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억의 사건: 기념비의 정치
    [아트살롱] 속죄와 기억의 상징? 망각의 면죄부?
        2017년 12월 04일 09:3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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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념물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를까? 우뚝 솟은 탑 모양의 구조물, 그리고 정열과 환희에 찬 얼굴의 영웅상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그런데 특정한 것을 ‘공적으로’, 또는 ‘공공연히’ 기념한다는 것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예컨대 미국의 공공장소에 대포를 놓아 승전을 축하한다면, 이 대포를 보고 좋아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나, 그것이 만약 미국의 건국과 관련된 대포 형태의 기념물이라면, 미국인들에게 학살되었던 인디언들은 좋아할 수 있을까? 백인의 전쟁에 노예로 참여할 수밖에 없었던 흑인의 입장에서 과연 그 대포를 좋아할 수 있을까?

    다른 예로 워싱턴에 가면 짧은 거리를 두고 상당히 대비되는 두 건물이 있다. 하나는 인디언 박물관이고, 다른 하나는 홀로코스트 추념관이다. 인디언 박물관의 시끌벅적한 축제 분위기와는 대조적으로 홀로코스트 추념관의 엄숙함은 이상할 정도로 극단적인 분위기이다.

    미국인에 의해 거의 2천만에 육박하는 인디언들이 목숨을 잃었으나, 인디언 박물관은 추념은커녕 축제 분위기이고, 홀로코스트 추념관은 지어진 건물 자체가 처음부터 체계적이고 엄숙한 추모를 염두에 두고 지어진 기념비적인 건물이다. 이 두 건물을 통해 미국은 유대인의 죽음을 기억해도, 인디언의 죽음을 기억하지 않으려는 의지를 분명히 드러내는 듯하다. 물론 사과도 없다.

    이와 달리 독일의 기억 방식은 좀 특이하다. 자국이 가한 학살을 자국이 스스로 반성하고 사과하는 것을 넘어서, 기억의 방식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소위 유대인 학살을 사과하는 번지르르한 기념물을 만들면, 독일인들은 자신들이 만든 그 훌륭한 기념물에 속죄와 기억의 의무를 손쉽게 떠넘기고, 정작 자신은 기억과 반성의 의무에서 벗어나는 효과를 낸다는 것이다. 폭력의 기억을 기념물에 쉽게 떠넘기고, 정작 반성과 기억의 당사자들은 기억과 사과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효과를 주는 기념물. 그래서 새로이 고안된 것이 바로 반기념물(counter-monuments 또는 counter-memorial)이다.

    우선 게르츠 부부의 기념물을 보자. 이 기념물은 매년 조금씩 땅으로 가라앉는 기념물이다. 기억을 위해 스스로 낮아진다는 점, 그래서 관객과 점점 평등해지려 한다는 점, 접근이 쉬운 일상의 공간에 기념물이 세워져서 근접 불가의 기념물과 달리 접근 가능성을 갖는다는 반권위주의적 측면들도 이 반기념물의 특징이다.

    작가, 작품, 관람자들 사이의 수평적 상호작용을 원활히 하기 위해, 작가의 권위나 작가의 서명 따위는 일체 허용하지 않았다. 게르츠 부부는 활발한 상호작용으로 경직되지 않고, 심지어 생생한 기억을 촉진하면서 스스로 소멸하는 기념물을 만들었던 것이다.

    게르츠 부부의 가라앉는 반기념물

    기념물이 사라지는 대신, 이제 그 기념물은 시민으로 하여금 기억과 기념을 위해 일어서라고 요구한다. 이는 일종의 실천을 향한 촉구이다. 그저 상징의 제스처 안에서 끝나버리는 기념물이 아닌 것이다. 기존의 기념물이 갖는 화석화된 오브제를 향한 숭고가 기억과 반응 그리고 행동과 실천으로 전환된 것이다. 이처럼 반기념물은 관람자를 불편하게 하는 기억 촉진제이다.

