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동영 체제 한달, '당 위기' 겨우 수습
        2006년 03월 17일 06:1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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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우리당 정동영 체제가 출범한 지 한 달이 지났다. 지난 한 달 동안 잇단 악재로 최악의 위기를 겪었던 열린우리당은 이 총리의 사퇴를 계기로 정국 반전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 중대한 위기 국면에서 지도력이 시험대에 올랐던 정 의장도 당에 대한 장악력을 한층 높였다는 평가다.

    그러나 강금실 전 장관 등 외부인사 영입이 늦어지면서 인물과 구도 중심의 선거 전략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있다. 또 ‘지방권력 심판론’도 적절한 선거 이슈가 아니라는 평가가 많다. ‘위기’는 겨우 수습했지만 ‘승기’를 잡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잇따른 악재, 악재, 악재

    정동영호는 취임 후 잇단 악재에 골머리를 앓았다. ‘사고처리’하느라 진을 다 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계안 의원은 "사안을 주도하지 못하고 외부적인 요인들에 대응하느라 바쁜 한달이었다"고 평가했다. 민병두 의원도 "외부 변수가 너무 많았던 한 달"이라고 요약했다.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당의장 취임과 함께 한나라당의 자살골이 연달아 터졌기 때문이다.

    지난달 22일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은 ‘DJ 치매’ 발언을 뱉어내면서 한나라당의 서진정책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리고 며칠 후 한나라당 최연희 의원의 동아일보 여기자 성추행 사건이 터졌다. 여당으로서는 정국을 반전시킬 수 있는 대형 호재였다.

    그러나 적은 내부에 있었다. 열린우리당 소속 한광원 의원이 "아름다운 꽃을 보면 누구나 그 향기에 취하고 싶고, 다가가 만져보고 싶은…” 운운하면서 모처럼 찾아온 기회를 걷어 차버렸다. 정 의장은 "성추행 사건으로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입은 시점에 부적절한 의사 표현으로 당에 부담을 줬다"면서 한 의원에 대한 공개 경고 조치를 내렸다.

    그리고 이해찬 총리의 ‘3.1절 골프 파문’이 터졌다. 정국주도권은 완전히 한나라당에 내줬다. 여권은 근 2주간 여론의 몰매를 맞았고 결국 이 총리는 사퇴했다.

    물론 총리 사퇴 국면을 당이 주도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당의 위상을 높이고 지도력을 제고한 측면은 있다. 우상호 대변인은 "이해찬 총리 파문 등 어려운 여건에서도 당을 빠르게 결속시키고 안정시켰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정 의장의 지도력에 대해서도 후한 얘기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특히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가운데 정 의장이 보인 신중한 태도가 ‘신중함’을 넘어 ‘소심함’으로 비춰지기도 했다.

    수도권에 지역구를 두고 있는 한 의원은 "사안의 추이를 지켜보겠다, 이런 태도로는 이니셔티브를 잡기 힘들다"며 "이니셔티브를 잡지 못하고 계속 끌려가면 당도, 정의장도 미래를 기약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 유종필 대변인은 "이해찬 총리 파문 과정에서 드러났듯 여권 내에서 정의장의 확고한 위상이 아직 정립되지 않은 것 같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박성민 ‘MIN 기획’ 대표도 "설득해서 따라오게 하든가 겁을 줘서 따라오지 않을 수 없게 하든가 해야하는데, 이도저도 아닌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아직 당을 확실히 장악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했다.

    또 다른 정치컨설팅 전문가는 "계파의 견제 문제 등을 감안하면 차라리 관료형 당의장이었다면 지금보다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지지부진한 인물 영입

    열린우리당은 지난 당의장 경선때부터 외부 인사 영입에 사활을 걸었다. 정동영 후보와 김근태 후보가 이른바 강금실 전 장관을 사이에 놓고 ‘강심’ 논쟁을 일으킬 정도였다.

