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 대안 논의 잘못가고 있다"
By tathata
    2006년 03월 31일 08:5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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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에 밀어닥칠 복수노조 문제에 대한 노동계에 대응이 매우 불안해 보인다. 조직의 분열이라는 내홍에다 문제의 인식도 올바르지 못해 대응을 위한 실천적 동력은 물론이고 전술적 방향도 제대로 된 체계를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미 20년 가까운 민주노동운동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우리 노동운동이 소위 내공(?)을 충분히 비축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현재 복수노조 문제에 대한 노동계의 대응은 두 가지로 집약된다. 하나는 교섭창구단일화방안에 대해 정부의 다수대표제안에 반대하고 자율교섭제를 주장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산업별 노동조합으로의 조직전환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대응전술은 사실 상호 모순된 것이다.

자율교섭-산별전환 전술의 모순성

왜냐하면 교섭창구 단일화 문제는 기업단위의 교섭을 대상으로 한 것이며 따라서 논의 자체가 기존의 기업별 교섭구조를 지속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노사관계선진화방안 보고서에서도 일찍이 교섭창구단일화 논의는 기업별 교섭구조를 고착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그렇다면 산업별 노동조합으로의 조직전환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미 교섭창구 단일화 논의가 이 문제와 모순됨에도 불구하고 이런 모순된 전술이 내부에서 별다른 문제제기 없이 동시에 추진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두 가지 추정이 가능하다. 교섭창구 문제와 조직전환 문제를 각기 별개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거나 아니면 산업별 노동조합으로의 조직전환 이후에도 기업별 교섭구조를 유지하겠다는 인식이다. 전자의 인식은 조직전환 이후의 교섭문제를 제대로 생각해 보지 않은 미숙한 전술적 고민의 결과로 보이고 후자의 인식은 소위 ‘무늬만 산별’을 처음부터 상정한 인식을 반영한다.

어떤 경우든 현재 우리 노동계는 복수노조의 조건이 기존의 기업별 교섭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 않으리라는 전술적 인식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노동조합 지위 급격 약화시키는 기업단위 복수노조

그러나 이런 인식은 노동시장의 교섭구조를 조금만 생각해 보면 얼마나 안이한 것인지 알 수 있다. 시장에는 통상 수요자와 공급자가 존재하고 양자의 교섭력은 각자가 시장에서 행사하는 통제력에 의존한다. 복수노조가 금지된 기존의 기업별 교섭구조를 살펴보자.

노동력의 수요자는 기업단위에서 사용자 1인이며 유니온 숍의 조항을 적용받는 노동조합도 1인의 공급자로서 독점력을 행사한다. 따라서 기존의 교섭구조는 쌍방독점이다. 복수노조의 조건이란 수요자의 독점적 지위는 변하지 않는데 공급자만 독점에서 복수로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수요독점, 공급경쟁의 조건이 새롭게 형성되는 것을 의미한다. 시장에서 물건을 살 사람은 혼자인데 팔 사람이 복수라면 누가 더 유리할 것인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따라서 복수노조의 조건은 본질적으로 노동조합의 지위가 급격히 약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복수노조 문제로 노동운동이 와해된 사례는 이웃 일본과 미국에서 역사적으로 확인된다.

노동계 산별논의 빗나가 있다

그렇다면 복수노조 문제에 대한 노동계의 올바른 대응은 무엇일까? 방향은 너무나 간단하다. 시장에서 와해된 독점적 지위를 회복하는 일이다. 그리고 사업장 단위에서 그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면 그것은 초기업단위에서만 생각해 볼 수 있다.

물론 초기업단위에서도 복수노조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최소한 초기업단위에서는 사용자가 독점적 지위를 갖기 어렵다. 사용자도 복수의 지위에 놓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초기업단위의 복수노조는 사업장단위보다 훨씬 어렵다.

