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임자 임금 지급 안되면 노조운동 망해"
    By tathata
        2006년 03월 31일 11:1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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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조 쪽 사람이 노조 전임자의 임금지급 문제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별로 달갑지도 않고 내키지도 않는 일이다. 자본 쪽이 노조 전임자 임금은 줄 수 없다고 버티는 판에 상황이 웬만하면 그렇게 하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지경이다. 그러나 상황은 그렇게 녹녹하지가 않다.

    바다 밑 지진이 노동판 전체를 요동치게 할 것

    노조 전임자 임금 문제 및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도입 문제와 관련된 이 특집의 제목이 “그 후 20년, 노동운동 쓰나미 온다.”인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적절해 보인다. ‘쓰나미’는 ‘지진성 해일’이다. 즉 바다 밑에서 지진이 일어나 바닷물이 요동을 치면서 거대한 파도가 발생하는 현상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2007년부터 현행법에 따라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도입과 함께 노조 전임자에 대한 임금 지급이 금지되면 이는 노동운동 내에 쓰나미 효과를 가져 올 것이다. 즉 노동운동이라는 바다 밑에서 지진이 일어나 노동운동 판 전체를 요동치게 만들면서 그로 인해 생기는 파도가 기존의 노동운동 방식이든 노사관계든 휩쓸고 가는 형국일 것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2007년부터 노조 전임자에 대한 임금 지급이 불법행위(부당노동행위)가 된다. 이를 위반할 경우에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이들 조항은 1997년 3월에 만들어져 5년씩 2번 10년 동안 유예를 한 것인데, 올해 이 법을 고치지 않는 한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이 된다.

    전임자 임금 노조 흥망 걸려

    이와 관련, 경총은 얼마 전에 산하 3천여 개의 회원 사업장에 배포한 <2006년도 단체협약 체결지침>에서 “노조 전임자의 처우와 관련된 기존 내용을 삭제하고 전임자 급여 지급 금지를 단체협약에 규정할 것이며 단체협약 재개정 여부와 관계없이 내년 1월 1일부터 노조 전임자 급여 지급을 전면 금지할 것”을 요구했다.

    양 노총이 그동안 공개적으로 누누이 밝혔듯이 노동계는 현재의 조건과 상황이 유지되는 상황에서 내년부터 노조 전임자에 대한 임금지급이 금지되는 것을 결코 수용할 수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 나라 노조운동이 바닥부터 뒤흔들려 망하기 때문이다.

    잘 아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노조 조직 형태는 여전히 기업별 노조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또한 산별 노조로 전환한 곳들도 기업별 조직 형태를 근간으로 하고 있는 ‘무늬만 산별’인 상황이다. 유럽처럼 산별 노조로 노조 전임자 역량이 집중되기 보다는 기업별 노조 때와 거의 다르지 않다.

    경총, “산별 요구 거부하고 기업별 노조 유지하라”

    그 이유로는 노조의 의식이나 역량 부족도 탓할 수 있겠지만 산별 체제로의 재편을 거부하고 가로막는 자본 측의 태도가 핵심이다. 이와 관련, 경총은 앞서 언급한 단체협약 체결지침에서 "노동계의 산업별 요구에 대해서는 최대한 응하지 말고 기업별 노조체제를 유지할 수 있도록 근로자들을 설득할 것“을 각 회원사들에게 주문했다.

    이와 같은 기업별 노조 체제 하에서 유급 전임자는 노조의 대들보이다. 자본 측이 보기에 노조 전임자는 노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임금 및 단체협약의 교섭과 체결, 조직 관리, 조합원의 일상적인 고충 처리, 교육 문화 활동, 산업안전보건활동 등은 물론이고 노조 내부의 지역별, 산업별 교류 및 연대와 함께 지역 사회 내에서 각계각층의 사람 또는 집단들과 교류하고 연대하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러한 상태에서 먹고 사는 문제로 노조의 전임자가 없어지거나 노조 규모에 맞지 않게 그 숫자가 대폭 축소되면 대들보가 무너질 경우 집이 무너지듯이 노조 또한 무너질 수밖에 없다.

    정부, 3백인 이하 유예 방침 미봉책에 불과

    이러한 상황은 우리나라의 노조 규모를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아래의 표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2003년 말 현재 우리나라의 전체 노조 수 6,257개 가운데 90%인 5,638개의 노조가 300인 이하 노조로서 이들 노조의 경우 현재의 조합비로는 한사람의 전임자 임금을 주기에 턱없이 부족하거나 전임자 임금을 주고는 남는 것이 없다.

