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노동운동과 진보진영의 과제
    '국제정세에 관한 연재'를 마치며 몇 가지 제언
        2018년 01월 29일 11:1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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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 회의 글 “시장경제의 극복과 사회주의 본질에 대하여”

    그간 여섯 차례의 국제정세와 관련한 연재를 하였는데, 끝으로 그 간의 논의의 성과를 바탕으로 필자 나름의 한국 노동운동과 진보진영의 과제를 제출해보도록 한다.

    ‘신 민주적 국제질서’ 수립을 위한 투쟁에의 적극 동참

    현재 국제정세는 국제역관계가 크게 변화하는 시점에 서있다. 냉전 종식 후 국제역관계의 흐름을 대강 보자면, 먼저 미국을 대표로 하는 서구 국가들이 지구화를 주도하던 유일패권시기(1990년대~2003년)와 이라크전쟁과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미국의 단일패권이 약화되고 다극화세력과 상대적 대치를 형성하는 시기(2004~2016년)를 경과해왔다.

    2017년 트럼프 정권의 등장은 이 같은 대치국면이 다시 새로운 단계로 접어드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즉 트럼프 시기현대 패권국가로부터 개발도상국 진영으로 ‘지구화를 주도하는 세력 간의 본격적인 주도권 교체’가 이루어짐과 함께, 다극화가 결정적으로 진행되는 시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같은 진행은 과거 닉슨정권이 1970년대에 잠시 전략적인 수축정책을 실행한 후 다시 1980년대 들어 레이건 정권이 확장정책으로 돌아설 수 있었던 것과는 달리, 불가역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현재의 지구화시대의 상황은 냉전시기인 그때와는 많이 다르며, 특히 중국과 브릭스 국가들이 급속히 성장하고 있는 조건하에서 한쪽의 후퇴는 상호간의 격차를 더욱 크게 벌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트럼프 정권이 출범한 지 만 일 년이 지났기 때문에 미국 신정부의 성격이 어느 정도 드러나고 있다고 보인다. 트럼프 정부는 역대 선임 정권들과는 상당히 다른 정책을 펼치고 있는데, 트럼프 정부에 대한 평가를 위해선 분야별로 나누어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국제 분야의 외교·안보 문제에 있어서 트럼프는 관련 사무를 장군들, 국가안보보좌관과 국무장관 등 전문가들에게 크게 위임하고 있다. 그 때문에 그의 대외정책을 일방적으로 ‘고립주의’라고는 볼 수 없다. 심지어 이란과 대북 정책에서 볼 수 있듯 어느 면에선 더욱 적극적이고 강경한 측면도 엿보인다.

    그러나 트럼프 개인은 그의 전문분야인 경제문제에 더욱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그의 행정부의 특징 역시 이 분야에서 두드러지는데, 그의 경제정책은 매우 포퓰리즘적이며 또 국수주의적 성격을 띠고 우방국들에 대해서도 매우 거래적인 태도로 접근한다. (이상, 한겨레신문, 2018년 1월 18일자, “트럼프 1년, 미국 영향력 추락시키고 중국 부상 촉진”, 브레머와의 인터뷰 기사 참조) 종합적으로 볼 때 트럼프 정부의 이 같은 외교·안보 분야의 정책과 경제분야의 정책은 서로 잘 조화되지 않으며, 이 때문에 미국 정통 지배엘리트들은 매우 곤혹스럽고 불안스러운 눈으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자신들의 지도자를 지켜보면서, 호시탐탐 중도에서 그를 끌어내리기 위한 기회를 노리고 있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이 같은 트럼프 정권의 출현은 그간 패권국가 미국이 감추어 왔던 내부 약점 하나를 선명하게 확인시켜주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미국이 그간 지구화를 주도해오는 과정에서 일부 상층 지배세력과 광범한 일반 대중 간에 상당한 괴리가 존재하였으며, 내부갈등과 빈부격차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만큼 심화되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미국은 겉으로 드러난 화려한 모습과는 달리 보기보단 취약하며, 이러한 자신의 약점을 어떤 식으로든 보완하도록 강요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점은 분명 미국이 앞으로 지구화시대의 주도권을 다투는데 있어 큰 제약조건으로 작용할 것이다.