사용자간의 협력과 연대가 없이는 소위 ‘길들여진’ 노조가 만들어지기 어렵고 사용자는 노동조합에 비해 연대의 경험이 적기 때문이다. 결국 초기업노동조합으로의 조직전환은 이런 의미에서 복수노조 조건에 대한 올바른 대응이자 동시에 유일한 대응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결국 문제는 올바른 대응으로서의 산업별 노동조합이 문제로 된다. 그런데 이 문제와 관련해서도 역시 노동계 내부의 논의는 약간 빗나가 있는 듯 하다. 소위 ‘어떤’ 산별이냐의 문제를 놓고 내부의 논의가 상당히 갈라져 있기 때문이다.

현재 각기 다른 논지로 제기된 것은 크게 세 가지 정도로 집약된다. 소위 업종(기업), 지역(산업), 전국(일반)을 각기 조직단위의 중심으로 해야 한다는 논의들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들 논의에는 공통된 전제가 하나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각 논의가 모두 조직단위의 차이를 경계로 하고 있는데 이는 교섭을 염두에 두고 교섭단위를 상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즉 조직단위를 교섭단위와 같은 개념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교섭단위 차이 염두에 둔 조직단위는 무의미

그러나 이런 인식은 기업별 교섭구조의 연장선상에 있는 인식이다. 기업단위에서는 조직단위가 곧 교섭단위이기 때문이다. 그런 인식의 연장선상에서는 초기업단위에서도 조직단위가 곧 교섭단위로 된다. 따라서 조직단위는 교섭단위를 염두에 두고 이와 일치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따라서 사업장 이해를 중심에 두거나(업종) 혹은 산업단위의 이해(지역)나 총노동의 계급적 이해(전국일반)를 중심에 둘 경우 각기 다른 조직형태를 상정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인식은 산업별 노동조합이 조직단위와 교섭단위를 달리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데서 비롯된 오해의 결과로 보인다. 산업별 교섭구조는 기업별 교섭처럼 단일한 구조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초기업단위와 사업장단위의 중층적 구조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사업장 이해와 산업별 이해, 그리고 총노동의 이해가 각 교섭단위로 분산되어 모두 수용이 가능하다. 교섭단위의 차이를 염두에 둔 조직단위의 구획은 무의미한 것이다. 실제로 유럽의 산별노조들은 사업장단위와 초기업단위 모두에서 중층적인 교섭을 진행하고 있으며 그런 다양한 교섭형태가 조직형태를 분리시키고 있지도 않다.

과학적 인식과 올바른 전략을 선택하길 간절히 바라며

조직단위는 단지 교섭력을 단위로 하는 것이며 교섭단위(혹은 형태)는 그 내부에서 얼마든지 다양화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어떤’ 산별이냐를 둘러싼 논의의 분화는 그다지 본질적인 것이 아니며 조직단위와 교섭단위간의 관련에 대한 이해를 통해 해소되어야 하리라고 생각된다.

복수노조 문제는 본질적으로 노동시장에서의 교섭력의 문제이고 이것은 교섭구조의 전환 문제이다. 그런 점에서 일단 교섭창구 단일화 논의는 기존의 교섭구조를 연장한다는 전제 위에 서 있는 논의이므로 노동계의 대안적 논의로는 잘못된 방향에 서 있는 논의이다.

어떤 방안이든 그것은 결국 기업별 교섭구조의 문제이고 당면한 복수노조의 조건은 이제 기업별 교섭구조가 노동조합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지형으로 전환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노동계의 올바른 대응은 초기업단위로의 교섭구조 개편에 맞추어져야 하고 여기에서는 조직단위와 교섭단위의 구별을 올바로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노동계급 내에서 각 단위별 이해의 차이는 교섭단위의 다양화를 통해서 해소할 수 있으며 일단 조직전환은 바로 그런 교섭구조의 개편을 위한 전제조건을 이룬다. 복수노조 조건의 시한이 1년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노동진영이 과학적 인식을 토대로 올바른 전략적 행보를 해 나가길 간절히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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