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우파의 뿌리는 '외국'에 있나
        2006년 03월 31일 09:5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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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남의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책세상, 2006)을 읽다가 문득 떠오른 속담이다. 일본 극우파의 논리가 현해탄을 건너 이 땅에 상륙하면서 ‘탈식민주의’의 의상으로 갈아입는 현상이 너무도 뻔히 드러났던 것이다. 그래서 자기네 나라의 이익을 전면적으로 내거는 일본 극우파와 비교하여 한국의 우파(?)들을 기이한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한국의 우파들은 반민족적 정체성을 기반으로 태동하는 것인가.

    예컨대 김철 연세대 교수의 ‘몰락하는 신생-‘만주’의 꿈과 <농군>의 오독’을 보자. 민족적인 색채가 다분한 이태준의 <농군>을 굳이 친일의 가능성을 덧입혀 해석하려 드는 심사를 이해할 수가 없다. 나 자신이 나서서 이를 실증적으로 조목조목 비판하기도 하였다. 이 논문은 <탈식민주의를 넘어서>(소명출판사, 2006)에 실려 있다.

    마침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과 비슷한 시기에 출판된 까닭에 언론사로부터 연락을 받기도 했다. 입장이 상반된 두 편의 논문을 비교하여 기사를 작성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렇지만, 이는 무산되고 말았다. 서양사를 전공한 박지향 서울대 교수를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의 대변인으로 내세우며 저 쪽에서 논의를 피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에 접한 기자는 꽤나 어이없었나 보다. 다음과 같은 기사를 써 냈으니 말이다. “정치결사의 대변인도 아니고, 아무리 <재인식> 깃발 아래 모였다지만 각각 다른 주제로 다른 뉘앙스의 글을 발표한 필자들을 대표해 나 홀로 말하겠다니…. 그 반(反)학문적 유치함이란 잠자던 소가 웃을 일이다.”(김종면, ‘해방 전후사 재인식과 ‘뉴라이트 콤플렉스’’, <서울신문>, 2006.2.18)

    최경희의 ‘친일 문학의 또 다른 층위-젠더와 <야국초>’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최경희의 <야국초>에는 친일의 색채가 너무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뿐만 아니라 <야국초>를 쓰기 이전에도, 이후에도 최정희는 꾸준히 친일적인 글들을 발표하였다. 그러니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최정희가 <야국초>를 발표한 이후 “‘절필’까지도 예측케 하는 해석의 여지를 품고 있다”라고 논의를 이끌어가는 이 논문의 한계는 명백하다.

    논문을 작성할 당시 자료가 부족해서 그런 오류를 범했다면,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에 묶을 때 그러한 내용을 전면적으로 수정했어야 합당한 일 아닐까. 일제가 강조했던 멸사봉공(滅私奉公)의 정신에 따라 제 아들을 죽음의 길로 내모는 어머니를 설명하는 데 어떤 페미니즘 이론이 적용되는지 나로서는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

    김철은 민족적인 색채가 드러나는 작품에 친일의 혐의를 제기하고 있다. 반대로 최경희는 친일적인 색채가 분명한 작품을 다르게 읽어내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렇게 하면서 민족적인 경계는 희미하게 지워져 간다. 바로 그 지점에서 그들의 논리는 일본 극우파가 내세우는 “자학사관의 극복”과 만난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모호한 뒤섞임 속에서 역사는 은폐되게 마련이며, 그에 따라 반성의 여지는 증발해 버리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아시아 연구기금’의 사용처가 궁금해진다. ‘아시아 연구기금’은 일본재단(Nippon Foundation)으로부터 연세대학교로 흘러들어간 1백억 원의 연구비를 가리킨다. 그리고 일본재단을 설립한 이는 만주에서 항일유격대를 소탕하고, 가미가제특공대를 창설한  A급 전범 사사카와 료이치(笹川良一)다.

    일본재단은 세계 유수의 대학에 기금을 제공하며 일본의 침략사를 희석시키려 꾸준히 노력해왔다고 한다. 역사 왜곡의 주범인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에도 일본재단은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그러니까 일본 극우파의 ‘검은 돈’이 연세대학교에 연구기금으로 버젓이 들어온 것이다.

    대체 한국의 어느 지식인(?)이 ‘아시아 연구기금’을 받아갔을까. 그들은 과연 어떤 연구를 진행하였을까. 명확히 밝혀진 바 없으니 더 이상의 진술은 어렵겠다. 그렇지만 이래서는 곤란하다는 생각만은 분명하다.

    만약 자금의 사용이 떳떳하다면, 그래서 자금의 성격과 연구의 내용이 별 상관이 없다면 내막을 못 밝힐 까닭이 없는 것 아닐까. 그리고 연세대생들이라면 마땅히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민족시인 윤동주가 그들의 자랑스러운 선배 아닌가.

    일본 정부가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독도를 일본 영토로 기술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아마 일본의 이러한 도발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이런 전망 위에서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을 읽는 나의 마음은 무겁다. ‘아시아 연구기금’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 또한 고울 리 없다. 빼앗긴 들은 찾았으나 아직은 쌀쌀한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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