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자유주의와 로봇,
    외환위기 20년의 교훈 잊지 말자
    [외환위기 20년③] 한국 노동운동의 21세기 과제
        2017년 11월 29일 05:4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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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환위기 20년과 노동운동②] 정말 어쩔 수 없었나

    문재인 정부가 IMF관리체제로부터 단절한 것과 이어가고 있는 것

    외환위기 20년, 돌고 돌아 다시 민주당 정부가 됐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정치격변을 거치며 5월 대선에서 민주당이 비교적 쉽게 여당을 재꼈다. 당선과 함께 문재인 대통령은 박근혜 탄핵 촛불혁명을 계승하겠다며 ‘적폐청산’을 국정 최우선 과제로 내걸었다. 보수정권 10년간 극단적으로 부패한 권력기관들이 적폐1호로 찍혔고, 검찰, 국정원의 권력자들이 줄줄이 처벌됐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가 청산하려는 적폐가 어디까지인지를 두고 미묘한 쟁점이 있다. 정부는 권력기관 개혁을 중심으로 적폐청산에 주력하고 있지만,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운동 진영은 ‘노동적폐’도 청산해야 한다고 요구 중이다. 노동적폐란 노동시장을 유연화하고 노조 할 권리를 제약하는 법제도들을 일컫는다. 대부분은 외환위기 이후 민주당 10년 동안 만들어 진 것들이다.

    노동시장 유연화를 대표하는 3제(정리해고제, 파견제, 변형근로시간제)부터, 비정규직을 사용사유가 아니라 사용시간으로 규제한 비정규직보호법, 교사와 공무원 노조의 노동3권을 불완전하게 보장한 두 노조에 대한 특별법까지. 모두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문재인 정부가 지금까지 강조하는 건 이전 민주당 정부들과의 계통성인데, 과연 이것들은 적폐인지 아닌지 정확하게 밝히고 있지 않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이전 정부들의 연장선에서 추진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정책도 여전히 많다. 대표적으로 금융시장 자유화 정책이 그렇다. 현 정부는 역대 정부에서 추진했던 우리은행 민영화(지분 매각)를 계속 추진 중이고, 심지어 대형투자은행을 만들겠다고 5대 증권사에게 은행업무 일부를 허용했다. 우리은행 민영화와 대형투자은행 설립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추진했던 금융정책이었다.

    따져보면 금융자유화만큼 역대 정권들이 일관되게 선호한 것이 없다. 김대중 정부의 금융시장개방,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금융허브론을 봐도 그렇다. <외환위기 20년과 노동운동(1)>에서 봤듯 신자유주의 핵심이 금융자유화다. 미국의 대표적 케인즈주의 경제학인 폴 크루그만은 “은행일이 지루한 일이 아니게 된 순간부터 금융위기가 만들어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역시 금융위기를 만들고 있는 셈이다.

    적폐청산, 촛불혁명을 내건 문재인 정부는 과연 어디까지를 단절지점으로, 그리고 어디서부터를 계승지점으로 삼고 있는 것일까? 적어도 금융과 노동에 관해서는 역대 정부들과 함께 20년 간 이어진 신자유주의 정책을 계승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로봇으로 부활하는 신자유주의

    문재인 정부의 신자유주의 기조는 산업 정책에서도 나타난다. 정부가 강조하는 4차산업혁명론이 바로 그것이다. 경제학자들과 기업들이 이야기하는 4차산업혁명론은 단순한 기술변화에 관한 미래 예측이 아니다. 공동체의 불평등과 배제를 기술의 사회적 성격으로 정당화하는 이론이 바로 최근 유행하는 4차산업혁명론이다.

    4차 산업혁명이 갑자기 유행하게 된 맥락을 한 번 보자. 이 이론은 미래 예측 이전에 현재의 갈등과 관계가 깊다.

    세계금융위기 이후 불평등에 대한 대중적 정서는 금융기관을 비롯한 소수 자본의 부의 독점을 비판하는 것이었다. 2011년에는 유럽의 “분노한 사람들”, 미국의 월스트리트 “오큐파이” 운동이 세계를 강타했고, 2012년에는 주요 선진국에서 좌파 정치세력이 약진했다. 경제학계에서도 불평등에 대한 시장 책임론이 쏟아졌었다. 로버트 고든의 “미국의 성장은 끝났는가?”,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불평등의 대가”, 토마피케티의 “21세기자본”, 로렌스 서머스의 “장기 침체” 등 21세기 자본주의의 문제점들을 지적하는 논문과 서적들이 경제학계를 주도했었다.

    맥락적으로 보면 2012년경부터 유행한 4차산업혁명(또는 디지털기술혁명)은 이런 불평등의 사회적 책임론에 대한 반론이었다. 4차 산업혁명론은 경제적 불평등의 원인을 기술변화에서 찾는 “기술 숙명론”이다. 4차산업혁명론의 주창자들은 디지털, 인공지능의 성격을 ‘숙련 편향적(skill-biased)’기술로 규정하는데, 기계가 대체할 수 있는 저숙련 직무의 일자리는 임금이 감소하는 반면,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고숙련 창조적 직무의 일자리는 임금이 상승한다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에 따르면 소득 불평등의 원인은 기술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저숙련 노동자 스스로에게 있다.

