 파급 효과를 예측하는 건 기본이다. 이 관계자는 "시뮬레이션이 당연히 이뤄졌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추측일 뿐이다. 누구도 결과물을 본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왜 국회에 협상과 관련된 일체의 내용을 알리지 않을까. 협상전략상 보안이 요구된다는 게 정부의 답변이다. 이런 논리를 상당수 국회의원들도 공유하고 있다. 열린우리당 노웅래 공보부대표는 "정부가 시뮬레이션 결과물을 갖고 있으나 보안상의 이유로 내놓지 않고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국익이 달린 일인 만큼 정보가 새나가면 안된다는 것이다.

    오직 선거, 선거, 선거

    나라의 존망이 걸려있는 중요한 협상을 앞에 두고 국회는 그저 한없이 무력하다.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은 "국회의원들이 거수기 역할을 했던 관행에 젖어 아무 역할도 하지 않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 의원은 또 "한미FTA는 나라의 틀을 바꾸는 중대한 사안임에도 국회에 관련 특위 하나 없다"면서 "전부 선거 준비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고 비판했다.

    한미FTA 협상에 대한 국회의 역할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경우도 흔치 않다. 시선은 온통 선거에만 쏠려 있다. 아래는 기자가 국회 통외통위 소속 어느 한나라당 의원실 보좌관과 나눈 대화다. 

    – 한미FTA에 대한 국회의 역할에 대해 의문이 있는데요?
    = 한미FTA는 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 하더라도 잘 해야 할 거 아닙니까. 협상이 잘 되고 있는지 국회가 국민을 대표해서 감시하고, 견제도 하고, 최소한 내용 인지 정도는 하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 협상 중간 중간에 내용을 알 수 있습니다. 

    -제도적 강제방안이 없는 것 아닙니까. 지난 한중 마늘협상 때 이면합의가 가능했던 것도 그래서 아닌가요?
    = 국회의원들이 열심히 안 해서 그렇죠.

    – 국회의원 개인의 노력뿐 아니라 그것을 강제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 글쎄요. 깊이 생각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네요.

    – 선거 준비 때문에 바쁘신가 봐요?
    = 뭐, 그렇죠…

    국회의 직무유기는 위헌, ‘위헌소송’ 제기할 것 

    우리 헌법 제 60조 1항은 조약의 체결과 비준에 대한 국회의 동의 권한을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는 "조약에 관한 비엔나 협약을 보면 넓은 의미의 체결에는 전권대표 임명에서 협상 과정과 서명에 이르는 단계까지를 체결로 규정하고 있다"며 "국회의원들이 헌법에 나와 있는 조약의 체결.비준에 관한 동의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법을 만드는 국회가 헌법을 어기고 있다는 얘기다. 이해영 교수는 "적당한 시점을 택해 헌법재판소에 위헌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노동당 의원 중심 통상절차법 제출

    지난 2월 2일 권영길 의원, 강기갑 의원 등 여야 의원 40명은 ‘통상협정의 체결 절차에 관한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정부는 협상의 목표와 협상의 진행 과정 등을 정기적으로 국회에 보고해야 한다. 협상의 범위 등에 중대한 변화가 있는 경우에도 의무적으로 보고를 해야 한다. 특히 협상이 완료된 경우라도 협정서에 최종 서명을 하기 전에 국회의 동의 절차를 거치도록 되어 있어 국회가 거수기로 전락하는 일은 없게 된다.

    정부, 여당에 통상절차법 관련 논의 중단 요구

    그러나 4월 국회에서 이 법이 통과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이 법안이 공론화되는 것을 막으려는 정부의 ‘작업’이 여당 의원들을 대상으로 은밀하게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통외통위 소속 열린우리당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통상절차법에 대해 외교부는 혼란만 가중시킬 것이라며 열린우리당 의원들에게 논의 중단을 비공식적으로 요구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한미FTA 및 다발적 FTA가 모두 끝날 때까지는 현행대로 가자는 것이 외통부의 입장이다. 소 몽땅 잃고 외양간 고치자는 얘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4월 국회는 어떤 선택을 할까

    4 월 임시국회는 오는 6월 초 한미FTA 본 협상에 들어가기 전에 갖는 마지막 국회다. 지금껏 보여 온 식물성을 극복하고 정부의 일방독주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본연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지 국민들은 4월 국회를 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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