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사민당 당대회,
대연정 예비협상안 승인
[세계는 지금] 당원투표서 최종결정
    2018년 01월 23일 04:4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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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메르켈 총리의 4연임에 파란불이 들어왔다. 독일 사민당(SPD)은 본에서 열린 특별 당대회에서 기민/기사연합(CDU/CSU)과의 대연정 예비협상안을 승인했다. 지난해 9월 총선이 끝난 후 녹색당과 자민당(FDP)을 상대로 ‘자메이카연정’을 추진했지만 실패로 돌아가면서 재선거와 퇴진까지 거론되던 메르켈은 극적으로 기사회생했다.

3번째 대연정이 8부 능선을 넘었지만 사민당 당대회의 승인은 여전히 ‘예비안’이다. 44만여명의 당원을 상대로 찬반투표라는 마지막 관문이 남아있다. 당대회에 참석한 대의원 642명 중에 찬성에 표를 던진 대의원이 362명(56%)으로 예상보다 낮은 수치라는 것도 불안요소다. 이 때문에 당대회가 지도부의 거수기로 전락했다는 비아냥까지 듣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당원투표의 결과를 속단할 수만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슐츠 당 대표(왼쪽)와 쾨네트 청년조직 대표

베를린사민당과 청년사민당의 조직적 반대선언

마르틴 슐츠 사민당 대표는 부결 시 지도부 총사퇴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내세워 당원들을 압박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뚜렷한 당 간판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재선거가 실시된다면 사민당이 다시 참패할 가능성 높기 때문에 이를 우려한 당원들이 반대투표를 주저할 것이라는 것도 지도부들의 전망이다. 하지만 최악의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우선 조직적인 반대운동이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다. 당대회가 끝난 직후 베를린, 작센안할트, 튀링겐 주의 지도부들이 공개적으로 연정에 반대한다고 선언하면서 당원투표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특히 독립주인 베를린시장을 맡고 있는 미첼 뮐러(Michael Müller)가 연정 반대를 선언한 것에 사민당 지도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베를린사민당은 좌파당과 녹색당이 참여한 적적녹연정을 이끌고 있는데다 당원수도 적지 않다. 베를린사민당의 지도부가 당내에서 좌파 경향을 대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당원들의 참여율이 높고 조직력이 뛰어나다는 것도 사민당 지도부로서는 악재다.

다른 주들이 조직적인 반대에 동참할 가능성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또 하나의 벽은 35살 이하의 당원으로 구성된 청년사민당(Jusos)이다. 청년사민당의 케빈 퀴네트(Kevin Kühnert) 의장은 당대회 이전부터 예비협상 자체를 반대하는 목소리를 주도해왔다. 퀴네트는 “(선거 전에)대연정은 없다고 공언했던 지도부가 지지자들을 배반”했다며 전면전을 선언하고 나섰다. 전체 당원의 15%에 육박하는 청년사민당의 숫자도 적지 않지만, 좌파 경향이 강하고 조직력과 참여율 역시 강하다는 것도 지도부에겐 부담이다. 일반당원들에 비해 당내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투표율이 높다는 것도 커다란 변수다.

지난 총선에서 대연정은 없다고 수차례 공개적으로 밝혀왔던 사민당의 슐츠 대표와 지도부들이 막대기를 오른쪽으로 구부린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2009년 총선에서 23%의 득표율이라는 최악의 성적을 거둔 후 당의 지지율은 계속해서 내리막길을 걸었다. 사민당 추락은 녹색당과의 적록연정 당시 당의 노선을 오른쪽으로 끌고 가면서 블루칼라 등 전통적인 지지기반이 붕괴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하지만 당 지도부들의 생각은 달랐다. 적록연정이 와해된 후 정계를 떠난 슈뢰더에서 원인을 찾았다. 당을 대표하는 지도자가 없는 것이 당을 위기로 몰아가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지그마르 가브리엘(Sigmar Gabriel)이 당의 새로운 대표를 맡았지만 당을 안정적으로 이끄는 관리형이었지 대중들에게 호소력을 가진 지도자형은 아니었다. 사민당의 지지율은 좀처럼 반등하지 못했지만 기민/기사연합의 지지율이 오른 것도 아니었다. 2013년 총선에서 기민/기사연합이 과반의석을 확보하지 못하자 여론은 녹색당과의 연정보다는 사민당과의 대연정을 선호했다. 그렇지만 사민당 당원들은 2005년 대연정으로 블루칼라 층이 대거 당에서 이탈한 사실을 상기시키며 격렬하게 반발했다. 이때 예상을 뒤엎고 가브리엘 대표가 들고 나온 카드가 당원투표였다. 당원투표를 손에 쥔 가브리엘은 당원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협상내용이 필요하다며 메르켈을 압박했다.

실종된 정책과 이미지정치의 한계

가브리엘은 대연정을 성사시키며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었지만 정치감각이 뛰어나지 못하다는 것이 곧바로 드러났다. 경제장관을 맡은 가브리엘은 재정안정화를 이유로 민간도로의 건설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고속도로를 무료로 이용해왔던 국민들은 사민당과 가브리엘을 상대로 저주에 가까운 비난을 쏟아 부었다. 대안이 없는 사민당 지도부는 가브리엘을 교체할 생각보다는 연정을 유지하는 것에만 급급했다.

