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직 여검사, 성추행 당하고도
    불이익 받고 8년간 침묵해야 하는 현실
    서지현 검사, 안태근 전 검찰국장 성추행 사실 고발
        2018년 01월 30일 12:2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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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직 여성 검사가 법무부 고위 간부에게 성추행을 당하고 이에 대한 사과를 요구했다는 이유로 인사상 불이익까지 받았다고 주장했다.

    서지현(사법연수원 33기)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는 29일 검찰 내부 통신망에 ‘나는 소망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서지현 검사는 이 글에서 “2010년 10월 30일 한 장례식장에서 법무부 장관을 수행하고 온 당시 법무부 간부 안태근 검사로부터 강제추행을 당했다”며 “안태근 검사가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상당 시간 동안 허리와 엉덩이를 감싸 안고 만지는 상당히 심한 추행을 했다”고 밝혔다.

    이어 “공공연한 곳에서 갑자기 당한 일로 모욕감과 수치심이 이루 말할 수 없었으나, 당시만 해도 성추행 이야기를 꺼내기 어려운 검찰 분위기, 성추행 사실이 언론에 보도될 경우 검찰의 이미지 실추, 피해자에게 가해질 2차 피해 등의 이유로 고민하던 중 당시 소속청 간부들을 통해 사과를 받기로 하는 선에서 정리가 됐다”며 “하지만 그 후 어떠한 사과나 연락도 받지 못했다.

    가해자로 지목된 안태근 검사는 사건 당시 법무부 핵심 간부로 대표적인 ‘우병우 사단’이다. 특히 안 검사는 지난해 6월 법무부 과장, 서울중앙지검 간부 등과 식사하며 후배 검사들에게 70만~100만원씩 돈봉투를 나눠준 이른바 ‘돈봉투 만찬사건’으로 검찰국장에서 면직 처분됐고, 지난 2016년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에 출석해 ‘부산 엘시티 금품비리 사건’과 관련한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질의에 성의 없는 태도를 보여 비판을 받기도 했다.

    서 검사는 글의 말미엔 폭력 피해 경험을 폭로하는 캠페인인 ‘미투 해시태그’(#MeToo)를 달기도 했다.

    서 검사는 이 사건 이후 인사상 불이익 등을 겪었다고도 주장했다.

    그는 “(해당 사건 이후) 갑작스러운 사무감사를 받으며, 그간 처리했던 다수 사건에 대해 지적을 받고, 그 이유로 검찰총장의 경고를 받고, 통상적이지 않은 인사발령을 받았다”며 “납득하기 어려운 이 모든 일이 벌어진 이유를 알기 위해 노력하던 중 인사발령의 배후에 안 검사가 있다는 것을, 안 검사의 성추행 사실을 당시 최교일 법무부 검찰국장이 앞장서 덮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적었다. 최교일 당시 검찰국장은 현재 자유한국당 의원이다.

    서 검사는 같은 날 JTBC 뉴스룸과 인터뷰에서도 “사무감사(검사가 처리한 업무에 대한 감사)부터 시작됐다. 사무감사에서 지적받았던 부분은 (모든 검사가) 부당하다고 느낄 생각할 정도로 부당했다. 그 감사를 이유로 검찰총장의 경고를 받았고, 그 이유로 통영지청에 발령을 받았다”고 전했다. 이어 “통영지청엔 경력검사 7년 차 이상을 1명 배치하는데 제가 당시 발령받았을 때 저보다 아래 기수 검사가 경력검사로 이미 근무하고 있었다. (통영지청에) 경력검사가 2명이 배치된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라며 “(법무부에선) 검찰총장 경고를 이유로 통영지청에 발령했다고 주장하지만, 총장 경고는 징계가 아니다, 징계를 받은 검사들도 이렇게 먼 곳으로, 이렇게 기수에 맞지 않게 발령을 받은 일이 없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성추행, 성희롱 뿐 아니라 성폭행도 있었으나 전부 비밀리에 덮었다”며 “(이런 사건을 문제 삼는) 그런 여검사들에겐 남자 검사 발목 잡는 ‘꽃뱀’이라는 얘기 많이 들었다”고 주장했다.

    서 검사는 내부 게시글에서도 “(당시) 너무나 부당하다고 이야기하고 싶었으나, 많은 사람들이 말렸다, ‘너 하나 병신 만드는 건 일도 아니다. 지금 떠들었다가는 그들이 너를 더더욱 무능하고 문제 있고 이상한 검사로 만들어버릴 것이다. 어차피 저들을 이길 수 없다. 입 다물고 그냥 근무해라’(라는 말을 들었다)”면서 “(그래서) 그저 제 무능을 탓하며 입 다물고 근무하는 외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며 성추행 피해를 입고도 8년 동안 사실을 알리지 못한 이유를 밝혔다.

    아울러 서 검사는 JTBC 인터뷰에서 “저는 범죄 피해를 입었고, 성폭력의 피해를 입었음에도 거의 8년이라는 시간동안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 때문에 이런 일을 당한 것은 아닌가, 굉장히 내가 불명예스러운 일을 당했구나, 하는 자책감에 괴로움 컸다”며 “범죄 피해자 분에게, 성폭력 피해자분들에게 결코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리기 위해 나왔다. 제가 그것을 깨닫는 데에 8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고도 했다.

    일부 정치권에선 서 검사의 용기 있는 고발에 박수를 보내는 동시에 가해자로 지목된 안 검사에 대한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이날 오전 의원총회에서 “사법권력의 정점에서조차 범죄가 발생하고 묵인됐으며 2차 3차 가해가 이뤄졌다는 사실은, 여성들이 모든 일상과 사회생활에서 얼마큼 성범죄에 노출되고 보호받지 못한 것인지 짐작케 한다는 점에서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며 “법무부와 검찰은 이번 사건과 추가적으로 의혹이 제기된 검찰 내부 성폭력 사건에 대해 성역 없는 수사와 일벌백계는 물론, 성평등한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한 근본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회찬 원내대표도 “이번 서지현 검사의 고발에 단초가 된 ‘#미투(Me too)’운동이 사회적으로 더욱 확산되기 바한다”며 “사회 모든 영역에서 성 관련 범죄의 피해를 당한 여성들이 내부고발을 함으로써 성범죄를 근절해나갈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의당 여성위원회 또한 논평을 내고 “이번 사건은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낸다”며 “최고 권력집단인 검찰에서, 검사의 지위를 가진 여성조차 성범죄에 노출되어 있으며 범죄 사실은 권력 구조에 의해 은폐되고, 그 안에서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가 불이익을 감수해야만 했다. 이는 장소만 바꾼다면 뜻밖의 사건이 아닌, 수많은 여성들이 체감하고 있는 일상의 단면”이라고 비판했다.

    여성위는 “대검찰청은 더 이상 이러한 비상식적인 일들이 상식이 되지 않을 수 있도록, 철저한 조사를 통해 관련자들에 대한 응분의 책임을 물을 것을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민중당은 이날 오전 대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 사회 최고 엘리트 권력층에서조차 여성이 성추행의 대상이 되는 현실이 개탄스럽다. 그동안 수많은 성범죄에 대한 처벌이 지나치게 관대했던 배경에 성폭력 가해자를 용인하는 검찰 내의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명백한 권력형 성범죄로 철저한 조사와 진실 규명, 그에 따른 가해자 처벌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며 “당시 성추행 사실을 은폐하는데 앞장섰던 최교일 현 자유한국당 의원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처벌을 촉구한다”고 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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