    또 다른 반기념물이 있다. 이 기념물은 베를린의 노이에쾰른 지역에 있는 것으로 이 지역은 예전에 강제 노동자 수용소와 작센하우젠의 작은 수용소 중 하나가 있었던 곳이다. 노베르트 라데르마허의 기념물은 공간을 방문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그 장소에서 있었던 일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다. 다시 말해 강제수용소가 있던 운동장 옆 존넨알레(Sonnenallee: 태양의 가로수길)를 걷던 보행자가 빛 감지 센서에 발이 걸리면 지금은 사라진 과거에 관한 구체적인 역사와 관련된 문구가 적힌 고광도의 슬라이드 프로젝션이 켜진다. 과거가 지워진 장소에 과거의 빛이 길 한쪽 벽에 가득 차는 것이다. 그리고 보행자는 기억의 요구에 직면하게 된다.

    독일의 카셀에 또 다른 반기념물이 있다. 예전에 이 지역에 살던 유대인들이 돈을 모아 기증했던 마을의 분수가 나치 때 파괴되었는데, 카셀 시는 이를 다시 복원하고 싶었다. 그 분수의 이름은 아슈로트 분수(Achrott Brunnen)였는데, 이 작업을 호하이젤(Horst Hoheisel)이 맡게 되었다. 그는 원형 그대로 분수를 복원하는 것을 일종의 장식적 거짓말이자 위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러한 복원과 기념이 결국 당시 일어났던 사건을 망각으로 떨어뜨릴까 걱정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네거티브형태의 기념물을 제안한다. 1908년 12미터의 고딕 피라미드 모양의 분수를 거꾸로 뒤집은 형태로 복원하려 했던 것이다.

    1908년의 원형

    뒤집힌 모형

    지하로 쏟아지는 물

    복원된 분수

    이 기념물들은 부재를 재생하여 부재를 기억하는 방식을 택했다. 거꾸로 뒤집힌 분수로 다가가면 거대한 지하 공간으로 흘러드는 물소리를 듣게 되는데, 이 소리는 아슈로트 분수 위에 설 때까지 점점 커진다. 사람들은 이 부재의 장소에서 진정한 상실의 분위기를 느끼게 된다고 호하이젤은 설명한다. 호하이젤은 뒤집힌 분수는 정작 분수가 아니라 역사의 받침대가 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새로 복원된 분수대는 분수대 위에 선 사람에게 직접 자신의 머리 속에서 추모물을 찾아보라고 촉구한다.

    이처럼 앞서 언급된 세 개의 반기념물은 모두 기억을 위해 기억을 촉구하는 전략을 사용했으며, 그 촉구를 위해 정작 기념물은 ‘부재’의 전략을 택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어쩌면 영구보존형 기념물은 정작 그 장소와 함께 죽어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동시에 기억도 함께 죽어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시간은 그 기념물의 영원성을 보란 듯이 비웃고, 그 영원성을 소멸시키고 말 것이며, 어쩌면, 동시에 생생한 기억의 의무도 지워버릴 것이다.

    이에 반하여 반기념물은 영원히 지속되는 추모물 못지않게 기억을 자극시킨다. 그러나 기념물 자체는 부재한다. 부재를 통해 드러나는 기억, 다시 말해 존재를 거부함으로써 반기념물은 역설적으로 기념물 본연의 정신을 되살리는 셈이다. 그럼으로써 반기념물은 기억의 생명력을 역사적 시간에 각인시킨다.

    트라팔가 광장에도 독특한 기념비(?)가 있다. 네 번째 기념비인데, 이미 예민한 분은 알아채셨겠지만, 이 기념비 역시 ‘부재’를 주요 특징으로 하고 있다. 즉 그 기념비는 정작 기념물은 없고, 텅빈 좌대만 남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트라팔가 광장은 영국이 프랑스와 스페인 연합군과 벌인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한 공간이다. 그래서 광장 중앙에는 트라팔가 해전의 영웅, 넬슨 제독의 기념비가 있다. 영국은 이 광장에 여러 기념비들을 세운 이후, 재정난에 부딪히게 된다. 그래서 네 번째 기념비를 세우지 못한 채 좌대만 남겨두게 된다. 이런 상황이 1840년 이후 150년 넘게 그대로 유지된 것이다.

