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개월간 11번의 쪼개기 계약
    쫓겨난 지 2년, 그곳에 정착한 청년
    [현장과 사람] 한국지엠 비정규직 노동자 한윤성 씨
        2017년 11월 30일 12:3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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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청년의 창원 정착기

    한국지엠에서 19개월간 11번 초단기 쪼개기 계약을 반복하다가 계약해지로 쫓겨난 한윤성(36), 윤길(34) 씨 형제는 지금도 열 일 마다하지 않고 산다.

    윤성 씨는 2년 전 쫓겨났던 한국지엠 공장이 있는 경남 창원에서 여전히 바쁘게 살았다. 몇 시에 만날 수 있겠냐고 물었더니, 밤 9시쯤 가능하다고 했다. 주말도 없이 일하는 그에게 밤 9시에 만나자는 게 참 미안했다. 창원 성산구 한국지엠창원비정규직지회 사무실에서 만난 윤성 씨는 밝았다. 윤성 씨는 서울 사람이다.

    윤성 씨는 호텔리어였던 아버지 밑에서 양천구 목동에서 줄곧 자랐다. 윤성 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알바를 시작했고, 군대 갔다 와선 홈페이지를 제작하는 IT업체에서 4년간 영업사원으로 20대 중반을 보냈다. 홈페이지 제작이 사양길로 접어든 데다 별다른 기술 없이 판매영업만으로 먹고 살 자신이 없어 2012년 두 살 아래 동생과 의논 끝에 나이 서른에 둘이 함께 인천 부평에 있는 한국지엠 직업훈련원에 들어갔다. 자신은 정비, 동생은 도장 쪽으로 자동차 일을 배우며 1년 2개월 과정을 마쳤다.

    19개월간 11번 쪼개기 계약

    한윤성씨가 19개월 동안 한 회사와 맺은 11번의 쪼개기 근로계약서 Ⓒ이정호

    지엠의 지방공장에 들어가면 정규직 될 때 가산점을 준다고 해서 2013년 군산공장에 들어갔다. 그러나 군산공장은 물량을 줄여 일주일에 사흘 정도만 일하는 등 어수선했다. 8개월을 일한 뒤 동생과 함께 일거리가 많다는 지엠 창원공장으로 왔다.

    윤성 씨는 2014년 2월 지엠 창원공장 사내하청 부영산업에 3개월짜리 계약직으로 입사했다. 3달, 3달, 1달, 1달, 2달 짜리 쪼개기 계약으로 10달을 일하다 2014년 12월 2일 계약이 만료되자 업체 소장이 한 달만 쉬라고 했다. 한 달 보름쯤 쉬고 2015년 1월 19일 다시 3달 짜리 계약서를 쓰고 들어왔다. 3달, 3달, 1달, 1달, 1달 계약이 2015년 10월 18일까지 이어졌다. 그러고는 나가라고 했다. 왜 중간에 한 달 쉬게 했는지 몰랐다. 1년을 넘기면 퇴직금을 줘야 하니까.

    한국지엠 하청업체와 맺었던 계약서를 앞에 놓고 앉은 윤성 씨가 해고 이후 2년의 삶을 말한다. Ⓒ이정호

    초단기 계약을 이어가던 윤성 씨와 윤길 씨는 장기직(무기계약직)으로 만들어주겠다는 업체 소장 말을 믿고 동생과 함께 창원에 정착하려고 1억 2천만원의 자금을 대출받아 19평짜리 전세아파트도 마련했다. 윤성 씨는 결혼식 하루 전까지 일하고 밤에 서울로 올라와 2015년 6월 28일 식을 올렸다. 식장에 온 업체 소장은 친척들에게 동생 윤길 씨와 함께 장기직을 시켜 주겠다고 했다. 그 말을 믿고 10년을 사귄 아내도 낯선 창원에 정착했다. 곧이어 9월엔 딸도 태어났지만 업체는 장기직 전환은커녕 계약만료로 10월 18일까지만 일하고 나가라고 했다.

    사법부 만 3년째 1심 판결도 미뤄

    너무도 억울했던 윤성 씨는 비정규직노조에 가입해 창원공장 앞에서 시위에 들어갔다. 같은 지역구의 노회찬 의원은 윤성 씨가 싸우는 곳에 와서 “대법원이 직접고용 노동자라고 판결한 하청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대신 오히려 내쫓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도 업체는 장기직 약속은 전임 소장의 말이었다며 책임지지 않았다.

