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노동당, 꿈 깨고 학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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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3월 28일 08:0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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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민주노동당 집권’은 리얼리스트의 꿈이 아니다. 2012년에 집권은커녕 ‘제일 야당’이 되는 것조차 물 건너갈 수 있다.

    나는 민주노동당 지도부나 활동가들을 만날 때마다 학습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최근 새로이 선출된 당 지도부와의 짧은 만남에서도 당원 교육 등 학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작년 4·15총선으로 열 명이 국회에 진입한 이후 중앙당의 기자회견장은 확장되었지만 당 연수원은 제 구실을 못하고 있고 중앙당이든 도당이든 교육 프로그램이 거의 없다. 이는 당 지도부나 활동가들이 스스로 학습하지 않는다는 증거일 수 있다. 당 지도부와 활동가들이 학습의 중요성을 모르니 스스로 학습하지 않고 당원 교육에도 소홀한 것이다. ‘2012년 집권’은 학습이 결여된 민주노동당의 허망한 전망에 지나지 않는다.

    민주노동당을 아무리 열심히 홍보해도, 그리고 무상교육과 무상의료를 거듭 주장해도, 그것이 사회구성원들의 의식세계에 변화를 가져오기엔 이미 사회구성원들은 충분히 의식화되어 있다. 사회구성원들은 민주노동당에 대해 모르고 있지 않다. ‘알고 있다고 믿고 있’고 이미 평가를 내리고 있다. 절대 다수는 민주노동당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이미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이 형성되었고 그 의식을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그 뿐이 아니다. 이미 형성된 의식을 스스로 부정하거나 수정하기 싫어하는 심리까지 작용하여 새로운 사실을 접해도 그것을 수용하는 대신 그것을 수용하지 않는 자신을 합리화하는 99가지 이유들이 그의 의식 세계 안에 준비되어 있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깨어난 의식’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가능할까? 그것은 거의 ‘탈의식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우리가 말하는 ‘깨어난 의식’이란, 사회구성원이 어느 시점까지 갖고 있었던 자신의 의식세계에 의문을 품거나 그것을 흔드는 충격을 통하여 그것을 벗어던졌을 때에만 가능하다. 애당초 의식세계가 텅 비어있었던 게 아니라, 주로 교육과정과 대중매체를 통하여 형성된 의식을 털어내면서 ‘깨어난 의식’이 자리 잡을 수 있었다. 그와 같은 탈의식의 계기는 대개 학교나 일터에서 선배의 이끌림을 통하여 조직이나 동아리에 참여하거나 정규 교육과정에서 취급하지 않는 ‘책’을 접할 때이다. 그래서 ‘중3 때 사회주의자’나 ‘고1 때 사민주의자’는 애당초 불가능하고, 따라서 구체적 현실과의 갈등 속에서 여과되고 성숙된 의식 또한 거의 기대할 수 없다.

    ‘민주노동당 2012년 집권’을 말하는 사람들은 남미의 브라질, 베네수엘라, 볼리비아를 바라본다. 그 나라들이 미제국주의의 텃밭으로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유린되어 첨예한 양극화의 길을 걸은 것은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우리와 다른 점이 있다. 그들에겐 60년 동안 국가주의 이념을 전파한 학교교육도 없었고 획일적 가치관을 일방적으로 전파한 대중매체의 공세에서도 벗어나 있었다. 그들은 아직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라는 명제에 가깝지, “한 사회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는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다”에는 거리를 둘 수 있었다.

    이를테면, 오늘날 남미 대중의 의식 세계는 오늘날 한국인들의 그것과 가까운 게 아니라, 1945년 직후 미군정 당국을 당황하게 했던 조선인들의 의식 세계와 더 가깝다. 당시 조선인들의 의식세계는 ‘황국 신민’이라는 괴물이 사라진 뒤 아직 새로운 괴물이 들어서지 않아 비어 있는 상태였고, 따라서 존재가 요구하는 의식을 가질 수 있었다. 오늘은 전혀 그렇지 않다. 60년 동안 지배세력이 장악한 교육과정과 대중매체를 통하여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화’가 철저히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런 가상을 해보면 어떨까. 무인도나 깊은 산속에서 화전민으로 살았던 가정이 있다고 하자. 수십 년 동안 한국사회와 떨어져 있다가 마침내 한국사회와 만나게 된다. 그들의 의식 세계는 비어 있고 의식은 존재의 요구에 순응한다. 무상교육, 무상의료에 무관심하거나 동의하지 않을 의식이 그의 의식 세계 안에 아직 형성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그들도 지배세력이 장악한 교육과정과 대중매체에 의한 사회화과정을 통하여 1년, 2년, 또는 3년 안에 무상교육, 무상의료에 무관심하거나 동의하지 않도록 하는 의식세계를 형성할 것이다. 그리고 그 의식을 고집할 것이다. 그렇게 사회구성원들에게 존재를 배반하도록 하는 의식화가 60년 동안 지속되었다. 지배세력에 대한 ‘자발적 복종의식화’가 대물림되어 이루어진 것이다.

    이런 상황인데, 탈의식의 계기를 가졌다는 것만으로 스스로 오만해져 엔엘이니 피디니 나뉘어 다투고 있다. 심하게 말해, 우물 안 개구리들이 따로 없는 것이다. 가령 사민주의와 사회주의의 차이에 대해 알고 있는 사회구성원은 얼마나 될까. 채 5%도 안 될 것이다. 반면에, 80% 이상의 사회구성원은 사민주의든 사회주의든 아예 관심이 없거나 부정적인 의식을 강고하게 가지고 있다. 민주노동당이 아무리 홍보를 열심히 해도 사회구성원들의 의식은 움직이지 않을 것이며, 10%대의 지지율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면 내부 쟁투는 더욱 격렬해질 수 있고 당은 위험한 지경에 처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왜 학습인가? 첫째, 의식화보다 탈의식화가 더 어렵기 때문이다. 이미 형성된 의식은 강고한데, 그것은 학습을 통하여 스스로 벗어낼 수 있는 것이지 남이 벗겨내기는 무척 어렵다. 둘째, 어설픈 탈의식의 오만을 극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독도 문제에 대한 민주노동당의 대응에서 보듯, 어설픈 탈의식은 어설픈 진보를 낳는다. 노동, 통일, 여성, 환경, 국제문제에 균형 잡힌 시각을 갖춘 진보를 만나기 어렵고, 당원들이 이웃을 설득할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이웃을 설득하기가 무척 어려운 만큼 더욱 학습해야 할진대.

    당의 재정이 빈약하고 역량이 부족해서 당원 연수 등 학습 프로그램을 강화하기 어렵다면, 지역위원회, 분회별로 독서 모임을 꾸리자. 노동조합들이 독서 모임을 꾸리도록 독려하자. 마을마다 청년 학생과 학부모들의 독서모임이 들불처럼 일어나도록 하자. 책은 세계와 만나는 창이다. 독서와 토론을 통하여 세상을 이해하고 자아를 재발견하는 것은 그 자체로 삶의 즐거움이다. 노숙인들에게 인문학 강좌는 가장 훌륭한 활인(活人)의 계기가 되고 있다. 나 자신이 내 삶의 주인인 사회 구성원들이 점차 늘어날 수 있고, 그것은 ‘인간성의 확대’라는 진보 이념의 가장 중요한 전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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