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규현 신부 "노정권 역사가 죄과 물을 것"
        2006년 03월 28일 06:1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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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삼보일배를 이끌었던 문규현 신부가 28일 편지를 보냈다. 3년전 이날은 새만금 갯벌을 살려야 한다며 세명의 종교인들이 삼보일배를 시작한 날이기도 하다. 전북 부안 해창 갯벌에서부터 65일 동안 한 걸음 걷고 세 번 절하며 서울에 이르는 일정이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결을 끝으로 마지막 물막이 공사가 곧바로 시작됐다.

    문신부는 이 편지에서 인혁당 사건이 30년 만에 ‘사법살인’임을 인정받아 부활하고 소생했듯 새만금 갯벌도 죽음과 동시에 진실을 드러내기 위한 치열한 싸움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특히 문신부는 “노무현 정권이 말해온 참여와 진보가 허위와 가식에 찬 것”이라며 “새만금 간척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만 하려는 이 정권의 무능과 무책임, 폭력성과 반민중성은 두고두고 역사가 평가하고 죄과를 물을 것”이라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다음은 문규현 신부의 편지글이다.

    헤아려보니 오늘은 삼보일배를 수행한 지 3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지난 2003년 3월 28일 이곳 부안 해창갯벌을 떠나 65일간을 세 걸음 걷고 한 번 절하며 서울까지 갔었지요. 내 안의 욕심과 어리석음과 분노를 씻어내기 위하여, 자연을 파괴해온 죄인 명부에 바로 내 자신이 있음을 참회하며, 그리고 온 세상과 새만금갯벌의 생명평화를 기원하면서 말입니다. 간절하게, 아주 간절하게.

    이 새벽, 저는 다시 잠을 깨고 말았습니다. 새만금 방조제 끝물막이 공사를 위해 사정없이 바다로 들이부어지던 그 엄청난 크기의 돌들이 만들어내는 소음소리가 거칠게 가슴팍을 내리치고 귓전을 부스는 듯한 고통에, 요즈음 저도 모르게 놀라 자주 잠을 깨곤 합니다. 방조제 공사를 막겠다고 배를 끌고 바다로 나간 어민들이 안간힘을 쓰고 절규하던, 전쟁터나 다름없던 그 참담한 현장이 눈앞에 펼쳐지곤 합니다.

    한 밤중에 전화를 걸어와 정말 이대로 새만금 갯벌이 죽어야 하는 거냐고 엉엉 울어대던 벗들의 울음소리도 자꾸만 울립니다. 내 손을 부여잡고 우린 이제 어떻게 하냐고 가슴을 치던 조개 잡는 아낙들의 절망도 있고, 십 년 넘게 몸 던져 싸웠건만 결국 허망하게 막히는가 싶어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울고있는 환경운동가들의 아픈 표정도 있습니다. 그 길고 힘들던 삼보일배 끝에 결국 장애우가 되고만 수경스님의 절뚝거리는 다리와 그분이 의지하는 지팡이도 가슴을 후빕니다.

    구속된 어민대표를 면회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말할 수 없이 심경이 처연했습니다. 이 정권은 어찌 이다지도 모질고, 어찌 이다지도 잔인하고 무지할 수 있는지, 어찌 이다지도 못됐는지. 광화문 농성장을 지키고, 전주 종교인들의 단식장과 해창갯벌에서 미사를 드리며, 또 대법원 앞에서 밤샘 기도하는 이들과 함께 수 없는 절을 바치면서도 자꾸만 맺히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농성장에 있던 어느 날엔 평택 대추리 도두리 농민들과 평화운동가들이 경찰에 밟히고 끌려가고 있다는 소식마저 다급하게 전해들어야 했습니다. 혼자 있는 시간이어서 소리내어 울 수도 있었습니다. 농지 만들겠다고 새만금갯벌을 죽이면서 농사짓겠다고 버티는 농민들은 한사코 끌어내는, 고용창출을 말하면서 살겠노라 버둥거리는 어민들을 대량실업자로 내쫓아버리는 이 어처구니없는 폭력과 기만의 날들에 치를 떨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들은 노무현 정권이 말해온 ‘참여와 진보’가 얼마나 허위와 가식에 찬 것인지를 낱낱이 보여줍니다. 그렇습니다. ‘새만금’이란 단어는 그냥 새만금이 아니라, 이제 이 시대의 진실성을 가늠하는 상징적 질문이 되었습니다.