    이후 영국 왕립 예술 협의회는 이 좌대 위에 무엇을 세울 것인가를 논의한 이후 1998년 세계의 현대 미술가들의 작품을 일정기간 설치하기로 결정한다. 우선 전문가가 일군의 작가를 선정하고 나면, 작가들이 구상한 작업의 축소 모델이 사전 전시된다. 그리고 이 모델을 시민들이 보고 작품 전시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 중 흥미로운 것이 안토니 곰리(Antony Gormley)의 작업이다. 곰리는 <ONE & OTHER>라는 작업을 선보이는데, 이 작업은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을 좌대 위의 살아 있는 기념물로 만드는 제안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하루 24시간을 한 시간단위로 좌대 위에 올라가 시민들이 직접 퍼포먼스를 한다. 이 일을 100일에 걸쳐 하게 됨으로써 총 2400명의 시민이 이 좌대 위에서 자신의 바람을 이야기하거나 다양한 퍼포먼스를 구현하는 것이다. 이 기념비는 과거의 화석화된 기념비와 달리 현재의 살아 있는 기념물이 올려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시민들은 여기어 어떤 것을? 그리고 어떻게 표현했을까?

    안토니 곰리의 트라팔가 광장의 ‘ONE & OTHER’ 작업

    이상의 기념비들은 부재를 통해 존재와 기억을 채우는 역동성을 보였다. 이를 위해 과감히 기존의 기념비가 가지는 매체적 성격을 변형하거나 없애버렸다. 덕분에 기념비에 온 사람들의 기념을 촉구하고, 기념의 시간성을 다양화시킴으로써, 기억을 과거의 것으로 묻어버리거나 기억의 의무를 어떤 물질적 매체에 전가해버리지 않도록 했다.

    심지어 그 기억의 시간에 시민들이 적극 뛰어들게 함으로써 기억의 시간이 현재에 여전히 살아 있는 것일 수 있음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시민들이 참여하고 시민들이 구상하는 기념비 또는 기억은 결코 과거의 화석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기념비를 둘러싼 기억은 일종의 투쟁이자 정치가 될 수 있었다.

    이쯤에서 한국의 기념물을 보자. 광주를 다녀온 지인들 몇 분은 구묘역과 신묘역(의 웅장한 기념비), 그리고 아시아 문화의 전당과 옛 전남도청 건물의 극명한 대립 사이에서 묘한 이질감을 느끼기도 했다. 이 둘 사이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기억하고 어떤 것을 기억하게 될까. 우리의 기억은 여기서 생생하게 역사의 기억으로 다시 살아 날 수 있도록 자극을 받게 되는가.

    참으로 참혹한 기념비도 많다. 친일한 사람이 김구 선생의 동상을 제작하는가 하면, 박정희, 전두환과 같은 군사독재자의 기념비를 둘러싼 기념물 제작과 철거 시비도 끊이지 않는다. 심지어 진해에는 유신을 기념하는 기념비가 떡 하니 남아 있질 않나. 인천의 맥아더 동상은 여전히 다양한 기억 투쟁의 여지를 남겨둔 채 거뜬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베트남참전 기념비는 어떤가? 미국의 마야린이 반전과 평화를 기원하면서 만든 반면, 한국은 베트남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한국에 살고 있는 베트남 출신 한국인 또는 베트남 이주노동자 또는 베트남 여행객 등은 그 기념비를 통해 무엇을 느끼고 생각하게 될까?

    학살과 비극의 기억이 역사적 질곡이 된 수많은 현장에서 우리는 어떤 ‘기억’으로 그 질곡에서 벗어나야 할까? 기념물이라는 단순한 오브제에 그 기억을 떠넘긴 채, 과연 우리는 해방되고 행복한 현재를 누릴 수 있을까? 과거와 화해할 수 있을까?

    필자소개
    민주시민교육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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