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 봄엔 공장에 들어가려나 보다"
        2006년 04월 02일 07:5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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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첫날 가는 비 내리던 날, 비정규노동자대회가 열리는 서울역 2층 대합실에서 기륭전자분회 조합원들을 만났다.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아 김소연 분회장의 투쟁결의문 낭독으로 집회가 마무리 되었다. 조합원들끼리 구호를 외치고 대합실을 떠나려는데 KTX 승무지부 조합원들이 다가와 인사를 한다. 

    “몸 다치치 않게 조심해요!”
    힘겹고 바쁜 일정이지만, 서로의 안부와 건강을 챙기며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몇 분간의 짧은 인사를 나누고 동지에게만은 조금이라도 덜 고통스런 투쟁이길 소망하며 아쉬운 발길을 돌린다.

    목련 피던 날, 봄 투쟁 조끼를 고민하다

       
    ▲ 투쟁이 시작되자 어느샌가 대문 위에는 철조망이 쳐졌다. 그 위로 감시카메라는 쉬지않고 먹잇감을 찾아 나선다. 사진=기륭전자 분회 제공

    밥을 먹고 가자는 조합원들의 요구가 있었지만, 일단 천막에 먼저 가야한다는 분회장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전철역으로 향한다. 수원행 전철을 기다리는 동안 화제 거리는 ‘봄 조끼’다. 오늘 집회장에서 보니 겨울 조끼를 입은 곳이 기륭분회 뿐이다.

    모두들 한 마디 씩 한다. 누구는 주머니가 많은 조끼를 추천한다. 또 누구는 좀 더 여성스러운 디자인이면 좋겠다고 하고, 또 다른 이는 때가 잘 안타는 색상이면 좋겠다고 한다. 7개월이 넘는 투쟁 경험 속에서 묻어난 여러 가지 아이디어들이 오고가지만, 지금 입고 있는 오렌지 빛 조끼를 대신할 수 있을 만큼 썩 마음에 드는 대안은 없다.

    오늘 논의는 “등판은 오렌지색으로 하고, 앞판은 다른 색으로 하자.”는 행난 언니의 제안으로 마무리 되는 듯 하다. “와, 목련꽃이다!” 전철에 오른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환호성이 들려온다.

    힘들거나 우울할 때 ‘행난 언니’를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것

    행난 언니는 전철을 타자마자 핸드폰을 꺼내 들고는 빙그레 웃는다. 힐끔 고개를 돌려 보니 내가 본 것만도 수차례인 아세아 시멘트 집회 동영상이다. 언니의 핸드폰에는 기륭투쟁을 하며 담은 집회와 연대 투쟁했던 노동자들의 사진이며 동영상이 담겨있다. 천막에서 쉴 때나 오늘처럼 전철과 차로 이동할 때마다 언니는 오늘처럼 핸드폰을 꺼내 보며 혼자 미소 짓곤 한다. “힘들거나 우울할 때 보면 기분이 좋아져.” 매일 똑같은 거 보면 지겹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한 언니의 대답이다.

    간장이 없어 아침에 오이도 못 무치고 나왔다는 행난 언니는 네 가족의 실질적인 가장이다.
    저임금이지만 그나마 있던 정기적인 수입이 농성으로 중단되자 경제적인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난 겨울에는 대학에 합격한 작은 딸이 진학을 포기할 상황에까지 이르러 많이 힘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힘든 내색조차 하지 않는 언니의 모습을 지켜보는 조합원들과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이들 역시 내색도 하지 못하며 아파해야 했다. 언니의 현실도 아프지만, 이를 알면서도 언니를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무기력함에 더 아팠을 것이다. 가까스로 입학은 시켰지만, 언니는 이래저래 걱정이 많은 눈치다.

