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넥센 히어로즈
    이장석 신화는 끝나는가
    대법원 대주주 변경 판결, 미래는?
        2018년 01월 16일 11:4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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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1일 대법원은 넥센 히어로즈의 운명이 걸린 판결을 내렸다. 넥센 이장석 구단주의 상고를 기각하고 회사 지분(주식) 40%를 재미교포인 레이니어그룹의 홍성은 회장에게 양도하라고 판결했다. 이장석 구단주의 히어로즈 지분은 67.56%(27만7000주)로 홍성은 회장에게 40%(16만 4000주)를 양도할 경우 지분은 27.56%로 줄게 되어 최대주주가 변경된다. 하루아침에 넥센의 소유자가 뒤바뀔 수도 있는 셈이다. 현재 이장석 구단주는 횡령 등 특가법 위반으로 징역 8년을 구형받은 상태이다.

    2016년 여름 넥센 히어로즈 이장석 구단주가 사기 및 횡령혐의로 검찰에 의해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다는 소식은 프로야구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검찰은 영장청구 이전에 해외출국금지 조치를 먼저 내렸다. 도주우려가 있다는 뜻이다. 회사자금을 횡령하는 단계에 이르면 해외도주로 이어지는 것은 순식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찰이 청구한 넥센 히어로즈의 대표이사 이장석의 구속영장은 기각됐다. 8시간 동안 계속된 영장실질심사는 구속수사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일단 도주우려를 낮게 본 것이다. 넥센은 일말의 희망을 기대했지만 검찰은 8년이라는 중형을 구형했고 40%의 지분을 내주면서 구단주 자리마저 내주게 되었다. 어디서부터 잘못 된 것일까.

    네이밍 스폰서라는 신화

    영화 <머니 볼>에서 브래드 피트가 연기한 배역은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빌리 빈 단장이다. 가난한 오클랜드에 부임한 빌리 빈은 선수의 명성이나 평가가 아니라 데이터에 따라 선수를 데려왔다. 부상위험, 나이 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적은 비용으로 구단을 리빌딩하며 기적을 이뤄냈다. 모기업 없이 오늘날의 넥센을 만든 이장석의 별명이 ‘빌리 장석’이 된 이유다.

    2008년 (서울)히어로즈가 창단됐다. 일종의 특혜가 있었다. 모기업의 자금난으로 파산한 현대유니콘스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구단을 해체하고 선수만 인수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구단 자산의 절반은 선수라고 할 수 있는데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인수한 것이다. 7구단 체제로는 정상적인 리그를 진행하기 힘들다는 KBO와 하일성 사무총장의 주장이 힘을 얻은 결과였다.

    이장석은 ‘센테니얼’이라는 투자자문회사의 대표를 맡고 있었다. 투자가 전문이 아니라 ‘자문’이 전문인 회사였다. 자체적으로 대규모의 자본금을 가지고 있는 회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언론은 연일 재정에 대한 물음표를 던졌다. 그때, 우려를 의식한 이장석은 ‘네이밍 스폰서’라는 개념을 들고 나왔다. 새로운 야구단은 센테니얼 히어로즈가 아니라 메인 스폰서의 이름을 딴 야구단이 된다는 것이었다. 2008년 새해 겨울, 이장석은 정치인처럼 발언하며 스포츠신문을 장식했다. 그리고 곧바로 우리담배와 메인 스폰서 계약을 공표했다.

    우리담배와의 계약체결은 시작부터 꼬였다. 야구단 이름을 ‘우리담배 히어로즈’로 한다는 기사가 나가자 학부모단체가 KBO에게 거세게 항의하기 시작한 것이다. 청소년들이 즐겨보는 프로야구에 담배를 전면으로 내세우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KBO는 타협안을 제시했고 야구단 이름은 ‘우리 히어로즈’로 결정됐다. 50억을 스폰서 비용으로 지불한 우리담배의 입장에서는 황당한 일이었다.

    네이밍 스폰서 우리담배의 비극

    이장석이 넘어야할 더 큰 산이 남아 있었다. KBO 가입금이었다. KBO가 가입금이라는 규정을 둔 이유는 신규구단이 가입할 경우 가입금을 받아 유소년지원 등에 쓰기 위한 성격으로 출발했다. 말하자면 애초의 가입금은 선의의 목적이었다. 하지만 가입금은 쌍방울과 유니콘스 사태를 거치면서 ‘보험금’ 성격으로 변했다. 모기업의 파산으로 선수들이 월급(연봉)을 받지 못하는 사태가 일어나자 그 화살은 KBO에 쏟아졌다.