2017년 총선을 앞두고 사민당의 여론조사는 위험수위 그 자체였다. 일부조사에서는 20% 미만의 수치까지 등장하면서 당원들의 지도부 전면교체 요구가 거세게 일어났다. 가브리엘이 이선후퇴를 망설이는 것도 문제였지만 마땅한 대안도 존재하지 않았다. 절반은 자가발전의 성격이 강했던 마르틴 슐츠 유럽연합 의장의 이름이 언론에 등장하면서 상황은 반전하기 시작했다. 슐츠는 유럽연합 의장으로 활동하면서 언론에 자주 등장했고 그때마다 자리를 함께한 사람들은 각국의 수장들이었다. 그런 슐츠에 대해 독일국민들은 막연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슐츠가 사민당의 총리 후보로 거론되면서 지지율이 반등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슐츠가 언론들의 연이은 질문에도 명확한 대답을 회피하는 태도로 일관하자 가브리엘을 압박한 것은 사민당 당원들이었다. 고민을 거듭하던 가브리엘은 언론을 통해 대표를 사퇴한다는 전제로 슐츠를 총리 후보로 영입하겠다고 배수진을 치고 나섰다. 슐츠는 당대회에서 대의원들의 환호와 박수를 받으며 화려하게 사민당에 입성했다.

슐츠를 총리 후보를 내세운 사민당의 지지율은 반등하기 시작했다. 슐츠가 전국을 순회하면서 집회에 참여하는 유권자들의 숫자도 과거에 비해 눈에 띄게 늘어났다. 좌파당의 지지를 전제로 세 번째 적록연정이 탄생할 수도 있다는 여론조사가 등장하면서 사민당 지도부들의 기대감도 높아졌다.

본격적인 선거전이 시작되면서 사민당 지도부들의 환상은 산산조각 났다. 중도표를 의식한 슐츠는 난민정책을 놓고 오락가락하는 태도를 보였다. 사민당은 건강보험의 통합과 소득세 최고세율의 인상을 차별화된 정책으로 내세웠지만 유권자들의 1순위 판단기준은 정당들의 난민정책이었다. 슐츠를 총리 후보로 내세운 전략은 선거가 본격화되면서 바닥을 드러냈고, 적록연정이라는 꿈은 허무하게 끝났다.

지난해 총선에서 사민당은 적록연정은커녕, 20.7%라는 전후 최저의 득표율이라는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다. 패자는 사민당만이 아니었다. 난민정책에 관한 중도좌파 정당의 행보를 보여주었던 기민/기사연합 역시 지난 선거에 비해 득표율이 8.7% 감소하면서 10년 전의 지지율로 회귀했다. 승자는 13.2%를 득표하며 원내 제3당으로 뛰어오른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과 녹색당을 제치고 4당으로 화려하게 복귀한 자민당이었다. 위기에 몰린 것은 사민당의 슐츠만이 아니라 메르켈도 마찬가지였다.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자메이카연정

선거 결과만 놓고 보면 대안이 없더라도 슐츠 대표가 즉각 사퇴하는 것은 당연한 것처럼 보였지만 슐츠는 당을 재건하겠다고 선언하면서 대표직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혼란에 빠진 당원들이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안드레아 날레스 원내대표가 슐츠의 주장을 엄호하고 나섰다. 당내 좌파조직들은 강력하게 반발했지만 가브리엘 전 대표도 혼란은 당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피력하면서 슐츠 체제는 다시 기회를 잡는데 성공했다.

선거에 승리한 기민/기사연합도 풀어야 할 숙제가 산더미였다. 과반의석 확보에 실패한 기민/기사연합은 오랜 연정 파트너였던 4당으로 복귀한 자민당을 끌어들여도 여전히 과반의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결정적인 약점이었다. 선거 전에 대연정은 없다고 공언한 사민당을 배제하고 녹색당을 포함해 자메이카연정(국기색깔)은 협상을 하기에는 공통분모가 완전히 달랐다. 기민/기사연합은 4기 연속집권을 위해 자민당과 녹색당에 가능한 범위에서 양보할 의사가 있었지만 자민당과 녹색당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자민당과 녹색당의 쟁점은 첨예하게 대립했다. 녹색당은 사민당과 마찬가지로 소득세 최고세율 인상을 주장했지만 자본가정당이라고 불리는 자민당은 단 1%도 협상의 여지가 없었다. 2030년까지 핵발전소를 폐기하기로 한 것은 이미 수차례에 걸친 확약이었지만 녹색당은 폐지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 화력발전소의 폐쇄를 조건으로 내걸었다. 사민당과 적록연정 당시 핵발전소의 폐기를 합의하면서 화력발전소의 유지를 동의한 것이 확약에도 불구하고 핵발전소의 폐기를 늦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녹색당이 내세운 세 번째 주장이 파탄을 불러왔다. 화석에너지를 사용하는 자동차의 생산금지였다. 녹색당의 전략은 생산금지 기간을 과도하게 짧게 설정하지 않고, 메르켈은 그 기간을 더 늘려 장기적으로는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단기처방으로 타협을 모색했다.

