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월 조기선거 후
    카탈루냐는 어디로 가나
    [세계는 지금] 독립파 내부의 고민
        2018년 01월 02일 12:1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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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탈루냐 독립파 정당들이 절반의 승리를 거뒀다. 지난해 12월 21일(현지시간)에 실시된 카탈루냐 조기선거에서 독립파 정당들은 전체 135석 중에 70석을 차지해 가까스로 과반의석을 차지했다. 카탈루냐 유럽민주당(PDeCAT)이 주도하는 ‘카탈루냐 함께(JuntsxCat)’ 가 34석, 공화좌파당(ERC)이 32석, 인민연합당(CUP)이 4석을 획득하며 표면적으로는 독립파 정당들이 승리를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절반의 승리라는 이유는 ‘카탈루냐 함께’가 3석이 증가하는 선전에도 불구하고 1당을 차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독립파가 과반수를 차지하지 못할 것이라는 여론조사에도 불구하고 지난 선거보다 오히려 의석수가 늘어났지만 독립반대파인 시민당(C’s)에게 1당(36석)을 내주면서 빛이 바랬다는 평가다.

    시민당의 약진은 이미 선거 전에 예고되었다. 카탈루냐 시민당을 이끄는 이네스 아리마다스(Ines Arrimadas) 는 35살의 여성변호사로, 의회 다수당인 독립파들이 분리독립 투표를 강행하자 집권 국민당(PP)의 라호이 총리에게 주의회 해산권을 발동하라고 촉구하는 시위를 전개하면서 반대파들의 지도자로 급부상했다. 선거운동 과정에서는 시민당이 1당에 올라야 분리독립을 저지할 수 있다고 호소한 전략이 먹히면서 국민당의 지지기반을 단숨에 잠식했다. 국민당은 단 4석을 차지하는 데 그치며 카탈루냐에서 7당으로 몰락하는 참패를 당했다.

    2017년 12월 21일 실시된 카탈루냐 조기 선거 의석 분포도. 출처 스페인 일간지 엘 문도(El Mundo)

    카탈루냐 수반 자리를 둘러싼 독립파 내부의 이견

    독립파들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는데 성공했지만 자치정부 구성에는 몇 가지 난제가 앞을 가로막고 있다. 벨기에에 피신 중인 유럽민주당의 푸지데몬 전 수반이 선거 후 다시 수반을 맡겠다는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히고 나섰지만 공화좌파당과 인민연합당은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라호이 총리가 푸지데몬 체포령을 철회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정부 구성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내세우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체포령을 피해 해외로 피신한 무책임을 들어 양당이 강력하게 반대하는 것이다.

    푸지데몬과 달리 체포령을 피하지 않고 감옥행을 마다하지 않은 오리올 훈케라스(Oriol Junqueras) 전 부수반이 이끄는 공화좌파당은 ‘절대 불가’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10석에서 4석으로 의석이 대폭 감소했지만 여전히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인민연합당 역시 공화좌파당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지지율이 반 토막 난 인민연합당의 지도자인 카를레스 리에라(Carles Riera)가 더 강경책을 주장하며 전세를 만회하려 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70석을 확보했지만 당선자 중에 7명이 감옥에 있거나 푸지데몬과 함께 벨기에에 피신해 있다는 것도 걸림돌이다. 해결책으로 7명을 사퇴시키고 예비후보로 충원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지만 7명이 거물급이라는 것이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일각에서는 8석을 차지하고 있는 급진정당인 포데모스와의 협상을 주장하고 있지만 지지기반에서 경쟁관계에 있는 같은 급진정당인 인민연합당이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인민연합당은 포데모스가 분리독립에 명확한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푸지데몬의 의사인지 확인되지 않는 가운데 교묘한 의견이 새롭게 등장했다. 카탈루냐에 남아 있는 푸지데몬 전 수반의 측근들은 ‘화상 취임’이라는 카드를 꺼내면서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의회를 개헌한 후 자치정부 수반이 의회가 아닌 화상으로도 취임선서를 할 수 있도록 원포인트 법률 개정을 하자는 것이다. 공화좌파당과 인민연합당은 “21세기에 망명정부를 하자는 것이냐”며 반발하고 있다.

