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년의 갈라진 역사
    남북관계, 대화와 접촉의 역사
    [책소개] 『70년의 대화』(김연철/ 창비)
        2018년 02월 03일 12:3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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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지난 9년간 단절되었던 남북대화의 물꼬가 터졌다. 올림픽 기간 동안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잠정 중단하기로 한 데 이어, 북한의 올림픽 참가를 위한 남북대화가 비핵화와 평화에 관한 논의로 이어질 것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다.

    분단 이후 70년이 지났지만 남과 북은 여전히 냉전의 파도가 치는 바다 한가운데 있다. 그러나 남북이 걸어온 길을 돌이켜보면, 바다 한가운데 도로와 철도가 놓이고 사람들이 오가며 물자가 넘나들던 해빙의 순간들이 있다. 적대의 바다는 때로 협력의 공간으로 변하기도 했다. 두번의 남북 정상회담, 이산가족 상봉, 세계선수권의 남북 단일팀, 개성공단 조성 등 한때 남북을 이어주던 다리는 왜 오늘날 자취를 감춘 것일까? 북한이 핵 도발을 일삼으며 일방적으로 끊어버렸다는 주장도 있지만, 관계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늘 상호적임을 고려해야 한다.

    이 책 『70년의 대화: 새로 읽는 남북관계사』는 정전협정부터 북핵문제에 이르는 남북관계의 지난날을 수동이 아닌 능동의 지혜로, 좁은 눈이 아닌 넓은 눈으로, 단절이 아닌 역사의 지속으로 조망한다. 남북관계는 국제정치 질서와 국내정치 상황에 따라 대결과 악화, 접촉과 협력을 반복하면서, ‘전쟁을 일시 중단’하는 정전(停戰) 이후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정착’시키는 종전(終戰)에까지 이르지 못했다. 현재 청와대 국가안보실 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저자 김연철(인제대 통일학부 교수)은 남북관계를 바라볼 때 흔히 북한의 대남정책을 중시하던 데서 눈을 돌려, 종전과 평화정착 과정에서 한국의 주도적 역할과 대북정책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강조한다.

    “2018 북한의 동계올림픽 참가는 남북 70년 대화의 연장이다”

    오래전 ‘널문리’라는 마을이 있었다. 사천강에 널빤지 다리가 있어 널문리라 불렀다는 설이 있다. 조선 초 중국 사신이 한양으로 가기 전 쉬어 가는 주막이 들어서면서부터는 주막 마을로 발전했다. 시간이 흘러 널문리는 유엔군과 공산군의 휴전협상 장소가 되었다. 1951년 10월 22일 임시 천막이 들어선 순간 전세계의 이목이 이곳에 집중됐다. 중국에서 ‘널문리 가게’를 한자로 고쳐 부르며 이름도 달라졌다. 평화로운 널문리는 사라지고, 분쟁의 공간인 ‘판문점(板門店)’이 탄생한 것이다(본문 21~23면 참조).

    『70년의 대화』는 해방 직후 분단을 겪고 두개의 정부가 수립된 무렵부터 오늘날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대화를 재개하기까지, 남북관계의 결정적 장면을 속도감있게 그리는 한편 관계의 정곡을 파고든다. 1950년대 정전협정과 제네바 회담, 1960년대 냉전기를 상징하는 푸에블로호 사건, 1970년대 남북 첫 만남인 적십자회담과 남북공동성명, 1980년대 이산가족 상봉과 남북기본합의서, 1990년대 불거진 전쟁위기, 2000년대 두번의 정상회담과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조성, 철도 연결 등 경제협력, 2010년대 북한 핵개발과 제재조치의 악순환을 돌이켜볼 때, 남북관계는 대결하다가도 협력하고 전쟁위기까지 갔다가 협상 테이블로 돌아오며 ‘가다 서다’를 반복해왔다. 그 사이사이를 ‘대화’가 이었다.

    1972년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이라는 통일 3대 원칙을 포함한 남북공동성명이 합의된 뒤에도, ‘반공’을 국시로 내걸고 ‘주한미군 감축’을 우려한 박정희 정부에서 이 합의문을 발표할 것인가 말 것인가, 또 발표한 뒤에도 북한을 북괴가 아니라면 무엇이라 불러야 할 것인가에 관한 논란이 계속됐다. 대결의 시대가 지속되던 와중에, 1984년 남쪽에 큰 수해가 닥쳤다. 북한은 수해물자 제공을 제안했고, 전두환 정부는 사회주의권 국가들의 서울 올림픽 참여를 위해 이를 받아들였다. 정상회담은 여러차례 무산되었지만, 인도적 차원의 대화는 남북의 경제적, 사회·문화적 교류로 이어졌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남북이 다시 대화를 시작한 상황이 ‘처음은 아니며’, 이는 남북이 ‘70년의 대화 위에 올라타 있는 것’뿐이라 담담하게 말할 수 있는 이유다(본문 15면 참조).

