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수납'. 남편의 못 이룬 꿈과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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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3월 25일 12:2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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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전 나는 일산에서 마포구로 이사했다. 이사짐을 챙기면 이래저래 신경 쓸 일이 많은데, 남편 K는 언제나처럼 얘기한다. “이번에 이사 가면 깨끗하게 정리하고 살자. 식탁에 다른 것 좀 올려놓지 말고.” 식탁에는 주로 각종 잡지와 신문 등이 정리되지 않은 채 올려져 있다.

K는 신혼시절부터 나에게 주문처럼 이야기하는 게 있다. 식탁에는 아무것도 올려져 있지 않고, 옷은 옷장 안에 모두 있어야 하며, 그릇은 모두 씽크대 안에 있는 상태, 그야말로 정리와 청소를 넘어선 “완벽한 수납”을 꿈꾸는 것이다.

그래서 붙박이장이나 각종 수납시스템에 관심이 많다. 옷이 옷걸이에 다 걸리지 못하면 붙박이장을 사자고 하고, 책이 책장에 다 꽂히지 못하자 멋있는 책장을 짜자고 말한다. 이번에도 역시나 붙박이장과 책장이야기를 꺼낸다.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고 하는데  뭐 이 정도야 하는 심정으로 꿈에 그리던 붙박이장과 책장을 샀다. 이사 후 며칠 동안 K는 ‘완벽한 수납’이 이룬, 깨끗하고 건조한 상태에 희희낙락해하며 자신의 공을 치하했다.

그러나 깨끗·건조한 상태는 ‘백일몽’이었을까. 이사 후 일주일이 지나자 옷과 책들은 다시 붙박이장과 수납장을 뚫고 유유히 나와 있었다. K는 뭐가 잘못된 걸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왜 옷들이, 장난감이, 책들이 제자리에 있지 않고 나와 뒹구는 것인지에 대해서…

K는 그렇게 고민하더니 청소와 관리의 중요성을 얘기하며 일주일에 한 번 씩 대청소를 하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집안을 홀딱 뒤집어 청소했다. 그러나 며칠 후, 집안의 물건들이 다시 스멀스멀 기어나오기 시작해서 어느 순간 탁자 위에, 책상 위에, 선반 위에 놓이기 시작했다.

남들이 어렵다는 바퀴박멸과 개미살충도 완벽하게 성공한 K인데, 물건과의 싸움은 도통 끝나지 않았다. 아니 K의 고군분투에도 불구하고 비참하게 패배했다고 말해야 좋을 것이다. 물건들이 집안 곳곳에서 여전히 튀어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남편의 피나는 노력을 보면서(물로 나도 성의껏 정리했지만), 나는 배신자처럼 속삭였다. 당신이 상상하는 그런 집은 잡지책이나 호텔에서나 가능하다고. 당신이 매일 매시간 정리하지 않는 한 물건은 쌓이고 또 쌓일 거라고, 물건의 시녀가 돼서 매일 그 물건들과 씨름하며 정리하지 않는 한 물건이 쌓이는 걸 막을 수는 없다고, 택배를 통해 대형 할인점을 통해 조금씩 쌓이고 누적되는 물건들, 처치하지도 과감히 버리지도 못하는 물건들은 집 한 귀퉁이에 쌓일 거라고.

오늘 K에게 말했다. 대형할인점에 가지 말자고, 마트에서 그득그득 물건을 담아오지 말자고. 하지만 K는 그곳에 들어서자마자 물건들이 홀리는 그 마법에 갇힐 것이다. 그리고 카트에 물건을 그득 담아오면서 또 수납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하지만 전처럼 가당치 않은 꿈을 얘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물질이 풍요하지 않던 시대에는 책이 방 한모퉁이에 쌓여도 보기 싫지 않았다. 한 개의 성냥갑, 한 개의 메모지 하나하나가 나름의 의미와 가치를 드러냈다. 적어도 ‘수납’을 고민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물건과 그 물건에 대한 정보가 넘쳐나는 이 시대에 ‘완벽한 수납’이란 실상 ‘행복이 가득한 집’에서나 맛볼 수 있는 풍경이다.

새롭고 화려한 물건을 끊임없이 소비하고자 하면서, 완벽한 수납을 기대하는 건 이율배반적이다. 매일매일 꾸역꾸역 새로운 물건을 들여놓으면서, 그 물건들을 정리하려고 끙끙대는 것은 이기는 게임이 아니라 지는 게임이다. 더 많이, 더 자주 소비한다면, 어디에선가 화려한 상품들은 제 껍질을 벗은 채 집안의 창고나 재활용 쓰레기더미에서 발견될 것이다.

완벽하게 수납하고자 하는 욕망은 소비하고자 하는 욕망과 동전의 양면이다. 수납이 잘된 집이 행복한 집으로 소개되는 이 세상에서, 힘들기는 하지만 ‘완벽한 수납’을 꿈꾸지 말고 소비욕망부터 다이어트하자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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