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증유 위기냐 절호의 기회냐
By tathata
    2006년 03월 31일 08:46 오후

Print Friendly

 

1987년 민주노조 시대가 시작됐다. 내년이면 20년이다. 지난 시기 노조운동은 위기 상황과 위기 이론을 겪고 부딪치면서 상처받고 성장해왔다. 20년 후인 내년이면 노동운동 87년체제로 불릴 만한 지형 자체에 커다란 변화가 올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라는 핵폭탄급 제도가 도입되기 때문이다. 양대 노총의 격한 조직 확대 투쟁이 예상되고, 전임자 임금 지급이 금지되면 "노조가 망할 것"이라는 걱정도 나온다. 자본쪽에서는 "노조가 폭동을 일으킬지도 모른다. 그래도 우리는 갈길은 간다"는 말이 서슴치 않고 나오고 있다.

87년 체제 성립, 그 후 20년 지금 노조운동 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줄 ‘쓰나미’가 오고 있는 것이다. <레디앙>은 창간 특집으로 내년부터 도입될 예정인 두 제도의 영향과 각 주체들의 대응 방안을 몇 차례에 나눠 싣는다.  <편집자주>

<글 싣는 차례>

1. 미증유의 위기냐, 절호의 기회냐

2. 삼성 초비상 "우리도 위기"

3. "전임자 임금 안 주면 노조 다 망한다"

4. 양대 노총 본격 세싸움-위원장 인터뷰

5. 단병호 의원 특별 인터뷰 

1998년 노동법 개정 과정에서 노조 전임자에 대한 임금지급이 ‘부당노동행위’로 처벌의 대상이 된다는 조항, 그리고 사업장(기업) 수준에서도 복수의 노동조합 설립을 허용한다는 조항이 도입된 바 있다. 당시 이 법의 시행은 경과 기간을 거쳐 2002년부터 하는 것으로 유예되었으나 2001년에 다시 유예되어 2007년으로 그 시행 시기가 미루어졌었다.

노조 전임자에 대한 사용자의 임금지급 금지에 대해서는 이것이 노사 간의 자율교섭 사안을 과도하게 법으로 제한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국내 노동계 뿐 아니라 국제 노동계와 노동기구(ILO)에 의해서도 계속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기업 단위 복수노조 허용 문제에 대해서는 노사간에 이견이 없고, 국제적으로도 결사의 자유의 원칙에 부합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쟁점은 ‘교섭 창구 단일화’ 문제이다. 현재 정부의 안은 기업 단위에서 복수의 노조들이 존재할 때 다수자 노조가 대표 교섭을 하는 미국식 방식, 혹은 전교조의 경우와 같이 노조들이 교섭단을 공동으로 구성하는 방식 등을 통해 교섭 창구를 단일화하도록 강제하려 하고 있다. 이에 대해 노동계에서는 헌법상의 권리인 단체교섭권의 제한은 있을 수 없다는 점에서 원칙적으로 모든 노조에게 교섭권을 보장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2007년 한국 노사관계 일대 지각변동

일각에서는 이 문제가 다시 유예될 가능성도 점치고 있으나, 현실적으로 그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정부는 이미 2003년 12월 소위 ‘로드맵’이라 불리는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 방안”을 확정하여 그 틀에 따라 노동관계법 전반을 손질하는 작업을 해왔으며, 올 상반기에 입법 작업을 마무리할 것을 공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7년부터 이 두 조항이 실시되게 되면, 한국의 노사관계는 일대 지각변동을 겪을 수밖에 없다.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문제는 취약한 재정적 기반 위에 서 있는 대부분의 노동조합들은 심각한 조직위기 상황에 빠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기업별노조 복수노조 체제는 노조들 간의 상호 경쟁과 대립, 사용자 노조를 통한 노조 통제의 강화 등 특히 조직자원이 상대적으로 큰 대기업 노조들에서 커다란 혼란과 갈등을 유발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현재 한국의 노동계는 이 문제에 대하여 뚜렷한 대안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모두 유일한 대안은 기업별노조 체제를 벗어나 산별노조 체제로 전환하는 것뿐이라 생각하고 있고, 따라서 2006년 한 해 동안 한편으로는 노동법의 개악을 저지하기 위해 투쟁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산하 조직들을 서둘러 산별노조로 재편한다는 방침을 세워 놓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얼마나 큰 성과를 이룰 것인지는 매우 불확실하다.

