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위해 죽도록 싸우는 여인들
    2006년 03월 31일 10:5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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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4일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 천막농성장에서 회사가 설치한 도청장치가 발견됐다. 도청장치는 천막과 붙은 경비실 벽을 뚫어서 설치했다. 천막 한쪽 벽이 툭 튀어나온 것을 이상히 여긴 조합원들이 확인하다가 마이크를 발견했다. 노조는 사측이 경비실을 통해 농성장을 도청하고 이를 녹음해 경영진에게 상시적으로 보고해 왔다고 의심한다.

도청뿐만이 아니다. 사측은 24시간 동안 천막에서 눈길을 떼지 않는다. 용역직원과 경비원이 부쩍 늘었고 천막이 한 눈에 들어오는 철제 대문 위에는 360도로 회전하는 고성능 무인 감시카메라가 설치됐다. 이렇게 하루 종일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는 상태로 200일을 훌쩍 넘겨 농성을 하고 있다. 공장에서 밀려나와 천막에 자리를 잡은 지도 벌써 150일이 넘었다.

   
 노동자들은 공장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거리로 내몰렸다.

쉬어도 피곤하다. 웃어도 눈물이 난다

어쩌면 조합원들에게 감시는 이미 만성이 된 듯도 하다. 그들은 일부러 누군가 들으라는 듯이 목소리를 높여 “손님이 왔으니 귀를 쫑긋하고 듣고 있겠네”하며 조롱하고 “그만큼 우리 얘기를 궁금해 안달하는 것”이라며 웃는다.

사실 감시나 탄압 같은 물리력보다 오히려 보이지 않는 적이 그들을 더 힘들게 한다. “싸움이 길어지고 그러니까 긴장되고 불안해요. (천막에서는) 쉰다고 쉬어도 피곤이 풀리지도 않고. 정말 해결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실제로 해요.” 김소연 위원장의 말이다.

거기에 농성을 오래 하다보니 살기가 여간 녹녹치 않다. 이는 불안감에,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덧씌운다. 그래서 기륭전자 노조 안에서는 생계 문제를 얘기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처럼 돼 있다고 한다. 말을 해도 달라질 게 없고 모두 처지야 뻔한데 얘기해서 힘 뺄 일이 뭐 있겠느냐는 것이다.

안 쓰고, 안 먹고, 안 타기

이런 어려움을 보여주듯 처음 공장 점거 농성에 참여했던 120여명의 조합원은 싸움이 장기화되면서 40명으로 줄었다. 그나마도 10여명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부분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기 때문이다.

   
천막은 농성장이면서 동시에 생활터전이기도 하다. 언제나 잘 정돈돼 있다.

떠난 사람도 별반 다를 바 없겠지만 남은 사람들은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떠받들고 있는 지침은 ‘안 쓰고 안 먹고 안 타기’이다. 못해서 안 하는 것들이다.

이아무개 씨는 두달 전에 월세방을 빼고 아예 친구네 집으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월세 낼 돈이 없어서 적금을 해약했지만 더 이상 감당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도 보증금이라도 받아서 보험을 계속 넣으려고 했지만 이마저도 해약할 수밖에 없었다.

정규직 되면 잔업도 안한다고 하고 피아노를 배우고 싶었던 어안순 씨는 매일 하안동에서 가리봉동까지 걸어온다. 출근투쟁이 있는 7시20분까지 도착하려면 5시부터 서둘러야 한다. 그는 “사람들한테 미안해서 계속 나온다”고 말한다.

재정사업으로 한 달에 5~10만원 생활비 지급이 전부

등록금을 내려고 빌린 돈 때문에 신용불량자가 됐다는 이아무개 씨. 그는 회사를 다니는 몇 달 동안 겨우 원금을 갚았다가 얼마 안돼 해고되는 바람에 또다시 연체를 하고 있다. 윤종희 씨는 전기마저 끊기는 경험을 해야 했다. 전기가 갑자기 나가서 정전인줄 알았는데 검침기에 6개월 체납으로 전기를 끊는다는 딱지가 붙어 있었다는 것.

윤종희 씨는 저임금과 고용불안이 비정규직을 투쟁할 수 없게 한다고 얘기한다. “돈을 모아놓은 게 있으면 적금이라도 깨고 이렇게 해서 생활하잖아요. 월급 64만원 받아가지고 적금을 할 수 있겠냐구요. 기초생활도 안되는 거잖아요. 거기에 애들 있으면 가르치기도 어렵죠. 얼마 전에 다른 직장을 찾아간 조합원을 만났어요. 그 분이 3개월만에 수습기간 만료로 해고됐다고 하더라구요. 구로공단의 현실이 그래요.”

현재 기륭전자 분회는 재정사업으로 헛개나무 열매와 휴대전화 판매 사업을 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모은 돈으로 노조는 꾸준히 농성을 하고 있는 20여명의 조합원들에게 한달에 5~10만원을 차비와 생활비로 지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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