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리켓이 뭐기에
    인도인들이 열광하나?
    [인도 100문-33]국가주의와 스포츠
        2018년 02월 02일 10:3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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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사람들이 인도에 가서 살면서 가장 놀란 것 가운데 하나가 그들의 크리켓에 대한 열광일 것이다. 하루 종일 경기를 하는데 그것을 일주일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주자가 죽지 않으면 더 할 수도 있다.

    길거리고 집이고 사무실이고 동네 상점이고 가에 4년에 한 번씩 열리는 월드컵 때는 나라 전체가 들썩인다. 유명 선수는 거의 신격화 되다시피 하고, 주요 경기가 있는 날이면 볼리우드 스타들도 빠짐없이 등장을 하니 가히 전국이 열과의 도가니에 빠진다.

    그러니 TV 중계는 쉴 새 없이 진행되고, 사람들은 밥 먹을 시간도 없이 TV만 쳐다 본다. 그러니 광고 단가도 이때가 연중 가장 높은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실제로 그들이 크리켓 경기를 열광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학생들이야 가장 많이 즐기지만 어른이 되면 그들은 경기를 하는 것보다는 주로 TV나 라디오 시청을 하는 편이다. 한국의 경우, 야구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인도는 하나다, 라는 명제는 크리켓에 의해 강화된다 @이광수

    크리켓이 이렇게 열광의 도가니가 된 것은 처음 그것이 도입될 때의 역사적 상황과 맞물려 있다. 영국은 동인도회사를 앞세워 인도를 정복했는데, 그 과정에서 많은 전쟁을 치렀고 저항도 많이 받았으나 동시에 그들 서구 근대 문명을 환영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특히 처음 들어온 꼴까따와 벵갈 지역에서 인도인 상층 계급은 영국의 근대 문명을 찬양하기에 바빴다. 어떻게 해서든 영국인들과 비슷하게 보이게 하기 위해 의식주 문화를 바꾸면서 도시 문화를 적극적으로 영위해나갔다.

    이때 그들 문화의 하나로 각광을 받은 것이 크리켓이었다. 크리켓은 영국 사람들이 가지고 들어와 자기들끼리 즐기는 경기였는데, 토착 인도인들은 그 경기를 배우고 싶어 안달이었다. 크리켓을 함으로써 영국인과 동일하게 된다는 심리적인 현상이었다. 그래서 영국 근대 문화를 받아들이는데 적극적으로 앞장선 벵갈의 브라만들은 비로소 영국인들에 의해 신사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민족주의 운동이 벵갈을 중심으로 전개되었고, 이때 인도인들은 영국이 뻐기던 크리켓에서 그들을 이김으로써 영 제국주의를 무찌르는 카타르시스를 즐겼다. 그러면서 그러한 분위기는 민족주의를 강화시키는 방식으로 연결되었으니 스포츠를 통한 정치 행위의 역할을 하였다. 한국의 경우로 치자면 전두환 군부독재가 3S 차원에서 프로야구를 도입했는데, 80년 5.18을 겪은 광주와 호남 사람들이 프로야구 응원을 통해 핍박의 설움을 해소하는 간접적 정치 행위를 한 것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크리켓이 인도에서 본격적으로 국민 스포츠가 된 것은 독립 후 파키스탄과의 정치적 관계 때문이기도 하다. 독립 후 인도는 영연방 안에서 비교적 영국과 좋은 국가 관계를 유지하면서 지내왔고 그 영연방 구가들은 크리켓을 공유하면서 하나의 연방 소속을 확인하고 유대 관계를 강화하였다. 인도를 하나의 국민국가로 만들 만한 마땅한 문화가 없는 터에 크리켓은 마침 좋은 대안이 되었다. 인도는 1970년대까지 국제대회에서 별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으나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좋은 성적을 냈고 그것이 국가 스포츠의 위상까지 오르게 되었다. 그러기에 결정적인 것은 파키스탄에 대한 승리였다.

    1970년대 말부터 불거져 나온 시크교도의 분리 독립 운동, 인디라 간디의 암살, 라지브 간디의 암살, 파키스탄과의 군비 경쟁과 긴장 관계 심화 등은 국민을 하나로 총화 단결시키는 어떤 장치를 필요로 하였고, 이때 파키스탄에 대한 크리켓 경기 승리가 그 역할을 담당하는 결과를 낳았다. 1987년에 파키스탄과 공동으로 크리켓 월드컵을 유치하게 된 것은 크리켓이 국가주의 발흥의 주요한 기제로 작동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후 크리켓은 인도 시장이 열리고 신자유주의 신경제 정책에 정부가 적극 홍보하면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었다.

    크리켓을 보면 인도 문화와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해본다. 우선 비슷한 경기인 미국의 야구는 심판의 역할이 큰 반면에 크리켓은 심판이라는 게 하는 일이 거의 없다. 전형적 영국식 스포츠인데, 어느덧 인도 문화의 일부가 되어 있다. 야구에 비해 그렇게 복잡하지 않아 주자가 죽지 않으면 게속 진행하는 경기다. 참 죽기도 힘들구나, 라는 생각을 해보니 참으로 인도스럽다, 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그 많은 인도 전역 시골 사람들이 이 중계방송 들으며 시간 때우기에 안성맞춤이다.

    정부 입장에서는 인도인의 느긋함과 잘 어울리고, 영국 문화 동경하는데 좋고, 국가를 하나로 만드는데 일조하고, 파키스탄에 대한 배타적 민족주의 키우는데도 좋으니 키우지 않을 수가 없다. 스포츠 가운데 세계1위라고 뻐기는 것은 이것밖에 없으니 오직 크리켓이다.

    필자소개
    이광수
    역사학자. 사진비평가. 부산외국어대학교 인도학부 교수. 저서로는'사진인문학', '붓다와 카메라', '제국을 사진 찍다' (역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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