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목항 기다림의 버스를 타다
[누리야 아빠랑 산에 가자 33] 산행 아닌 항구행
    2018년 01월 22일 11:4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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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4347년 10월 3일 개천절,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弘益人間) 건국 정신을 새기는 날이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정신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채, 재벌을 비롯한 소수 인간만이 ‘좁게’ 이로운 나라가 되어버렸다.

방방곡곡 다수 인간은 끙끙대며 신음했다. 자신들 곳간에 재화를 채우기 위해 혈안이 된 소수는 경제와 정치를 장악하고서 다수의 안전까지 훼손했다. 선박 운항 연령을 20년에서 30년으로 완화해, 일본에서 이미 18년이나 운항한 노후 선박을 수입하게 만들었다. 그 탓도 작용한 참사였다. 304명의 생명들이 바다에 수장됐고, 아직도 10명의 인간이 바다 속에 방치돼 있었다.

‘남현철, 박영인, 조은화, 황지현, 허다윤, 고창석, 양승진, 권재근, 이영숙, 권혁규.’

오늘 팽목항으로 ‘기다림의 버스’가 출발했다. 중간고사가 끝난 딸과 아내가 동행했다. 대한문 앞에서 버스에 탑승했다. 팽목항에 도착했을 때는 바람이 거세게 몰아쳤다. 참가자들은 찬바람 맞으며 팽목항에서 진도VTS 관제센터까지 행진했다. 전국에서 1,000여 명이 모였다.

슬픈 행사가 시작됐다. 바람은 잦아들었으나, 몹시 추웠다. 사람들 속에서 딸과 아내는 몸을 붙이고 체온을 나눴다. 노란 리본으로 장식한 처연한 등대가 무대를 대신했다. 시연 엄마 순서였다. 시연 엄마가 오늘은 딸 태어난 지 6,217일 되는 날이고, 딸 목소리 못 들은 지 170일 되는 날이라고 말문을 열며, 편지를 낭송했다. 참가자들은 숨죽여 훌쩍였다.

내 사랑 깨박이 시연아 잘 있지? 엄마는 그렇게 믿고 싶다. 우리 딸이 잘 있으리라고. 매일 아침이면 우리 시연이 머리도 말려 주고 고데기도 해 주고 학교도 데려다 주고 했는데 네가 없는 아침은 매일 오고 그 아침이 오는 것이 엄마는 매일매일 두렵다. 지금 이 순간도 집에 들어가면 기타도 치고 노래도 부르고 있을 거 같은데 이제 널 볼 수 없다는 게 엄마는 믿기지도 않아. 금방이라도 문 열고 들어올 것 같은데…….

미치도록 보고 싶다. 수학여행 간다고 친구들하고 즐겁게 춤 연습도 하고 가방에 짐 챙기면서 즐거워하던 너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한데……. 그랬던 너는 옆에 없고 네가 남겨 놓은 사진하고 동영상으로만 너의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들으면서 너를 그리워한다. 네가 있던 너의 방에 기타도 피아노도 그대로인데 그 앞에 앉아 있는 네가 없어 너무 슬프지만 안 치우고 그대로 둘게. 꿈속에서라도 꼭 와서 머물다 가.

너무나 힘이 없는 엄마였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을게. 돌아오지 않은 너의 친구들 다 돌아오는 그 날까지 너희에게 우리에게 이 아픔을 준 세상이 변하는 그 날까지 너를 위해, 너희를 위해, 그리고 남아 있는 동생들을 위해 엄마 지치지 않을게. 다시 만나는 그 날까지 하나님 곁에서 잘 있어. 사랑한다, 내 딸 시연이.

소설가 김훈은 참사 이후 300여 명의 문인이 비통한 심정으로 한 줄씩 적어 팸플릿을 냈고, 문필가와 저술가들이 글을 써서 『눈 먼 자들의 국가』라는 책을 냈다고 했다. 방송인 김제동은 말의 예술가답게 신랄한 풍자로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했다.

팽목항 방파제 철책에 매달린 노란 천들이 거칠게 펄럭이고 있었다. 바람을 타고 하늘로 훨훨 날아가고 싶다는 듯 너울너울, 펄럭펄럭……. 줄과 철책에 묶여 몸부림치는 노란 천들이 왠지 바닷속 영혼들로 느껴졌다. 뭍으로 나오고 싶어 절규하는 영혼들이 어서 빨리 수습되어 사슬을 풀고 하늘로 훨훨 날아올라야 할 텐데…….

팽목항 방파제의 노란 리본들이 세차게 펄럭였다. 딸은 또래들 죽음을 잊지 않겠다고 했다

10월 22일(수) : 늦잠을 잤다. 시계가 등교 시간인 8시를 넘겼는데, 딸은 아직 꿈나라였다.

“누리야, 누리야.”

다급하게 깨웠다. 딸은 느긋했다. 오늘은 학교에 가지 않고 10시까지 혜화동으로 가면 된댔다. 세월호 참사로 취소된 수학여행을 학년 운동회와 연극관람으로 대체했는데, 오늘이 연극 관람이었다. 운동회는 지난주였다. 연극관람 할 때 공연장 입구에 앉아, 라는 말이 입속을 맴돌았다. 세월호 참사가 만든 불안증이었다. 내뱉지는 않았다. 딸이 입구에 앉으면 친구 누군가는 안쪽 깊숙이 앉아야 하는 거였다. 불안감을 주는 것도 안 좋을 듯싶었다. 애써 출근 준비를 서두르고 집을 나섰다. 공연장에 불이 나면 어쩌나, 불길한 생각에서 온종일 헤어나지 못했다.

필자소개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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