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규직 노동자의 삶과 꿈 ①
    한국GM 노동조합 경험을 중심으로
    “위장 취업자에서 늙은 노동자로, 어언 30년" (4)
        2018년 01월 02일 10:4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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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 회의 글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 링크 

    우리의 모든 꿈을 닫히게 만든 것

    정규직으로 함께 일하는 한 동료 노동자가 자신의 아들에게 꿈이 뭐냐고 물었다.

    아들 왈, “정규직이 되는 거예요.”

    정규직인 아버지가 가져다주는 수입을 보면서 그런 꿈을 꾸었겠지 생각했다. 당연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날이면 날마다 정규직을 꿈꿀 것이다. 한국GM에서 비정규직 지회가 진행하고 정규직 활동가들이 연대했던 비정규직 투쟁에서 가장 반응이 좋았던 구호는 “내 자식 크기 전에 비정규직 철폐하자!”였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자기 자식은 비정규직으로 만들지 말아야지’ 하는 꿈을 투사한 구호다.

    이런 모습을 바라보면서 머리를 맴돈 것이 하나 있다. 그럼 정규직들은 무슨 꿈을 꾸는가? 비정규직의 꿈이 정규직이라면 이미 정규직인 우리 같은 노동자는 무슨 꿈을 꾸는가? 계속 하던 대로 더 높은 임금 인상, 더 많은 잔업 특근, 더 확실한 고용 안정이 꿈인가? 정규직의 꿈이 단지 갖고 있는 것을 지키는 거라면, 지키는 것이 새로운 변화를 통해서 얻는 것보다 더 많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보수화로 빠지는 함정이 아닌가.

    언젠가 한 비정규직 활동가가 이런 말을 했다.

    “정규직 운동 뭐 할 거 있어요? 비정규직 활동이 중요하니까 지원만 잘 하면 되지.”

    글쎄, 자기가 처한 삶의 근거에서 더 이상 꿈이 없고 해야 할 것이 없다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원할 의지와 힘이 어떻게 생길까? 자선활동이 아니라면 말이다.

    얼마 전에 회사 동료 노동자들과 술을 마시면서 진솔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이런 대화가 오갔다.

    “세상 참 살기 퍽퍽한데 우리는 대기업 정규직이어서 참 다행이야.”

    그때 한 동료가 이렇게 말했다. “돈은 받을 만큼 받는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사는 게 힘들지”

    그 순간 잠시 대화가 끊겼다. 아마도 모두의 머릿속에는 ‘과연 나는 행복한가’라는 의문이 강하게 솟아오른 것이리라.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노동해방’, ‘인간다운 삶’을 외쳐왔던 노동자들의 꿈은 실현되었나?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이 80년대 언제쯤인가 대우자동차에 와서 노동자들에게 앞으로 여러분들도 차를 갖게 되는 마이카 시대가 올 것이라고 이야기를 했단다. 그 말을 들은 노동자들은 모두 웃었다고 한다. “어떻게 우리 같은 공돌이가 차를 몰아” 이렇게 이렇게 말하면서.

    하지만 90년대 초부터 하나둘 차를 사기 시작했고 얼마 되지 않아 차는 필수품이 되었다.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명절 때마다 귀향버스가 운행됐고, 노동조합과 회사 간부들이 나와서 귀향버스를 향해 인사하고 손을 흔들었다. 당연히 지금은 각자 자신의 차로 고향에 간다. 이제는 적어도 정규직 노동자는 모두 자기 차를 몰고 자기 집을 갖고 좋은 옷을 입고 자식들을 부담없이 대학을 보낸다. 확실히 삶은 윤택해졌다.

    그런데 87년 이후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왜 우리는 여전히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잔업, 특근에 목을 매고 살고 있는가? 젊었을 때 잔업, 철야에 시달리면서도 언젠가는 노동시간도 줄고, 여행도 다니고, 여가 생활도 즐기고 멋있게 살 수 있을 때가 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주48시간에서 44시간으로 또 40시간으로 법정 노동시간이 줄어들었지만 정년이 돼 회사를 떠날 때까지 여전히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90년대 초까지 동료들은 이렇게 얘기했다. “내 평생 이 짓하고 살 것 같으냐? 빨리 돈 벌어서 여기를 벗어나야지.” 하지만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하면 비웃음만 살 뿐이다. 어떻게든 이 공장에서 정년을 채우는 것이 꿈이다.

