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 착취와 생명 위협,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 폐지해야
    시민사회단체 “기업·교육부·교육청·학교, 모두의 책임”
        2017년 11월 30일 05:4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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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발 현장실습을 폐지해주십시오. 지금도 죽어나가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죽어야 우리 얘기를 들어주시겠습니까. 아이들을 살려주세요.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 폐지가 하루빨리 되길 바랍니다” (특성화고 졸업생 복성현 씨)

    시민사회단체들이 30일 노동착취에 이어 목숨까지 위협하는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 제도 폐지를 촉구했다.

    ‘산업체파견 현장실습 중단과 청소년 노동인권 실현을 위한 대책회의(현장실습 대책회의)’와 ‘현장실습 고등학생 사망에 따른 제주지역 공동대책위원회’는 30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교육이라는 미명으로 행해지는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은 제대로 된 취업도 교육도 아니며, 단지 열악한 노동조건 속으로 직업계고 재학생을 밀어 넣는 것일 뿐”이라며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 즉각 폐지를 교육부에 요구했다.

    기자회견 모습(사진=대책회의)

    지난 19일 제주도에 있는 생수 제조 회사에 파견 현장실습을 나갔던 특성화고 3학년 재학생 이민호 군은 제품 적재기 벨트에 목이 끼이는 사고를 당했다.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치료 도중 열흘 만인 지난 19일 결국 목숨을 잃었다. 이 군은 이 사고 발생 이전에도 갈비뼈가 부러지는 등 2차례 업무상 재해를 당했으나, 업체는 업무상 재해를 행정관청에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 산재를 은폐한 것이다. 이 군의 유족와 시민사회단체 등은 이날 사고 업체 대표와 공장장 등 업체 관계자 4명을 제주지방검찰청에 고소·고발했다.

    대책회의 등은 이날 회견에서 “교육부는 시도교육청, 학교와 하나 되어 현장실습생을 저임금으로 기업에 ‘파견’하는 용역업체가 되어 버렸다”며 “도대체 누구를 위한 교육이고, 누구를 위한 취업이며, 노동인가.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이 유지되는 한 현장실습생은 학생으로도, 노동자로도 존중받지 못하고, 또 그렇게 다치고, 죽어 갈 수밖에 없다”고 질타했다.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 제도의 문제가 부각된 건 지난 1월 전주 LG유플러스 고객센터에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을 나간 특성화고 재학생 A양이 고강도 감정 노동과 실적 압박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부터다. 당시 A양의 전공은 애완동물과였지만 학교는 전공과 전혀 관련이 없는 콜센터로, 콜센터에서도 가장 노동강도가 심한 부서의 현장실습생으로 파견됐다.

    이후 특성화고에 재학하는 현장실습생들의 사고와 사망이 잇따랐다. 지난 16일엔 안산시 반월공단의 한 플라스틱 제조공장에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을 나갔던 특성화고 재학생 C군이 상사의 모욕적인 욕설을 듣고 회사 건물 4층에서 투신했다. 병원에 옮겨져 수술을 받았지만 매우 위중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바로 다음 날엔 인천 식품업체에 파견된 현장실습생 D군은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다.

    “너무 힘들다”는 학생에게 “참아라”
    현장실습 그만두자, 선생이 학생에게 “배신자”, “알바라도 해서 취업률 올려라”

    올해 특성화고를 졸업한 복성현 씨는 이날 회견에 참석해 현장실습을 나간 산업체에서 벌어지는 노동착취와 학생들에 대한 무시와 모욕적 발언들 그리고 취업률에만 목을 매는 학교의 행태를 비판했다.

    고3 재학 중에 세무사 사무실에 현장실습을 나갔던 복 씨는 “최저임금도 못 받고 초과근무는 기본이었다. 그런데도 세무사와 과장은 ‘학생이니까 돈 받고 학원 다닌다고 생각하라’, ‘지금 그만두면 나중에 뭐 먹고 살거냐’ 등 저의 노동을 무시하는 말들을 했다”며 “학교에 너무 힘들다고 말을 하니 학교는 ‘참아라’고 했다”며 자신의 경험담을 전했다.

    그러면서 “저와 함께 취업했던 친구 10명 중 1~2명만 현장실습을 나갔던 사업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 모두 퇴사하고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대학준비를 하거나 백수로 살고 있다”고 덧붙였다.

    복 씨는 “이번 제주 일을 보며 공장에서 일하던 친구들이 생각났다. 기숙사 방안에 있던 샴푸가 얼고, 철판에 팔이 다 긁혀도 참고 일하던 친구들과 저는 운이 좋아서 살아남았다”면서 “후배들이 취업한다고 하면 앞으로는 응원을 해줄 수 없을 것 같다. 운이 나빠서 돌아올 수없는 길에 서게 된다면 말리지 못한 죄책감에 살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교육부와 기업에 의해 죽음의 현장에 내몰린 학생들을 최일선에서 보호해야 할 학교는 그들의 노동과 학습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저 취업률에만 목을 맸다.

    복 씨에 따르면, 담임선생은 복 씨의 같은 반 친구 3명이 회사를 그만두려 하자 페이스북에 “다른 두 놈은 배신한다던 소리가 들리더라. 너도 배신자니?”라는 공개 글을 올렸다. 일을 그만두고 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친구들에겐 “너네가 학교 배신하고 대학 갔으면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취업률 올리라”고도 했다.

    교육부, 구체적 실행방안도 없이 사고만 나면 땜질처방 급급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을 당장 폐지하라”

    산업체에 파견된 현장실습생들의 죽음이 이어지자 ‘안전한 현장실습 방안’을 내달 1일 사회관계장관회의에서 논의하기로 했다. 그러나 과연 실효적인 방안이 나올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앞서 지난 2006년 현장실습 운영 정상화 방안, 2012년 특성화고 현장실습제도 개선대책, 2013년학생 안전과 학습 중심의 특성화고 현장실습 내실화 방안을 발표했지만, 산업체로 나간 학생들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

    현장실습 대책회의 등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정부는 그동안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 문제 해결에 땜질 처방으로 일관해 왔고, 매년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이 이뤄지는 시기마다 사고와 죽음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육부는 올해도 ‘특성화고 현장실습 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노동중심에서 학습중심으로 현장실습을 전환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현장실습 대책회의는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이 가지는 본질적 문제는 외면한 또 다른 눈가림”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학습 중심의 현장실습’이라는 방안을 시행할 구체적인 시행계획도 없는데다, 산업체가 현장실습생들에게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할 유인도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을 당장 폐지하는 것을 잇따른 죽음을 막는 방법이라고 보고 있다.

    현장실습 대책회의는 “현장실습생을 노동력 착취 대상으로 여기는 기업, 취업률 경쟁으로 교육과 교육과정을 왜곡해 온 교육부, 현장실습생을 저임금 노동력으로 공급하는 교육청과 학교는 현장실습생이 죽고, 다치는 재해사고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며 “교육권도, 노동권도 보장되지 않는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을 당장 폐지할 것을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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