    트럼프 정권의 출범은 이처럼 객관적으로 미국사회 전반의 내부 한계를 보여주는 외에도, 트럼프 행정부의 주관적인 대외전략 또한 그 자체로써 약점을 안고 있다. 트럼프 정권은 국제무대에 있어 오바마 정권 하의 전략적 대치국면을 깨기 위해, 그 출범 직후 러시아에 접근하는 등 그간 미국 패권전략의 장애물인 중국과 러시아의 보이지 않는 ‘암묵적 동맹’을 이간질시킬 것을 기도하였다. 그러나 이 같은 전략은 서방진영 간의 단결만 해쳤을 뿐, 별반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채 사실상 미국 내 ‘정통파’ 세력의 견제로 거의 무용지물이 되다시피 하였다. 트럼프의 이 같은 전략이 성공할 수 없는 이유는, 중국은 물론 러시아 역시 자신이 궁극적으로는 유일패권을 지향하는 미국의 억제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그간의 경험을 통해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패권전략이 트럼프 시대에 들어 전반적인 파산을 볼 수밖에 없는 보다 직접적인 이유는, 서로 보완되어야 할 두 개의 정책 중 하나를 스스로 이미 포기했기 때문이다. 최대 경쟁상대국인 중국을 겨냥한 TPP와 ‘동아시아 군사력 재배치’는 각각 경제봉쇄와 군사봉쇄를 단행하기 위한 두 개의 무기이며, 그 어느 하나만 가지고서는 결코 효력을 발휘할 수가 없다. 제2차 세계대전 종식 후 소련과 동구권을 상대로 미국이 서유럽을 묶어세우며 봉쇄정책을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다름 아닌 나토라는 군사기구와 함께 IMF·GATT라는 경제체제가 함께 뒷받침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오늘날과 같이 지구적 경제 일체화가 상당수준 진척되고 각국 간의 경제적 유대와 협력이 긴밀해진 조건하에서는, 군사일변도의 봉쇄정책은 더욱 성공하기가 어렵다. 예컨대 이미 글로벌화한 한국의 삼성이나 현대의 재벌기업들이 이처럼 보호주의적인 색채가 강해진 미국시장에 들어가서 당장 어떤 큰 이윤을 기대하기가 어려워지게 된 것이다. 이는 한미동맹을 추종하는 대가로 중국시장에서의 적지 않은 손실에 대한 ‘미국의 보상’을 바라는 한국의 재벌들을 실망시키기에 충분하며, 그들의 한미동맹에 대한 기존의 굳건한 신념에 일정한 동요를 일으키게 할 것이다. 일본 독점자본의 태도 역시 한국과 비슷하다.

    이와 대조되게 중국은 ‘일대일로’와 함께 RCEP(환태평양 동반자관계)를 일관되게 추진하면서 이를 주도하고 있다. 이 때문에 향후 지구화의 주도권은 당연히 중국을 선두주자로 하는 개발도상국 진영으로 넘어오게 될 것이며, 이 같은 변화는 유일패권국가로서의 미국의 쇠퇴를 더욱 재촉하게 할 것이다. 현재 트럼프 정권의 내부혼란과 미국 내 계층 간 분열의 가속화, NATO의 방위비 분담을 둘러싼 기존 안보동맹체계 내의 균열 조짐 등은 이 점을 뒷받침해준다.