    한 달 전쯤에는 작은 딸이 “엄마 뭐 필요한 거 사라.”며 주머니에 돈 만원을 넣어주었다. 그러면서 “제발 앞에 나서지 좀 말라.”고 했단다. 하지만 “투쟁이 있는 곳에 행난 여사가 있다!”는 기륭분회 조어답게 언니는 집회 때마다 경찰들에게 항의를 한다. 또, 시민들에게 기륭 노동자들과 85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을 알리는 일에 누구보다 앞장선다.

    기륭전자에서 일하면서 경제적으로 힘들고 몸도 많이 아팠다. 하지만, 언니가 이 회사에서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각박한 현실 때문에 자신만 생각하고 타인을 배려할줄 모르는 분위기였다. 지금 이렇게 힘든 조건에서 싸우고 있지만, 그런 비인간적인 현실에 맞서 싸우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뿌듯하다. 기륭투쟁을 함께 한다는 것은 그저 인간답게 살고 싶고, 그런 세상을 만들고 싶었던 행난 언니의 최소 자존심의 표현이다.

    끊어진 것은 전기만이 아니다

    영등포역이다. 미영이가 내린다. 어머니 생신이라 집에 간다는데, 표정이 밝지가 않다. 부모님의 근심도 걱정이지만, 이백일 넘는 투쟁에 변변치 않은 선물 하나 들고 가지 못해 마음이 무거운 모양이다. 이런 미영이의 마음을 읽었는지 전철역에 내리는 미영이의 뒷모습을 향해 한 조합원이 소리친다. “선물 못 해 드리니까 설거지라도 해드리고 와!”

       
    ▲ 투쟁은 비단 기륭전자분회 것만이 아니다. 공장밖에서 연대의 세숫대야를 두드리고 있는 이가 한 둘이 아니다. 사진=기륭전자 분회 제공

    2005년 무역의 날에 1억 달러 수출의 탑까지 받았던 기륭전자에서 이들 노동자들이 받았던 기본급은 최저임금+10원에 불과한 돈이었다. 잔업 100시간을 해야 돈 백 만원을 손에 쥘 수 있었다. 2005년 8월 24일 철야농성 시작 이후 저임금일망정 정기적으로 있던 수입이 단절되었다.

    수입이 없다고 지출도 없는 것은 아니다. 방세며 교육비, 핸드폰비를 비롯한 각종 공과금, 대출금 등 받는 월급이 없어도 다달이 돈은 나가야한다. 그렇게 나가는 돈은 결국 아는 사람들에게 빌리거나 카드 빚으로 쌓이고 있다. 인간답게 살기 위한 몸부림의 대가치고는 큰 셈이다. 조합원들은 없는 형편에 몇 만원 씩 부어온 적금과 보험도 해약해야 했다.

    “카드 빚으로 버티다가 결국 그 빚 때문에 방을 뺐어요. 농성 시작하고 나서도 방세는 계속 내야 하는데, 버는 게 없으니까 보증금에서 제하다 보니 방을 뺄 때는 백 만원 남더라고요. 그것으로는 턱도 없어 2년 동안 부은 보험도 해약했어요. 보험은 돈을 못내 실효상태라 살리려면 목돈을 내야하는데, 투쟁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고 돈이 당장 급하니까 해약했죠. 절반 받았나…” 방을 빼고 보험을 해약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상묵 씨. “그때 마음이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착잡하고 비참했어요.”

    기륭전자분회에는 행난 언니처럼 혼자 벌어 가족의 생계를 전담하고 있는 조합원들이 많다. 또, 일을 하고 있는 가족이 있다 해도 그 금액과 빈도수가 불안정한 경우가 많다. 종희 언니는 입사한지 석 달이 채 되지 않은 2005년 5월 3일, 문자메시지로 해고 통보를 받은 이후 지금까지 내내 수입이 없는 상태다.

    “며칠 전에는 갑자기 전기가 끊어진 거야. 통장에 돈이 없으니까 6개월 동안 전기요금 인출이 안 되어서 끊어졌더라고. 예전에는 3개월이었는데, 6개월로 바뀐 걸 나도 이번에 알게 되었다니까.”

