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위안부 합의’
무효인데 재협상은 없다?
피해자단체, 야당, 일본, 모두 반발
    2018년 01월 09일 04:54 오후

Print Friendly

정부가 한일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해 일본에 재협상을 요구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지난 2015년 12월 28일에 이뤄진 한일 위안부 합의에 따라 일본 정부가 화해·치유 재단에 출연한 10억 엔은 우리 정부 예산으로 충당하기로 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9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12·28 합의의 처리 방향에 대한 정부 입장을 발표했다. 강 장관은 이 자리에서 “피해당사자인 할머니들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2015년 합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의 진정한 문제해결이 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사실상 12.28 합의 무효화 선언으로 풀이된다.

그러면서도 강 장관은 “2015년 합의가 양국 간에 공식합의였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며 “이를 감안하여 우리 정부는 동 합의와 관련하여 일본 정부에 대해 재협상은 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한일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TF는 12·28 합의 중 국민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이면합의 내용을 공개했고, 문재인 대통령은 “합의에서 중대한 흠결이 확인됐다”고 밝힌 바 있다.

강 장관은 “다만 일본이 스스로 국제 보편 기준에 따라 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피해자들의 명예 ·존엄 회복과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노력을 계속해 줄 것을 기대한다”며 “피해자 할머니들께서 한결같이 바라시는 것은 자발적이고 진정한 사과”라고 강조했다.

강 장관은 “일본 정부가 출연한 화해·치유재단 기금 10억 엔은 우리 정부 예산으로 충당하고, 이 기금의 향후 처리방안에 대해서는 일본 정부와 협의하도록 하겠다”면서 “화해 ·치유재단의 향후 운영과 관련해서는 해당 부처에서 피해자, 관련단체, 국민 의견을 광범위하게 수렴하여 후속조치를 마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는 진실과 원칙에 입각해 역사문제를 다루어 나가겠다”며 “과거사 문제를 지혜롭게 풀어나가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동시에 한일 양국 간 미래지향적 협력을 위해 계속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 장관은 “오늘 말씀드린 내용이 피해자 여러분들께서 바라시는 바를 모두 충족시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점에 대해 깊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면서 “앞으로도 정부는 성심과 최선을 다해 피해자 여러분들의 의견을 경청하면서 추가적인 후속조치를 마련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12.28 합의 백지화하되, 재협상을 요구하지 않기로 한 것에 대해 “실효적인 것으로 평가한다”며 적극 옹호했다.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오후 서면브리핑에서 “박근혜 정부의 독단적인 이면합의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사과와 외교부의 신속한 후속 조치마련은 오로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국민을 위한 것”이라며 “정상적인 국가라면 응당해야 할 보편타당한 조치”라고 밝혔다.

백 대변인은 “양국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위해 보편적 인권 문제인 위안부 문제에 있어 일본의 적극적이고 전향적인 태도 변화를 촉구한다”며 “일본은 메르켈 독일 총리의 ‘나치 만행을 기억하는 것은 독일인의 항구적 책임’이란 발언을 마음 깊이 되새길 필요가 있다”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공식적 사죄를 거부하고 있는 일본 정부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정대협 등 위안부 단체 일제히 반발
“일본의 자발적 조치만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

여당의 이러한 평가와는 달리, 위안부 피해자 단체 등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12.28 합의로 발족한 화해·치유재단 해산, 재협상 요구 등이 담기지 않은 것이나 일본 정부의 자발적 조치만 기대하는 수동적 태도 등에 대한 비판으로 풀이된다.

일본군성노예제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재단,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일본군‘위안부’연구회는 공동입장문을 내고 “‘2015한일합의는 일본군성노예제 문제의 해결이 아님’을 정부의 공식입장으로 선언한 것, 일본정부 위로금 10억 엔 전액을 정부예산으로 편성하고, 늦게나마 우리 정부가 피해자 중심 문제해결을 원칙으로 정하고 일본군성노예제 피해자들의 명예, 존엄, 인권회복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한 방향에 대해 환영한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여전히 일본정부의 자발적 조치만을 기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외교적인 문제를 이유로 일본정부에 대한 법적 책임은 묻지 않은 채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조치만을 취하겠다는 태도는 수용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지난 27년간 일본군성노예제 피해자들이 외쳐온 정의로운 요구를 문재인 정부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며 “문재인 정부는 ‘화해치유재단의 즉각적인 해산’ 그리고 피해자들을 대변해야 할 정부가 그동안 외면해왔던 ‘일본정부를 향한 범죄사실 인정, 공식사죄와 배상을 통한 법적책임 이행 요구’로 응답해야한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에 재협상을 요구하지 않기로 한 결정을 비판한 셈이다.