    여기서 미국과 서구의 지구화 과정에 대한 주도권 상실과 미국의 유일패권국가로서의 지위의 상실은, 단순히 한 국가와 집단의 쇠락을 반영하는 것으로만 끝나지 않으며, 그것은 자본주의 세계체제 전반의 심각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즉, 소련과 동구권의 붕괴로 잠시 멈춰졌던 자본주의 전반적 위기의 진전이 다시 본격화되는 신호탄이 될 가능성이 크다. 단일패권국가 미국으로 상징되는 현대 제국주의가 그간 수행해온 국제적 차원에서의 정치적·경제적 총괄과 조절기능의 상실, 중국을 대표로하는 사회주의 국가의 새로운 발전이 가져오는 ‘시범효과’,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제4차 산업혁명의 본격화 등이 모두 그 같은 추세의 강화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이상의 현 국제정세에 있어 대립구도를 감안할 때, 신흥공업국인 한국은 마땅히 ‘개발도상국’ 진영에 속하여 그들과 행동을 함께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함께 대 중국 봉쇄전략에 참여하는 것은 자신의 객관적 위상과도 걸맞지 않는 잘못된 행동이라 할 수 있다. 혹자는 여기서 한국이 ‘개발도상국’ 진영에 속한다는 필자의 말에 반감을 가질 수도 있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와 같은 세계적 기업을 가지고 있는 한국에 대해, 그리고 경제규모에 있어 이미 세계 제11위 국가이며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어서고 있는 한국을 그 같은 지위에 놓는다고 하는 것은 좀 ‘무례하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 냉정하게 자신의 위치를 둘러 볼 필요가 있다. 한국은 무엇보다도 미국과 서구 선진국들이 주도하는 현 국제통화질서와 국제 분업 속에서 여전히 상당히 불리한 위치에 처해있다. 미국의 달러패권 하의 그리고 서구 열강이 주도하는 국제 분업 속의 한국의 위치는, 분명 현 국제질서에 대한 주도자나 수혜자이기 보다는 피동적인 피해자 신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한국은 개도국 상호간의 협력을 통해 국제질서의 이 같은 불리함을 개선해야 할 상황이며, 한국의 노동계급과 진보진영은 브릭스 국가 및 광범위한 개도국 진영과 함께 연대하여 현 패권적 국제질서의 종식과 ‘신 민주적 국제질서’ 수립을 요구하는 투쟁에 동참할 필요가 있다.

    언뜻 이상의 신 국제질서 수립을 위한 투쟁에의 동참 요구가 좀 추상적이고 현실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신 국제질서를 둘러싼 앞서 언급한 양대 진영 간의 투쟁은 객관적으로 엄연히 실제하며, 장차 한국사회 및 한국 변혁운동의 운명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지금 당장 우리 눈앞의 현안인 북핵과 사드문제 역시 이 같은 국제적 배경을 떠나서는 결코 그 본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구체적 투쟁방식과 관련하여 볼 때, 스스로가 국제정세에 대한 객관적 상황을 제대로 인식한 후 다시 이를 대중들에게 널리 알리는 작업이 매우 중요하다. 정확한 선전은 곧 조직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선전은 그 자체로써 중요한 투쟁의 일환이다. 특히 오늘날처럼 매체가 발전한 시대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만약 대중들이 현 국제질서의 성격을 제대로 이해하고, 또 그 가운데서 각국의 역할을 올바로 파악할 수 있다면, 이는 국내의 투쟁을 전개하는 데 있어서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反재벌 투쟁’ 과제의 제기

    미국을 중심으로 한 단일 패권적 국제질서의 종식은 당연히 한반도 주변의 역관계의 심각한 변화와 국내 정치·경제 구도의 변동을 불가피하게 만든다. 내부적으로 볼 때 그중 재벌체제의 변화와 관련된 문제는 가장 관건적이라 할 수 있다.

