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은 엿장수 나라? “너희는 개방, 우리는 규제”
        2006년 03월 21일 12:0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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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이 “예외 없는 시장개방”을 외치며 한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정작 본토에서는 외국자본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미국 정계에 거센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아랍에미리트연합(UAE) 국적 두바이포트월드사(DPW)의 미국 6개 주요항만의 운영권 인수는 무산됐지만 이를 계기로 아예 외국자본이 미국의 주요 기반시설을 소유하지 못하게 법으로 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점점 확산되고 있다.

    미 하원 군사위원회 위원장인 던컨 헌터 의원(공화당)은 미국의 “중대한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외국자본의 투자를 규제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법안에 따르면 국가안보, 경제안보, 공중보건에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사회기반시설”의 대표이사와 최고경영책임자(CEO)는 미국인이 돼야 하고, 이사회의 절반 이상이 미국인으로 구성돼야 한다. 법안은 또 이사회의 과반수 이상이 국방장관으로부터 승인을 받아야 하고 회사는 주주의 과반수가 미국 시민권자로 구성될 수 있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공화당 의원들 중에서도 강경보수파에 속하는 헌터 의원은 <유에스에이투데이>지에 기고한 글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공짜로 취할 수 있는 것은 없다”며 “더 취약해지기 전에 미국의 안보를 증진시키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며 법안의 취지를 강조하고 "이것을 보호주의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미국은 보호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하겠다"고 역설했다.

    이같은 헌터 의원의 입장에 대해 일각에서는 과도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유에스에이투데이>지는 사설을 통해 “중대한 사회기반시설”이라는 개념이 너무 모호해 대다수의 산업이 해당될 수 있고, 이 경우 경쟁이 저하되면서 물가 인상, 경제성장 둔화, 실업률 상승 등의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신문은 “다른 나라들이 반드시 미국의 기업들을 상대로 보복을 할 것”이라며 “해외투자를 차단하자는 것은 9·11 테러를 경제적 국수주의와 보호주의의 구실로 삼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러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외국자본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공화당, 민주당의 구분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

    유력한 대권후보로 여겨지는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민주당)은 외국의 국영기업이 미국의 항만을 소유, 경영, 관리하는 것을 금지하는 방안을 지지하고 있다. 헌터 의원의 법안에 비하면 제한적인 규제로 볼 수 있지만 클린턴 의원 역시 “9·11 테러 이후의 세계에서 미국의 중대한 사회기반시설을 어떻게 보호할 지에 대한 새로운 사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같은 움직임은 부시 행정부 들어 엄청난 규모로 늘어나고 있는 재정적자, 무역적자에 대한 우려와 겹쳐지면서 한층 더 힘을 얻고 있는 양상이다.

    AP통신은 19일(현지시간) 미국이 과도한 무역적자를 메우기 위해 하루에 20억 달러가 넘는 외국돈을 빌려쓰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미국의 무역적자 규모는 사상 최대치인 8천50억 달러에 달했다.

    외국인들은 미국 연방정부가 발행한 국채의 절반을 보유하고 있으며 지난 1월 현재 중국과 일본 등의 중앙은행과 해외의 민간 투자가들이 보유한 미국채는 2조1천9백억 달러에 달한다.

    안보와 관련한 분야에도 외국자본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나사(NASA)의 우주왕복선에 타이어를 독점 공급하는 업체는 프랑스의 미쉐린이고, 미군의 방탄복은 네덜란드의 DSM사가, 급식은 프랑스의 소덱소가 공급하고 있다. 또 미국 정유업계의 20% 가량은 외국회사가 차지하고 있고 전력, 화학, 수자원 관리 등에도 외국자본이 들어와 있다.

    주식이나 채권을 통한 간접투자가 아니라 공장, 사무용 건물 등 부동산에 대한 외국인직접투자(FDI)는 2004년말 현재 1조5천3백억 달러로 전년에 비해 8.2%나 늘어났다.

    두바이포트월드사가 아랍권 자본이라는 점 때문에 미국인들의 우려가 컸지만 상무부 자료에 따르면 아랍권 자본의 대미 직접투자는 0.6%(93억 달러)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직접투자는 유럽(9천7백70억 달러)에서 나오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미국이 보호주의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보호주의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주장의 근거도 되고 있다.

    미국민들의 안보 우려에 기댄 헌터 의원의 법안대로라면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미국의 자산이 떨이로 팔리게 되고 이는 달러화 가치 하락, 금리 급등, 주가 하락 등으로 이어져 미국경제가 파탄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얘기다.

    한편 본토에서의 이런 논란과 달리 미국은 제3세계에 대해서는 한미자유무역협정 추진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미국 투자자들의 공정하고 동등한 대우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 우파들의 논리를 적용하면 송장만으로 통관을 가능하도록 하는 조항이나 한국인들의 식량안보와 공중보건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게 될 쌀, 쇠고기, 제약 등에 대한 “예외 없는 시장개방”은 한국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다.

    결국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외국자본-토종자본’ 논란은 제3세계의 경제주권을 유린하면서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보호주의의 의도를 숨기지 않는 미국의 이중성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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