    2015년 10월 쫓겨난 윤성 씨가 직접 쓴 1인시위판 Ⓒ이정호

    노조에 가입하고서야 1년 못 채우고 한 달을 쉬게 한 게 퇴직금 안 주려고 했던 걸 알았다. 노조에 가입하고서야 대법원이 2013년 2월 한국지엠 전 사장에게 파견법 위반으로 벌금형을 내린 걸 알았다. 대법원은 지난해 6월 먼저 소송을 건 5명의 하청노동자가 한국지엠 노동자라고 판시했다. 윤성 씨도 원청 한국지엠을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걸었다. 이렇게 150명의 노동자가 2,3차 소송단을 꾸렸다. 그러나 회사는 지연작전으로 나왔다. 내년 1월이 되면 소송을 시작한 지 만 3년이 되는데도 아직 1심 판결도 나오지 않았다.

    100일이 지난 딸과 전업주부인 아내를 둔 윤성 씨는 계속 복직투쟁만 할 순 없었다. 지난해 1월 창원공단에 베어링을 만드는 회사에 들어가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석 달쯤 다니다가 허리를 다쳐 잘렸다. 전공인 자동차 정비 쪽 직장을 구하려고 지난해 가을엔 가족을 창원에 두고 경기도 하남의 대형 자동차정비소에 들어갔다. 주말이면 창원에 내려와 딸과 함께 보냈는데, 돌을 맞은 딸이 아빠를 낯설어 했다. 다시 창원으로 내려와 지난 6월부터 요즘 총알배송으로 인기를 누리는 택배회사에 들어가 일하고 있다. 아침 8시 반에 일을 시작해 밤 8시에 마친다. 그 사이 동생은 창원 생활을 접고 서울로 올라가 전기업체에서 일하고 있다.

    81년생, 83년생으로 <82년생 김지영>과 또래인 두 청년은 한국 노동시장에서 쉼없이 일하지만, 그들의 일자리는 점점 더 헬지옥이 돼 가고 있다.

    비정규직 자르는 인소싱 시도

    부영산업은 윤성 씨가 나온 뒤 멘토스 파워, 천보(주)로 이름은 바뀌었지만 여전히 한국지엠 창원공장의 하청업체다. 100명 가까웠던 직원은 50명으로 반 토막 났다. 윤성 씨처럼 단기직들은 대부분 잘리고 5명도 안 남았다. 그나마 선별채용이라도 했던 현대차와 달리 한국지엠은 법원의 불법파견 판결에 좀 색다른 후속대책을 내놓고 있다.

    최근 한국지엠은 사내하청업체가 맡았던 차체부 인스톨, 엔진부 T3 T4, 승용 미션(변속기), KD 포장 등 4개 공정을 인소싱하고 있다. 불법파견 소지를 없애겠다는 뜻이다. 인소싱이야 좋은 일이다. 외주하청으로 아웃소싱했던 공정을 그쪽 직원까지 안고 들어오는 인소싱이라면 좋은 일이다. 그런데 한국지엠의 인소싱은 사내하청 노동자를 잘라내고 그 자리에 정규직을 앉히겠다는 거다. 당연히 비정규직노조가 반발할 수밖에 없다.

    부영->멘토스->천보로 이름만 바꾼 한국지엠 하청업체 Ⓒ한국지엠창원비정규직지회

    윤성 씨와 동갑인 김희근 한국지엠창원비정규직지회장도 5년 반 동안 7번 쪼개기 계약 끝에 장기직으로 전환됐다. 김 지회장은 “사내하청 장기직은 물론이고 단기직이 하는 일도 대부분 상시공정”이라며 “원청이 사내하청을 쫓아내는 방식으로 인소싱 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했다.

    한국지엠이 11월초 창원공장의 3개 사내하청 업체(4개 부서) 100여 명의 공정을 정규직 인원으로 인소싱 하겠다고 하자, 비정규직노조는 천막농성과 부분파업으로 맞서고 있다. 지난 10일엔 정규직 관리자들이 비정규직을 밀어내고 생산을 시도했다.

    하청업체들은 업체 소속 장기직들은 고용을 보장하겠다고 했지만 비정규직노조는 원청인 한국지엠의 확약이 없으면 고용보장 약속은 휴지조각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동시에 “단기직은 잘라도 되는 사람이냐”며 총고용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지엠은 하청노조의 파업으로 26억원의 피해를 입었다며 윤성 씨가 일했던 하청업체 천보(전 부영산업)와 DH인더스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지난 10일 한국지엠 창원공장에서 원청 관리자와 대치한 하청노동자들. 마이크 잡은 이가 한국지엠창원비정규직지회 김희근 지회장 Ⓒ한국지엠창원비정규직지회

    필자소개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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