    재벌문제는 오늘날 한국사회 곳곳에 침투되지 않는 곳이 없다고 해도 전혀 과언이 아니다. 사실 재벌체제는 한국의 각종 비리의 온상이자 공적 체계를 무너뜨리고 비선조직의 번성을 낳게 하는 비옥한 토양이다. 예컨대, 최근 국내정세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탄핵정국의 직접적 계기가 된 ‘최순실 사건’은, 그 성격 면에서 볼 때 분명 ‘측근비리’로 분류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박근혜 한 정권에만 국한된 우발적인 문제가 아니며, 또 단기간 내에 갑작스럽게 출현했다고 볼 수도 없다. 그 근원을 보면 외환위기 이후 한국경제 내부의 심각한 변화 특히 그 기저에 소수 재벌에의 경제력 집중이 있다.

    외환위기 이후 ‘삼성공화국’이란 신조어가 유행하게 되었듯이, 지난 세기 70년대 중화학공업화를 계기로 초보적으로 성립하게 된 한국의 재벌체제는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더욱 발전하고 공고해졌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경제력이 극소수 상위 3~4개 재벌로 집중됨에 따라 마침내 ‘재벌과두체제’를 성립시키기까지 이르렀다. 또 이들 상위 재벌 중에서도 삼성의 힘이 압도적이어서, 그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정치계는 물론, 사법·관료·언론·문화계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 전반에 소위 ‘삼성장학생’을 발굴 육성할 정도로 무소불위의 힘을 과시하게 되었다. 이 재벌과두체제는 비자금 조성, 탈세, 뇌물공여, 회계조작, 정경유착 등 갖가지 부정부패와 범죄의 온상이 되고 있으며, 이 같은 사회적 분위기 하에서 공적질서가 바로 세워지기를 바란다는 것은 어찌 보면 허망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 같은 재벌체제가 대외관계에 있어서는 민족 전체의 이익을 도외시한 채 한미동맹을 맹목적으로 추종케 하는 매개 역할을 하게 된다. 금번 사드배치로 중국과의 갈등을 야기 시킨 배후에도 바로 이 같은 재벌체제가 존재하고 있다고 필자는 믿는다. 한국정부의 사드배치 결정은 한국이 미국 주도 하의 대 중국 봉쇄전략에 공식적인 참여를 선언한 것을 의미하며, 동북아에 있어 ‘신 냉전체제 구축’을 시도하려는 미국 전략에의 적극적인 동참을 뜻하게 된다.

    냉전체제 종식 이후 진행되고 있는 ‘지구일체화’라는 전반적인 국제질서의 흐름과는 달리, 이처럼 반역사적이고 시대의 흐름을 거슬리는 후퇴적인 전략에 한국이 적극 동참키로 결정한 것은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 그것은 얼핏 보아도 날로 성장하고 있는 중국의 거대시장에 의존해야 하는 한국의 자본가계급의 이익과도 어긋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경제의 위기 속에서 한국의 통치세력이 본능적으로 직감하는 다가올 한국사회의 총체적 위기에 대한 불안감을 감안한다면, 그리고 날로 성장하고 있는 중국의 경제력에 대한 공포감을 감안한다면, 한편에선 그것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바는 아니다.

