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란초의 꽃 이야기
    [푸른솔 식물생태 이야기] 무성생식
        2018년 01월 17일 11:2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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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꿀풀과에 속하는 자란초(Ajuga spectabilis Nakai)의 꽃입니다. 아무 곳에서나 흔하게 보이는 종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귀한 종도 아니어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관찰을 하시면 전국에서 다 관찰이 가능한 녀석입니다,

    자란초라는 이름은 조선식물향명집(1937)에 기재되었던 것이 현재에도 추천명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자란초는 한자어 紫蘭草(자란초)에서 유래합니다. 자주색 꽃이 피는 난초라는 뜻입니다. 어떻게 보면 난초 비슷한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속명 아유가(Ajuga)는 희랍어 a(부정, 없다는 의미)와 jugos(짝, 속박)의 합성어로 쌍으로 되지 않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조개나물이 여기에 속하니 자란초는 조개나물과 근연종입니다. 종소명 스펙타빌리스(spectabilis)는 라틴어로 ‘장관의, 아름다운, 명료한’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본인 T. Nakai가 붙인 학명인데 무엇이 아름다운, 장관으로 느끼게 만들었을까요?

    제가 Nakai가 아니니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지만, 이들의 생식방법을 보면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이 절로 느껴집니다. 이들의 생식방법을 알려면 이들의 꽃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 볼 필요가 있습니다.

    2017. 5. 27 강원도. 꽤 큰 군락이 있었고 개화가 잘 된 군락이어서 꽃 하나를 실험용으로 사용하였습니다. 꽃차례 전체는 아니었고, 꽃차례는 유지하면서 일부 꽃을 이용하여 피해를 최소화하였습니다. 보시기에 다소 불편이 있더라도 너그러운 양해을 부탁드립니다..

    꽃가루(꽃밥)이 달린 수술과 암술머리가 있는 암술의 형태의 차이가 뚜렷하여 쉽게 수술과 암술을 구별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의 꽃 안에 수술과 암술이 다 같이 있으니, 이 녀석들은 암수한꽃으로 개화하는 식물입니다. 암수가 한꽃 안에 있으니 당연히 이들은 자가교배(자가수정)가 쉽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연에서 자가수정은 열성인자가 유전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같은 유전자가 접합됨으로써 모체와 동일한 유전자가 이어져 환경변화에 대응하기 어려운 문제를 야기시킨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러니 자가수정을 당연히 피해야 할 터인데, 저 녀석들은 수술과 암술이 꽃의 입구에서 가까이 붙어 있습니다. 어떻게 자가수정을 회피할까요?

    * 참고 : 글 내용과는 다소 무관하지만 꽃의 입구에서 수술의 꽃밥이 끝나는 안쪽 지점에 털이 있고, 또 꽃 안쪽 깊숙한 씨방 부근에도 털이 잔뜩 있습니다. 수정을 매개할 곤충이 오면 씨방이 있는 곳은 가지 말고 수술과 암술 근처에서만 놀라는 뜻의 경고 문안으로 읽힙니다. 씨방을 보호하기 위한 아주 작은 깨알 같은 노력으로 이해됩니다.

    아래는 개화 시 꽃의 모습을 시간 순서대로 차례로 찍은 것입니다.

    자세히 보시면 4개의 수술이 먼저 발달해서 꽃가루를 달고 있다가 꽃가루가 점점 떨어져 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 사이로 암술이 자라 올라오는 것을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마지막 사진에 이르면 수술은 소멸 직전에 이르렀는데 그 가운데에 있는 암술만 생생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사진의 암술은 끝이 2갈래로 갈라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곳이 암술머리이고 암술머리가 2갈래 갈라져 벌어진 표면이 꽃가루를 받는 곳입니다. 암술의 다른 부위에는 꽃가루가 닿아도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다. 오로지 암술머리의 갈라진 그곳에서만 꽃가루에 반응하여 수정을 일으키고 수정이 이루어지면 긴 암술대를 타고 씨방에다 씨앗을 키우게 하는 신호(?)를 보내게 됩니다.

