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 대륙은 오른쪽으로?
        2006년 03월 30일 01:2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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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의 수도는?”
    정답은 베를린. 여기까지는 쉽다.

    “1848년 프랑크푸르트의 성바오로 성당에서 열린 회의는?”
    “독일에 있는 산 세 개의 이름을 적으시오.”
    “1895년 의과진찰법에 일대혁명을 초래한 독일의 물리학자는?”

    만약 당신이 독일에 사는 외국인인데 1848년의 독일 국민의회(Deutsche Nationalversammlung)나 X선의 존재를 발견한 빌헬름 콘라트 뢴트겐을 모른다면 독일 시민권 취득자격을 가리는 테스트에서 탈락할 수밖에 없다.

    <뉴욕타임스>는 독일 헤센주 정부가 만들고 조만간 연방정부가 채택할 예정인 새 시민권 자격 테스트가 요즘 독일사회의 얘깃거리가 되고 있다고 29일자 신문에서 전했다. 독일의 대학생들도 풀기 어려운 문제를 독일에서 정규 학교교육을 받지 않은 이민자들에게 내는 것이 공정하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1백 문항에 달하는 헤센주의 시민권 자격 테스트에 대해 독일 정당들은 극명하게 의견이 갈렸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비롯한 우파정당 진영은 이 테스트를 지지하고 있지만 좌파정당은 반대하고 있다. 헤센주가 이런 시험문제를 만든 것도 우파 기민당이 주정부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의 이 사례는 최근 들어 유럽의 각국들이 이민자 규제를 더욱 강화하는 추세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헤센주의 단답형 문제보다 더 심각한 것은 이민자들의 신념을 묻는 문제들이다. 특히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무슬림들이 유럽 각국으로 유입되면서 이들을 규제하려는 목적에서 종교적, 양심적 신념을 묻는 문제들이 시민권 취득 테스트에 포함되고 있다.

    예를 들어 네덜란드에서는 최근 법 개정을 통해 시민권을 취득하려는 이민자들에게 두시간짜리 비디오를 시청하는 것을 법제화했다. 비디오는 은행계좌를 개설하는 방법, 국영의료서비스에 등록하는 방법 등을 포함해 네덜란드인들의 일상생활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또 네덜란드의 지배적인 문화적, 윤리적 가치를 소개하려는 목적으로 북해의 누드해변이나 동성애자들이 키스를 나누는 장면 등이 포함돼 있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이어지는 자막 메시지가 문제다.

    “네덜란드인의 생활양식이 불편할 정도로 당신의 종교가 보수적일 경우 네덜란드에 오지 마십시오.”

    더구나 시민권을 신청한 무슬림들에게 “세상의 잘못이 모두 예수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라는 등의 질문까지 던진다.

    독일에서는 시민권 취득자격요건이 지난 2000년 한 차례 강화된 이후 5년만인 지난해 한층 더 엄격해졌다. 6백 시간 이상의 독일어 강의를 수강하고 독일의 역사와 문화, 생활양식에 대해 30시간의 강의를 받도록 한 것이다.

    좌파정당과 언론들은 이미 독일어 구사능력, 재정자립 등의 요건이 있는데도 추가적으로 시민권 취득자격요건을 강화하는 것에 대해 비판적이다. 더구나 헤센주 방식의 테스트를 실시한다고 해도 테러리스트나 극단주의자를 가려낸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도 지적되고 있다.

    또한 저출산, 고령화로 위협받고 있는 유럽 국가들이 이미 이주노동자를 필요로 하고 있는 상황인데 시민권 취득요건을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냐는 시각도 존재한다.

    독일은 유럽 국가들 가운데서도 출산율이 낮은 편에 속한다. 유럽이 현재의 인구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2004년 기준 합계출산율(여성이 가임기간 동안 갖게 되는 평균 출생아수)이 2.1명이어야 하지만 독일은 1.37명에 불과하다.

    2차 세계대전 직후인 지난 1946년 92만2천명의 아이가 태어났지만 지난해에는 67만6천명으로 줄어들었을 정도이다. 눈여겨 볼 것은 외국인 엄마가 낳은 아이가 25%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독일에 거주하는 터키 출신 이주노동자만 약 230만명에 달하고 있다.

    유럽의 이민자 규제 강화는 높은 실업률이 유지되고 9·11, 마드리드, 런던 테러 이후 무슬림에 대한 경계심리가 강화되면서 극우세력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각 나라별로 이민자 규제를 강화하면서 유럽이 한때 자랑했던 다문화주의는 점점 빛을 바래가고 있는 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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