    한 마디로 그것은 지금의 ‘재벌과두체제’로 인해 더 이상의 활력과 변화 능력을 상실한 한국의 통치계급이 반역사적이고 구태의연한 질서, 즉 ‘신 냉전체제 구축’이라는 이데올로기적 대결구도를 통해 다가오는 파국을 모면해보고자 하는 안일한 태도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한국의 통치세력이 새롭게 급변하고 있는 국제질서의 변화에 적응하는 데 대한 지극히 나약하고 자신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의 재벌체제는 시간이 갈수록 국내시장의 잠재력을 키우기 보다는 반대로 고갈시키며, 한국경제를 심각한 대외의존적 경제로 만든다. 이 같은 종속적인 축적체제는 비정규직의 양산에서 볼 수 있듯이 신자유주의가 유독 한국에서 극단적으로 관철되도록 만들며, 사회양극화와 ‘가계부채’ 문제에서처럼 대규모 서민층의 몰락을 가져오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국제경쟁력의 점진적 상실과 현재 급속히 진행 중인 제4차 산업혁명에 부적응케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 같은 재벌체제가 이끄는 한국경제의 암담한 전망은, 국내 보수통치세력으로 하여금 스스로 그간의 G2에 대한 균형외교를 포기하고 한미동맹에 모든 것을 걸게 하는 ‘투기적 외교’ 전략을 선택하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이 같은 강고한 국내의 재벌체제도 현재 진행 중인 국제질서의 커다란 변화와 미국 패권질서의 붕괴 앞에서 시간이 갈수록 근본적인 수정이 불가피하게 되고 있다. 궁극적으로 미국은 향후 평화협정을 체결하여 북핵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차츰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서의 전선을 스스로 축소하게 될 것이다. 비록 문재인 정부가 지난해 북한의 제6차 핵실험을 빌미로 ‘사드배치’를 공식화함으로써, 한미일과 북한·중국·러시아를 각각의 축으로 하는 동북아의 ‘신 냉전체제’ 구축을 향해 한 발자국 나아간 셈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역시 당대의 지구일체화의 큰 추세를 거스릴 수는 없다. 결국 패권국가 미국의 급격한 쇠퇴로 인해 스스로가 전략적 축소를 단행함을 통해 이 같은 대립은 중도에서 종식되게 될 것이다.

    한국의 보수통치세력은 그간 자신들의 정권재창출을 보장키 위한 특별한 정치구도를 고안하여 실천하여 왔다. 세간에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안보정치와 지역정치를 결합한 소위 ‘40%의 안정적 보수층’ 확보 전략이 바로 그것이다. 이 역시 뿌리를 따지자면 한국의 재벌체제와 관련이 있다. 한국의 재벌들은 ‘글로벌 경영’이라는 화려한 외형과는 달리 여전히 그 본질에 있어선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경쟁력의 핵심요소로 삼고 있으며, 국내시장에서 획득한 특혜와 독점을 바탕으로 국제시장에서의 경쟁을 수행한다. 또한 이를 통해 국내 재벌기업들이 애써 벌어들인 이윤의 많은 부분은 한국 주식시장의 1/3을 점하고 블루칩의 다수를 손에 쥔 외국인 주주들을 통해 국외로 유출된다.

    이 같은 다량의 경제잉여의 해외유출 때문에 세계 제11위의 경제대국이자 OECD 회원국이라는 명칭에 걸맞지 않게, 한국의 사회보장제도는 아직도 지극히 후진국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대신 비정규직의 양산과 천문학적인 가계부채의 누적이 말해주듯 외환위기 이후 서민대중의 몰락은 시간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의 통치계급은 이 같은 양극화와 서민대중의 전반적 빈곤화에 대한 불만을 한편으론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통해 합리화하면서도, 이것만 가지고서는 부족하기 때문에 해묵은 ‘안보논리’와 ‘지역감정’을 동원하여 무마하기를 꾀하고 있는 것이다. 소위 ‘40%의 안정적 보수’ 논리는 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이념 즉 안보논리가 빠져버린 지역정치는 효력이 크게 반감되기 때문에, 그간의 ‘40%의 안정적 보수’라는 집권전략은 미국의 동아시아에서의 힘의 약화와 함께 앞으로 그 근본적 수정이 불가피하게 된다.

    이제 한국의 통치세력은 자신의 합법성을 보완하는 방법으로, OECD국가이면서 세계 제11위의 경제력에 상응하는 ‘서구식 복지국가’ 건설을 대중에게 약속하는 길 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다. 이미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내세운 보수 세력은 비록 기만적이긴 하지만 대중의 압력에 못 이겨 그 같은 공약을 제시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 길은 결코 쉽지가 않다. 그중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이 바로 앞서도 언급한 ‘재벌체제’이다. 그것은 국내시장의 창조적 잠재력을 시간이 갈수록 고갈시키면서 한국경제와 사회 전반을 시대흐름에 뒤처지게 만드는 원흉이다.

