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의 신념이 잘못됐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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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4월 18일 08:5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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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FTA 문제가 뜨거운 현안이 된지 오래다. 지금처럼 “하면 망한다”는 입장과 “안 하면 큰일난다”는 쪽이 날카롭게 대립돼 있다. 정부의 입장은 분명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최근 “하기 나름이다. 걱정 말라. 국민을 믿고 활짝 열어놓겠다”고 말한 바 있다.

    이글의 필자는 노 대통령이 한미FTA에 정치 생명과 나라의 운명을 걸었다고 보고 있다. 또 노 대통령은 엄청난 고부가가치를 실현해주는 서비스 산업의 경쟁력을 ‘외부 효과’를 통해서 키우고 이를 ‘국부’의 토대로 바꿔놓으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고 본다.

    정태인씨도 <레디앙>과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의 논리는 제조업은 중국에 잡아먹힌다. 따라서 서비스산업을 발전시켜야 한다. 서비스 개방이 한미FTA의 초점이다. 그런데 서비스 개방하면 우리가 다 먹힌다.”라고 말한 바 있다. 필자는 이런 국가 전략이 타당한지, 이 전략이 한국사회를 먹여 살릴 수 있는지 따져본다. <편집자주>

    1. 짧은 이론 이야기

    정부에서는 한미FTA의 궁극적 효과는 서비스 산업의 경쟁력 증가라고 주장한다. 서비스 산업? 도대체 어떤 서비스 산업을 의미하는 것이고 또 어떤 효과가 날 수 있길래, 영화와 의료와 교육 그리고 가스와 전기 같은 공공서비스, 궁극적으로는 유통산업인 도시 자영업들의 기반과 맞바꾸려고 하는 것일까? 정부는 서비스 산업이라고 말은 하는데, 어떤 서비스 산업을 의미하는 것인지 조금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서비스 산업 개방 어떤 효과가 있길래

    경제학에서는 산업을 1차, 2차, 3차로 분류하는데, 여기에 무슨 엄청난 논의가 있는 것은 아니고 대체적으로 그렇게 나누면 약간 분석할 때 편하지 않을까라는 생각 이상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사회라는 것은 1차에서 시작해서 3차 산업사회로 진화하게 된다는 야무진 생각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사실상 경제학에서 그렇게 복잡한 생각까지 염두에 두고 이런 분류체계가 생긴 것은 아니라는 점을 환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편의상 형태적으로 미국은 3차 산업이 전체의 50% 정도를 차지하고 1차 산업과 2차 산업을 합치면 나머지 50% 정도가 되는데, 유럽은 이에 비해서 제조업의 비중이 훨씬 높다. 숫자를 보기 시작하면 마치 이 세 가지 산업 사이에 적절한 황금률이 생겨서 ‘최적’ 계산을 하고 싶어지는 욕망이 강하게 생겨나기는 하지만 실제로 이 분류 내에 내적인 ‘최적’의 메카니즘이 작동할 이유는 별로 없다.

    스위스 3차 산업 비율 높은 건 관광 아니라 금융업 때문

    스위스의 경우는 3차 산업이 좀 높은 편인데, 껍데기만 보면 관광산업이 높아서 그럴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되지만, 그저 OECD 평균 정도의 수준이고 서비스 산업이 높게 보이는 것은 GDP의 10%를 차지하는 금융업 때문이다. 비밀은행이 스위스에 집중되는 이유가 몇 가지 있기는 하겠지만, 어쨌든 유럽 10대 은행에 스위스 계열의 은행이 3개 이상이 될 정도로 스위스가 금융이 강하기는 하다.

    프랑스 산업구조를 보면 다른 나라에 비해서 좀 두드러지게 군수산업과 para-pharmacy라고 분류하는 대체의학의 숫자가 일반적인 평균치보다 많이 높다. 미라쥬 전투기 같은 ‘무서운 넘’을 만드는 프랑스 제 3세계 동맹외교의 결과이기도 하고, 파스퇴르 연구소라는 세계 최고의 생물학 연구소와 같은 생물학과 화학의 기반이 좋은 결과인 것 같기도 하다. 생각만큼 서비스의 비중이 높지는 않다.

    미국이 절대 경쟁력을 가진 산업은 농업이다

    미국의 경우는 서비스 업종의 비중이 높게 보이기는 하는데, 역설적이기는 하지만 미국이 절대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산업은 농업분야이고, 보험 분야 특히 재보험 분야 같은 곳에서 미국이 앞으로도 상당히 잘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TV에 나오는 산업구조만 보면 한 나라의 특정 분야가 도약해서 마치 온 나라를 먹여 살리는 것처럼 얘기하지만, 사실 그런 경우는 별로 없다. 세계화가 진행되면 한 나라가 한 산업을 특화해야 할 것 아니냐는 극단적인 주장이 나오기도 하지만, 세계화와 동시에 블록화 같은 게 함께 진행되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전체적으로는 나름대로의 산업이 좀 균형을 이루는 게 전체적인 경제의 안정성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정도가 경제학자들이 가지고 있는 대체적인 생각이다.

    여기에 조금의 주장을 더 하면 산업조직론 같은 곳에서 전후방 연관 효과나 기술 효과 같은 것들이 ‘파급효과(spill-over effect)’를 높일 수 있도록 배치되면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정도가 경제학에서 교과서적으로 해줄 수 있는 이야기이다.

    세계화를 분석할 때에는 금융세계화라는 하나의 축과, 높아지는 연구개발비 등 간접비용을 감당하기 위해서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실물경제의 과점화라는 두 가지 눈으로 들어가서 보는 게 일반적이다. 두 개가 합쳐지면 사람들이 그렇게 감동해서 뒤로 넘어가는 M&A와 민영화 문제가 나온다. 분석자의 눈으로 보자면 꽃 중의 꽃이기는 하되, 워낙 결론이 뻔한 거라서 구체적인 업종 분석과 연결되지 않으면 큰 시사점은 별로 없어 보인다.

