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할아버지들이 쫓겨나지만 않았어도
        2006년 04월 02일 10:3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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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년 전 이 날도 광화문에는 비가 내렸을까.

    4월 1일은 동아일보 창간기념일이었다. 이날 광화문 동아일보 사옥 앞에서는 대형신문의 창간기념일과 어울리지 않는 행사가 열렸다. 31년 전인 1975년, 강제 해직된 언론인으로 구성된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가 쏟아지는 빗속에서 ‘자유언론 촛불문화제’를 연 것이다.

    노란 비옷을 입고 무대 앞에 모인 어제의 청년 기자들은 이제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돼 있었다. 이날 문화제는 동아투위가 지난 17일부터 ‘동아광고사태’와 ‘동아일보 강제해직’의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벌여온 천막농성을 마무리하는 자리였다.

       
    ▲ 비에 젖은 보도 위에 앉아있는 동아투위 회원들
     

    저녁 5시 쯤 시작된 문화제는 동아투위 회원들을 비롯해 광고사태 당시 격려광고를 실었던 시민들과 당시의 동료 언론인들 그리고 파업중인 30여명의 KTX여승무원들이 참여했다.

    빗속에 진행된 촛불집회

       
    ▲ "제가 태어나기도 전의 일이지만 동아투위와 KTX여승무원의 문제 모두 같이 해결됐으면 좋겠어요" 무대에 오른 KTX여승무원지회의 오미선 조합원
     

    무대 앞에 자리를 잡은 동아투위 회원들 중에는 낯익은 얼굴들도 보였다.

    동아투위 회원인 성유보 전 민언련 이사장은 “동아일보가 때만 되면 일장기 말소 사건과 광고투쟁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지만 그 이면에는 관련기자들의 대량해고로 일제와 독재의 입맛을 맞춘 역사가 숨겨져 있다. 이런 동아일보가 반성하지 않고 당당한게 우리 언론의 현주소다”고 비판했다.

    신학림 언론노조 위원장은 “지금이라도 동아일보 사옥 로비를 점거할 수 있는데 선배들이 부담스러워 하신다”며 “여전히 동아사태가 해결되지 못하는데 대해 안타깝다”고 밝혔다. 선배 언론인들을 바라보는 나이든 후배의 눈은 죄송스런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정규직으로의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한달 넘게 파업을 계속하고 있는 KTX여승무원을 대표해 무대에 오른 오미선 조합원은 “파업을 하고나니 언론이 노동자들에게 얼마나 가혹한지 알게 됐다. 31년 전 동아일보 기자 할아버지들이 해직되지 않고 계속 일했다면 언론이 지금 같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포럼 독립언론’ 출범

    동아투위는 앞으로 명예회복과 진상규명에 주력할 계획이다. 문영희 동아투위 위원장은 이와 관련해 “이제라도 정부가 나서서 권력과 중앙정보부의 개입여부, 광고 탄압과 관련한 의혹들의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고 강하게 요구했다.

    한편 동아투위는 이날 문화제와 함께 ‘포럼 독립언론(가칭)’을 출범시켰다. 문 위원장은 “한국 언론은 언론사주와 대기업 광고주라는 자본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책임 있는 독립언론으로 거듭나야 한다”며 ‘포럼 독립언론’ 출범의 취지를 밝혔다.

    “동아일보가 불쌍해”

    31년째 현재진행형인 동아사태에 대한 소회를 묻자 이부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이렇게 답했다. 동아사태 당시 강제해직된 기자중 한 명인 그는 “친일의 과거, 독재와의 야합을 반성하지 않는 동아일보는 영원히 과거에 발목이 잡혀있을 테니 결국 불쌍한 신문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 이부영 열린우리당 전 의장과 김태홍 열린우리당 의원이 나란히 앉아 있다.
     

    동아일보 사태가 제자리인 이유는 단지 회사의 책임만 있는 걸까. 그에게 언론개혁에 대한 평가를 부탁했다. “언론개혁, 답답하지” 여당의 당의장을 지냈기 때문인지 더 이상 자세한 이야기는 피했지만 현 정권의 언론개혁 성과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이날 문화제에는 언론노조의 관계자들이 함께했지만 동아일보노동조합은 참가하지 않았다. 후배들에 대한 섭섭함은 없는지 물었다. “동아일보를 바꾸려면 기자들이 나서야 하는데…” 동아가 불쌍한 진짜 이유인지도 모른다.

    짧은 인터뷰였지만 그새 빗줄기는 더 굵어졌다. “오늘 문화제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킬 겁니다.” 그의 바지단은 이미 흥건하게 젖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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