    이 재벌체제의 개혁과 관련하여 우리 앞에 놓인 선택은 크게 두 가지 길 밖에 없다. 하나는 재벌과 보수 기득권세력 스스로가 그 과정을 주도하게 방치하면서, 재벌체제가 고통스럽고 지루하게 해체되는 과정을 바라보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재벌국유화’를 통해 이 같은 재벌체제를 신속하고 근본적으로 쇄신하는 것이다. 노동계급과 대다수 민중에게 있어서는 후자가 바람직한 선택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간 누차 한국 역대 정권의 재벌개혁이 종국에 가서는 모두 실패하고 만 경험이 말해주듯, 재벌개혁은 한국사회에 있어선 대단히 지난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특히 IMF 위기 이후 ‘재벌과두체제’의 성립으로 정치권력을 직접 통제하기에 이른 재벌이 갖은 방법으로 온건한 재벌개혁을 방해할 것이기 때문에, 전자는 사실상 별반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또 현재 진행 중인 제4차 산업혁명의 빠른 시대적 흐름을 감안할 경우 우리에게 남겨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도 고려해 넣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이 같은 낡은 재벌체제를 과감하게 해결하지 못한다면, 한국이 머지않은 장래에 다시 주변부국가로 전락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현재 문재인 정권하에서 사드배치가 기정사실화 된 것을 볼 때, 이는 앞으로 상당기간 낡은 지역정치와 안보정치의 구도가 여전히 한국사회를 지배하게 될 것임을 예고함과 동시에, 또한 재벌체제 문제가 제도정치와 지배계급의 자발적 의지에만 기대어서는 결코 순조롭게 해결될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라 하겠다.

    중국을 연구하자!

    “누가 우리의 적인가? 누가 우리의 친구인가? 이것은 혁명에 있어 첫 번째 문제이다.” (마오쩌동, <중국사회 계급분석>(1925년))

    전쟁이든 혁명이든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적과 아군을 정확히 가르는 일이다. 그러기에 14억 중국인들이 지금도 여전히 애독하고 있는 [모택동선집] 첫 권의 첫 문장은 이렇듯 적과 아군을 가르는 마오쩌동의 <중국사회 계급분석>이다.

    그렇다면 21세기의 한국 노동운동과 진보진영에 있어 적과 아군은 누구인가? 이 문제는 여전히 우리 운동에 있어 기본문제라 할 수 있으며, 그 중요성은 마오쩌동 당시에 비해 전혀 감소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구화시대에 들어 국내정세와 국제정세의 긴밀한 연관성 때문에 더욱 더 우리가 진지하게 숙고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가 되고 있다. 여기서 어찌되었든 한국의 변혁운동에 있어 빠트려서는 안 될 한 가지 중요한 변수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중국이다. 중국은 현재 새로운 세계질서 구축에 있어 이미 핵심적인 변수가 되고 있다.

    중국공산당 19차 전국대표대회

    14억 인구를 가진 중국은 과연 한국의 변혁운동에 있어 어떠한 존재인가? 반동세력인가 진보세력인가, 그저 저도 아니라면 그냥 중도세력인가? 이 물음에 대한 대답 여하에 따라, 한국의 변혁운동을 둘러싼 계급역관계의 저울추가 심하게 흔들리는 것을 느끼게 된다. 중국은 지금 한국의 진보진영에 있어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 한편으론 작금의 세계질서를 바꾸어 가며 근세 이래 사오백년에 걸친 서구 중심의 역사를 새롭게 동방 중심으로 옮겨오는데 있어 핵심적인 요소임을 인정하면서도, 또한 동시에 그 같은 변화의 긍정성과 중국사회의 진보적 성격을 인정하기를 주저하기도 한다.

