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싸운다고? 더 친해진 거 아닌가요?"
    2006년 03월 20일 03:3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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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금요일 여야 원내대표 5명을 청와대로 초청한 자리에서 후임 총리를 고르는 두 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하나는 정치에서의 중립. 노 대통령은 ‘야당의 마음에 쏙 드는’ 사람을 고르겠다고 했다. 다른 하나는 정책에서의 코드. 노 대통령은 "대통령과 마음이 맞더라도 이해해 달라"고 했다.

대통령의 화법은 ‘정치’와 ‘정책’을 분리하고 있다. 그리고 이건 우리의 ‘정치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하는 것이하다. 문제는 이 정치 현실이 그들에게 정치적 동원대상에 불과한 민중의 현실과는 좁힐 수 없는 괴리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에는 삶의 실질과는 무관한 ‘정치공간’이 있다. 이곳에는 ‘정치인’들이 서식한다. 이들이 일용하는 정쟁에는 ‘황제테니스 논란’, ‘황제골프 논란’, ‘성추행 논란’ 등의 이름이 붙는다. 정치인들은 서로의 ‘자격없음’을 증명하기 위해 주로 싸운다. 그들의 사명은 정치인인 상대방의 자격없음을 증명하는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치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의 존재를 옹호(혹은 거부)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

우리 사회에는 또 ‘정치’와는 동떨어진 ‘삶의 공간’이 있다. 여기서는 땀내나는 사람들의 삶이 펼쳐진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불안이 있고, 농지를 갈아버린 농민의 울분이 있고, 용역 깡패들에 맞서다 포크레인의 삽날 아래 누워버린 평택 대추리 주민들의 절규가 있다. 이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

‘정치공간’과 ‘삶의 공간’, 우리 사회는 이렇게 두 개의 권역으로 분단되어 있다. 그리고 그 둘 사이의 거리는 아득하게 멀다. 정치인들은 항상 서로 싸우지만 두 개의 권역을 분단하는 데는 더 없는 공모관계를 보이고 있다. 그들의 ‘정치’는 다를지 몰라도 ‘이념과 정책’은 별로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명박 시장의 ‘황제테니스’와 이해찬 전 총리의 ‘황제골프’에 대해서는 금방이라도 나라가 결딴날 듯 싸우는 여야 정치인들이 평택 대추리 주민들의 싸움에 대해서는 그 흔한 논평하나 내놓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일자리를 잃고, 생업을 잃고, 삶의 터를 빼앗긴 사람들에게 ‘황제테니스’는 뭐고 ‘황제골프’는 또 뭐란 말인가.

노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야당의 마음에 쏙 드는 사람’을 인선하겠다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야당은 아마도 한나라당을 지칭할 것이다. 언론은 이를 두고 대통령의 스타일이 변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건 단지 정치인들에게만 의미가 있는, 정치인들만의 관심사일 뿐이다. 

노 대통령은 자신은 후임 총리와 함께 사회 양극화 등 중장기적 국정 현안에 주력할 것이라며 야당의 협조를 구했다. 그러나  비정규직 법안이나 한미 FTA, 이라크 파병 등 사람들의 삶에 실질적인 영향을 주는 주요 현안에서 이미 여당과 한나라당은 별로 이견을 보인 적이 없다

노 대통령의 말은 차라리 지금껏 정책에서 협력했던 여야가 이제 ‘정치’에서도 협력하도록 하겠다는 다짐으로 들린다. 보수정당의 일관된 ‘정책 공조’로 삶이 내몰렸던 사람들에게 보수정당의 ‘정치 공조’ 는 악몽일뿐이다. 양극화 해소는 그래서 정책 과제가 아니라, 정치 공방의 악세사리가 될 가능성이 훨씬 높아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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