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왜 한나라당을 배신(?)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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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3월 29일 06:3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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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당신이 선거 여론조사의 전문가여서, 2002년 지자체 선거와 대통령 선거를 한 해 앞두고 있었다고 상상해 보자.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이다. 시간은 늦은 밤, 아니 새벽 무렵으로 해 두자. 금연캠페인이 요즘 같지 않던 시절인 만큼, 아마 담배연기가 자욱할 방안일 테다.

당신은 한 쪽 손에 조사결과 분석표를 들고서 컴퓨터 화면을 노려보고 있다. 내일 아침까지 보고서를 완성해야 한다. 전체 지지도를 계산하고, 남자와 여자 성별의 의견을 분석하고, 20대, 30대, 40대, 50대 이상 연령별 의견을 나누는 식이다. 인구사회학적 특성에 따라 의견 차이를 규명해서 전략을 짜는 것이다. 보고서의 한 대목엔 이렇게 적혀 있었을지도 모른다. ‘여성은 남성보다 상대적으로 보수적이고 안정 지향적이므로…’

남성이 한나라당 주요 지지기반?

5년 전의 풍경이다. 분명 정당지지도 같은 선거분석의 틀로 바라본 여성은 보수적이었다. 지금부터 5년 전인 2001년 3월의 정당 지지도를 보면 여성의 한나라당 지지도가 남성보다 높았다. 당시 보고서에 한나라당의 주 지지계층이라는 항목에는 성별로는 여성이라는 구절이 빠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꼭 5년이 지난 지금 여성은 달라지고 있다. 아니, 선거분석의 틀에서만 보자면, 오히려 남성이 한나라당의 주요 지지기반이라고 까지 할 수도 있겠다. 다음 표는 2001년 3월과 2006년 3월에 조사한 한나라당 정당 지지도의 변화 추이를 보여준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을까?

과거에는 보수 성향 정당에 대한 여성의 지지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이유에 대해 본질주의적인 설명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여성은 생물학적으로 안정 지향적이라든가, 심리적으로 주체적이기 보다는 예속적인 성향이 강하다는 따위의 접근 방식이 많았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도 여성의 보수성은 마치 여성의 속성처럼 전제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설명은 은연중에 제도화 또는 관습화된 여성차별을 정당화하는 근거의 일부가 되는 악순환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지금 여성의 정치사회적 의식은 급변하고 있다. 각계에 여성의 사회진출이 일반화되고 있으며, 여러 분야에서 여성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선거조사의 사례를 보면, 몇몇 조사에서는 20대 여성이 30대 남성과 함께 가장 진보적인 의식을 보여주기까지 하는 것이다.

여성의 정치사회의식이 변하고 있다

그럼 이러한 여성의 정치사회적 의식의 변화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가장 먼저 들어야 할 것은 제도권 교육에서의 변화이다. 사실 남․여간 정치적 성향의 차이는 성차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교육수준이라는 매개변수에 의해서 발생한다. 대체로 공식적인 학력수준이 낮을수록 보수적인 정당을, 학력이 높을수록 진보적인 정당을 지지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이럴 경우, 구세대는 남성에 비해 여성의 공식적인 교육 수준이 낮았기에, 그 결과 여성의 보수정당 지지도가 남성보다 더 높게 나타난 것이다. 다시 말해 보수 정당 지지냐, 진보 정당 지지냐 하는 정치의식은 실질적으로는 학력의 높고 낮음의 영향을 받는데도 불구하고, 단지 여성이 당시 사회경제적 상황에 의해 교육을 상대적으로 덜 받았기 때문에 마치 여성이 보수적인 정당을 더 지지하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적어도 제도권 교육에 관한한 남․여간 차별은 크지 않다. 특히 젊은 세대의 남․여간 학력 차이는 과거 세대와 비교해 보면 거의 사라졌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세월이 감에 따라 남․여간 학력차가 컸던 과거 세대는 줄어들고, 남․여간 학력차가 없는 신세대가 새로 충원되면서, 여성의 정치사회의식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저항적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여성의 자기정체성 인식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한 설명이 아니다. 제도권에서 이루어지는 공식 교육수준만의 문제라면 한나라당 지지도는 남․여가 비슷하게 나타날 수도 있다. 하지만 여자가 남자보다 더 낮게 나타난 현상은 설명하기 어렵다. 그래서 다음으로 주목해야 할 것이 여성의 사회적 자의식 강화라는 측면이다. 즉 제도권 교육과는 별개로 사회적 교육의 효과를 보아야 한다.

이는 매스컴 등을 통한 자아 존중의식의 고취라는 사회적 커뮤니케이션 차원과 함께, 기존의 제도화된, 또는 관습화된 성적인 차별을 구체적으로 경험하면서 그 차별을 극복하려는 노력의 과정에서 학습된 저항적 커뮤니케이션의 차원에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여성은 더 이상 가족에 일부로서만 자신을 자리매김하지 않는다. 하나의 인간으로서 자기 정체성을 먼저 자각하는 것이다.

그 결과 여성의 정치사회의식은 급변하고 있다. 선거분석의 틀로만 놓고 보더라도 겨우 5년 전과는 상이한 양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과거 여성의 정치사회의식을 생각해보면 엄청난 변화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변화를 낙관적으로 보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아직은 그렇게만 말하기는 조심스러울 것 같다. 이러한 변화가 자동적으로 진보적 가치 지향으로 나아간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거대한 변화의 단초 그리고 소중한 가능성

여성의 고위직 진출이 여성 차별을 극복하는데 중요한 계기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단지 계기일 뿐이다. 힐러리 클린턴과 콘돌리자 라이스 중 누가 차기 미국의 대통령이 된다 하더라도 실질적인 여성차별 문제의 개선이나 사회진보의 진전은 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처럼 말이다.

성별간의 차별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과 예속의 문제이다. 그것을 생물학적인 여성만의 문제로 본다면, 단지 ‘명예 남성’의 증가에 그칠지도 모른다. 그럴 경우 극단적으로 말해서 남성중심사회가 여성중심사회로 전환될지는 몰라도,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를 예속하는 질서를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다. 여성의 정치사회의식의 변화는 거대한 변화의 단초가 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소중한 가능성임에는 틀림없다. 이것이 여성 정치사회 의식의 변화와 지향에 주목해야 할 중요한 까닭인 것이다.

※이글은 한길리서치 연구소 홍형식 소장과 김태영 선임연구원이 함께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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