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두 가지 기적
[그림책 이야기] 『다 붙어 버렸어!』(올리버 제퍼스/ 주니어김영사)
    2018년 01월 18일 11:4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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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이드의 연

모든 일은 플로이드가 날리던 연이 나무에 걸리면서 시작되었습니다. 플로이드는 나무에 걸린 연을 내리려고 연줄을 잡아당기기도 하고 이리저리 흔들어 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연은 나무에 딱 붙어서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진짜 큰일은 그다음에 일어났습니다. 플로이드는 연을 떨어뜨리려고 신발 한 짝을 나무 위로 던졌습니다. 그러자 이번엔 신발이 나무에 딱 붙고 말았습니다. 당황한 플로이드는 나무에 붙은 신발을 떨어뜨리려고 나머지 신발 한 짝도 나무 위로 던졌습니다. 그러자 그 신발마저 나무에 딱 붙고 말았습니다.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었습니다.

플로이드는 신발을 떨어뜨리기 위해 고양이를 데려왔습니다. 하지만 나무에 올라간 고양이마저 나무에 붙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플로이드는 사다리를 가져왔습니다. 단번에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플로이드는 사다리를 높이 던져 올렸습니다. 그러자 이번엔 사다리가 나무 위에 딱 붙어버렸습니다. 정말이지 다 붙어버렸습니다. 게다가 사다리는 이웃집 아주머니한테 빌려온 것입니다.

이제 플로이드는 어떻게 할까요? 과연 플로이드는 사다리와 고양이와 신발과 연을 모두 되찾을 수 있을까요? 도대체 그 나무는 어떤 나무이기에 모든 것이 다 붙어버리는 걸까요?

다 붙여버린 올리버 제퍼스

누구나 한번쯤 연을 날려본 경험이 있을 겁니다. 연을 날리다가 나뭇가지에 연이 걸려서 줄이 끊어진 경험이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 연을 내리려고 신발은 아니지만 돌멩이를 집어 던진 적이 있을 겁니다. 제 어린 시절 연날리기의 끝은 언제나 잃어버린 연과 눈물이었습니다.

올리버 제퍼스는 누구나 가진 연날리기의 추억에 ‘뻥’을 좀 치기 시작했습니다. 연이 걸린 나무에 신발을 던지고 고양이를 던지고 사다리를 던집니다. 그 다음부터는 정말 ‘뻥’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어린이 플로이드는 연을 떨어드리기 위해 슈퍼맨으로 변신합니다. 슈퍼맨이 아니면 도저히 집어던질 수 없는 것들을 던지기 때문입니다. 물론 나무는 플로이드보다 더 강력합니다. 플로이드가 던진 모든 것을 나무는 다 붙여버리니까요.

그런데 올리버 제퍼스는 도대체 왜 이런 ‘뻥’을 치는 걸까요? 수많은 그림책에서 작가들은 ‘뻥’을 치고 독자들은 ‘뻥’을 재미있어합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마법의 나무라고?

뭐든지 척척 제 몸에 붙여버리는 나무는 정말이지 마법의 나무가 틀림없습니다. 만약 플로이드가 조금이라도 이성적인 아이였다면 연이 붙어서 내려오지 않았을 때 이미 보통 나무가 아니라는 사실을 눈치 챌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불행이도 플로이드는 대단히 감정적인 아이입니다. 아주 인간적인 아이지요.

만약 연이 나무에 걸렸을 때 플로이드가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면,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었을 겁니다. 어쩌면 뭐든지 붙는 나무에 관한 과학적인 연구가 시작되었을지 모릅니다. 그랬다면 플로이드가 신발과 고양이와 이웃집 사다리를 나무에 덧붙이지는 않았을 겁니다.

무엇보다 만약 플로이드가 연을 포기할 수 있었다면 플로이드는 신발과 고양이와 이웃집 사다리를 추가로 잃어버리지 않았을 겁니다. 뿐만 아니라 플로이드의 마음도 평화로웠을 겁니다. 연 하나를 잃었다고 모든 것을 던져버리는 플로이드의 모습은 어린이의 본성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입니다. 우리는 자주 사소한 일에 모든 것을 겁니다.

플로이드는 마법사

사실 진짜 마법을 쓰는 존재는 나무가 아니라 플로이드입니다. 플로이드가 연을 나무에 걸었고, 신발 두 짝을 모두 나무에 던졌고, 고양이를 던졌고, 이웃집 사다리를 던졌습니다. 그럼 나무는? 나무는 그냥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세상에는 두 가지 기적이 있습니다. 하나는 사랑의 기적이고 또 하나는 증오의 기적입니다. 누군가는 사랑의 힘으로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모두 행복하게 만듭니다. 또 다른 누군가는 증오의 힘으로 자신과 자신이 증오하는 사람을 모두 불행하게 만듭니다.

플로이드는 자신이 연을 나뭇가지에 걸어 놓고서 연을 돌려주지 않는 나무를 증오합니다. 잘못을 저지른 건 자신인데 나무를 탓합니다. 플로이드는 증오의 힘으로 신발을 던지고 고양이를 던지고 이웃집 사다리를 던집니다. 플로이드의 근거 없는 증오가 평범한 나무를 마법의 나무로 만들었습니다.

그림책은 영혼의 양식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은 야구를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합니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영화를 인생이라고 합니다. 그림책을 좋아하는 저는 그림책이야말로 영혼의 양식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여러분의 연이 나무에 걸린다면, 여러분은 나무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혹시 플로이드처럼 괜히 나무에게 화풀이를 하지는 않을까요? 지금 여러분의 연은 어디에 있나요? 연 하나로 삶의 비밀을 보여주는 그림책, 『다 붙어 버렸어!』입니다.

필자소개
이루리
동화작가, 그림책 평론가, 도서출판 북극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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