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강 한파와 에너지 불평등
    [에정칼럼] 성장으로 불평등 사라지지 않는다
        2018년 02월 01일 10:3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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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년 만의 최강·최장 한파가 겨우 지나갔다. 오랜만의 긴 한파로 본인 역시 겨울에는 잘 걸리지 않던 몸살감기를 지독하게 앓으면서 이 글을 쓰는 중이다. 한국뿐만 아니라 올겨울 대부분의 북반구 중위도 지역 국가들이 기록적인 추위에 몸살을 앓고 있다. 날씨와 기후를 잘 구분하지 못하는 트럼프의 발언과 달리 최근 들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이런 강추위는 뜨거워진 지구 때문이다. 북극이 따뜻해지면서 제트기류가 약화되고 북극의 찬 공기가 중위도 지역까지 내려오기 쉬워졌다는 것이다. 많은 언론에서도 언급한 바 있는 ‘온난화의 역설’이다.

    한파가 무서운 사람들

    이럴 때면 제일 먼저 걱정되는 사람이 어머니다. 본인은 집이 작고 보일러도 최근 고효율로 교체해 20~21도를 유지해도 가스 요금 걱정이 덜하다. 하지만 어머니는 집도 더 넓고 보일러도 효율이 떨어져 가스 요금 걱정으로 19도를 고집하신다. 보일러를 교체해드린다고 해도 돈이 많이 든다고 한사코 거절하신다.

    또 걱정되는 건 자립한 지 얼마 안 된 23살 에너지 활동가 친구다. 이 친구는 집주인이 더 효율 좋은 보일러로 교체하지도 않을 뿐더러 역시 비용 걱정에 온도를 높이기가 무섭다. 결국 고민을 거듭한 끝에 전기장판을 샀다. 밖에 나가 일하는 친구들은 더 걱정이다. 이런 겨울이면 뉴스에서도 단골로 등장하는 주차관리 노동자, 환경미화 노동자, 경비 노동자 등이 그렇다. 심지어 이런 한파에도 기어코 공사를 강행하는 건설 현장들도 수없이 목격했다.

    최근 보도된 통계청의 사망원인 분석조사는 2012~2016년에 한 해 평균 200여 명이 겨울철(11~3월) 저체온증으로 숨진다는 놀라운 결과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는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의 5배, 태풍이나 호우 등 비바람으로 인한 사망자의 2배 가까이 많은 수치라고 한다.

    그럼 올 겨울은 어땠을까?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1일부터 올해 1월24일까지 한랭질환 환자는 지난 겨울대비 25.6% 증가한 363명이다. 이중에서 65세 이상이 137명이고, 직업별로는 노숙인을 제외한 무직자가 155명으로 가장 많았고 학생 26명, 노숙자 20명 등으로 나타났다. 또한 의료급여를 수급하고 있는 취약계층도 1종 52명, 2종 11명 총 63명이었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고 특히 부유한 국가들이라고 예외도 아닌 모양이다. 지난 1월 12일 한국경제 신문에는 코펜하겐 컨센서스센터 대표라는 비욘 롬보르그의 한 칼럼이 올라왔다. 칼럼이 인용하고 있는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최근 보고서는 OECD 회원국에서 약 2억 명이 에너지 빈곤에 처해 있다고 추산했다. 더 놀라운 인용도 있었다. 일간지 인디펜던트 보도에 따르면 2014~2015년 영국에서 1만5천명이 겨울에 난방을 제대로 가동하지 못해 사망했다는 것이다.

    에너지 빈곤층을 위해 성장도, 값싼 전기요금도, 그대로 두시라?

    해당 칼럼은 이외에도 에너지 빈곤층에 대한 각종 통계와 우려와 함께 많은 기후변화 정책이 이들 에너지 빈곤층을 잘 신경 쓰지 않는다고 비판하는데, 결과적으로 주장하는 바에서 동의하기가 애매해졌다.