    대의원 황록이는 율동과 영상 등 기륭분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재주꾼이다. 그런 황록이가 지난 3월 6일 용역들의 폭력에 의해 꼬리뼈가 부러진 이후 율동을 못하고 있다. 그녀는 3월 3일 결단식 때, 삭발을 했다. 어머니가 이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지난 한 달 동안 어머니가 안 계신 틈을 타 옷을 가져오기 위해 몰래 집에 다녀와야 했다.

       
    ▲ 대의원 황록 씨가 3월30일 어머니에게서 받은문자메시지 사진=연정 제공
     

    “농성 시작하고 친구들한테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근데 그게 자꾸 쌓이니까 이젠 미안해서 못 만나겠더라고요. 삭발하기 전에 엄청 울었어요. 삭발하면서 울고, 하고 나서도 울고… 예쁜 머리핀이나 머리띠를 보면 너무 하고 싶고 계속 눈에 아른거리는 거야. 할 수가 없는데…”

    이때 황록이에게 어머니로부터 문자메시지가 왔다. “너 요즘에 뭐하고 사니? 밥은 먹고 있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너 정체는 무엇 하는 앤지 정말 헷갈려”(편의 상 맞춤법에 따라 고쳤다)

    바지도 짧은데, 터진 운동화가 훤히 보이잖아

    가산디지털단지역에 도착했다. 분회장은 계속 마음이 쓰이는지 바로 천막으로 가고, 나머지 조합원들은 전철역 안 가게에서 파는 만 원 짜리 운동화를 사러 간다. 화숙 언니가 은미에게 운동화 한 켤레를 사주겠다고 했다. 예상치 못한 선물에 약간 들떠있는 은미는 양말 가게에서 천 원짜리 양말도 한 켤레 산다.

    보름 전, 은미의 운동화가 불에 타는 작은 소동이 있었다. 그나마 그녀의 신발 중에서는 성한 것이었는데, 그렇게 되고 나서는 계속 터진 운동화를 신고 다녔다. 맑은 날은 그런대로 신을 만하지만, 비가 오면 빗물이 새어 들어와 불편하다. 결국 오늘 젖은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 은미를 보다 못해 화숙 언니가 결심을 한 것이다.

    조합원들이 이것저것 운동화를 들었다 놨다 하며 골라주는데, 만 원 범위 내에서 고르려니 선택의 여지가 그리 많지는 않다. 때 잘 안타고 튼튼해 보이는 검정색 운동화를 사기로 한다.

    “처음에는 동지라는 마음으로 했는데, 이제는 가족 같은 느낌이에요. 처음에는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할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 사람들도 챙기게 되네요. 안나오면 무슨 일이 있나 싶어 걱정도 되고… 전에는 몸이 힘들면 나 하나쯤이야 했는데, 지금은 힘들어도 저 사람도 힘들텐데 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나와요.”

       
    ▲ 어떤 조합원은 하루 차비 1800원을 아끼려고 매일 아침 하안동에서 디지털단지까지 걸어온다. 사진=기륭전자 분회 제공

    신발 사는 데 동행했던 정옥희 부분회장의 이야기다. 금속노조 남부지회 기륭전자분회는 정규직과 계약직․파견직이 모두 함께 하는 노조다. 정옥희 선임부분회장은 이 회사의 몇 명 되지 않는 정규직 노동자 중 한 명이다. 그녀는 이 얘기가 나올 때마다 “별로 하는 것도 없는 걸요…” 라며 쑥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처음에는 고용형태도, 환경도, 성격도 달라 티격태격 하기도 했지만 이젠 서로의 눈빛만 봐도 무슨 일이 있는지 알 수 있고 한 명만 없어도 금세 허전함을 느낀다.

    ‘장투사업장’ 노동자가 된다는 것
    비는 계속 오락가락 한다. 천막 위로 미끄러지는 빗소리가 듣기 싫지 않다. 비가 샌다.

