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혁명은 근대화 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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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3월 28일 07:4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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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가을 러시아의 페테르부르그를 방문했을 때 한 러시아 노인이 했던 말이 아직도 귓가에 맴돌고 있다. "러시아는 사회주의국가를 건설했던 위대한 국가"라는 말이었다. 그 노인의 말처럼 과거의 그 위대했던 러시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론의 실험과 실험의 실패

지난해는 1905년 1차 러시아혁명 100주년이 되는 해였지만 러시아의 대학가 어디에서도 이를 기념하는 행사는 열리지 않았다. 혁명의 진원지이기도 했던 페테르부르그 대학을 찾아 그 대학의 역사학과 석좌교수를 만나 러시아 혁명에 대해 대화를 나눈 적 있다. 그의 말을 빌린다면 러시아 혁명은 "사회주의 혁명이라기보다는 근대화를 위한 운동"이었다.

공산주의체제의 산증인이기도 했던 노교수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나는 곧 말문이 막혀버렸다. 러시아에서조차도 지난 혁명의 역사는 이렇게 철저히 부정되고 있었다.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가 존재하지 않고 노동과 분배의 정의가 실현된다는 공산주의 사회는 이렇게 몰락해버렸다.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의 이론이 실험이었다면 그 실험은 실패라는 판정이 내려졌다. 그동안 많은 이론가들이 나름대로 원인을 진단해왔다.

트로츠키주의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라느니, 레닌의 네프(NEP, 신경제정책)를 지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패했다느니 하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또한 스탈린의 정책노선이나 중국의 문화혁명이 지나치게 반인텔리적인 정책이어서 몰락의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었다는 진단을 하는 이도 있다. 아니면 아예 후진농업국가였던 러시아나 중국에서 사회주의 혁명은 불가능했다고 말하는 학자들도 있다. 하지만 그 원인은 너무 단순할 수 있다.

공산당 간부는 쉽게 자본가로 둔갑하고

이제는 누구도 사회주의자니 공산주의자라고 스스로를 규정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스스로를 마르크스주의자라고 하면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꼴통이라 왕따 당하는 세상이 돼버렸다. 특히 공산주의 시절 공산당간부로서 부귀영화를 잔뜩 누렸던 가짜 공산주의자들은 이미 인민복을 벗어 던지고 너무도 쉽게 돈 많은 자본가로 둔갑해버렸다.

이렇게 현실사회주의는 철저히 몰락해버렸다. 어쨌든 인간의 사고가 빚어낸 최고의 이론이라는 과학적 사회주의 이론이 현실에 제대로 적용됐는지의 여부는 제쳐두고서라도 최소한 시도만이라도 해본 것은 사실이다. 어설프나마 그 수준에서 흉내라도 내봤다는 데 위안을 삼을 수밖에 없다.

공산당 간부들이야 다른 세상이 오면 자본가로 둔갑해버리면 그만이지만 그 짐은 고스란히 민중들이 짊어질 수밖에 없다.

초콜릿 만드는데 더 신경 썼으면 공산주의는 살아있을지도

시베리아를 열차로 횡단하던 중 모스크바에 살면서 외국계 회사에서 일하는 티나라는 러시아 여인과 대화를 나눈 적 있다. 그녀의 어린 시절에 대한 회상은 러시아 공산주의사회의 실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를 제공했다.

"어릴 때 언제나 사탕과 초콜릿이 그렇게도 먹고 싶었으나 전혀 구경도 하지 못하고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티나의 회상은 마치 먼 나라의 얘기처럼 들렸다. 국영상점에서는 생활에 꼭 필요한 것들만 구비해놓았지 어린이들을 위한 것들은 전혀 없었던 모양이다.

러시아의 공산주의 체제가 망한 현재의 상황을 티나는 더 선호한다고 했지만 그 이유란 별 게 아니었다. 초콜릿이나 사탕을 마음대로 볼 수 있고 살 수 있다는 게 중요한 이유였다. 티나의 얘기를 들으면서, 만약에 공산당 간부들이 자기주머니 채우는 일에 열중하기보다는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초콜릿이나 사탕을 만드는 일에 더 신경 썼더라면 세계 공산주의 체제는 여전히 건재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기도 했다.

반미와 장기독재의 현재 사회주의 국가들

비록 공산주의의 종주국이 망하고 대부분의 공산주의를 표방하던 국가들이 자본주의의 길을 걷고 있지만 지금도 여전히 사회주의 국가체제를 고수하고 있는 나라들이 있다. 시리아로 대표되는 중동의 몇 개 나라들과 아프리카의 몇 개 국가들과 쿠바와 북한이다.

이들 국가들은 반미를 중심정책으로 두면서 일인 장기독재가 유지되고 있다. 시리아는 아버지 아사드 대통령이 죽은 뒤 아들이 정권을 물려받았고 북한도 마찬가지로 아버지가 죽은 뒤 아들이 정권을 물려받았다는 점이 너무 유사하다.

물론 미국의 부시일가도 아버지와 아들이 정권을 잡았다는 점이 유사하지만 빠르면 4년, 늦어도 8년이 지나면 물러나게 돼있다는 점이 이들 국가와는 조금 다르다. 패밀리 장기독재의 문제는 둘째로 친다 하더라도 이들 국가에 사는 사람들은 과연 행복한가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공포정치를 사회주의 명분으로 유지하는 나라들

지난해 시리아를 방문했을 때 수도 다마스커스시에 사는 시리아인들과 몇 차례 대화를 시도한 적 있었다. 이들은 이리저리 눈치를 보면서 말하기를 꺼려했다. 특히 대통령의 이름인 ‘아사드’는 성스러운 이름인양 꺼내기조차 두려워했다.

그의 이름이 나의 입 밖으로 떨어지는 순간, 갑자기 하늘에서 천벌이라도 내릴 것 같은 분위기로 돌변했다. 북한도 시리아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가 없는 세상이 아니라 전국민들이 공포에 떨면서 살아가는 세상이 사회주의라는 명분으로 유지되고 있다.

정권유지를 위해 인간의 기본적 자유를 박탈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는 인간에 대한 착취이다. 배만 채우면서 목숨만 유지한다고 인간이 행복함을 느끼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인간에게 밥은 없어서는 아니 될 요소지만 자유도 밥만큼이나 중요하다. 자유는 인간의 영혼에 있어서 공기와 같은 요소이다.

다시 시작하기 위해 포기할 수 없는 최소한

어쨌든 이미 나락으로 떨어진 사회주의 세상의 끄트머리를 부여잡고 다시 끌어올리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지나간 사회주의 사회는 인간의 행복과는 거리가 먼, 초콜릿과 사탕이 없는 선언만 풍성한 사회였다. 인간에게 최고의 행복을 가져다주는 사회가 바로 이상사회이다.

이를 위해서는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가 없고 생산과 분배의 정의가 실현되는 세상이 반드시 와야 한다. 인류의 고귀한 이상을 이대로 망한 세상과 함께 떠내려 보낼 수는 없다. 다시 시작하기 위해 최소한 이것만은 포기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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