12.28합의가 근거가 돼 발족한 화해·치유재단의 즉각 해산도 요구하고 있다. 이 단체들은 “이는 2015한일합의 직후 일본군성노예제 피해자들과 시민들이 지속적으로 외쳐온 요구”라며 “2015한일합의는 절차적 정당성은 물론 내용의 정당성 또한 사라진 부당한 합의이다. 화해치유재단에 대해 정부가 이행해야 할 것은 광범위한 의견 수렴이 아니라 이미 지난 2년간 확인된 피해자, 지원단체, 시민사회의 의견을 반영한 즉각적인 해산 조치뿐”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의당 “재협상 요구 않은 것은 대선공약 파기, 사과하라”
정의당 “사실상 무효화 선언…합의 파기, 재협상 요구 없어 아쉽다”
민중당 “합의 파기 없어 유감, 어려움이 있더라도 재협상 요구해야”

야당의 평가 또한 위안부 피해자 단체들과 다르지 않다. 국민의당, 정의당 등도 합의 파기를 선언하지 않고 재협상을 요구하지 않기로 한 결정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국민의당은 문재인 대통령이 ‘위안부 재협상’이라는 대선공약을 파기한 것이라며 공식 사과를 촉구하고 있다.

이행자 국민의당 대변인은 논평에서 “화해와 치유재단 해체, 10억 엔 반환 등 위안부 합의 파기나 재협상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며 “결국 12.28 위안부 합의를 유지하겠다는 것 아닌가”라고 주장했다.

우리 정부가 합의 파기를 공언하지 않으면서 형식적으로나마 지난 합의가 유지될 수 있다는 우려다. 또 일본정부의 출연금 10억엔을 반환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이 대변인은 “문재인 대통령은 결국 대선 공약을 파기한 것”이라면서 “문 대통령은 위안부 할머니를 청와대에 초대해 안아드린 것으로 위안부 합의 약속 파기의 면피용으로 삼았다면 오산”이라고 비판했다.

최석 정의당 대변인은 이날 국회 브리핑에서 “이번 발표는 내용상 무효화 선언으로 볼 수도 있을 듯하다”면서도 “하지만 합의의 파기나 재협상 요구 방침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없는 모호한 후속조치로 위안부 피해 당사자들의 입장이 충족되지 않았고, 일본의 자성에 기대야 한다는 점에서 무척 아쉽다”고 지적했다.

최 대변인은 “한일 간의 발전적 관계의 재정립을 위해서라도 위안부 협상은 원점에서 재검토 되어야 할 것”고 강조했다. 또한 일본에 대해서도 “가해국가로서 이와 같은 상황을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재연 민중당 대변인도 논평을 내고 “피해 할머니들의 요구를 그대로 담지 않은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후속 조처 내용에 12.28 합의 파기, 10억엔 반환, 화해치유재단 해산 등이 담기지 않은 것에 대한 지적이다. 김 대변인은 “어려움이 뒤따르더라도 합의 파기와 재협상을 일본에 요구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본이 스스로 노력해줄 것을 기대한다는 강 장관의 발표에서는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겠다는 의지조차 느껴지지 않는다”면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입장에 서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끝까지 다하는 것이 우리 정부의 책무”라고 밝혔다.

황유정 바른정당 대변인도 논평에서 “위안부 합의에 대한 문 정부의 최종 처리 방안은 맹탕”이라고 혹평했다.

황 대변인은 “문재인 대통령은 ‘위안부 합의는 무효이고 잘못된 협상을 반드시 바로 잡겠다’고 약속했었다. 재협상할 수 있는 대안과 위안부 할머니들의 한을 풀어줄 방법이 있는 것처럼 보여 왔다”며 “그러나 재협상은 요구하지 않겠다고 한다. 또 10억 엔은 일본정부와 협의하여 처리하겠다는 애매모호한 외교적 언어를 남겼다”고 지적했다.

이어 “10억 엔의 반환은 협상을 사실상 파기하겠다는 의미인데 협상의 파기 없이 10억 엔을 일본에 돌려줄 방법이 있다는 것인지 또 다른 거짓으로 국민을 현혹하고 있다”며 “문재인 정부는 솔직하게 자신의 외교적 무능을 시인하고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죄를 사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자유한국당은 “알맹이가 없는 입장 발표”라고 폄하했다. 전희경 대변인은 이날 구두논평에서 “외교관례를 무시하고 외교문서까지 들춰가며 보여주기식 쇼를 한 결과로 치기엔 알맹이가 무엇인지 모를 입장 발표”라며 이같이 말했다.

전 대변인은 “국내(여론)와 외교관계를 모두 의식하다보니 해결된 것도, 어떻게 하겠다는 것도, 방향성도 제대로 알 수 없게 됐다”며 “입장이 없는 입장 발표”라고도 주장했다.

일본 정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즉시 항의할 것”

일본 정부 측은 우리 정부의 사실상 12.28 합의 무효화 선언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은 이날 외무성 기자단에 “(한일 위안부) 합의로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실행하지 않는 것은 일본으로서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며 “즉시 항의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한일 합의는 국가와 국가의 약속”이라며 “정권이 변했다고 해서 (합의를) 실현하지 않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국제적이고 보편적인 원칙”이라고 말했다.

앞서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 역시 이날 오전 정례 브리핑에서 한국 정부가 오후에 한일 합의에 대해 후속조치를 발표할 예정인 것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이러한 합의가 착실히 실시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1㎜도 움직일 생각은 없으며 이는 전혀 바뀌지 않는다”고 답한 바 있다.

필자소개
유하라
레디앙 취재기자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