    30일, 50일, 70일, 100일. 시간 가는 것에 예민해하던 조합원들의 신경은 농성일이 세 자리를 넘어가면서 점차 무디어져 가고 있다. 지난 주에는 민주노총 장기투쟁 사업장 순회투쟁에 참여했다.

    농성 초기, “○○가 구호를 외쳤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팔뚝질 하는 것이며 구호 외치는 것, 노동가요 부르는 것도 어색하고 쑥스럽던 이들이었다. 2백일 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조합원들은 변했다. 조합원들은 언제 어느 곳에 있어도 찾을 수 있을 만큼 당차고 씩씩하다.

    그러나 회사는 변하지 않았다. 불법파견 판정 이후, 정규직화는커녕 계속해서 수십 명을 해고 했던 회사다. 참다못한 조합원들이 계약해지 중단과 대표 이사 면담이라는 소박한 요구를 걸고 현장 점거농성을 했지만, 회사는 “노조에서 라인을 운영하라”는 제안만 던지고 ‘완전 도급화’를 추진했다. 철야농성 2백일이 넘어가도록 회사는 같은 말만 한다. 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조합원들을 탄압하기 위한 CCTV와 용역들의 숫자다.

    여기에서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만 해

    비가 내려서일까. 저녁을 먹고 오순도순 이불을 덮고 모여 앉아 나누는 이야기의 대부분이 지난 투쟁 내용이다.

    그 사이 많은 사람들이 생계 때문에 떠났다. 하지만 나는 조합원 그 누구에게서도 이들을 서운하게 생각하거나 탓하는 목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이렇게 떠난 이들이 정착하지 못하고 기륭전자에서와 별반 다르지 않은 불법파견 노동자로 불안하고 고통스럽게 살고 있는 이야기를 들으면 속상하다.

    “얼마 전에는 그만둔 한 분이 연락을 했는데, 파견으로 일하다가 3개월 만에 해고를 당한 거야. 잠도 안 오고 너무 화가 나서 연락을 했어. 차라리 그때 계속 싸웠으면 이렇게 억울하진 않았을 거라며 그만둔 것을 후회하더라고. 여기에서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만 해.” 이 얘기를 하는 분회장 얼굴에 씁쓸함이 어린다.

    얘기는 자연스레 지난 해 10월 17일 공권력이 투입되던 날로 흘러간다. 경찰들에게 연행되어 가면서도 뒷걸음질치며 끝까지 캠코더를 놓지 않던 병렬 씨, 경찰이 허리 뒤춤을 잡아 화가 났다는 분회장, 옆 건물 담장 위에서 엉엉 울던 지역 동지, 유치장에서 화장실이며 밥 문제로 권리를 주장하며 싸웠던 이야기들.

       
    ▲ 김소연 분회장과 정옥희 선임부분회장이 환하게 웃고 있다. 비록 천막이지만 곧 공장으로 돌아갈 것이라며. 사진=정택용 제공

    그리고 너무도 치를 떨게 했던 3월 6일 사측의 폭력과 이를 묵인했던 경찰들에 관한 이야기.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날이 그날 같겠지만, 조합원들에게는 늘 처음 시작하는 마음으로 맞이하는 새로운 날들이기에 무엇 하나 소중하지 않은 기억이 없다.

    종희 언니가 꿈 얘기를 한다. 꿈에서도 누구한테 얘기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던 그 꿈을 마치 보석 상자에서 보석을 꺼내듯이 조심스레 꺼내놓는다. “내가 시골 마을에 있는데, 갑자기 황금색 뱀이 날아오르는 거야. 글쎄 그 뱀이 눈같이 하얀색으로 변하더니 보석을 흩날리면서 날더라고. 어찌나 아름답던지… 우리 조합원 한 명이 예쁜 옷을 입고 거기에 있더라고. 분위기가 너무 좋았어. 꿈에서도 조만간 좋은 일이 있을래나 보다, 이제 곧 들어갈래나 보다 했어. 봄에는 공장에 들어갈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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