    90년대 초중반부터 어느 정도 임금 수준이 높아진 후 이제 살만하다고 느꼈다. 노동의 인간화라는 말이 유행했다. 컨베이어 작업의 단순한 노동에서 벗어나는 ‘인간다운 노동’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확산됐다. 여가, 문화 등 삶의 질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노동자 경영 참여와 노동조합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고민도 깊어져 갔다.

    나도 이때 현장 동료들과, 그리고 지역의 연구단체와 함께 이런 의제에 대해 고민도 하고 학습도 하고 조합원 대상의 선전 활동도 열심히 했다. 토요타주의를 비판하고, 스웨덴의 우데발라 공장 사례 등 노동의 인간화 사례들을 학습하고, 독일의 경영 참여, 현장의 노동 통제에 대한 대응 방안 등을 열심히 공부하고 대안을 찾으려 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97년 이후 불어 닥친 신자유주의 광풍 이후 이러한 고민의 흐름은 멈췄다.

    이후 2001년 정리 해고를 겪으면서 우리는 그동안 꾸었던 꿈을 모두 접었다. 두 가지 이슈가 모든 고민과 활동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 고용 안정과 임금.

    인생을 즐긴다는 것, 현재의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설계한다는 것은 과분한 것이다. 그저 돈 많이 벌고,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미래의 불안을 최소화하기 위해 열심히 준비하는 것. 이것만으로도 감지덕지다. 신자유주의 흐름과 정리 해고는 우리의 모든 꿈을 닫아 버렸다. 불안과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꿈을 스스로 죽인다. 이제 우리는 닫혀버린 꿈을 다시 열기 위한 여정을 시작해야 한다.

    대기업 정규직은 보수화되었나

    2016년 한국GM 임금 인상, 단체협약 교섭을 앞두고 정규직 조합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이 조사에서 정규직 조합원들은 현재의 상태에 상당히 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임금 수준은 52.7%, 작업 환경 66.3%, 노동시간 70.3%, 후생복지 46.8%, 회사 생활 전반에는 58.0%가 만족하다고 답변하였다. 다만 고용안정에 대해서는 25.6%만 만족한다고 대답했다. 이전에 진행됐던 조합원 설문조사 응답에는 불만과 요구가 들끓었다. 설문에 답하는 조합원의 손은 자연스레 불만, 부족이라는 답으로 이끌렸다.

    나는 당시 설문조사 결과를 상당히 징후적으로 바라본다. 물론 주간 연속 2교대제의 시행 등 몇 가지 변화가 현재의 상태에 대한 만족도를 높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 만족도라는 것은 공장 밖 배제된 노동자들의 삶과의 비교에서 생겨난다(배제된 노동, 배제된 노동자의 의미는 4장에서 자세하게 다룬다). 배제된 노동자들의 삶의 고통을 바라보면 볼수록 자신의 처지에 대한 만족도는 높아진다.

    직장 동료들은 불만으로 토로하는 말보다 ‘정규직이어서 참 다행이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훨씬 많아졌다. 다행이어서 현재의 상태가 만족스러운 것이고, 뭔가를 더 따내는 것보다는 있는 것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고용이 안정된 정규직이면서도 70% 이상이 고용에 관한 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는 지금 누리고 있는 것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의 다른 표현이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전체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누리는 사회복지보다 단체협약을 통해 꾸준히 확대되어 온 기업복지가 더 소중하고 혜택도 크다. 복지 확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민주노총과 진보정당도 복지 확대를 목청껏 외치지만 대기업 정규직 현장으로 가면 상황은 달라진다. 민주노총과 진보정당의 복지 확대에 대한 요구에 대해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은 별로 관심이 없다. 최저임금 1만 원의 요구는 다수의 가난한 노동자들에게는 절실한 요구이다. 하지만 이미 그 이상의 소득을 얻고 있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은 관심을 갖지 않는다.

    교육, 의료, 주거, 이 세 가지가 이 땅의 노동자들의 중요한 요구다. 무상의료, 무상교육, 공공 임대주택 건설 확대 등은 민주노총과 진보정당이 줄기차게 주장해온 요구들이다. 하지만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은 이 중 많은 것을 기업복지로, 단체협약으로 해결한다. 한국GM의 경우도 단체협약을 통해 자녀들의 대학 학자금을 지원받는다. 쌍용자동차 조합원들이 정리 해고가 자행되는 극한적인 상황에서도 끝까지 양보하지 않겠다고 버틴 것이 바로 자녀 대학 학자금 지원을 규정한 단체협약 조항이다. 그러니 반값 등록금 투쟁은 남의 동네 일일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들을 한다.

