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정규직 정규직화 반대”
    새로운 논란, 청년 정규직들 반발, 왜?
    현재의 비정규직 차별구조가 ‘공정’하고 ‘평등’하다?
        2017년 12월 08일 09:4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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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직후 선언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이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난관에 부딪혔다. 그 난관은 보수정치권이나 보수언론의 선동이 아닌 역차별을 주장하는 정규직들의 반발이다. 특히 청년층 정규직의 반대가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3일 열린 ‘인천공항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방안 공청회’에선 비정규직와 정규직의 갈등이 표면화됐다. 공청회에 참가한 정규직들은 “결과의 평등 NO! 기회의 평등 YES!”, “무임승차 웬말이냐! 공정사회 공개채용!”이라는 손피켓을 들었다. 비정규직을 착취하고 차별하는 현재의 구조를 그들은 ‘평등’과 ‘공정’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인천공항만의 이례적 상황이 아니라는 데에 있다.

    박원순 시장은 지난 7월 ‘노동존중특별시 2단계 발전계획’을 통해 전면 정규직화를 약속했다. 11개 투자·출연기관 무기계약직 2,612명(11월 기준)을 전원 기존 정규직 정원과 합치고 유사·동종업무는 직군 통합, 새로운 업무는 별도 직군·직렬을 신설해 통합한다는 방침이다.

    전체 전환 대상자의 절반이 넘는 1,317명의 무기계약직(비정규직)이 소속된 서울교통공사 내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한 가지 분야(전동차 검수 업무)를 제외하고 모두 다른 업무를 한다. 예를 들어 역무원은 정규직이지만, 스크린도어 안전문을 점검하고 고치는 일은 비정규직이 한다.

    서울교통공사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다. 4년차 이하 청년 정규직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합리적인 차이 없는 무기직 일반직화 반대’ 서명까지 이어지고 있고, 이 서명은 지난달 29일까지 1,751명이 이름을 올렸고, 그 규모는 계속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지하철 역 곳곳엔 ‘정규직 전환 반대 포스터’까지 나붙었다.

    포스터에 담긴 내용의 일부다. “공명정대한 공개채용 제도를 부정하는 특혜성 정규직화는 과연 누구를 위한 정규직화 정책인가요?”, “기준 없는 무분별한 그들만의 정규직화는 취업을 준비하는 수많은 청년들을 절망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더 많이 준비하고 노력한 청년들에게 정규직 일자리가 돌아가는 것이 합당할 것입니다”, “무수저 서민에게 평등이란, 기회의 평등입니다. 반칙으로 이뤄진 결과의 평등은 다음 번 당신의 기회를 빼앗을 겁니다”

    서울시 정규직화에 반대하는 이들의 포스터

    현재의 비정규직 차별 구조가 ‘공정’하고 ‘평등’?

    그들은 왜, 이렇게까지 비정규직이 정규직이 되는 것에 반발하는 걸까. 왜, 비정규직이 착취당하고 차별을 겪는 현 구조를 왜 ‘공정’하고 ‘평등’한 것이라고 바라보는 걸까.

    정규직들은 시기와 규모만 못 박은 채 진행되는 정규직 전환 과정은 물론, 정규직 전환 그 자체에까지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됨으로 인해 정규직 자신들의 임금삭감이나 고용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추후에 정규직의 일방적 양보나 권리 침해를 우려하는 것은 아닐까.

    ‘서울교통공사 합리적 정규직전환을 위한 연대모임’ 소속인 A씨는 “총액인건비 제도 하에서 임금이 책정되고 있는데 정원이 늘어나는 것 아니냐. (정규직의 임금에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예단할 수 없다. 기존 정규직에게 피해가 올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서울교통공사에 지난 2015년 1월 26일에 입사했고, 한국노총 서울메트로노조 조합원이다.

    서울시나 정부는 정규직 전환자의 임금을 기존 정규직에 할당된 총액 임금에서 끌어 쓰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노동계에서도 정규직의 일방적 양보를 요구하고 있지 않다.

    업무의 전문성과 책임성 문제도 제기된다. 비정규직은 업무의 전문성이 떨어지고 업무에 따른 책임성에도 차이가 난다는 주장이다. 우선 입사 4년 차 이하 정규직이 그 보다 더 오래 근무한 비정규직 노동자들까지 싸잡아 전문성이나 기여도 등을 거론하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책임성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A씨는 “저희 회사에 있는 이발사나, 목욕탕 관리사 등 그런 분들까지 현장 직원과 동일한 대우 받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해서 안전업무 같은 책임이 뒤따르는 직종에 대한 정규직화에 찬성하는 것도 아니다. “구의역 사고 이후로 용역회사 소속이던 분들은 무기직으로 통일이 됐고 대우도 좋아졌다. 그런데 또 정규직처럼 똑같이 해야 한다고 하는 건 지나치게 이중으로 특혜를 주는 것 아닌가”라고 반대했다.