    정 의장이 취임한 후에도 이런 기조는 바뀌지 않았다. 강 전 장관을 영입하기 위해 공을 들였고, 장관들을 징발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는 썩 신통치가 않았다. 강동석 전 건교부장관이 인천시장 출마를 끝내 고사하면서 ‘강금실-진대제-강동석’의 수도권 삼각벨트 구상은 실현되지 못했다. 곧 입당 절차를 밟을 것으로는 보이지만 강 전 장관과 진 전 장관도 시간을 질질 끌면서 선도(鮮度)를 떨어뜨리고 있다. 고건 전 총리와도 연대를 추진했지만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홍영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정 의장은 양극화 문제 등에 대한 정책이나 정체성 문제가 아니라 강금실, 고건 등 인물 구도로 가고 있다"면서 "이미 인물 구도가 무너진 상태이기 때문에 이번 선거가 더욱 힘들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홍 소장은 또 "양극화 등 사회적 이슈에 대한 정책과 정체성을 명확히하면 오히려 세력을 결집시킬 수 있었을텐데 성공이 전제되지 않은 인물 구도로 가면서 게도 잃고 구럭도 잃었다"고 평가했다.

    ‘지방권력심판론’은 잘못된 전략

    이번 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의 핵심 전략은 ‘지방권력심판론’이다. 한나라당이 절대 다수를 장악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의 비리 문제를 중점적으로 부각해 ‘정권 심판론’에 맞불을 놓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의 ‘지방권력 심판론’은 일단 사실관계부터 틀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4일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주관한 ‘2006-2007 한국정치 대전망 세미나’에서 김능구 ‘e-wincom’ 대표는 "지역색이 강한 영남권의 경우 한나라당 권력이 10년을 독식하고 있지만 이와 마찬가지로 호남권도 민주당 권력이 10년 독식하고 있다"며 ‘지방권력’과 한나라당을 단순 대입하는 것은 사실관계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또 "열린우리당은 지방권력 심판론을 내세우면서도 그 심판의 대상인 지방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재선의 이원종 충북지사나 염홍철 대전시장, 이유택 송파구청장과 무소속 현직 단체장을 줄줄이 영입하고 있다"며 "앞뒤가 맞지 않는 전략"이라고 꼬집었다.

    박성민 ‘MIN 기획’ 대표도 "여론 조사 결과를 보면 노정권 심판론에 대한 호응이 지방권력 심판론에 대한 호응보다 두 배 가까이 높게 나온다"며 "열린우리당이 이슈를 완전히 잘못 잡았다"고 지적했다.

    예전 같지 않은 ‘몽골기병’

    정 의장은 당의장 수락 연설에서 심각한 사회 문제인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따라 열린우리당은 정 의장 체제 출범과 함께 ‘5대 양극화 해소 특위’를 구성했다.

    정 의장은 2년 ‘몽골기병’의 모습으로 실업계 고등학교 등 현장을 누볐다. 우상호 대변인은 "현장속으로, 국민속으로 들어간다는 약속대로 많은 민생 일정을 소화했다"고 평가했다. 노웅래 원내 공보담당 수석부대표도 "새 지도부가 들어선 이후 민심 수렴 등 창당 초심으로 돌아가는 계기가 됐다"고 자평하고 "현장 정치의 성과를 4월 임시국회에 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 의장의 ‘몽골기병’ 행보는 예전같은 반향을 얻지 못했다. 우선 다른 정당의 지도자도 대폭 새대교체되면서 ‘속도감과 역동성’은 더 이상 차별화의 포인트가 되지 못했다. 또 정 의장의 현장 정치가 지나치게 즉흥적이라는 평가도 안팎에서 나왔다.

    해당 지역구에 있는 실업계 고등학교를 방문하라는 원내대표의 지침이 떨어지자 어느 의원은 "갑자기 가서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난감해하기도 했다.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 취임 첫날과 오늘 사이에 양극화가 더 벌어졌듯이 정동영 의장 취임 첫날과 오늘 한달 사이에 양극화는 더 벌어졌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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