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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장의 사진④] 87년의 현중노조
        2017년 12월 21일 11:2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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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 회의 글 [한 장의 사진③] 현대차와 현대중

    민주노조 쟁취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노동자들의 요구는 그야말로 소박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임금인상과 같은 경제적 요구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인간다운 대우’가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이를테면, 두발자유화와 식사개선 등이 요구사항의 맨 앞자리를 차지했다. 출근시간에 관리자들이 가위로 머리를 잘라버리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막내조카뻘 되는 관리자들이 노동자들에게 반발과 욕설을 하는 일도 대수롭지 않은 일에 속했다. 현대그룹 노동자들이 경제적인 요구 이전에 인간다운 대우를 요구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경제적인 요구에는 30년이 지난 지금의 노동운동이 반추해야 할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3저호황과 맞물려 급성장하고 있던 현대중공업은 사내에 독자적인 훈련소를 운영하고 있었다. 훈련소에 입소한다고 해서 모두 채용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숙식제공과 약간의 교육비가 지급되는데다, 신규채용을 할 때 가산점이 부여된다는 것은 무엇보다 매력적인 조건이었다. 하지만 사측은 훈련소 출신과 공채 출신의 임금을 차별화했다. 비정규직 개념이 없는 시대에 낮은 임금의 정규직군을 만든 것이다.

    노동자를 통제하는 다른 수단으로는 상여금을 차등해서 지급하는 것이었다. 평가기준은 존재하지 않았고 사측은 자의적인 기준으로 상여금을 차등해서 지급했다. 관리직 사원에게 밉보이거나 입바른 소리라도 하는 경우 그것은 곧 임금삭감과 직결됐다. 호봉개념도 희미해 임금인상도 사측이 일방적으로 통보하면 그만이었다. 알량한 월급봉투를 지키기 위해서는 회사와 관리자들에게 충성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노동자들은 공채출신과 훈련소 출신의 임금차별 폐지와 상여금 차등제 폐지를 강력하게 요구했다.

    7월 28일 시작된 파업은 엔진이나 자동차와 달리 장기화되기 시작했다. 회사는 노동자들의 협상요구에 응하지 않으면서 외부의 불순세력이 개입하고 있다며 연일 색깔공세만을 늘어놓았다. 당시로서는 현대그룹의 주력기업이었던 중공업에 민주노조가 들어서는 것을 막기 위해 정주영은 필사적이었다. 삼성그룹의 이병철 흉내를 내며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안된다”고 공개적으로 천명하며 물러서지 않았다.

    7월 26일 민주노조를 결성한 현대중전기는 매일 점심시간마다 집회를 개최하며 사측을 압박했다. 중공업노동자들이 벽에 부딪혀 고전을 면치 못하자 7월 30일에는 중전기 노동자들 천여 명이 연대투쟁을 위해 중공업 진입을 시도하면서 현대그룹에는 비상이 걸리기도 했다.

    중공업을 제외한 나머지 현대그룹에서는 민주노조가 건설되었지만 노동자들의 요구는 사측의 무응답으로 제자리를 맴돌았다. 각 기업들의 사장들은 “임금인상 등 경제적 요구는 우리의 소관이 아니라 그룹이 결정할 문제”라며 자신들의 권한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협상을 거부했다.

    실상, 현대그룹은 정주영 1인이 모든 주요 결정을 내리는 것이 현실이었고 임금문제에 관한한 정주영이 전권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8월 1일에는 현대정공에도 민주노조가 설립되었다. 현재정공의 노동자들의 요구도 메아리에 불과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현대정공의 노동자들은 다른 길을 선택했다. 정문을 부수고 거리로 쏟아져 나온 것이다. 백여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연행되고 현대그룹 투쟁 최초로 3명이 구속되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정주영이 현대중공업에 나타난 것은 8월 6일이었다. 실내강당에 관리자들을 모아놓고 강력대응을 주문하고 있을 때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구호를 외치며 강당을 향해 진군했다. 노동자들의 무력시위에 놀란 정주영은 관리자들의 호위를 받으며 쫓기듯이 중공업 후문으로 빠져나가는 수모를 당해야만 했다. 일주일 후 정주영은 조용히 현대중공업의 민주노조의 출범을 용인했다. 하지만 현대그룹은 여전히 협상테이블에 나타나지 않으면서 시간을 끌었다. 그때, 현대그룹 민주노조는 전면적인 반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사진 설명 : 파업이 장기화되자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이 곤혹스러웠던 것은 프로그램이었다. 평소 노래에 관심이 있던 노동자들이 노래방을 제안했다. 30년전, 세상에서 가장 큰 노래방이 탄생한 곳은 현대중공업 운동장이었다. 

    필자소개
    인문사회과학 서점 공동대표이며 레디앙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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