    가입금은 120억원으로 책정됐다. 다소 높은 금액이었지만 KBO(구단주회의)는 선수들을 인수하도록 해준 특혜와 과거 선수들의 월급을 지급하지 못한 사례를 들며 적절한 금액이라고 주장했다. 이장석은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창단 당시 히어로즈는 가입금으로 12억원을 KBO에 냈고 나머지 금액은 이듬해까지 분할납부하도록 했다. 120억원을 한꺼번에 낼 경우 구단운영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본 KBO의 배려, 아니 특혜였다. 이때부터 이장석의 두뇌게임이 시작된다.

    2008년 6월 30일 분납금 날짜가 돌아오자 이장석 구단주는 에스크로스(안전결제) 납부라는 카드를 KBO에 들이밀었다. 통장에 언제든지 인출할 수 있는 돈이 들어 있으니 조건을 재협상하자고 주장한 것이다. 자금이 없는 이장석은 배수진을 치고 나섰지만 상대인 KBO 총재는 정치인 출신인 신상우였다. 호불호가 분명했던 신상우는 사무총장의 중재에도 불구하고 기한 안에 납부하지 않으면 구단을 해체하겠다고 단칼에 제안을 묵살했다.

    통장에 돈이 들어있다고 주장했던 이장석은 이때 두 차례에 걸쳐 레이니어그룹 홍성은 회장에게 20억원을 ‘투자’로 유치했다. 홍성은 회장은 투자조건으로 회사주식 40%를 요구했다. 당시로서는 적은 금액이 아니었지만 40%라는 조건은 이장석에게 대단히 불리한 내용이었다. 불리한 조건이었지만 이장석은 곧바로 계약서에 사인했다. 에스크로 카드는 제스처이거나 허위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방증이었다.

    우리담배는 3년간 매년 70억원을 후원하는 조건으로 네이밍 스폰서 계약을 체결했다. 반년도 되지 않아 계약은 파탄났다. 언론에는 연일 히어로즈를 비판하는 기사가 등장하는데다 ‘담배’라는 네이밍까지 허공으로 날려버린 우리담배가 이미지 실추를 주장하며 계약파기를 통보한 것이다. 예상에 미치지 못하는 매출액에 고전하던 우리담배는 비틀거리다 그해 겨울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갔다. 52억원을 지급받은 히어로즈는 미지급금 18억원과 지연이자를 지급하라는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지만 그 사이 우리담배는 파산했다.

    홍성은 회장의 투자로 급한 불은 껐지만 2008년 겨울 두 번째 분할금과 전지훈련 비용, 이듬해 구단운영비 등 들어갈 자금은 첩첩산중이었다. 이장석은 현금 트레이드를 통해 자금마련을 시도했다. 좌완 에이스 장원삼을 삼성에 내주고 당시로서는 천문학적인 30억원을 받는 조건이었다. 삼성은 2007년과 2008년 두 차례에 걸쳐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했고 선동열 감독의 남은 임기는 1년이었다. 우승이라는 성적을 내야하는 것은 김응룡 사장도 마찬가지였다. 선발투수 강화가 급선무였던 삼성에게 장원삼은 30억원이 아깝지 않았다.

    하지만 승인권한을 가지고 있는 KBO가 이번에도 제동을 걸고 나섰다. 리그 평균의 저하를 우려한 KBO는 가입금을 완납하기 전에는 트레이드는 불가하다고 통보한 것이다. 자금이 부족한 히어로즈에게는 최후통첩이었지만 신상우 총재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런데 강력하게 반발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이장석이 순순히 트레이드 취소를 받아들였다. 게다가 창단 당시에 구단 운영비를 줄이기 위해 선수들의 연봉을 대대적으로 삭감했던 히어로즈가 고과에 따라 연봉을 잡음 없이 인상해 주는 일까지 벌어졌다. 트레이드가 취소되어 현금을 돌려주었다면 자금은 어디에서 생긴 걸까. 그렇다고 새로운 네이밍 스폰서가 등장한 것도 아니었다.