    중국을 비판적인 시각에서 보는 사람들은 중국은 세계 자본주의체제를 이루는 일부일 뿐이며, 중국의 국가자본은 노동자계급과 농민공들에 대한 엄청난 착취를 진행하기 때문에 중국은 마땅히 뒤집어져야 할 사회라고 규정한다. 과연 그러할까? 만약 이런 주장이 맞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한국의 노동운동과 진보진영에 있어선 사실 큰 재앙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본주의가 아직도 거대한 잠재력을 가졌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유력한 증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40년에 가까운 발전이 보여주는 바처럼, 중국은 별반의 경제위기 없이 주민생활의 급속한 개선을 동반하면서도 매년 10%에 가까운 고도성장을 지속할 수 있었다. 또 앞으로도 상당기간 중국은 이 같은 사회발전 추세를 지속해 갈 수 있는 잠재력을 아직 다 소진하지 않은 채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위의 논자들의 견해대로라면 이 같은 공적과 능력은 고스란히 자본주의에게로 돌아가게 되고 만다. 그것도 모르고 소위 진보활동가라고 자부하는 이들이 자신들의 견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서구 경제학자들이 거의 매년 들고 나오는 ‘중국경제 위기론’ 혹은 갖가지 ‘중국경제 붕괴론’을 약간 다른 버전으로 똑 같이 따라하는 것을 본다. 물론 전자의 예언이 매번 빗나가듯, 후자의 예언 역시 매번 빗나간다. 하지만 왜 자신들의 예언이 그렇듯 빈번히 빗나가는 지에 대해, 사후에라도 그럴듯한 변명을 필자는 들어본 기억이 없다.

    필자의 시각으로는 중국은 한국의 진보진영과 노동운동에 있어 다음 세 가지 의미를 동시에 갖는다고 할 수 있다. (1)동북아 평화와 안정을 위한 세력, (2) 개발도상국 주도의 신 민주적 국제질서 수립의 핵심 추진세력, (3)노동해방 목표의 실현과 관련된 연구대상.

    지금까지 한국의 진보운동은 단지 (1)의 의미만을 주목해 왔으며, 그 때문에 중국의 궐기가 갖는 세계사적 의미를 충분히 파악하지 못해 왔다. 한국 노동운동의 향후 진로와 관련하여 (2)의 측면에 대한 새로 인식함과 함께, 특히 (3)의 측면 또한 특별히 강조되어야 한다. 그것은 사실상 가장 중요한 측면이라 할 수 있다.

    한국 노동계급의 해방과 관련하여 풍부한 현실적 경험을 제공하는 자료의 ‘보고’로써 중국의 그간의 성과와 문제점에 대한 진지한 연구가 필요하다. 위에서 제기한 ‘반재벌’ 투쟁을 본격화하고 재벌국유화 문제를 제기하는데 있어, 그 대안에 대한 고민이 필연적으로 요구되는데, 이 경우 중국의 ‘공유제기업이 주도하는 시장경제’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줄 수 있다. 그간 재벌체제가 갖는 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변혁운동이 재벌문제를 본격적으로 건드리지 못한 데에는 이 같은 대안의 부재가 크게 작용하였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이제 문재인 정부는 사드배치를 공식화함으로써 한미일 보수동맹에 한 발자국 발을 들여놓았다. 이에 따라 지난 시기 노무현 정부와 마찬가지로 재벌문제에 대한 근본적 개혁은 사실상 어렵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한국사회에서 내부 계급투쟁이 점차 격화되고, 또 격변하는 대내외 정세 속에서 그리 머지않은 시점에 사회경제 전반의 위기의 도래가 불가피하게 되었다. 노동운동과 진보진영은 지금 시기 이 정권과의 차별화가 필수적으로 요구되며, 이를 위해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독자적인 사상적, 조직적 준비의 착수가 시급한 때라 하겠다.

    필자소개
    북경대 맑스주의학원 법학박사 , 노동교육가, 현재 민주노총 정책연구원 정책자문위원, 맑스코뮤날레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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