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래로 투쟁했던 그람시의 후예들
        2006년 04월 17일 07:3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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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l Canzoniere Delle Lame
    "Chants De Lutte Italiens"
    1977년 발표
    .

    Side A
    1. bandiera Rossa
    2. La Lega
    3. I Grandi Maggazini
    4. Le Lavoranti A Domicilio
    5. I Giornali Femminili
    6. Veniamo Da Lontano
    Side B
    1. Bella Ciao
    2. Contessa
    3. Chi Non Vuoi Chinar La Testa
    4. Se Non Li Conoscete
    5. Bandiera Nera La Vogliamo No
    6. Tu Compagno
    7. All’armi… Siam Digiuni

    얼마 전 이탈리아 총선에서 중도좌파가 턱걸이 승리를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런데 말이 중도좌파지 내용을 들여다보면 중도우파부터 재건공산당까지 모조리 긁어모은 잡탕연합이다. 그래서인지 외신을 보면 ‘좌파가 이겼다’에 주목하기보다는 ‘이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까’에 더 궁금해 하는 모양이다.

    이탈리아하면 보통은 바티칸과 마피아가 떠오른다. 요리나 오페라 같은 문화가 연상되기도 한다. 그러나 알고 보면 이탈리아는 ‘좌익’의 나라이기도 했다. 70년대말 정원이 600명인 이탈리아 하원에는 200명이 넘는 공산주의자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100여명의 사회주의자들은 별도로 하고 말이다.

    의회만 그랬던 것이 아니다. 공산당계열의 노조에 소속된 한 노동자가 아침에는 공산당에서 찍어내는 일간지를 보고 점심에는 노조의 지시에 따라 파업을 하고 저녁에는 ‘인민의집(case del popolo)’에 들려 당원모임에 참석했다가 아래층에 있는 술집에서 맥주 한잔을 마시며 정치토론을 벌이고 밤에는 공산당이 지배하는 국영방송을 보다가 잠이 드는 것이 매우 보편적인 삶의 방식이었던 나라가 ‘서방선진 7개국’의 일원인 이탈리아였다.

    비록 한번도 정권을 장악하지는 못했지만 많은 주 정부를 공산당이 직접 통치했고 그보다 더 많은 수의 자치 도시를 공산당이 장악하고 있었다. 4~50년대의 옛날이야기지만, 그런 ‘붉은 도시’의 시청사에는 레닌이나 스탈린의 초상화가 걸려있곤 했다.

    그런 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 ‘돈 까밀로와 뻬뽀네’다. 이탈리아 북부 포강 유역의 한 작은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주임신부와 공산당 소속의 읍장이 겉으로는 대립하면서도 속으로는 서로를 존경한다는 이야기인데, 사실 이 소설은 50년대 카톨릭 계열 신문에 연재된 일종의 ‘반공’소설이다. 이 소설은 카톨릭재단들이 붉은 무리에 맞서 신앙을 지키고 있는 이탈리아의 ‘현실’을 알리기 위해 전 세계에 번역해서 보급했다.

    하지만 70년대 후반 이 소설이 국내에 번역됐을 때는 전혀 다른 문맥으로 읽혀졌다. 공산당이 지방행정조직을 장악하고 각종 정치선전을 공공연히 벌일 뿐만 아니라, 광장에는 인민의 집을 지어놓고 그 안에 극장, 술집, 보육원까지 갖춰놓은 것을 본 불온한 대학생들이 무엇을 상상했겠는가.

    더군다나 책 속의 신부는 비록 지금은 공산당과 대립하고 있지만 2차대전 때는 바로 그 공산주의자들과 산속에서 총을 들고 파시스트들에 대항해 싸웠던 ‘빨치산’으로 그려져 있다. 한 나라에서는 반공소설이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다른 의미의 상상력을 자극했던 셈이다.

    * * *

    “일 깐쪼니에레 델레 라메(Il Canzoniere Delle Lame)"는 볼로냐 지방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이탈리아의 민중가요 그룹이다. 굳이 우리말로 번역한다면 ‘칼날의 노래단’쯤 되겠는데 자신은 없다.

