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과 성향의 문과 학생
[누리야 아빠랑 산에 가자-34} 어른도 겁먹는 '비봉'
    2018년 02월 02일 10:4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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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나서려던 참이었다. 할매가 아이에게 말했다.

“어젯밤에 어떤 여자가 전화해서 누리를 찾더라. 학원에 갔다고 얘기하니까 알았다며 끊더라.”

아이는 큰일 났다며 친구들에게 부랴부랴 전화를 걸었다. 그러고선 집을 나섰다. 절친 ㄹ이 남친을 사귀고 있는데, ㄹ엄마가 눈치를 챈 것 같다고 했다. ㄹ과 남친은 독서실에서 만나 공부도 하며 사귀고 있단다. 급히 전화한 친구는 혜지, 유진 등인데, 입을 맞춘 것이라 했다. ㄹ엄마가 물어보면, ㄹ이 그 시간에 누구랑 어디에 있었다고 대답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오리발을 모의한 거였다. 임기응변인 듯싶었다. 의심하는 어른의 눈초리와 넘겨짚기를 당해낼 재간이 없을 터였다. 아무튼 친구를 궁지에서 구하기 위해 고민하는 아이들이 기특했다.

북동쪽 방향에서 비봉을 올랐다. 딸아이는 초입에서 엉금엉금 기었다. 커다랗고 둥그런 바위에 폭이 좁아서 미끄러지면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질 것 같은 구간이었다. 어른도 처음에 오르면 심하게 겁먹는 구간이었다. 실제론 사람 두 키밖에 되지 않아 굴러 떨어져도 그리 위험하진 않았다. 정상 지대를 앞둔 지점이었다.

“학생이 오르기 힘든 곳인데 잘 오르고 있네.”

낯모르는 등산객의 격려에 딸아이는 미소로 답했다.

“보성여고에서 비봉에 오른 학생은 너 말곤 아무도 없을지도 몰라. 전국에서도 비봉 오른 고등학생은 몇 명 안 될 거고. 너는 오늘 대단한 일을 한 거야.”

정상의 진흥왕 순수비 모형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주며, 칭찬했다. 딸은 함박미소를 품었다.

비봉과 함께 찍은 딸아이 사진이 흡족하게 나왔다. 내 휴대폰 배경 화면으로 깔았다.

“아빠, 며칠 전에 과학 선생님이 그러는 거야. 문과에 이과 성향 아이가 있다면서 네가 수민이냐, 하면서 묻더라고. 깜짝 놀랐어. 선생님들이 문과에 이과 성향 학생이 있다는 얘기를 한다는 건 나도 알고 있었어. 나는 다른 친구로 생각하고 있었거든. 근데 내 이름을 얘기하는 거야. 기분 좋았어.”

딸은 흐뭇해했다.

“심리학뿐 아니라 모든 학문이 종합적이야.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더 그렇게 되지. 수학, 과학, 사회, 문화, 경제 등 다양한 영역을 종합적으로 연결하는 게 필요해. 종합적 사고가 있어야 하는 거야. 글과 말로도 잘 표현할 수 있어야 하고. 학교 공부 말고도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알았어, 아빠. 그럴게.”

밤이 제일 길다는 동지가 50여 일 앞이라 그런지, 해가 많이 짧아졌다. 5시쯤인데도 산길은 어둑했다. 흐리기도 했다. 딸애는 무용과 출신의 체육 선생이 했다는 얘기를 했다. 수업 시간에 아이들에게 귀신 목격담을 얘기한 모양이었다. 아이들은 오싹했단다. 아빠는 귀신을 믿지 않는다고 했다. 하산을 마치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모자를 쓰라고 했다.

필자소개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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