    “어휴, 우리는 학자금 지원이 되어서 다행이야. 아이들 졸업할 때까지는 잘리지 않고 무사히 다녀야 할 텐데.”

    의료 문제는 단체협약에 근거한 의료비 지원과 건강검진으로 해결한다. 무상의료 등 의료 개혁에 별 관심을 갖지 않는다. 다만 건강보험료가 올라가는 것은 불만이다. 거의 자기 집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영구 임대주택의 확대 등의 주택 복지에는 관심이 없다. 그들은 집값 떨어지는 것을 걱정한다.

    민주노총과 진보정당이 사회복지 확대와 이를 위한 투쟁을 전개하자고 외치지만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은 별로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저 노동조합 간부들만 타성적으로 따라 외칠 뿐이다. 아마도 주요 조직 기반인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이러한 사회복지 의제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사회복지 확대 등 진보적 의제를 내세우고 싸웠던 민주노총과 진보정당이 상당히 힘들고 지쳤을 것이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조합의 보수화 위험은 여기에 있다. 변화를 통해서 따내야 할 것보다 현재 상태 유지를 통해서 지켜야 할 것이 더 많으면 보수적이 된다. 있는 것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사회의 근본적 변화보다는 현상 유지에 관심이 많고, 이대로만 쭉 갔으면 하는 마음이 강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나는 그동안 대공장 노동자들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중심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활동을 했다. 하지만 우리의 꿈과 요구가 기업 안에 갇히면서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다해야 할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시야와 전망도 닫혔다. 또한 노동조합의 사회적 역할과 실천이 닫히면서 조합원들의 의식도 닫히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과 배제된 노동자들의 요구는 간극이 커지거나 단절된다. 그렇게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꿈은 기업 내에 그리고 공장 안 일상적 노동 속에 갇혀 버렸다.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30년 동안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은 정말 열심히 투쟁했다. 많은 제도적인 성과와 축적된 경험들이 시스템을 만들어 내고, 이것은 힘으로 작동한다. 하지만 이 힘은 사회의 변화와 배제된 노동자들을 위해 발현되지 못하고 있다. 이제 갖고 있는 것을 지키는 보수성을 뛰어 넘어, 기업에 갇힌 꿈을 밖으로 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풍부한 꿈을 꾸어야 하고 그 꿈은 지금과는 다른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투기적 욕망, 자본의 덫에 걸리다

    내가 1989년에 대우자동차에 입사했을 때, 가족이 있는 조합원들은 연립주택이나 반지하에서 전세를 살고, 총각들은 기숙사에 살거나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집을 가진 조합원은 드물었다. 하지만 이후 임금 수준이 상당히 오르면서, 내 집을 가지려는 욕망은 높아졌다. 인천 곳곳에 아파트 단지가 건설되고, 조합원들은 아파트를 분양받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나도 1991년 노태우의 200만 호 주택 건설 정책 일환으로 만들어진 신도시 중 하나인 인천 연수 지구에 24평짜리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지금은 조합원 대부분이 집을 가지고 있고, 아파트 평수도 늘려 가고 있다. 여기에 투기 목적으로 아파트를 사는 사람들도 있다.

    90년대 말 ‘부자 되세요’라는 말이 인사가 되고 주식 투자 열풍이 뜨거웠을 때, 조합원들은 너도 나도 주식 투자에 매달렸다. 물론 많은 사람이 돈을 벌기보다는 손해를 봤다. “월급은 용돈이고 주식으로 돈을 다 번다”며 큰소리치던 한 친구는 집까지 날려먹었다. 당시 회사 관리자들은 조합원들이 단말기로 주식 투자하느라 작업을 제대로 안 해서 불량이 난다며 투덜댔다.

    이후에도 조합원들은 부동산 열풍이 불면 부동산에, 펀드 열풍이 불면 펀드에 투자를 했다. 투기 욕망은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 현상이다.

    한국 사회에서 집의 의미는 남다르다. 집은 재산과 동의어이고 대부분 사람들에게 재산을 유지하고 증식시키는 유일한 수단이기도 하다. 나 역시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나도 30년 동안 열심히 집을 키워왔다. 운도 따르고 해서 전세 1,000만 원짜리 반지하방에서 시작해서 34평 아파트까지 키웠다. 그런데도 아내와 나는 “그때 돈 좀 있어서 그 집을 샀으면 좀 벌었을 텐데……”라며 아쉬워하곤 한다.