    영국 산업공동화 낳은 대처의 금융화 정책

    금융만 놓고 보자면 영국이 대처 수상 이후 금융화와 이에 맞춘 전국적 구조조정을 엄청나게 추진하기는 했는데, 그렇게 해서 롤스로이스 같은 것들이 팔려나가고 영국에 대해서 ‘산업공동화’라는 말을 써도 이상하지 않을 현상이 벌어지게 되었다.

    경제사에서는 베네치아, 리옹, 암스테르담, 런던 등을 쭉 펼쳐놓고 초기에 생산의 중심이 되었던 도시가 무역의 중심으로 바뀌고 마지막 단계에서는 금융 중심으로 바뀐 다음에 진화가 정지되고 결국은 멸망한다는 소위 ‘수정화(crystallization)’ 같은 것에 대해서 지적하기도 한다. 영국까지 왔으니까 다음 번 차례는 시카고와 뉴욕의 차례일 것이라는 음산한 예언을 염두에 두고 있는 얘기이다.

    2. 고급 지식과 서비스 산업

    지식의 일부가 ‘생산의 기지’와 괴리되면서 생겨난 현상을 보통은 ‘제 2의 국제 노동분업’이라고 부르는데, 뭐 그렇게 어려운 개념은 아니고 미국의 신발 만드는 회사 나이키의 현지 공장이 화승이 된 사건을 생각하면 딱이다.

    1차 국제 노동분업을 농업과 산업의 분업이라고 부르는데 반하여, 2차 분업은 본사에서는 상품개발과 디자인 같은 고급스러운 일만 하고 실제 생산은 노동력이 싼 제3세계 국가에서 하게 되는데, 여기에서 90년대를 수놓은 ‘지식경제’니 ‘신경제’니 혹은 ‘혁신이론’이니 하는 것들이 등장하게 된다.

    10년의 질문, 나이키 본사 친구들 뭘 하길래 최고 운동화 만드는 거야

    생산 공장과 떨어져 있어도 계속 기술 혁신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리고 어떤 나라에는 기술 혁신이 가능한 고급 공정을 배치할 수 있는데, 어떤 나라에는 그렇게 못 하는가 하는 문제를 놓고 지난 10년간 수많은 논쟁이 있었다. 논쟁의 중심에는 노동자의 지식 수준과 기술 혁신의 상관 관계가 있었다.

    왜 체코에서 생산한 볼보는 소비자들이 볼보로 인정해주지 않는가, 이와 같은 질문들이 여기 놓여있는 질문들이다. 미국의 나이키 본사에 있는 친구들은 도대체 뭘 어떻게 하길래 여전히 세계 최고의 운동화를 만들지? 이 질문을 10년 동안 한 셈이다.

    이 얘기의 끝에 있는 것이 ‘고급 서비스’ 논쟁이다. 더 이상 나이키 본사에 있는 ‘녀석’들이 아무리 용써 봐야 잘 안되기 시작한다는 것이 결론인 셈인데, 공장과 떨어져 있는 곳에 있는 두뇌들은 녹이 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리서치 기능은 결국 현장으로 가게 마련이다. 본사에는 이른바 ‘기획 라인’ 정도만 남게 된다.

    고급 서비스 이론의 핵심 손쉽게 그리고 ‘왕창’ 돈버는 방법

    변호사, 의사, 엔지니어링 같이 국제 ‘스탠다드’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들은 힘들게 뭔가 만들지 않고 컨설팅만 해주면서 좀 쉽게 그리고 ‘왕창’ 돈을 버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라는 게 이 이론의 핵심이다.

    아직까지는 이론적으로 정리된 건 아니지만, 하여간 이제는 나이키 대신에 법무법인과 금융회사 그리고 약간의 디즈니와 헐리우드형 문화산업으로 가보자는 게 미국에서 나온 일부의 제안이다.

    그럼 미국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뭐 먹고 살아? 하여간 미국에 돈이 많아지면 될 거 아니겠어? 게다가 재정적자가 지금처럼 높은데 ‘왕창’ 달러를 끌어오지 않으면 이 시스템은 붕괴하게 된다구…

    노대통령 주위에 없는 사람들과 흘러넘치는 사람들

    이 흐름의 맨 앞단에서 ‘이거거든’하고 눈이 번쩍 떠진 게, 노무현 대통령이 한미FTA에 모든 정치 생명과 나라의 운명을 건 사건이다. “민중이 뭔가 한다”는 바보 같은 소리 말고 뭔가 확실하게 변화를 보여줄 수 있는 걸 열망하던 노 대통령에게 ‘서비스 산업’이 앞으로 엄청난 고부가가치를 만들어주게 될 것이라는 건 어쩌면 정말 멋진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지금 노무현 대통령 주위에 ‘민중경제’나 ‘산업시스템’ 혹은 ‘실물경제’를 조언해줄 사람은 거의 없고, 금융경제와 고급 서비스 산업에 대해서 조언해 줄 사람은 차고 넘치고 또 넘친다.

    흐름만으로 보자면 80년대 전두환 시절에 2차 국제 노동분업에서 한 자락 끼어서 나름대로 대박을 터뜨린 한국 경제가 이제 미국 경제의 구조조정과 함께 가자고 하는 것이니까 시대상으로는 앞을 엄청 내다본 것 같아 보이기는 하고, 그야말로 “한국 많이 컸다”는 말이 절로 나올 상황이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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