    자료를 통해 확인 할 수 있는 것은 이들이 학생, 교사, 노동자로 구성됐다는 것과 1970년에 결성돼 1980년까지 활동했다는 것, 그리고 이탈리아공산당(PCI), 이탈리아공산청년연맹(FGCI), 금속노조(FLM)와 함께 음반을 제작하거나 혹은 이들이 모인 집회나 각종 행사에 참여해 공연을 펼쳤다는 것이다.

       
    ▲ ‘일 깐쪼니에레 델레 라메’가 발표한 음반의 표지들
     

    이들이 주로 활동했던 지역이 바로 돈 까밀로 신부와 뻬뽀네 읍장 이야기의 무대가 된 포강 유역이다. 포 강 유역은 ‘레드 벨트’라고 불릴 정도로 공산당의 세가 막강했던 공업지대다. 이들은 이 포강을 따라 놓여있는 수많은 인민의 집을 돌며 공연을 펼치는 것이 주된 활동이었다. 앞의 소설에서도 등장하는 인민의 집은 아직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분화하기 전부터 이탈리아 사회주의자들이 지역에 건설한 정치와 문화의 거점이다. 기본적으로는 당과 노조 지부의 사무실을 중심으로 극장, 체육관, 유치원, 술집 등이 함께 있는 형태였다. 지역문화센터에 정치적 의미를 더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이탈리아공산당이 발달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번성할 수 있었던 데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었겠지만 인민의 집을 통해 정치와 문화 그리고 일상을 통합할 수 있었던 것이 크게 작용했다.

    * * *

    이 레코드는 1977년 프랑스에서 제작된 일종의 베스트 앨범이다. <Chants De Lutte Italiens>라는 제목도 물론 프랑스어다.

    그 이전까지 제작된 노래단의 음반 중에서 13곡을 모았다. 그중에서도 유명한 것이 각각 앞면과 뒷면의 서두를 장식하고 있는 ‘붉은 깃발Bandiera Rossa’과 ‘안녕, 예쁜 아가씨Bella Ciao’다.

    ‘붉은 깃발Bandiera Rossa’은 롬바르디아 지방의 민요 두개가 합쳐져서 만들어졌다고 알려져 있다. 다만 가사는 1908년 사회주의자인 까를로 툿찌(Carlo Tuzzi)가 쓴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현재 널리 보급된 가사는 원작이 아니라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개작된 것이다. ‘인터내셔널가’가 다소 의전용의 노래라고 한다면 ‘붉은 깃발’이야말로 이탈리아 좌익의 주제가에 해당하는 노래다.

    지금도 이탈리아에 벌어진 대규모 집회나 파업 소식을 전하는 해외뉴스의 화면에서 간혹 멜로디가 일부 들리곤 한다.

       
    ▲ ‘일 깐쪼니에레 델레 라메’의 구성원들 모습. 벽에 붙어있는 것은 이탈리아 공산당의 선거 포스터다.
     

    ‘안녕, 예쁜 아가씨Bella Ciao’는 2차세계대전 무렵 북부 산악지대에서 독일과 이탈리아 파시즘에 맞서 무장투쟁을 벌였던 레지스탕스들이 부르던 노래다. 누가 만들었는지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전후 유럽의 여러 나라로 전파돼 유명해지긴 했지만 반세계화 운동이 확산되면서 이 운동의 주제가처럼 불려지고 있다. 지금은 멕시코의 사파티스타 캠프에서도 자주 불려진다고 한다.

    여러 나라로 확산되면서 이탈리아어는 물론이고, 프랑스어, 에스파냐어, 독일어, 영어의 각기 다른 가사로도 번역됐다. 이 두 곡은 이제 세계사회포럼과 같은 거대한 국제연대행사에 참석할 때는 교양차원에서라도 미리 배우고 가야 할 노래가 됐다.

    앨범에 수록된 나머지 곡들의 기원이나 배경은 아무래도 언어의 장벽으로 인해 쉽게 접근하기 어렵다. 다만 13곡 모두 이탈리아 민중들이 투쟁의 현장뿐만 아니라 삶의 다양한 순간들마다 부르고 사랑했던 노래들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 뒤에는 이 노래들을 보급하기 위해 노력했던 ‘일 깐쪼니에레 델레 라메’같은 여러 노래단들이 존재했다.

    그람시의 후예들답게 문화투쟁 없는 정치투쟁의 공허함을 일치감치 깨닫고 실천했던 30여년전의 한 유럽 노래패에게 연대의 인사를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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