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표적 진보 정치학자
    손호철 서강대 교수 퇴임
    “마르크스주의, 한국예외주의, 시대의 유물론” 주제로 고별강연
        2017년 12월 08일 01:4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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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대표적인 진보 정치학자인 손호철(65) 서강대 교수가 30년의 교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88년 박사학위를 받고 전남대에서 교수직을 시작해 1994년 서강대로 옮겨 24년을 재직하고 퇴임한다. 7일 오후 손호철 교수는 서강대 다산관에서 김세균 전 서울대 교수,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송주명 전 민교협 의장 등 2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고별강연을 가졌다.

    손호철 교수는 1970년 서울대 정치학과에 진학하여 동양통신(현 연합뉴스)에서 기자 생활을 하다가 광주항쟁을 폭도로 기사화하라는 지시를 거부하여 해직이 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이후 전남대와 서강대에서 30년간 교수로 재직했고 한국정치연구회 회장과 진보학술동인지 ‘이론’의 대표를 맡기도 했다. 진보적 지식인으로서의 사회적 역할에 적극 나서기도 했다 ‘민교협’ 의장과 ‘전국민중연대’, ‘진보정치세력의 연대를 위한 교수연구자모임’, ‘국민모임’ 등의 대표를 맡았고 현재는 정의당 부설 진보정의연구소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한국정치학의 새 구상』, 『전환기의 한국정치』, 『해방 50년의 한국정치』, 『신자유주의 시대의 한국정치』, 『현대한국정치: 이론과 역사 1945~2003』, 『근대와 탈근대의 정치학』, 『해방 60년의 한국정치 ― 1945~2005』 등의 이론서와 『3김을 넘어서』, 『빈 수레의 개혁을 넘어서』, 『빵과 자유를 위한 정치』, 『리얼 진보』(공저) 등이 있다.

    이날 고별강연의 주제는 “마르크스주의, 한국예외주의, 시대의 유물론”이었다. 손 교수의 신념이었던 마르크스주의와 정치학자로서 한국 정치에 대한 평가 그리고 현시대의 상황에 대한 조언 등을 담는 강연이었다.

    손 교수는 마르크스주의가 이론과 운동, 체제의 세 가지 범주에서 그 의미가 작동하고 있다고 말하며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 등 위기적 요인들이 상당하지만 사회를 개인의 합계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로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며 모든 사회적 관계를 계급으로 환원해서는 안 되지만 여전히 ‘계급’이 중심적 관계임은 분명하다며 마르크스주의의 유효성을 강조했다.

    또 자본주의의 핵심 범주로서 피지배계급인 노동자가 다른 계급사회의 피지배계급인 노예, 농노와 달리 이중적 의미의 자유, “신분적 예속으로부터의 자유, 생산수단으로부터도 자유(분리)” 상태에 있다는 게 핵심이라고 강조하며 자본주의 체제가 형식적 정치적 민주주의를 도입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계급사회이며, 계급사회에서 경제와 정치를 분리시키고 정치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는 건 지배계급의 논리일 뿐이라고 말했다. 누구도 정치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다.

    미국에 사회주의 정당이 없는 미국예외주의의 논리와 비교해서 “약한 노동과 진보정당의 부재”라는 1953년에서 1980년대까지의 한국 정치현실에 대해서는 그 원인으로 ‘이례적으로 강한 반공주의’ ‘분산적 경공업 중심의 산업구조’ ‘국가 억압과 국가 코포라티즘적 통제’ ‘단순다수 단기무기명 투표제의 선거제도’ ‘높은 사회적 유동성’ ‘산업화와 보통선거권의 선후 관계’를 통해 분석하기도 했다.

    이런 한국예외주의가 1987년 이후 노동운동의 때늦은 개화와 진보정당의 뒤늦은 성장으로 약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계급을 가로지르는 ‘지역주의’, 비정규직의 일상화 등 ‘신자유주의의 전면화’ 그리고 진보진영 내부의 문제로서 ‘친북주의’, ‘북한인권, 3대세습, 북핵에 대한 소극적 대응’ ‘패권주의’ 등으로 진보와 노동의 존재감이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손 교수는 정치는 사회적 균열과 모순, 갈등 구조를 기반으로 이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지역이 아니라 계급이 정치에 반영되는 정상화가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서는 독일식 소선거구제형 연동식 비례대표제, 결선투표제, 내각제, 국가보안법의 폐지 등 제도개혁이 필요하며 노동운동과 진보정당의 혁신, 특히 진보정당에 대해서는 20세기 초반의 ‘민족해방형 진보정당’에서 21세기형 ‘적녹보 무지개연합의 진보정당’으로의 전환 또한 미뤄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본인의 삶을 돌아보면서 손 교수 자신은 비주류의 비주류의 비주류였다고 자평했다. 한국사회 주류였던 반공우파에 대해 비주류였던 민주화세력이었고, 반독재 민주화 진영에서는 주류였던 자유주의에 비해 비주류였던 진보 지향이었고, 또 진보진영 내에서도 민족주의 등의 주류에 대해서 진보좌파이자 마르크스주의라는 비주류였다는 평가이다.

    그럼에도 자신은 선택된 세대였고 선택받은 삶을 살았다고 평가했다. 30년 전의 식민지반봉건사회, 식민지시대에 태어난 이들에 비해 행운이었고, 또 30년 후 지금의 청년세대가 겪고 있는 N포세대의 고통스런 현실에 비하면 자신의 세대는 상대적으로 선택받았다는 것이다. 비주류의 비주류의 비주류지만, 버젓한 대학의 정규직 교수로 살아 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젊은 후배들과 제자들에게 미안하다며 애틋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2003년 이라크 파병 반대 교수 선언 기자회견. 중간 키 큰 이가 손호철 교수, 그 왼쪽에 조희연 교육감과 김상곤 부총리, 오른쪽에 강내희 선생과 김세균 선생이 보인다.

    손 교수는 강연 말미에 “뜨거운 가슴(공감)과 차가운 머리(이성)‘를 강조했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발(실천)로의 ”세상에서 가장 먼 여행“이라는 신영복 선생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반면 뜨거운 가슴과 더 뜨거운 머리가 만날 때 ’~빠‘와 같은 편향이 나타나기도 하며 차가운 머리와 더 차가운 가슴이 만나면 ’냉혈한‘이 된다는 유머도 빠트리지 않았다.

    그러면서 손 교수는 자신의 퇴임을 돌아보며 늙음에 대해 고민한다며 ‘동물적 늙음’과 ‘식물적 늙음’을 비교하며, 맹수로서 군림하다가 죽어가는 사자의 늙음보다는 동네의 큰 느티나무가 되어 사람들에게 넓은 그늘을 제공하고 울타리가 되어주는 식물적 늙음을 바란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고별 강연을 끝내며 손 교수는 프랭크 시내트라의 ‘마이 웨이(My Way)’를 음악 없이 열창했다. “너무 좋아하는 곡이지만 늘 술자리에서 불렀는데 맨 정신에 불러보는 건 처음”이라고 했지만 멋지게 노래를 마무리하고, 끝까지 자리를 지킨 200여명의 청중들은 큰 박수로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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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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