자민당은 테이블을 깨겠다고 강경한 태도를 보였고, 기민당의 자매정당인 기사련은 기민당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하지만 메르켈이 자신감을 가진 이유는 자매정당이지만 기사련은 기민당의 한 분파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이탈하기 어렵다는 습관적인 판단이 작용했고, 원외정당에서 4년 만에 복귀한 자민당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안일함도 작용했다. BMW 본사가 있는 바이에른 지역정당인 기사련은 자매정당의 관계를 청산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할 정도였다. 메르켈은 기사련을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테이블을 이탈하면서 야당의 길을 선택한 것은 자민당이었다.

재선거와 퇴진이 교차하는 언론기사들이 난무하면서 다급해진 것은 메르켈이었다. 사민당의 슐츠와 마찬가지로 이번 선거에서는 대연정은 없다고 공언해 온 메르켈을 위기에서 구해준 것은 제3당으로 등장한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였다. 여론조사의 결과는 2005년처럼 대연정이 필요하다는 것이 지배적이었다. 재선거는 사민당에게 독약을 먹는 일이었고 슐츠는 대연정에 검토하지 않고 있다는 발언을 계속하면서도 ‘협상조건’을 빼놓지 않고 언급했다. 마치 사전에 교감이 있었던 것처럼 메르켈은 “모든 협상조건은 열려있다”고 화답했다.

슐츠의 야욕? 얻은 것 없는 사민당의 예비협상안

두 번의 대연정과 달리 세 번째 연정 협상은 선언을 하기도 전에 기정사실이 되면서 테이블이 차려졌다. 사민당의 요구조건은 크게 세 가지였다. 난민 신청자 숫자, 민간보험과 공적보험의 통합, 소득세 최고세율의 인상 등이었다. 무기수출을 규제하는 요구조건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기민당이 조건에 따라 전향적으로 검토할 의사가 있다는 메르켈의 입을 통해 몇 차례 확인된 적이 있어 쟁점이 될 가능성은 낮았다.

협상의 실패가 곧 사퇴를 의미하는 슐츠도 다급한 처지였지만 자메이카연정이 수포로 돌아간 메르켈도 남은 카드가 없기 때문에 사민당에게 유리하게 전개될 것이라는 전망이 언론의 공통적인 분석이었다. 하지만 테이블에 나온 메르켈은 사민당의 요구조건에 순순히 응하지 않았다. 최대쟁점인 난민문제와 관련해 사민당은 그 숫자를 제한하지 말자는 입장이었지만 메르켈은 20만 명 이하에서 한걸음도 물러나지 않았다. 속전속결로 끝날 것 같았던 협상은 첫 번째 매듭을 풀지 못하면서 공전했다.

42%인 소득세 최고세율에 대해 사민당의 요구는 단 3% 인상이 전부였다. 소득세를 낮춘 것은 슈뢰더가 총리를 재임할 때 사민당이 주도한 정책이었다. 노동유연화와 부자감세는 사민당의 지지기반을 흔들었고 이 때문에 ‘원상회복’은 지난 10년 동안 사민당의 숙제이기도 했다. 메르켈도 인상에 난색을 표시했지만 강력하게 반발한 것은 자매정당인 기사련이었다. BMW를 비롯해 대기업이 많이 위치한 바이에른을 기반으로 하는 지역정당인 기사련의 반발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기사련은 2012년 바이에른 지방선거에서 50% 아래로 지지율이 떨어진 이후 2016년에는 40% 아래까지 떨어지면서 극도의 위기감을 가지고 있던 상황에서 소득세 인상은 자신들의 지지자들을 배반하는 행위였다.

예비협상의 결과, 난민 신청자의 수는 18~22만명으로 제한하는 선에서 결정됐다. 사민당이 선거동안 공약했던 소득세 인상은 백지화됐다. 건강보험 통합도 유보하는 대신, 사용자와 노동자의 부담금을 동일하게 하자는 사민당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정도에서 합의했다.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무기수출은 예멘 내전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타협했다. 조건에 따라 무기수출의 길은 언제나 열려있는 합의였다.

사민당은 연방주(Bundesland)에 있는 25개의 당 기구 대의원들이 연방대의원을 선출한다. 25개 당 기구 대의원들은 국회의원 선거구에 해당하는 350여개의 지역조직들에서 선출한다. 지역조직의 상당수를 장악하고 있는 것은 당의 주류, 즉 우파들이다. 당대회에서 56%의 찬성이 예상보다 낮은 수치라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당원들이 일상적으로 활동하는 골간조직은 12,000여개에 이르는 당원모임(Ortsvereine)이다. 당대회의 결정이 당원투표에서 뒤집힐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다. 당원투표의 결과에 사민당 주류와 메르켈의 운명이 걸려있다.

필자소개
인문사회과학 서점 공동대표이며 레디앙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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