    정치논리, 숱한 거짓과 치명적인 환상으로 덧칠되어온 새만금간척 문제를 여전히 정치적으로 이용만 하려드는,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든 이 정권의 무능과 무책임, 폭력성과 반민중성은 두고두고 역사가 평가하고 그 죄과를 물을 것입니다. 온 나라를 환경폭력으로 병들게 하고 짓이기면서 퇴임 후에는 생태계 복원에 힘쓰겠다는 어이없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어놓는 노무현 대통령은, 그 자신의 철학과 가치부재가 어떤 사태,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지 똑똑히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대법원이 새만금간척을 허가하는 대량살생면허를 최종적으로 인증해주던 그 고통의 순간에 인혁당 사건 재심이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실로 30년 만에 이뤄진 역사적 부활사건입니다. 30년 전, 당시 대법원이 8명의 양심수들을 사형에 처하라고 단호하게 판결했던 최악의 ‘사법살인’이 이제 그 판결이 잘못되었다고 인정받은 것입니다.

    진실은 드러났어도 억울하게 처형당한 이들의 목숨은 되돌릴 수 없고, 그 긴 긴 세월을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와 분노 속에 살아온 유족들의 처절한 삶은 그 무슨 보상과 위로로도 결코 해결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마침내 얻은 건 진실이고 부활이며 소생입니다. 어둠이 빛을 영원히 가둘 수는 없습니다. 새만금갯벌이 죽음과 동시에, 진실을 드러내기 위한 치열한 싸움도 다시 시작인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천주교는 지금 사순절이라 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 생전 겪으신 수난과 고통,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을 묵상하고 그에 동참하는 기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십자가 위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십자가 처형은 진실과 진리, 정의와 희망까지 못 박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고 절망은 희망이 되었으며, 진실과 진리를 전하는 열정적인 신앙인들은 더더욱 늘어났습니다.

    정부는 어민들을 분열 이간질시키며 예상보다 순조로이 물막이 공사를 마치는 듯 안도하겠지만, 그 순간이 바로 제 수렁이 될 것입니다. 그제 일요일에는 도법스님이 이끄시는 생명평화결사 탁발순례단이 해창갯벌에서 생명평화경을 외며 백 배의 절을 올렸습니다.

    새만금갯벌을 살리고자 하는 일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라고 서원 했습니다. 새만금을 막고 안 막고의 문제를 넘어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생명과 평화를 위해 더욱 자신을 닦고, 더 크게 결의하고 행동에 나서야 함을 다짐했습니다. 상생과 화해의 정신이 분열과 이간질을 이기는 게 세상의 이치입니다. 생명과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탐욕과 이기심을 극복하는 게 세상의 진리입니다.

    온 세상의 생명평화와 새만금갯벌을 살리기 위해 삼보일배를 떠나던 2003년 3월 28일 그 날인 이 새벽, 바로 그 날에 새만금갯벌이 결정적으로 죽어가는 현장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 역설적인 날, 가슴은 찢어질 듯 아프고 죄스럽습니다. 허나 새롭게 시작합니다.

    새만금갯벌을 사랑하고 그 갯벌이 죽어 가는 것에 안타까워하며 저마다의 방법과 마음으로 힘을 보태온 수많은 분들의 아름다운 마음, 그 고운 마음들이 계속 함께 하리라 믿습니다. 바다로 끊임없이 돌 들어가는 소리와 선한 사람들이 뿌리는 통곡의 눈물에 잠 못 이루는 이 깊은 밤에도, 마음 추스르며 새만금갯벌의 부활을 믿을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새만금갯벌은 그 스스로의 방법으로 회복과 치유를 향해 몸부림을 칠 것입니다. 우리는 새만금갯벌이 결코 외롭지 않도록 곁에 있어야 합니다. 삼 년이든 십 년이든 삼십 년이든, 그 여정은 우리 자신과 우리 사회가 건강성을 회복하고 치유하며, 희망을 내려놓지 않는 그런 시간이 될 것입니다.

    이 시간은 우리가 또다시 떠나는 기나긴 삼보일배 여정이 될 것입니다. 그 여정에서 기도합니다. 간절하게, 아주 간절하게. 바다가 돌아오길, 갯벌이 부활하길, 우리가 생명을 주는 사람이며 평화를 선포하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우리가 함께 이 길을 계속 갈 수 있기를…

    2006년 3월 28일 새벽에 문규현 신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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