    새로운 네이밍 스폰서의 등장

    2009년 스폰서가 없이 서울 히어로즈라는 이름으로 시즌을 맞이했다. 연봉을 연체하거나 하는 일이 발생하지도 않았다. 새로운 김시진 감독체제에서 4할 5푼이 넘는 승률을 올리며 시즌 6위라는 기대이상의 성적으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시즌이 끝난 후 마지막 남은 분납금 36억원을 납부하며 가입금을 완납했다. 언론들이 정식(?) 구단의 탄생에 박수를 보내는 기사들이 넘쳐날 때 기습적으로 초대형 트레이드가 발표됐다. 장원삼을 삼성으로 보내는 대신 투수 2명과 현금 20억, 이태근을 LG로 보내는 대신 포수와 외야수에 25억, 다른 좌완 에이스인 이현승을 두산으로 보내는 대신 투수 금민철과 현금 10억을 받는 역대급 트레이드였다. KBO는 트레이드를 막을 명분이 없었다. 가입금 완납을 조건으로 내건 것이 오히려 발목을 잡은 것이다.

    2009년 임기 마지막 해인 삼성 선동열 감독은 시즌 5위에 그치며 13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는 최악의 성적을 거두었다. 선동열 감독의 재계약은 물 건너갔다는 소문들이 무성한 가운데 김응룡 사장은 시즌이 끝난 며칠 후에 전격적으로 5년 재계약을 발표했다. 에이스 윤성환의 부상으로 불안해진 투수진을 보강하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이택근을 데려온 LG와 이현승을 영입한 두산도 삼성과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눈앞의 우승이라는 목적을 위해 구단들이 넥센을 상대로 서로 영입전쟁을 벌리며 구단을 뿌리째 흔들었다. 2010년과 2011년 히어로즈는 3할 대의 승률을 기록하며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구단의 자산을 송두리째 팔아버린 이장석에게 뜻하지 않은 행운이 찾아왔다. 타이어 시장에 진입해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넥센 타이어가 히어로즈의 문을 노크한 것이다. 히어로즈가 가입금을 완납해 정식구단의 지위를 확보하자 불안요소가 없어졌다고 판단한 넥센이 네이밍 스폰서 계약을 타진한 것이다. 광고비 대비 프로야구단 메인 스폰서가 가성비가 훨씬 높다고 판단한 것이다. 넥센 타이어는 2010년 사상 최초로 연매출 1조원을 돌파한데 이어 7년 만에 2조원을 눈앞에 두고 있다.

    주력선수들을 팔아 치운 탓에 2년 동안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스폰서를 통해 유치한 자금과 신인선수 발굴에 주력하면서 서서히 가능성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넥센 히어로즈가 모기업이 없다는 것은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했다. 마케팅 분야가 다른 팀들에 비해 두드러졌고 적은 비용으로 선수단을 강화하기 위해 스카우트 팀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표적인 것이 박병호를 트레이드로 영입한 것과 한화 이글스에 방출되어 무적신분이었던 서건창을 신고선수로 입단시킨 것이었다. 서건창은 입단하자마자 주전 2루수인 김민성을 밀어내고 자리를 차지하며 그해 신인상까지 거머쥐었다. 2군을 전전하던 박병호는 홈런과 타점왕을 차지하며 시즌 MVP에 올랐다.

    네이밍 스폰서 구단의 몰락

    넥센 히어로즈가 승승장구하면서 몰락의 그림자도 함께 찾아들었다. 2008년 20억을 투자한 홍성은 회장은 수차례에 걸쳐 지분 40% 양도를 요청했지만 이장석은 차일피일 시간을 미루며 대화를 회피했다. 급기야 홍성은 회장이 사기혐의로 고소할 의사를 보이자 이장석은 대한상사중재원에 중재를 요청했다. 이장석은 20억이 투자금이 아니라 대여금 즉, 빌린 돈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중재원은 홍성은 회장이 제출한 서류를 검토한 결과 투자금이 맞다고 판정했다. 계약서는 투자금과 지분 40%가 명시되어 있었고, 이장석의 인감증명까지 첨부되어 있었다. 공증까지 되어 있는 계약서의 내용을 부정하는 이장석의 태도를 중재원조차 당혹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중재원이 지분 40%를 양도하라고 판정하자 이장석은 가처분 소송으로 대응했다. 투자금이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회사에는 양도할 주식이 없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요컨대 홍성은 회장과 계약을 맺은 주체는 투자자문회사인 센테니얼이고 센테니얼은 넥센 히어로즈의 주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넥센 히어로즈는 모기업이 존재하지 않고 네이밍 스폰서만이 존재하기 때문에 히어로즈의 주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센테니얼이 주식을 양도할 방법이 없다는 채무부존재 소송을 낸 것이다. 투자한 빚의 주체는 센테니얼이고 빚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빚을 갚을 방법이 없다는 교묘한 논리를 내세웠다.

