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만에 성사된 산행
[누리야 아빠랑 산에 가자-32] 독서
    2017년 12월 09일 12:3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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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 안에서 딸은 책을 펼쳤다. 『심리학이 잡은 범인』. 학교도서관에서 빌렸단다. 서문을 읽기 시작했다.

“재밌어?”

“글이 어려워. 잘 안 나가.”

“번역 잘못일 수 있어. 서문 내용은 본문에 나오니까 그냥 넘겨. 어려운 책은 읽고 싶은 부분부터 읽어도 좋아.”

“번역 때문인 것 같아.”

딸은 서문을 건너뛰었다. 며칠 전 딸은 중앙대 심리학과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강해졌다고 했다. 커리큘럼에 뇌 인지과학이 있어서라고 했다. 그래서 빌린 책인 듯했다. 본문을 넘기면서부터는 책이 어렵지 않고 재미있다고 했다.

“아빠, 요즘 생각엔 과학수사를 하고 싶어. 내용을 갖고 들어가지 않으면 시체 수습 같은 단순 업무만 한대. 그건 원하지 않아.”

책 읽으면서 심심하지 말라고 누룽지과자와 물을 건넸다. 딸은 받아먹으며 읽었다. 도봉산역에서 버스로 갈아타고, 쌍암사 정류장에 하차했다. 수락산 기차바위를 오르기 위해서였다. 두 달 만에 성사된 모처럼의 동반산행이었다. 2학년이 되면서 딸의 여유가 부족해진 까닭이었다.

내가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활동에 몰입된 까닭도 컸다. 동료로부터 민주노총 부총장이냐, 세월호 부총장이냐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몰입돼 있었다. 부총장 역할도 소홀히 하지 않기 위해 잠을 서너 시간으로 줄여야 했다. 나는 주로 국민대책회의가 주최하는 집회·행진, 그리고 가족들의 농성과 단식 등을 협의하고 조언하는 역할을 했다. 가족과 국민이 보다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방안을 구상하다 광화문을 떠올렸고, 유민 아빠를 비롯한 가족 단식자 5명을 앞세우고 광화문광장에 첫 판을 까는 역할도 했다. 유민아빠 김영오는 46일에 걸친 단식을 통해 국민의 마음뿐 아니라, 프란치스코 교황까지 움직였다. 아무튼 나는 딸아이 일지도 두 달째 기록하지 못했다.

딸애는 학교 축제 준비 과정에서 벌어지는 갈등에 대해 얘기했다. 2학년 학생회 간부가 주축인데, 부반장으로 함께하고 있었다. 크게 두 패로 나뉘어 갈등한댔다. 딸애도 한 패에 속해 있었다. 한 아이를 지목하며 위장을 잘한다고 표현했다. 축제를 같이 준비하는 1학년들의 군기를 잡는다며 못마땅해 했다. 나는 갈등을 증폭시키지 말고 잘 풀어 보라고 조언했다. 가급적이면 중간에 서서 조정 역할을 해 보라고도 했다.

일명 홈통바위라 부르는 기차바위 밑에 도착했다. 딸은 위를 쳐다보며 탄성을 질렀다. 집채보다 큰 바위 중간에 기차 홈통 한 줄이 파여 있었다. 사람이 낄 만큼의 넓이였다. 가볍게 구부러져 있어서 사람이 들어가면 고정될 수 있었다. 좌우로는 굵은 밧줄 두 개가 늘어져 있었다.

“겁먹지 마. 바위에 몸을 밀착하고 밧줄을 꽉 잡으며 오르면 돼. 힘들어서 밧줄을 놓칠 것 같으면 홈통으로 들어가고. 오르는 동안에 아래를 내려다보면 무서우니까, 내려다보지 마.”

딸이 수락산 기차바위를 오르고 있다.

단단히 주문하며 먼저 오르도록 했다. 바로 뒤에 붙어 따를 순 없었다. 산에선 하나의 밧줄을 여러 사람이 동시에 잡으면 흔들려서 위험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아이를 주시하며 밧줄 꼭 잡으라고 응원했다. 딸은 생각보다 오르는 속도가 빨랐다. 겁이 난 까닭에 어서 벗어나야겠다는 심리가 발동되는 듯싶었다. 무사히 오른 딸에게 기차바위 위쪽 홈 안에 앉아 있으라 한 뒤에 나도 따라 올랐다. 딸의 손을 잡고 상부 구간을 벗어났다. 절벽 아래가 훤히 드러나 보였다. 아이는 무섭다면서 더듬더듬 벗어났다.

딸내미는 서울 일대 산의 이름난 난코스 중에서 또 하나를 극복했다. 9월 10일, 딸과의 26번째 동반산행이었다.

필자소개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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