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못 생겼다, 말대답 한다" 해고 통보
        2006년 03월 31일 09:3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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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륭전자분회 김소연 분회장, 처음 구로공단에 왔을 때 그의 나이는 스물 셋이었다. 다니던 회사가 김포로 옮겨간 기간을 빼고, ‘백수’였던 잠깐의 시간을 제외하고도 구로에서 그의 노동은 10년이 넘었다. 구로공단 토박이라 할만하다. 스스로 생각해도 아득한 모양이다. “어휴~ 징그럽게 오래 됐네”하고는 손사래를 친다.

    공단 생활 10년 갈수록 힘들어지는 노동자 삶

       

    김소연 기륭전자 노조 분회장

    그가 김포에서 다시 구로공단으로 돌아오는 동안 공단은 변했다. 공단은 사라지고 서울디지털단지라는 신식 이름이 들어섰다. 신호를 기다리는 인파가 몇 년 사이 급격하게 늘어난 것도 눈에 띄는 변화라고 했다. 일거리를 찾는 사람들이 몰려든다는 얘기다. 회사에서 “잔업특근 안하겠다는 사람은 나가”라며 “너희들 말고 일할 사람들이 줄을 섰다”고 협박하는 것도 이유가 있단다.

    이런 흐름에서 그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8년 넘게 줄곧 정규직이었던 그도 다시 구로공단으로 돌아온 2002년에는 ‘파견직 근로자’로 바뀌었다. 그래도 운이 좋아서 얼마 안돼 기륭전자가 직접 고용하는 6개월 계약직이 됐다.

    다시 돌아온 그의 눈에 구로공단은 변한 이름만큼이나 가식에 가득 찬 기계들 세상이다. “진짜 10년 전보다 더해요. 현장분위기가 이렇지는 않았는데. 동료끼리 정을 나눌 수도 없고 경조사가 있어도 신경을 쓰지 않아요. 비정규직이라 그래요. 언제 그만둘지 모르고 임금도 적으니까 주변에 신경 쓸 겨를이 없죠. 나 혼자라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이 큰 거죠.”

    계약직을 동경하는 파견직 노동자들

    기륭전자 300명 생산직 직원 가운데 정규직은 15명, 계약직은 35명, 파견직은 250명에 달했다. 파견직은 계약직을 동경하고, 계약직은 정규직을 갈망했지만 그 수는 희망만큼 정확히 반비례했다.

    희망은 아주 단순했다. 상여금이 정규직은 700%, 계약직은 400%를 줬지만 파견직은 없었다. 무엇보다 낮은 계급일수록 고용이 불안정했다. 이는 계약직을 뽑는 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명확한 기준은 없어요. 처음에는 근속기간이 긴 사람을 뽑았어요. 이직률이 높을 때는 3~4개월 뒤에 전환시켰는데 공단에 갑자기 사람이 많아지니까 근속기간이 6개월, 1년 이렇게 늘어났죠. 명단을 조장이나 반장이 올리니까 그 사람들한테 잘 보여야 계약직이 될 수 있어요.”

    조·반장의 권한은 선발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파견직은 말대답을 했다고도 짤리고, 화장실 갔다 늦게 왔다고 짤리고, 심한 경우에는 못생겼다고 짤린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력인 셈이다.

    그룹회장 고향집까지 찾아갔지만

    이런 불합리함은 노조를 낳았다. 움직임은 2004년에 시작됐다. 정규직 사원이 출산휴가를 쓰려고 했다가 사직서를 내면 보너스를 600% 주는 계약직으로 전환해주겠다고 사측의 압력에 몇몇이 반기를 들었다. 그런 불만에 기름을 부은 것은 지난해 4월 날아든 휴대폰 문자 해고 통지서였다. 누구라도 이런 꼴이 나지 않으란 법이 있냐는 분위기가 퍼져나갔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노조 설립 당일에만 200여명이 가입했다.

    하지만 노조설립 뒤 얼마 안돼 엄청난 해고가 시작됐다. 특히 8월5일 노동부로부터 불법파견 판정을 받은 뒤 더했다. “8월 한 달 동안 해고자가 80명인데 노조가 버틸 재간이 없는 겁니다. 파업할 수밖에 없었어요. 조정절차 거쳐서 하지 그랬냐는 얘기도 하는데 그럴 시간이 없었습니다. 조합원 다 해고 당한 뒤 파업하면 뭐합니까.”

    그리고 생산라인을 점거하고 55일 동안 철야농성을 했고 그 뒤 거리로 내몰렸어도 천막을 치고 현재까지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그 사이 집행부 2명이 구속됐다가 보석으로 풀려났고 몇 번의 성과 없는 교섭이 있었다. 매주 일정을 잡아 대표이사 집 앞은 물론, 모그룹인 아세아시멘트 앞에서 농성을 하고 그룹회장의 고향인 문경까지 찾아가기도 했다.

    노동부 장관 약속은 사라지고 물대포, 성추행만

    긍정적인 소식도 있었다. 지난 2월 이상수 노동부장관이 민주노총을 방문한 자리에서 장기투쟁사업장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고 그 가운데 기륭전자가 포함됐다. 그 발언 뒤 서울지방노동청이 움직이고 관악지방노동사무소에서는 대책반을 구성하겠다고 보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분회장은 “특별하게 변화된 것 없다. 오히려 3월6일 물대포 사건이나 감금, 성추행, 구타 등 행동을 보면 오히려 더 심해졌다”고 말한다.

    게다가 3월 말로 기륭전자의 최대주주가 바뀌어버렸다. 에스엘인베스트먼트(에스엘)라는 투자회사가 아세아시멘트의 보유주식을 경영참가 목적으로 인수한 것. 노조도 에스엘에 교섭을 요청하는 등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두 차례 교섭요청 공문을 보냈는데 에스엘 쪽에서는 ‘아직 법적권한이 없기 때문에 면담을 할 수 없다’는 거절의사를 보내왔다”며 “주총 뒤에 보자는 공문을 다시 보냈다”고 김분회장은 설명했다.

    “동지들의 연대가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농성하고 있을 때 사측의 마지막 교섭안은 ‘도급으로 전환해라, 아니면 너희가 직접 운영하라’는 거였어요. 우리가 사장하는 것도 말이 안 되고 파견이나 다를 바 없는 도급을 받아들일 수도 없어요. 긍정적인 움직임이 있긴 했지만 전혀 바뀐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당장 정규직으로 전환해달라는 것도 아니에요. 교섭이 마무리되는 시점까지 계약직으로라도 가고 합의에 따라 고용조정을 하자는 겁니다. 근데 회사는 계속 계약해지 통보를 하고 있어요. 현재로서는 정부가 움직이지 않으면 문제는 풀리지 않아요. 정부를 움직이려면 단위사업장의 연대와 더불어 총연맹과 산별이 집중해서 함께 투쟁하는 기회를 만들어 줬으면 합니다.”

    김분회장은 기업 담장을 뛰어넘는 연대와 투쟁을 이끌어가고 조직하는 상급단체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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