    구분

    전체

    49인 이하

    50-99인

    100-299인

    300-499인

    500-4999인

    5000인

    이상

    조합수

    (비율)

    6,257

    (100)

    3,146

    (50.3)

    1,099

    (17.6)

    1,393

    (22.3)

    250

    (4.0)

    353

    (5.4)

    34

    (0.5)

    조합원수

    (비율)

    1,549,949
    (100)

    55,969
    (3.6)

    78,871
    (5.1)

    231,695
    (14.9)

    94,985
    (6.1)

    407,193
    (26.3)

    681,236
    (43.9)

    <표> 조합원수 규모별 노동조합 수(2003년 말 현재, 노동부)

    정부여당도 이러한 사태의 심각성을 인정해 조합원수 300인 미만의 사업장에 대해서는 2-3년간 유예를 하고 그 기간 동안 1인의 전임자를 인정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는 하나 이는 법률적 일관성도 없을 뿐만 아니라 300인 이상 사업장과의 형평성에도 맞지 않으며 심각한 사태를 일시적으로 모면하려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5000인 이상 노조(34개)의 경우 조합비 규모도 크기 때문에 노조 조합비로 일정 규모의 유급자를 둘 수 있겠으나 그 규모에 맞는 활동을 할 수 있는 전임자 수에는 턱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한국노총이 2005년 5월부터 9월까지 16개 지역본부와 52개 지역지부의 협조를 얻어 실시한 노조 전임자 실태 조사(2,249개 노조가 설문에 응함)에 따르면 완전 전임은 약 296명의 조합원 당 1명, 부분 전임을 포함하면 종업원 약 238명 당 1명의 전임자를 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합원 수로는 176명 당 1명꼴로 완전 전임자를 두고 있으며 부분전임까지 포함하면 142명당 1명 정도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비정규직의 경우는 전임자 수가 현저하게 적어 전임자 1인당 조합원수가 4-5배 이상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상급단체 파견자 철수, 활동 대폭 위축

    이와 함께 노조 전임자에 대한 임금지급이 금지되면 사업장 단위 노조에서 전임자 부족 상태에 직면하면서 상급단체 파견자를 철수시킬 것이며 이에 따라 상급 단체 활동도 대폭 위축될 것이다. 나아가 일부에서는 전임자를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상급단체에 대한 의무금 납부를 하지 않는 사태도 벌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는데 현재의 기업별 체제 하에서 기우라고 치부하기에는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한국노총은 올해, 내년부터 노조 전임자에 대한 임금지급 금지가 실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죽자 살자 싸울 수밖에 없다. 단언하건대 한국노총은 김영삼 정권 시절이었던 1996년 말 노동법과 안기부법의 날치기 파동에 맞서 실질적인 총파업을 전개한 바 있는데 정부여당과 자본이 올해 노사관계 선진화라는 이름 하에 이를 강행한다면 10년 만에 총파업으로 맞서 싸울 수밖에 없고 또한 싸울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민주노총 또한 마찬가지일 터인데 다른 사안으로 차이와 갈등이 노정된다고 할지라도 적어도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문제만큼은 확실하게 연대하고 공조할 것이다.

    양 노총 차이 있지만 확실한 연대 투쟁해야

    물론 한국노총은 – 민주노총도 마찬가지이겠지만 – 영원토록 노조 전임자에 대한 임금지급을 자본 측에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1차적으로는 ILO 결사의 자유위원회가 여러 차례 권고한 대로 법으로 노조 전임자에 대한 임금지급을 금지하는 것은 노사 자치주의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고 2차적으로는 기금 조성 등의 대안 마련과 함께 산별 체제로의 실질적인 전환이 이루어지지 전까지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지금 와서 10년씩이나 유예시킬 법을 왜 만들었는가를 묻는 것은 아무런 현실적 의미가 없지만 그 10년 동안 노사정이 무엇을 했는가, 또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였는가는 물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무 것도 하지 못하였고 따라서 제도 시행을 위한 아무런 변화도 꾀하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런 구체적 대책 없이 또 미룰 것인가? 필자 개인적으로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래서 개인적 의견임을 전제로 제안을 한다면 올해 노사자치주의에 어긋나는 현행 법을 고치되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노조 전임자 임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로드맵을 노사정 합의 방식으로 도출해보자는 것이다.

    결코 쉬운 길을 아니겠지만 노조 전임자 임금 문제야말로 합의를 통하지 않고는 어떤 실천도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타협과 합의의 지혜를 모아 보았으면 한다. 그런 점에서 얼마 전 새로 시작한 노사정대표자 회의에 기대를 걸면서 민주노총 또한 이 대표자회의에 이러저러한 옵션 없이 함께 할 것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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