    이 책에서 제시하는 7개의 시대, 7가지 대북정책(이승만, 박정희, 전두환·노태우, 김영삼, 김대중·노무현, 이명박·박근혜 정부)을 통해 오늘날 남북관계를 들여다본다면, 해상경계선을 둘러싼 군사충돌, 북한의 핵 도발, 대북 쌀 지원에 관한 잡음, 미국·중국·일본·러시아와의 이해관계 다툼처럼 그날그날의 긴박한 뉴스를 정치적으로 조성된 불안이나 공포와 거리를 두고 꿰뚫는 눈을 얻게 될 것이다.

    전두환·노태우 정부보다 못한 김영삼 정부의 대북 공백
    남북관계의 오늘을 만든 7시대의 과거사

    이승만부터 이명박·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지난 정부의 대북정책을 남북관계의 성격에 따라 시대별로 조망한다.

    이승만 정부의 대북정책은 전쟁의 연장선에 있었다. 전후(戰後) 이승만 정부는 반공노선을 앞세워 북진통일을 주장했다. 휴전에 반대했고, 한반도 문제를 논의하는 제네바 회담 참여를 거부하다 회담 개최 8일 전 가까스로 수락했다. 휴전이 깨어질 것을 염려한 미국이 오히려 한국정부를 자제시키고 ‘이승만 제거 계획’까지 검토했을 정도다. 미군의 한국 내 주둔 등 내용을 포함한 한미상호방위조약은 그런 이승만의 북진통일 의지를 단념시킬 수단으로서 미국이 선택한 카드였다.

    박정희 정부에 들어서는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군사충돌이 빈번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대화는 시작됐다. 분단 이래 첫 만남인 적십자회담이 이뤄졌고 직통전화 설치, 남북공동성명 채택 등 성과도 적지 않았다. 소련·중국 등 사회주의권에 대한 문호 개방을 뜻하는 ‘북방정책’ 개념이 등장해 이후 전두환·노태우 정부 정책에 밑거름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국제적인 데탕트 국면을 오히려 정권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해, 계엄령을 선포하는 한편 ‘북한의 남침 가능성’을 과장해 국내정치 수단으로 활용했다.

    대결과 대화가 아슬아슬하게 오가던 냉전의 분위기는, 서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기 위해 공산권 국가에 대한 외교가 필요해지면서 전환을 맞았다. 전두환 정부는 이산가족 상봉과 경제회담으로 교류의 물꼬를 틀었고, 노태우 정부는 이른바 북방정책을 통해 소련·중국과 수교하고, 남북관계를 미국이 아닌 남북 당사자가 주도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오늘날까지 핵문제 해결의 중요한 통로가 되어온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 그리고 남북 간 화해·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해 논의한 남북기본합의서는 이때 맺은 결과물이다.

    그러나 이후 김영삼 정부의 대북정책은 ‘공백의 5년’이라 할 정도로, 전략도 원칙도 없이 눈앞에 보이는 국내정치적 이익만을 쫓는 데 급급했다. “북한이 도발하면 대북 강경여론에 올라타고, 정부 능력을 문제 삼으면 장관을 교체”하는 식이었다. 1994년 6월 전쟁 공포를 조성해 라면과 쌀 사재기가 일어나고, 북한의 ‘서울 불바다 발언’을 언론에 공개해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을 받는 것에 관한 북미 합의가 붕괴되는 등 우왕좌왕이 이어졌다(본문 175~82, 189~94면 참조).

    이런 상황에서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대북정책의 철학부터 다시 가다듬을 필요가 있었다. 무엇보다 남북 간 신뢰 회복을 위해 ‘접촉을 통한 변화’를 꾀하는 포용정책, 즉 햇볕정책을 기조로 삼았다. ‘퍼주기’라는 비난 속에, ‘차관’ 즉 나중에 되갚는 형식을 통해 대북 쌀 지원을 추진했고, 금강산 관광 사업, 개성공단 조성, 철도·도로 연결 등 경제적, 사회·문화적 교류를 이어나갔다. ‘과정으로서의 통일’에 합의하고 북핵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남긴 두차례 정상회담도 성사되었다. 실제로 노무현 정부 시기 남북한의 군사충돌은 한번도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9년간 남북관계는 냉전이라는 ‘오래된 과거’로 후퇴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은 이전 정부의 정책을 부정하는 데서 출발했고, 2008년 ‘통일부를 폐지하고 외교통일부를 신설하겠다’는 결정이 앞으로의 방향을 예고했다. 1991년 채택된 남북기본합의서에 따르면 남북관계는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 관계’다. 즉 한국이 북한과 맺는 관계는 중국이나 일본 등 여타 국가들과 맺는 외교관계와 지향점이 다르며, 그 귀결이 ‘통일’이라는 데 남북 모두 동의하고 있는 것이다.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평화통일로 나아가는 것이 헌법정신이자 대통령의 중책임을 부정한 정부는 그전까지 없었다. 노무현 정부 시기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도출된 10·4선언은 남북관계의 분야별 현안을 망라해 40여가지 과제를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을 부정한다면 대북정책에서 할 일은 없어지는 셈이다(본문 257~258면 참조).

