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생 여러분 전학 가라면 가겠어요?"
    2006년 03월 28일 09:3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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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동이 어디였지?”
너무 오래 만에 찾은 모교인지 김종철 후보는 예전에 자주 다니던 건물을 금방 찾지 못했다.

김종철 민주노동당 서울시장 후보는 28일 서울대학교 “한국현대사의 이해” 강좌의 1일 강사로 강단에 섰다. 김 후보는 지난 2년간 당 중앙연수원장을 맡아 수많은 당원을 교육한 ‘명강사’로 소문 나있다. 그러나 후배들 앞에 서는 것은 역시 부담이 되는 모양이다.

이날 강연은 강좌를 담당하고 있는 고지훈 강사의 초청으로 이뤄졌다.

김종철 후보는 상투적인 인사 대신 “혹시 제가 누군지 아시는 분 계신가요?”라는 질문으로 강연을 시작했다. 50여명의 학생들 사이로 두어개의 손이 수줍게 올라왔다. “여러분이 가장 많이 아는 분은 아마 여당의 강금실 후보일 겁니다. 그러나 아직 여당의 후보는 아니지요. 야당인 한나라당의 후보 자리를 놓고도 많은 분이 경합을 하고 계십니다. 제가 현재 서울시장 선거에 나선 사람 중에 가장 확실한 후보입니다.” 인사를 대신한 김 후보의 자기소개다.

 
▲ 강연을 시작하기 전 학생들과 함꼐 앉아 있는 김종철 후보, 눈빛이 긴장돼 있다.

“제가 오늘 여러분께 하고 싶은 이야기는 우리 대학생들이 졸업하고 사회에 나갔을 때 기다리는 현실과 그 현실이 왜 부당한가 입니다.” 그러면서 김 후보는 ‘신자유주의’라는 단어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김 후보는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가 뭐가 달라서 새로운 자유주의라고 하는지 설명했다. 그리고 그 설명은 자연스럽게 자본주의의 태동과 임노동의 역사로 이어졌다.

“자본주의 사회가 되면서 자본가와 노동자라는 사회의 주요한 두 계층이 탄생했습니다. 자본가는 마음에 들지 않는 노동자랑 일하지 않을 자유가 있고 노동자도 마음에 들지 않는 자본가와 함께 일하지 않을 자유가 있습니다. 겉으로 보면 동등한 권리지만 노동자는 자본가를 거부하면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왜 노동자가 사회적 약자일 수밖에 없는가 하는 이야기는 노동조합의 탄생으로 연결됐고 다시 진보정당의 결성으로 나아갔다.

듣기에 따라서는 매우 어려운 이야기일 수 있는 주제였지만 김 후보는 강연 중간에 퀴즈도 내고 질문도 던지면서 학생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기술을 발휘했다.

김 후보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이야기를 꺼냈다. “초기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노동자는 비정규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통해 단결하는 시대를 거쳐 우리는 다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양산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김 후보는 지난 2000년 서울대시설관리노조의 파업을 예로 들었다. “서울대에도 시설관리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나이 많은 비정규 노동자들인 그분들이 당시 41만원 월급 받으면서 2만원을 인상하기 위해 파업을 했습니다. 혹시 당시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파업을 기억하는 학생 있나요?” 강의실 끝에 앉아있던 학생 한명이 손을 들었다.

“여러분 과외 많이 하시죠. 과외 3탕 뛰면 벌 수 있을 정도의 돈조차도 못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우리 주위에 많습니다. 가까이에는 학교 안에도 많은 비정규 교수님들이 계십니다.” 김 후보는 학생들과 함께 강연을 듣던 고지훈 강사를 보며 학생들의 박수를 유도했다.

김 후보의 이야기는 의료체계로 넘어갔다. “우리나라 병원의 90%가 민간소유입니다. 10%만이 공공병원입니다. 90%의 민간병원이 유지되려면 더 많은 환자가 필요합니다. 민간병원들이 유지되려면 여러분이 35세쯤에 한번 크게 아파야하고 50이 넘어서는 중병에 걸려야 하고 늙어서는 요양에 들어가야 합니다.” 학생들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김후보는 왜 우리 의료체계에서는 예방의학이 발달하지 못하는지 공공병원이 확대되면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외국의 사례를 들며 설명했다. 여기저기서 고개를 끄덕거리는 학생들이 보였다.

 
▲ ‘사회주의’ ‘진보정당’… 낯선 정치인이 펼쳐놓는 낯선 이야기를 들으면서 학생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번에는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독일은 대학도 전학 다닙니다. 여러분 전학가라면 가시겠어요?” 다시 한번 강의실에 웃음이 번졌다. 김 후보는 학벌 없는 사회에서는 어떻게 대학도 전학이 가능한지 설명하면서 후배들에 대한 당부를 잊지 않았다. “서울대 지방이전해야한다고 주장하면 여러분은 기겁을 하시겠지만 저는 서울대학생들이 나서서 대학서열폐지, 국공립대통폐합을 이야기했으면 좋겠습니다.” 기득권을 포기하라는 선배의 주장에 후배들은 얼마나 공감했을까.

김 후보는 청년실업이나 비정규직의 확대 같은 눈앞의 현실을 외면하지 말고 학생들도 자기 옆의 사람들, 주변의 노동자들에 관심을 갖고 연대할 것을 주문하면서 1시간가량의 강연을 마무리했다.

이날 강연을 들은 조준형씨(공대)는 “재미있었다. 생각해볼만한 이야기가 많았다”고 평했다. 후보로서는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에는 웃음으로 답변을 사양했다.

강단에서 내려온 김 후보는 학생들의 진지함에 놀랐다고 소감을 밝혔다. “여러 강연을 다녀봐서 분위기를 읽을 수 있습니다. 학생들의 진지함 만큼이나 저도 긴장하고 이야기했습니다.”

건물 앞 자판기 커피로 목을 축인 김종철 후보는 이번에는 서울 중부지역 민주노동당원들이 모여 있는 강연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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