    어차피 돈이 돈을 버는 거라는 진실은 다 알지만 월급쟁이가 집 말고는 돈을 불릴 기회가 없다고 생각하고 몇 년 동안 알뜰히 저축해도 모을 수 없는 돈을 한순간에 손에 쥘 수 있는 행운이 자신에게도 오기를 누구나 바란다.

    집 이야기는 술자리의 뜨거운 화제 중 하나다. 특히 집값이 뛰기 시작하면 그 욕망은 들끓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런 집에 대한 욕망은 자신도 모르게 자본의 욕망, 가진 자의 욕망에 자신 욕망을 종속시키게 된다. 강남대로를 지나면서 ‘저 많은 빌딩의 주인은 누구지’라고 묻는다. ‘경제가 어렵다는데 부동산 투기에 쏠리는 저 돈들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거지’라는 의문을 갖는다.

    한국 사회 지배계급 부의 대부분이 부동산 투기로 형성되었다는 것은 다들 안다. 그런데 부동산 투기를 통해 가진 자들이 부를 독점하는 사회 현실을 비판하면서도 사람들은 ‘저런 큰 빌딩은 아니더라도 작은 상가라도 하나 있어서 월세 또박또박 나오면 노후는 걱정이 없을 텐데’라고 생각한다. 부동산 폭등은 가진 자들의 돈 잔치라는 것을 알면서도 저 틈바구니에서 숟가락 한 개 얹을 수는 없을까, 생각한다.

    보통 사람 대부분은 물려받은 재산이 있는 것도 아니고 주거 목적이든, 노후 대책이든 집을 살 때 많은 빚을 낸다. 그리고 그 빚을 메우기 위해서 잔업, 특근에 목을 맨다. 투기 목적으로 빚을 내서 무리해서 집을 샀다가 집값이 폭락하는 바람에 빚더미에 올라앉기도 한다. 그리고 그 빚을 갚기 위해 자신뿐만 아니라 부인까지 나서서 몇 년 생고생도 한다. 그것이 노후를 위해서든, 자식을 위해서든 부동산에 투자하면서 미래를 위해 현재의 삶을 노동의 굴레에 얽매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렇게 투기적 욕망이라는 모습으로 자본은 우리 안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그리고 이 투기적 욕망은 정치를 보수화시키고 퇴행시키는 힘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나는 인천 서구에 산다. 인천 서구는 최근 들어 개발이 가장 왕성한 곳이다. 인천 서구 주민들은 지난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에게 몰표를 던졌다. 박근혜의 개발 공약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인천 서구가 개발이 잘 되어 살기 좋아질 것에 대한 기대 때문이 아니다. 바로 집값이 오를 것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하지만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후 약속한 개발 공약은 전혀 지켜지지 않고 집값은 오르기는커녕 더 떨어졌다. 곳곳에 박근혜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에 대한 규탄 현수막이 걸렸다. 그러다 한나라당 유정복 시장이 또 다시 개발 공약을 들고 나왔고 또 밀어 주었다. 유정복은 박근혜 심복이어서 힘이 있으니 약속한 개발 공약을 실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여전히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유정복 시장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나는 몇 번의 선거를 겪으면서 정치적으로 보수적 흐름과 진보적인 흐름의 중간에 투기적 욕망에 뿌리를 둔 이해관계에 따라 투표하는 흐름이 있다는 것을 느꼈고, 이 흐름이 선거 결과를 좌우한다고 확신하게 됐다. 이명박, 박근혜를 당선시킨 힘 중에 하나가 바로 투기적 욕망의 흐름이고, 서울의 뉴타운 열풍이 진보적인 국회의원들을 다 떨어뜨리고, 한나라당에 몰표를 준 것도 투기적 욕망의 힘이 아니던가?

    오래전에 같은 서구에 사는 조합원들과 술 한 잔 할 기회가 있었다. 누군가 말했다.

    “나는 집값 때문에 박근혜 찍었어.”

    “솔직히 나도 박근혜 찍었어.”

    예상보다 많은 조합원들이 박근혜를 찍었다고 했다.

    투기적 욕망은 현 지배체제를 정당화시키고 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부자들의 욕망에 가난한 자들의 욕망이 포획되고, 그 앞에 줄을 세우기 때문이다. 반면에 가난에 대한 공감은 사회를 바꾸는 힘으로 작동한다. 기존 사회 체제에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고 변화를 욕망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문제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에게 그런 공감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계속>

    필자소개
    노동자. 한국GM 도장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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