    자치정부 구성이 시작부터 공전할 조짐을 보이자 공화좌파당은 당 소속인 카탈루냐 주의회 의장 카르메 포카델(Carme Forcadell)을 대안으로 밀고 있다. 대중적인 신망이 높은 포카델을 공화좌파당이 내세운 것은 푸지데몬 전 수반이 아니라 유럽민주당의 실질적인 지도자인 아르투르 마스(Artur Mas) 전 수반과 협상을 하겠다는 뜻이다. 인민연합당이 아직 분명한 입장을 보이고 있지 않지만 포데모스가 포카델에 대해 부정적이지 않다는 것이 변수다.

    푸지데몬을 포기하더라도 유럽민주당이 자치정부 수반 자리를 고수할 가능성도 더 높다. 단 2석 차이지만 독립파 정당들에서는 유럽민주당이 1당이고 수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관례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공화좌파당이 포카델을 앞세워 수반 자리를 타진하는 이유는 3당이 ‘독립’이라는 공통점을 제외하면 당의 색채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유럽민주당은 집권 국민당과 차이가 거의 없을 정도의 중도우파정당이고, 공화좌파당은 제1야당인 사회노동당의 노선과 유사한 중도좌파정당이다. 인민연합당은 더 왼쪽에 위치한 급진좌파정당이다. 공화좌파당은 선거기간 동안에 1당을 차지하기 위해 유럽민주당을 ‘기득권 정당’이라고 공개적으로 비판할 정도였다. 교착상태를 벗어나기 위해서 유럽민주당이 푸지데몬 대신 새로운 인물을 내세울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카탈루냐 분리독립 운동은 어디로?

    스페인에서 분리독립을 추진하는 지역은 카탈루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대표적인 곳은 피레네산맥에 인접한 바스크 지역이다. 프랑코 독재정권 당시 카탈루냐와 더불어 극심한 탄압을 받은 지역이 바스크다. 게르니카 대학살이 일어난 곳이며 독자적으로 사용하던 고유언어도 금지 당하는 등 스페인의 식민지처럼 취급받았다. 바스크 주민들은 ‘조국과 자유(ETA)라는 무장조직을 창설해 중앙정부에 대응하는 것으로 맞섰다. 오랫동안 인명 피해가 발생하는 일이 반복되자 중앙정부는 광범위한 자치권을 허용하는 회유책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회유책은 적중해 ETA는 빠르게 지지기반을 상실해갔다.

    중앙정부가 자치권에 바스크가 독자적으로 세금을 징수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것이 결정타였다. 바스크는 징수한 세금의 10% 정도만을 중앙정부에 납부하고 독자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자 주민들은 바스크 지역정당들에 몰표를 던지는 방식으로 준(準) 독립국가 수준의 강력한 자치정부를 확보할 수 있었다. 주의회는 중도우파 바스크 민족당(PNV)과 ETA가 무장투쟁을 청산하고 창당한 대중연합(EH Bildu)이 1, 2당을 차지하고 있다.

    스페인 연방의회는 2005년에 카탈루냐에 광범위한 자치권을 부여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바스크와 마찬가지로 독립운동을 무력화시키려는 전략이었다. 바스크와 달리 카탈루냐는 중앙정부의 계산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이듬해 카탈루냐 주의회는 카탈루냐를 ‘국가’로 호명한다는 법안을 통과시킨 데 이어 주민들이 사용하는 깃발을 ‘국기’로 지정하고 공공건물에 스페인 국기와 나란히 내걸었다. 중앙정부는 격앙했지만 과거부터 관행처럼 해오던 행위를 제도화한 것이라는 점과 마땅한 제재수단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아르투르 마스가 이끄는 카탈루냐통합당(CiU)이 40%에 가까운 득표율을 얻어 1당에 오르며 사회노동당과 국민당을 2, 3당으로 밀어내자 상황은 급변했다. 아르투르 마스는 선거 전면에 독립투표를 내걸며 압승을 거두었고, 미온적으로 대처한 공화좌파당은 지지율이 반 토막 나며 5당으로 추락하는 충격적인 성적표를 받아야 했다. 카탈루냐통합당의 약점은 1당을 차지했지만 과반의석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었다. 주의회에서 공화좌파당이 비협조로 일관하자 아르투르 마스는 선거에 승리할 경우 즉각적으로 독립투표를 실시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조기선거를 선택했다.

    2012년 조기선거에서 카탈루냐통합당이 당황할 정도로 독립투표만을 외친 것은 공화좌파당이었다. 카탈루냐통합당이 재차 1당을 차지했지만 12석이 줄어든 50석을 차지했고, 공화좌파당은 11석이 늘어난 21석을 차지하며 단숨에 2당에 올랐다. 한때 카탈루냐의 패자였던 사회노동당은 창당 이래 최저득표율을 올리며 주 지도부들이 정계를 떠나야 했다.

