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념 아니라 정파 리더십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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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11월 26일 08:4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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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이런 저런 이유로 권영길 의원실과 선본 일을 그만두고 사민주의에 공감하는 이들의 폭넓은 세력화가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한국 사회민주주의 네트워크(약칭 ‘사민넷’, 추진위원장 유팔무)‘ 활동을 하고 있다는 최병천(존칭 생략)이 <레디앙>에 ‘실체 없는 ‘유령 사회주의’를 넘어 : 김종철 전진 집행위원장에게 사회주의-사민주의 논쟁을 제안하며’라는 글을 올렸다.

    이 글을 보며 여러 생각이 든다. 이 글에 대해 여러 의견이 있을 것이다. 필자의 의견을 말씀드리자면, 유권자들이 이런 논쟁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 이런 생각이 먼저 들었고, 이런 측면에서 보면, 논쟁은 할 수도 있겠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우려가 되고, 안하느니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첫째로 유권자들이 이념논쟁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최병천 당원이 제기한 이념논쟁에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을지라도, 최 당원이 제기한 문제의식 밑바닥에 있는 유권자들이 느끼는 이념에 대한 체감정도를 이해하는 바로미터는 될 수 있다.

    유권자들 이념 중요하게 생각지 않아

    지난 11월 15일 CBS-리얼미터 조사발표에 의하면, 유권자 중 62%가 이념논쟁이 대선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즉, 이번 대선에서 대북관계 등 이념논쟁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해 ‘거의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응답(36.1%)과 ‘대체로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응답(25.6%)이 다수를 차지해, 영향을 주지 않을 것으로 보는 의견이 61.7%로 나타났다. 영향을 줄 것으로 보는 의견은 17.4%에 그쳤다.

    지지 정당별로는 민주당 지지층의 71.5%가 이념 논쟁이 대선구도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응답해 가장 높았고, 그 뒤를 이어 한나라당(66.1%), 국민중심당(65.1%) 순으로 조사됐다.

    반면 대통합민주신당 지지층은 55.8%로 영향력을 낮게 보는 의견이 가장 적은 것으로 나타났고, 이념논쟁이 영향을 줄 것이라는 의견은 민주노동당 지지층이 24.3%로 가장 높았다.

    둘째, 최병천식 문제 접근방식에 한계가 있다. 그가 이런 논쟁을 제기한 배경에는 일종의 위기의식이 있는 것 같다. 의식은 존재로부터 온 것이다. 즉, 운동권, 좌파의 위기의 원인을 자신이 생각하는 이념의 부재로 진단하고, 그것으로부터 출발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좀 다르다. 상식적으로 볼 때, 사민주의가 민주노동당에 없어서 당이 위기인가? 분명치 않다. 인과관계가 잘못되면, 정파의 위기가 당의 위기로 둔갑되고, 정파의 책임이 당의 책임으로 오인된다.

    어쨌든, 최병천의 주장이 인과관계를 논하고 있지만, 인과관계를 입증하지 않았기 때문에, 반증 가능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추후 논의의 한계가 있고, 따라서 신중할 필요가 있다. 최 당원의 입증되지 않는 주장은 반증되기 힘들기 때문에 어떤 주장을 펼치더라도 합의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비생산적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

    이념 아니라 리더십이 부족

    셋째, 당 위기의 진단에서도 ‘당 이념부재’가 아니라 ‘정파 리더십’이 문제라고 생각된다. 굳이 현재 당의 모습이 위기라고 진단하는 것에 반대할 이유는 없지만, 그 진단의 핵심은 ‘당의 이념부재’라기보다는 이념성향이 강한 소수 정파들에 대한 유권자들의 ‘정파일체감의 약화 현상’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소수 정파들이 느끼는 ‘고립감’이 문제이고, 따라서 당 위기 원인은 이념부재가 아니라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는 ‘정파 그 자체’의 문제이고 따라서 ‘정파의 리더십 부재’가 위기가 아닐까 생각된다.

    쉽게 말해서, 과거에는 운동권 용어로 유권자들 앞에서 잘난 척해도 씨알도 먹히고 지지를 받았는데, 이젠 안 통한다는 현실. 그렇게 잘난 척했다간, 욕만 먹고 외면 받는 현실. 괴로운 이 현실이 위기인 것이다.

    넷째, 설령 최병천의 주장처럼, 몇몇 외국에서도 이른바 이념적 정체성이 혼란한 잡탕 정당을 비판하고 이념적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처방을 내렸지만 실패한 정반대의 효과를 낳은 사례가 적지 않다. 특히, 유럽 좌파정당들이 그랬다. 이것에 대한 이해는 유럽 좌파정당들이 왜 포괄정당(잡탕정당)으로 갔는지 반증해주는 좋은 사례이다.

    유럽 좌파정당들도 이념 문제로 괴로워했다. 이념을 지키고 싶었다. 이념을 지키자니, 선거에 떨어지고. 자꾸 떨어지니 정당 존립이 힘들고. 그래서 살기 위해서, 포괄정당 잡탕정당으로 간 것이다.

    왜 갔을까? 과학기술과 정보혁명, 후기산업구조의 변동에 의해 노동자계급이 중산층화되면서, 유권자들의 정당일체감 약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정당은 생물적 특성을 가지기 때문에 변화된 상황에 조응해야 살아남는다. 문제의 선후관계 / 인과관계를 따져보자면, 후기산업구조의 변동과 유권자 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정당은 생물적 본능으로 살아남기 위해서, 자신의 이념정체성을 약화시키면서, 잡탕정당으로 갔던 것이다.

    유권자와 소통하는 대중정당이 대안

    다섯째, 그렇다면, 어떻게? 소통으로 무장한 리더십 그룹이 나와야 한다. 과거 운동권처럼 정파일체감이 강한 유권자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 또다시 이념과 계몽을 내세울 것인가? 아니면 유권자들의 변화된 인식과 상황에 맞춰 소통적 방식(매우 어렵지만, 시도해야 한다)을 채택할 것인가?

    노동자계급 내의 다수의 유권자들은 정파일체감이 극도로 약하다는 점에서 매우 유동적이고, 이슈에 따라서, 정책에 따라서, 인물에 따라서 그때 그때 반응하는 점을 고려한다면, 당연히 소통적 접근이 옳다고 할 수 있다.

    이념을 통해 대중을 불러 모으는 것은 여전히 엘리트적이며, ‘진리의 독재정’으로 가는 지름길이며, 시대착오적 방법이라 생각된다. 엘리트들 그들만의 이념논쟁, 유권자들이 볼 때, 어떤 생각을 할까?

    사민주의든 사회주의든 하나의 의견 정도로 만족하면 족하다. 유권자들이 느끼는 생활세계의 이야기를 서로 소통하는 데 적합한 것은 무엇일까? 이념보다도 생활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개성을 살피는 일일 것이다. 그들을 외롭게, 이기적으로 몰고 가지 않도록 하는 따뜻한 신뢰의 공동체와 따뜻한 연대의 손짓이 필요하다.

    필자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민주노동당이 당내의 이념적 정파심이 강한 소수의 폐쇄적 엘리트 집단의 굴레에서 해방되어, 노동자계급 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정파심이 대단히 약한 다수의 유동층과 진심으로 소통하고, 그들의 보편적 이익을 대변하는 그야말로 개방적인 ‘대중적 정당’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부정적 이미지의 정파가 아니라 소통으로 무장한 긍정적 이미지의 리더십그룹이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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