    위 사진에 대해 대충 결론을 내리면 자란초는 수술이 먼저 성장하여 꽃가루를 날리고 수술에서 꽃가루가 다 떨어져 나갈 때 쯤 암술의 암술머리가 갈라져 활동을 시작합니다. 즉, 자란초는 수술기–>암술기의 순서로 꽃이 개화합니다. 수술(한자로 웅예 雄蘂)이 먼저 성숙한다고 하여 어려운 말로 웅예선숙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자란초는 웅예선숙을 통해 자가수정을 회피하는 전략을 취한답니다.

    그런 수정 활동의 결과로 위와 같은 열매가 만들어졌고, 이 열매는 여름을 경과하면서 소담스럽게 자신을 키워 씨앗(종자)이 되고 그것이 산포되어 새로운 개체가 만들어질 것입니다. 저렇게 만들어진 열매는 자가수정을 회피하는 전략을 거친 다른 꽃에서 온 꽃가루에 의하여 유전자의 다양성이 확보된, 즉 타가수정의 가능성이 높은 열매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자란초를 만나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자란초는 단독으로 자라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개는 바로 위 사진처럼 군락을 이루어 자랍니다. 열매가 성숙하여 씨앗이 되면 모체는 그 씨앗을 새로운 개체로 독립할 수 있도록 산포를 시켜야 합니다.

    사람으로 치면 자식들이 결혼을 해서 새 살림을 차려 나가는 분가(分家)의 과정이겠지요. 씨앗이 모체 가까이에서 떨어져 새로운 개체를 형성하면 모체는 부득이하게 자식 세대와 경쟁을 해야 합니다. 모체가 자식 세대와 경쟁을 한다? 자식을 키워 종을 늘리는 것이 자연의 본성인데 자식 개체들과 경쟁을 하지는 않을 터인데 이상하게도 자란초는 대개 군락으로 자랍니다.

    도대체 무슨 비밀이 있을까요?

    경기도 : 사진 촬영 후 뿌리는 재식재하였음.

    그래서 한 개체의 뿌리를 살짝 캐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땅속에는 아래로 향한 뿌리만 있는게 아니라 옆쪽으로 뻗어 가는 이상한 녀석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녀석을 도감에서 찾아보면 根莖(근경)이라고 합니다. 땅속에 있는 뿌리줄기라는 뜻입니다. 뿌리라는 수식어가 있지만 핵심은 줄기라는 것입니다. 이 녀석의 본질이 뿌리가 아니라 줄기라는 것은 바로 위 사진을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뿌리에서는 있을 수 없고 줄기에서 생겨나는 잎이 달려 있지요. 물론 이 잎은 땅속에 있기 때문에 퇴화한 것이어서 지상에 있는 잎과는 그 형태가 같지는 않습니다.

    아하, 자란초는 꽃을 통한 유성생식도 하지만 땅속의 줄기를 통해 무성생식도 하는구나! 유성생식은 변화하는 지구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종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꽃(또는 그 유사한 것으로 폴런배우자체를 가진 나자식물의 생식기)을 가진 식물이 하지 않으면 안되는 필수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유성생식을 하려면 먼저 꽃이라는 생식기를 별도로 만들어야 하고, 생식세포의 결합을 위해 감수분열을 하는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하며, 수정을 매개해 줄 곤충이나 기타 외부적 수단을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꽃색을 화려하게 치장을 하는 등에 막대한 에너지를 소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준비를 했다고 하더라도 갑자기 비가 와서 매개하는 곤충이 오지 않는다면? 확실성도 떨어지고 들인 공에 비해 그 효율이 높지도 않습니다. 반면에 자란초처럼 줄기를 통해 번식하는 무성생식은 지구환경에 적응하는 것에 취약하기는 하지만, 감수분열도 필요 없고 외부자의 힘도 빌릴 필요 없이 자신의 의도대로 번식을 할 수 있고, 그 성공율도 높습니다.

    그래서 많은 식물들은 유성생식을 하면서도 무성생식의 방법을 버리지 않습니다. 종의 다양성은 유성생식으로 확보하면서 동시에 번식의 효율성은 무성생식을 통해 이루어내는 것입니다. 지나간 옛것이라도, 약점이 있는 방법이라도 새로운 방법의 보완수단이 있다면 얼마든지 활용 가능한 유용한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자란초는 삶의 그러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면에서 그래서 저에게는 경이롭고 아름답습니다. 자연은 우리의 얕은 생각보다 훨씬 더 사려 깊고 더 현명하다는 것을 느끼는 나날입니다. 알지 못함을 자각하고 그들에게서 삶을 배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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