산별노조 건설은 이미 지난 10여년 이상 한국 노동계 전체의 핵심적인 조직적 과제였으나 사실상 큰 성과를 이루지 못했다. 산별노조 체제로 전환한 노조들이 상당 수 있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기존의 기업별노조들을 단순히 통합한 것으로 여전히 노조의 기초 조직은 기업단위 노조들(산별노조의 지부나 지회)로 구성되어 있고, 대부분의 노조 일상 활동들, 그리고 단체교섭이나 단체행동이 모두 기업단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유일한 대안은 산별노조 전환

게다가 대부분의 대기업노조들이 산별노조 전환 과정에 참여하지 못하거나 안함으로써 기존의 산별노조들도 기껏해야 3-4만 정도의 규모를 가진 조직으로 정상적인 산별노조로서 활동하기에는 역부족인 상황 속에 놓여 있다. 여기에 산별노조, 산별교섭을 뒷받침하는 법제도가 전혀 마련되지 않고 있고 사용자들의 완강한 거부와 반대도 커다란 걸림돌이 되고 있다.

그러나 노동운동이 그 조락의 운명을 피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여전히 산별노조로의 전환뿐이다. 설사 로드맵에 따른 법개정을 저지하고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복수노조 도입을 다시 유예 받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지금과 같은 최악의 노동 상황을 다시 몇 년 연장하는 수세적 대응에 불과할 것이다. 따라서 2006년 한 해, 한국의 노동조합들은 온갖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노동운동의 사활을 건 심정으로 전력을 기울여 산별노조 건설 작업에 임해야 할 것이다.

기업별노조 체제로 복수노조 상황을 맞을 경우, 노동조합은 최악의 상황에 처할 것이다. 그러나 산별노조 체제로의 전환에 성공하는 경우 상황은 전혀 달라진다. 교섭창구 단일화는 기업별 복수노조들에게는 격렬한 내부 경쟁의 상황을 조성할 것이지만, 산별노조로 전환하게 되면 문제가 전혀 달라진다. 기업단위의 교섭창구단일화는 산별노조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10년 수세 벗어나 노동계 주도권 잡을 절호 기회

게다가 그동안 복수노조 금지로 인하여 조직화의 사각 지대에 놓여 있었던 많은 사업장들을 대상으로 자유로이 조직화 사업을 전개할 수 있다. 비정규직, 실업노동자 등을 포함한 90%의 미조직 노동자들이 모두 조직화의 거대한 블루 오션이 될 수 있다. 삼성과 같은 무노조 경영의 사업장들을 대상으로 한 조직화 작업도 훨씬 용이해질 것이다.

복수의 산별노조, 제 3노총과 같은 상급노조의 복수화 경향도 나타나겠지만, 노동조합이 산별노조 체제로 전환하는 것을 전제로 하면 이는 더 이상 노조가 아니라 오히려 사용자에게 큰 부담이 될 것이다. 요컨대 산별노조로의 조직전환은 IMF 경제위기 이후 10여 년 간 수세적 상황에서 허덕여 온 노동계가 다시 노사관계의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산별노조 체제로의 전환은 한국의 노사관계를 기업 내부화된 노사관계에서 사회적 노사관계, 나아가 정치적 노사관계로 진전시킬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이미 확대일로에 있는 노동자 내부의 임금, 근로조건, 고용조건의 격차를 더 이상 기업 내부에서 해결해 나갈 수 없음은 분명해졌다.

산업, 업종, 지역 등 기업의 경계를 뛰어 넘어 사회적 수준에서 모든 노동자들에게 적용될 수 있는 사회적 임금기준, 근로 기준, 고용 기준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정부의 노동정책, 고용정책, 산업정책, 사회복지 정책 등에 대한 노동조합의 개입 능력도 비약적으로 신장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별로 없다

지금은 한국의 노동운동계가 더 이상 지리멸렬한 내부 경쟁과 갈등에 매몰되어 있을 때가 아니다. 남아 있는 시간이 별로 없다. 2006년 한 해 적어도 몇몇 주요 산업 부분에서 성공적으로 산별노조 건설 사업의 성과를 이루어 내지 못한 채 2007년의 복수노조 상황에 처하게 되면, 산별노조 건설 운동 자체도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을 것이다.

그 주된 동력이 되어야 할 핵심 노조들부터 더더욱 기업 내부로 움츠러들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분할된 구도도 그대로 고착화될 수밖에 없다. 노동운동의 주체적 대응 여하에 따라 복수노조 체제는 미증유의 위기가 될 수도 있고 역으로 비약적인 질적 성장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한국의 노동운동은 지금 이 갈림길 앞에 서 있다.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