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영, 이라크 침공 6주전에 결정
        2006년 03월 27일 06:2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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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는 이라크 침공 6주전인 지난 2003년 1월 백악관에서 가진 극비회담에서 이미 이라크 침공의 계획표를 짜고 군사작전의 세부사항과 전쟁 이후의 계획을 논의했다고 <뉴욕타임스>가 27일자(현지시간)로 보도했다.

    블레어 총리의 안보보좌관이던 데이비드 매닝(현 주미 영국대사)이 작성한 5쪽 분량의 비밀문건을 분석한 이 신문은 2003년 1월31일 백악관에서 열린 양국 정상간 비밀회의에서 이라크 침공의 날짜가 3월 10일로 정해졌다고 보도했다.

    당시 부시 대통령은 유엔의 2차 결의안이 나오지 않거나, 국제 무기사찰단이 이라크에서 화생방무기를 찾지 못하더라도 이라크를 침공할 결심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매닝이 작성한 이 문서의 몇가지 사항은 지난 1월 영국에서 출간된 필립 샌즈 변호사의 책 <무법천지>(Lawless World)에 실린 바 있고 며칠 뒤 영국의 <채널 4 뉴스>에서 보도되기도 했지만 전체 내용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뉴욕타임스>는 영국의 고위관리 두 명이 이 문서가 진본임을 확인해줬지만 문서에 대한 취재는 거절했고 미국의 국가안보위원회(NSC) 프레데릭 존스 대변인도 “두 정상이 나눈 사적인 대화에 대해 논의하는 데 끼어들지 않을 것”이라며 취재를 거부했다고 보도했다.

    “작전 개시일 3월 10일”

    부시 대통령과 블레어 총리의 회담을 가진 당시는 미·영 양국이 유엔에 대해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보유에 대해 2차 결의안을 채택하도록 압력을 넣는 한편,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에 대해서는 무장해제를 종용하던 때였다.

    닷새 뒤 콜린 파월 당시 미 국무장관은 유엔에 출석해 “이라크가 화생방 무기를 숨기고 있으며 세계 안보를 위협”하고 있는 증거를 제시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부시 대통령은 당시 2시간 동안 가진 회의에서 이라크 공격을 위해 유엔의 결의안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지 않는다는 말을 수차례 반복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이 문건을 작성한 매닝은 “군사 작전의 개시일이 방금 3월 10일이라고 연필로 쓰여졌다”며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전쟁 쉽게 끝날 것으로 예상

    부시 대통령과 블레어 총리는 이라크 전쟁의 승리가 어렵지 않을 것이며 주권 이양도 순조로울 것으로 예상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문서에 따르면 당시 부시 대통령은 내전으로 빠져들고 있는 이라크 상황을 예견하지 못한 채 “종교간, 인종간 대살륙전이 전개될 것 같지 않다”고 말했고 블레어 총리도 이에 동의했다.

    또 양국 정상은 이라크에 화생방 무기가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부시 대통령은 침공 예정일 이전에 대량살상무기를 발견하지 못할 것을 대비해 세 가지 방안을 준비해놓고 있었다.

    첫 번째가 “U2 정찰기가 유엔기로 색칠해 전투기와 함께 이라크 상공을 비행하는 것”으로 후세인이 정찰기를 공격하는 즉시 전쟁에 돌입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두 번째는 “사담의 대량살상무기에 대해 공개적으로 발표할 (이라크) 망명자를 끌어내는” 것이고 마지막은 후세인 대통령을 암살하는 방안이었다.

    블레어 “유엔 결의안 필수적”… 부시 “시간 없어”

    당시 부시 대통령과 블레어 총리 사이에서는 유엔 결의안을 놓고 약간의 의견차가 있었음도 확인됐다. 블레어 총리는 양국이 유엔에 로비를 해 결의안을 받아내는 것이 필수적이며 이는 결의안이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을 때를 대비한 “보험증서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블레어 총리는 이어 “군사 작전에 잘못된 일이라도 생길 경우, 또는 후세인이 유정에 불을 지르거나, 아동을 학살하거나, 이라크 내부의 분열을 촉발시킬 경우 2차 결의안은 국제적인, 특히 아랍에 대해 구실을 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부시 대통령은 2차 결의안을 얻으려고 시도해야 한다는 데는 동의했지만 시간이 없다고 강조했고 결국 블레어 총리의 동의를 얻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회의에서는 이라크전 이후에 대해서도 짧은 논의가 있었다. 블레어 총리가 전쟁 이후의 계획에 대해 묻자 배석한 콘돌리자 라이스 당시 국가안보보좌관은 “엄청난 일이 현재 착수돼 있다”고 말했던 것으로 문건에 적혀있었다.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국민들에게 식량과 의약품을 공급할 세부적인 계획수립이 상당부분 진행됐다”고 말했다.

    극비리에 진행된 회의를 마친 뒤 양국 정상은 기자회견을 갖고 논의된 내용과는 전혀 다른 내용을 발표했다. 부시 대통령은 “사담 후세인은 무장해제하지 않고 있다”며 “그는 세계에 위협적인 존재”라고 말했다. 블레어 총리는 “이 문제는 몇 달이 아니라 몇 주 안에 극도로 악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이날 이후 양국은 유엔의 결의안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고 원래 계획보다 9일 뒤인 2003년 3월 19일 바그다드를 공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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