    안전업무 정규직화 요구엔 ‘위험의 외주화’에 대한 비판과 함께, 해당 업무가 시민의 안전과도 직결돼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었다. 서울교통공사가 시민의 안전을 최우선의 가치로 여긴다면, 역무원의 업무와 안전문을 수리하고 전동차를 검수하는 업무 사이에 책임의 경중을 따지기는 어려워 보인다.

    공채 시험 없이 들어온 비정규직과 같은 임금, 처우 받는 건 불공정?

    여러 명분을 대지만 이들의 반대 가장 큰 이유는 단순하다. 공채시험 없이 들어온 비정규직이 같은 임금, 처우를 받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것이다. ‘무임승차’ 비난도 이런 시각에서 비롯된다. 아무리 자신들보다 오래 근무했더라도 공채시험을 치지 않았으니 ‘무임승차’라는 것이다.

    공사 등은 정규직이 반발하자, 기존에 없던 8급 하위직을 신설해 정규직 전환자는 8급부터 시작하게 하겠다는 대안을 내놨다. 정규직이 돼도 갓 입사한 정규직보다 낮은 8급부터 시작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비정규직 차별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에 대해 A씨는 “모든 사람이 모두 같은 대우를 받을 순 없다”고 말했다.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는 비정규직이) 정당성을 주장하고 싶다면 공채시험을 통해 경쟁을 해야 한다”며 “공채시험 평균 경쟁률이 77대1이다. 비정규직들은 면접 정도의 과정만 거쳐서 정규직이 되는데, 정규직과 동일한 것을 요구하는 것은 역차별이며 납득하기 어렵고 사회적 기준에도 맞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정규직 이기주의’ 비판에는 “공정한 과정, 경쟁이라는 생각 하에 수능도 보고 취업도 준비하면서 살아왔다. 그런데 이런 걸 통째로 무너뜨리면서 정규직화에 반대하는 사람은 나쁘다고 몰아간다”고 맞섰다.

    정규직 전환에 반대하는 이들은 하위직급 신설 정규직 전환 유예, 자회사 설립 등의 대안이 있음에도 정규직과 동일한 임금과 처우가 아니면 안 된다고 주장해 갈등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규직 신입사원보다도 낮은 정규직 전환자 ‘8급’ 채용, ‘자회사’ 꼬리표는 결국 비정규직의 또 다른 이름이 될 수밖에 없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찬성하는 서울교통공사의 또 다른 정규직 노동자 B씨는 “하위직 신설, 3년 후 순차 전환 방안 자체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대한 인식이 저급하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B씨는 민주노총 서울지하철노조 소속이다.

    B씨는 “정규직 전환은 신분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정규직과 같은 처우의 임금을 받는 것에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규직 전환을 아예 반대한다’, ‘시험 쳐서 들어와야 한다’는 주장은 노동현장의 위계적인 신분질서를 고착화하자는 주장”이라며 “비정규직에 대한 멸시, 조롱을 서슴지 않는 모습까지 보이는데 이는 참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박탈감 모르지 않기에, 비판보단 ‘설득’의 과정이 필요해”

    정규직화에 찬성하는 정규직·비정규직도 정규직화에 반대하는 일부 정규직들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시험’만이 공명정대한 것이라 교육받고, 그 시험을 통과해야만 내 가족이 풍요롭고 안전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하며, 끔찍한 경쟁에 평생을 바쳐온 청년 정규직 노동자들이 느끼는 박탈감을 모르지 않기에, 질타와 비판보단 ‘설득’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B씨는 “인력충원이 없다가 최근 2~4년 사이에 신규직원이 대거 들어왔다. 그 분들이 특히 어려운 관문을 뚫고 들어왔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박탈감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함부로 얘기해선 안 되겠지만 근 10여 년간 입시부터 취업까지 경쟁이 극심했다. 이러한 경쟁체제 내에서 서열화, 신분제에 대한 인식이 고착화되고 또 외면화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일부에선 공동체 의식의 부족을 지적하긴 하지만 질타하고 꾸짖는 것만은 능사가 아니다”라며 “치열한 경쟁체제 속에서 살면서 고착화된 가치관을 가진 이들도 모두 노동자다. 비정규직을 없애는 것은 시대적 과제이고, 노동조합이 지향해야 할 가치들이 무엇인지에 대해 더 많이 소통하고 설득하는 수밖에 없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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