    구제금융과 카탈루냐, 위기에 봉착한 포데모스

    2014년 실시된 독립투표(예비투표)는 투표율 30%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카탈루냐가 독립투표에 매몰된 사이 경제위기가 계속되던 스페인이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변수가 등장한 것이다. 과도한 긴축정책이 시작되자 카탈루냐도 급격히 실업률이 치솟았다. 연금 삭감이 후속타로 이어졌다. 독립투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생계였다. 집권 국민당은 독립투표를 주도한 아르투르 마스를 기소하는 강경책을 들고 나왔다. 광장으로 쏟아져 나온 시민들의 긴축 반대 함성에 독립투표의 목소리는 묻혀버렸다. 우파와 좌파정당의 불안한 동거는 긴축반대에 단일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삐걱거렸다.

    반면, 광장에서 투쟁하던 시민들은 루이스 라벨(Lluis Rabell)이 이끄는 카탈루냐 포데모스(Poemos)를 중심으로 단시간에 단결했다. 2015년 지방선거에서 유럽민주당과 공화좌파당은 자신들의 지지기반을 유지하기 위해 재차 독립투표 실시를 전면에 내걸었다. 새롭게 의회에 진입한 인민연합당 역시 독립투표와 긴축반대를 내세웠다. 유럽민주당과 공화좌파당의 통합리스트인 ‘예스에 함께(JxSi)’는 1당에 올랐지만 과반의석을 확보하는데 실패했다. 10석을 차지한 인민연합당이 캐스팅보트를 쥐며 두 번째 독립투표는 기정사실이 되었다.

    포데모스는 카탈루냐 지역 생태녹색당(ICV) 등과 통합리스트를 구성해 4당(11석)에 올랐지만 다른 지역에 비교하면 기대보다 낮은 성적표였다. 스페인 경제가 예상보다 빠르게 안정을 찾기 시작했고 독립투표와 한발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이 약점으로 작용했다. 독립투표의 광풍에서 최대 수혜자는 2당에 오른 카탈루냐 시민당이었다. 국민당을 지지했던 유권자들이 긴축정책을 실시하는 국민당에서 완전히 등을 돌리며 대안으로 시민당을 선택했다. 집권 국민당은 카탈루냐에서 한자리 숫자의 지지율을 기록하는 소수정당으로 몰락했다.

    지난달 실시된 조기선거에서 포데모스는 지도부를 전면 교체하는 강수를 두며 급진정책들을 전면에 내걸었지만 지지율은 다시 하락했다. 여전히 독립투표는 맹위를 떨치고 있고 독립투표와 거리를 두고 있는 포데모스의 전진은 한계에 직면해 있다. 카탈루냐의 이상적인 자치정부 구성은 포데모스, 공화좌파당, 인민연합당의 ‘좌익(생태)연정’이다. 하지만 당의 노선이 정반대인 독립파 3당의 연립정부가 계속되면서 카탈루냐의 급진정책들은 제자리걸음이거나 실종상태다.

    좌익연정을 위한 해결의 열쇠는 간단하다. 포데모스가 다른 지역처럼 15% 내외의 지지율을 확보해 우파정당인 유럽민주당을 카탈루냐 연정에서 이탈시키는 것이다. 해법은 주도인 바르셀로나를 벗어나 카탈루냐 해변도시나 농촌도시에서 지지율을 높이는 것이다. 유럽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는 대표적으로 헤로나, 타라고나, 레리다 같은 도시들이다. 유럽민주당이 다른 6개 원내정당들의 지도자들 선거구가 모두 바르셀로나인데 반해 헤로나 시장인 푸지데몬을 전면에 내세운 것도 전략적인 선택이었다.

    바르셀로나는 카탈루냐 출신이 아닌 인구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독립 찬성 비율이 오히려 낮아지고 있다. 독립파들이 장악하고 있는 주도 외곽의 도시들이 기형적인 연정을 계속하게 하는 원인이다. 포데모스가 이 고리를 풀지 않는다면 카탈루냐는 독립투표라는 광풍의 반복으로 좌파정당이 다수파임에도 급진정책의 실종은 장기화될 가능성마저 높은 것이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필자소개
    인문사회과학 서점 공동대표이며 레디앙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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