    지분을 양도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홍성은 회장은 이장석을 사기혐의로 고소하기 시작하면서 사건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수사를 진행하던 검찰은 수상한 돈의 흐름과 의심스러운 전표들을 발견한 것이다. 기업에서 비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흔히 허위전표를 발행하고 돈을 되돌려 받는 횡령혐의가 나타난 것이다. 상품권을 발행해 환전(이른바 깡)을 해 돈을 빼돌리는 등 이장석 대표이사와 남궁종환 부사장이 횡령한 금액은 80억여원을 넘는 것으로 드러났다.

    빈손으로 시작해 네이밍 스폰서라는 화려한 기법으로 넥센을 명문구단의 반열에 올려놓은 이장석은 파탄으로 끝날 때까지 왜 ‘타협’이라는 카드는 고려하지 않았을까. 비극의 시작은 가입금이다. 이장석 자신이 혹은 투자단을 만들어 최소한 가입금을 커버할 수 있는 자본금을 가지고 출발했다면 이런 최악의 사태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장석은 네이밍 스폰서와 분할납부라는 두 가지 카드로 프로야구단이라는 거대한 먹잇감을 ‘독식’할 수 있다고 자만한 것이 파국으로 가는 서막이었다. 먹잇감을 삼키고 나자 일보전진을 위한 이보후퇴는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어설픈 에스크로는 이장석을 절벽으로 밀어 넣었고 20억원과 40% 지분을 맞바꾸는 극약처방으로 위기를 모면했다. 구단가치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넥센이 성장하자 이장석은 40%의 지분을 양도하느니 운명에 모든 것을 걸었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 넥센의 미래를 결정할 키는 24%의 지분을 가진 박지환 2대 주주가 가지게 될 전망이다. 이장석이 40%의 지분을 상실하더라도 여전히 27%의 지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박지환이 홍성은 회장의 손을 들어주지 않는 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일반 주식회사처럼 야구단이 배당을 하지도 않고 그럴 여유도 없기 때문에 홍성은 회장은 지분을 확보하더라도 별다른 실익은 없다.

    변수는 두 가지다. 우선 넥센 타이어와 올해로 3년 계약의 스폰서 계약이 끝난다. 2016년 히어로즈와 결별을 시도했던 넥센 타이어는 최악의 사태에 빠진 히어로즈와 재계약을 포기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2016년에 결별을 추진했던 이유도 재판이 이유였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장석이 없는 상황에서 히어로즈가 새로운 네이밍 스폰서를 올해 안에 찾지 못한다면 구단운영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다른 하나는 8년형을 선고받은 이장석이 형량을 낮추기 위해서는 80억원이 넘는 횡령금액을 변제하는 것이 급선무다.

    그동안 넥센 히어로즈는 수차례 매각설에 시달려왔다. 최근에는 카카오뱅크가 넥센 인수를 추진한다는 이야기가 야구계에 끝도 없이 퍼지기도 했다. 그룹 전체의 영업손실이 늘어나고 있는 두산을 카카오가 인수를 추진하다 금액을 놓고 이견이 생겨 그 대안으로 넥센을 타진하고 있다는 것이 소문의 정체다. 홍성은 회장은 투자자 일뿐 야구에 대한 애정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박지환은 부친으로부터 지분을 물려받은 것이지 애초의 투자자는 아니라는 것도 약점이다. 이장석이 높은 실형을 받고 구단의 재정상태가 급격히 악화되는 상황이 다가온다면 구단가치가 급락할 지분을 박지환이 계속 들고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다. 그렇다고 매각설이 사실로 확인된 적도 없다. 메이저리그에서 박병호가 돌아오면서 팬들은 한층 기대에 부풀어 있지만 구단의 미래는 긴 어둠의 터널에 들어서고 있다.

    필자소개
    인문사회과학 서점 공동대표이며 레디앙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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