    먼저 그의 비판대로 세계적으로 태양광이나 단열재 설치를 위해 주는 보조금은 대부분 주택 소유자에게 그리고 부자에게로 간다. 그러니까 이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에너지 빈곤층들에게는 오히려 혜택이 잘 가지 않는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건물에너지효율화를 지원하는 각종 정책들은 이를 가장 필요로 하는 노후주택이 아니라 신축주택에 집중되어 있다. 지원금 지급이나 융자도 절차가 용이한 주택 소유주에게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화려한 아파트 단지들은 각종 제로에너지 시범사업이 시행되는데, 농촌에서는 도시가스도 안 들어와 에너지 비용이 월등히 높다. 분명히 방향이 잘못 돼도 한참 잘못 됐다. 아울러 칼럼에서는 기후변화 정책에도 불구하고 부유층의 전력 소비는 전혀 줄지 않았다는 비판도 한다.

    그런데 후반부로 가면서 칼럼은 묘하게 흘러간다. 여기서부터 가급적 그대로 인용해 본다. 그에 따르면 “파리 기후변화 협정에 반영된 에너지 공약을 지킬 경우 성장 둔화와 에너지 가격 상승 등으로 전 세계가 연간 약 1조 달러의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데, 환경운동가들이 더 강력한 기후변화 정책을 주장하는 것은 “에너지 비용의 가파른 증가로 가장 큰 영향을 받을 사람들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 처사란다. 그리고 “성장을 둔화시키려고 노력하는 대신 정부는 대체에너지가 화석연료보다 더 싸고 효율적이 되도록 녹색에너지 연구에 대한 지출을 가속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바로 이어서 덧붙인 이유이자 칼럼의 마지막 문장은 “기후변화에 대한 해결책이 가난한 사람에게 고통을 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신이 확 깼다. 신고리 5, 6호기 건설 중단 공론화 토론에서 보았던 찬핵론자들의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원전 확대 논리를 보는 것 같은 기시감이랄까. 에너지 빈곤층을 걱정하는 칼럼의 2/3가 결국 성장과 산업 논리로 이어지는 극적인 연출이다. 그런데 잠시 돌이켜보니 사실 이 논리와 전개는 그렇게 낯선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닳고 닳은 논리다. 빈곤층과 노동자를 위해 성장은 멈춰서는 안 된다는 논리 아닌가.

    불평등과 싸워야 할 문제를 성장으로 해결하려 하지 말자

    대안은 문제의 해결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문제는 기후변화 정책 자체가 아니라 ‘잘못된 기후변화 정책’이다. 한파가 오면 가장 무서워하는 사람, 한파에도 보일러를 틀 수 없는 사람, 손발이 얼고 온몸이 얼어도 일해야만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들을 위한 정책이 제일 우선이어야 하고, 제일 우선이라는 말은 가장 많은 시간과 예산이 투여돼야 한다는 것이다.

    재생에너지와 에너지 효율화의 지원이 에너지 빈곤층에게는 잘 닿지 않는다면 에너지 빈곤층부터, 세입자에게 안 주어지면 세입자부터 주어지게 하면 된다. 아파트와 도시에 집중된 에너지 기술과 서비스를 노후 주택과 농촌에서 강화하면 된다. 부유층의 전력 소비는 좀처럼 줄지 않는데 가난할수록 아껴서 고통 받는다면, 누진제를 완화할 것이 아니라 상위소득계층에서는 강화하고 하위계층으로 갈수록 완화하면 될 일이다. 에너지 가격 상승이 에너지 빈곤층을 힘들게 한다면 에너지 가격도 사회경제적 조건을 고려해 조정해야 하고 말이다.

    또한 성장을 둔화시키려는 노력이 문제가 아니라, 성장이 이미 둔화되고 있음에도 성장을 고수하려는 노력이 문제다. 이제 성장은 언제까지나 가능한 것이라고, 성장으로 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시대는 갔다. 북극의 빙하가 녹아 이상기후가 판을 친다면 빙하가 녹는 것을 막아야 이상기후가 줄어들 것이고, 불평등은 불평등을 해소해야 사라지지 성장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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