    저자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진지함의 부족’,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을 ‘현실성의 (고의적인) 결여’로 평가한다. 기본적으로 흡수통일을 기조로 삼아, “북한이 핵을 폐기하면 1인당 국민소득을 3000달러 수준으로 올려주겠다”는 ‘비핵·개방·3000’을 비롯해 ‘그랜드 바겐’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같은 이름만 거창한 정책을 내걸었는데, 정작 상대방인 북한의 의중을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주장이거나, 실행방침이 없는 텅 빈 정치적 구호에 그쳤다. 통일의 과정을 어떻게 밟아나갈지에 대한 계획 없이, 북핵문제 등 남북관계 현안을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한 대책 없이, 단순 손익계산으로 통일의 핑크빛 미래를 무책임하게 던진 ‘통일대박론’은 그 정점이었다.

    문재인 정부 평화·통일 비전을 먼저 읽는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은 대화를 재개했다. 그러나 남북을 둘러싼 긴장은 가시지 않았고, 갈 길은 멀다. 북한은 여섯번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통해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고 북미관계는 더욱 악화됐다. 한국은 주한미군의 사드(THAAD) 배치를 통해 북핵에 대응하겠다며 나섰지만 중국의 반발도 심상치 않다. 과연 ‘대화’를 통한 대북정책에 방점을 두고 있는 새 정부에서 남북관계의 다음 단계를 모색해볼 수 있을까?

    문재인 정부의 국가안보실 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저자는 먼저 협상론과 제재론을 비교하며, 지난 정부의 제재 일변도 대북정책이 현실성이 없을뿐더러 결과적으로 북핵문제에서 아무런 효과도 거두지 못했음을 지적한다. 제재와 압박을 강조하는 쪽에서는 북한이 핵을 폐기하면 경제협력을 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해왔지만(이는 개성공단 폐쇄 등으로 이어졌다), 북한이 받을 수 없거나 받지 않을 것임이 자명한 제안만 반복한다면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은 불가능하다. 서로 불신이 깊기에 조심스레 신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있어야 하며, 당연히 긴 안목과 인내심을 가지고 북한을 협상 테이블에 데려오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 협상의 기본과 ‘쉬운 문제부터 어려운 문제로 나아가는’ 출구전략에 입각한 9·19공동성명, 그리고 6자회담이라는 다자간 접근방식이 북핵문제를 해결하는 데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본문 295~309면 참조).

    일단 협상을 시작하면 목표는 분명하다. 남북은 휴전체제에서 종전체제로, 마침내 평화체제로 이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종전선언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끝났다’라는 한마디로 족한, 법적으로 매우 간단한 일이지만, ‘사실상의 평화’를 구축하는 데에 미칠 효과는 크다. 종전이 선언되면 유엔사령부와 주한미군의 위상이 달라지고 남북 당사자 중심으로 군사적 신뢰를 구축하는 후속조치가 필요해진다. 북핵문제는 한반도에서 냉전이 종식될 때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북핵문제 해결은 사실상의 평화, 사실상의 통일로 나아가는 길 위에 있다. 남북 대화를 통해 철도를 연결하고, 북방경제를 이용한 경제공동체를 구상하고, 서해 평화지대를 조성하는 일이 그 다리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이 책의 서두에서 저자는 남북관계를 거울 앞에 선 두 사람에 빗댄다. “거울 앞에서 내가 웃으면 거울 속의 상대도 웃고, 내가 주먹을 들면 상대도 주먹을 든다. 그러나 주체와 객체는 분명하다. 거울 속 상대가 나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거울 속 상대를 움직인다.” 관계는 상호적이다. 관계의 변화를 원한다면, 변화를 원하는 쪽이 먼저 움직여야 한다. 상대가 알아서 변하기만을 기다린다면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남북관계의 70년이 가까스로 얻은 대화 국면에서 지금 우리에게 말해주는 바다(본문 14~15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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