    4차산업혁명과 연관돼 경제학계에 논란을 일으킨 ‘경제성장 측정오류론’은 불평등의 원인을 더욱 교묘하게 뒤틀었다. 세계금융위기 이후 실리콘밸리와 월스트리트의 기업들은 막대한 이익을 거둔 반면 노동자 임금은 그다지 증가하지 않았다. IT기업과 금융기업의 놀라운 수익률 상승에 비하면 경제성장률도 변변치 못했다. 이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자 일군의 경제학자들과 기업연구소들이 측정오류론을 들고 나왔다. 내용은 간단하다. 소득증가율이나 경제성장률이 실제 낮은 것이 아니라 측정방식이 잘못돼서 낮은 것처럼 보인다는 주장이었다.

    이들에 따르면 구글, 유투브, 페이스북 같은 공짜 디지털 서비스가 확대되면서 상품의 가격을 집계해 경제성과를 측정하는 방식에 오류가 생겼다. 만약 이런 무료 서비스가 주는 혜택을 경제성과에 반영하면, 노동자들은 같은 임금으로 더 많은 서비스를 소비하는 것이니 그만큼 실질 임금이 증가한 것이고, 그 서비스들을 제공한 기업들과 그 기업에 투자한 금융기관들은 그만한 보상을 받는 것이 정당한 것이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을 토대로 한 4차산업혁명 시대에는 경제성과 측정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이들에 따르면 저성장이나 불평등 같은 우울한 경제 이슈는 모두 측정오류에서 비롯된 환상일 뿐이다.

    4차산업혁명론에 따르면 불평등에 대한 정부 정책도 바뀌어야 한다. 불평등이 사회적 제도 탓이라면 시장 규제, 부자 증세, 복지 확대 등 시장에 대한 정부 개입이 필요하겠지만, 불평등이 기술 변화 탓이라면 정부 역할은 시장에 대한 개입보다도 노동자 숙련 향상에 집중되어야 한다. 이것이 이른바 노동시장 개혁론이다. 4차산업혁명론의 핵심 과제는 거창한 무엇이 아니라 ‘도로 노동시장개혁’이다.

    시장에 대한 개입을 줄이고, 도태된 사람들을 도우라는 이야기는 신자유주의의 교리 중 하나였다. 문재인 정부가 4차산업혁명을 준비하겠다며 벌이는 일들의 경제적 배경이 실상은 바로 이런 것이다. 20년 전 IMF 역할을 이제는 인공지능 로봇이 하고 있다.

    연재를 마치며: 노동자를 단결시킬 비책은 있는가?

    지난 글에서 나는 마르크스가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썼던 말을 인용했었다. “역사는 반복된다. 한번은 비극으로 한번은 또 희극으로” 문재인 시대의 우리가 바로 그 무대의 주인공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촛불집회 그림을 청와대에 내건 문재인 정부는 여러 개혁적 모습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의 핵심에서는 여전히 전대 정부들과 큰 차이를 보여주고 있지 못하다. 금융자유화, 노동시장 유연화가 그대로 진행 중이다. 자본은 20년 전에 ‘정책 선진화’의 이름으로 한국 사회를 재편했고, 오늘날에는 4차산업혁명의 이름으로 다시 한 번 한국 사회를 재편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진보진영은 신자유주의 비판에 실패했었다. 재벌 총수가 싫다는 이유로 주주행동주의를 지지했고, 관치금융이 싫다고 금융자유화를 지지했었다. 앞선 두 차례 연재에서 밝혔듯 그 결과는 참혹했다. 우리 모두가 경험하고 있는 노동권의 유린은 진보진영이 지지했던 주주행동주의, 금융자유화의 또 다른 면일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번에도 그 형태만 달리한 신자유주의에 또 다시 당하고 있는 것 같다.

    예로 진보진영의 대안 중 하나로 제시되는 기본소득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기본소득론은 기술변화의 대책으로 노동과 별개로 소득을 분배하자는 주장이다. 사회의 전체 소득을 기본기금과 성과기금으로 나눠 기본기금은 시민 모두가 1/n로 나누어 갖고, 성과기금은 차등을 두어 나누는 것이다. 기본소득은 4차산업혁명론자들도 강조하는 대안이다.

    하지만, 이런 대안은 4차산업혁명 등으로 포장된 최근의 자본 주도 사회재편을 사실상 인정하는 것이다. 우선 노동자 다수가 기술적 낙오자가 되는 것에 대해서는 별다른 대안이 없다. 기본소득체계는 고숙련 기술자의 소득을 재분배해 기계 밑에 있는 존중 받지 못하는 다수 노동자의 생존을 돕는 체계다. 그런데 ‘지식’이나 ‘생산’에 접근하는 기존의 방식을 변혁하지 못하면, 결국 이 기술적 격차를 경계로 계급적 격차가 공고해진다. 부와 지식의 빈부격차가 계속 증가하게 될 것인데, 이를 소득의 부분적 재분배만으로 완화하는 것은 한계가 크다. 지식을 재산권으로 독점하는 현 소유제도의 급진적 변화 없이는, 이 시대의 빈부격차 딜레마를 풀기 어렵다. 소득재분배와 함께 부의 재분배, 소유권 제도 자체의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노총의 대안은 무엇이어야 할까? 마르크스는 19세기 중반 영국 노동조합들에게 임금인상수준에서 계급적 성과를 찾지 말고, 시민의 평균적 생활수준을 높이는 노동자운동의 역량에서 그 성과를 찾으라고 했다. 또한 임금인상이 결국 임금 동역학(임금을 다시 낮추는 힘)을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을 깨닫고, 임금 동역학 자체를 변혁하는 것에 힘을 집중하라고 이야기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정세로 보자면, 노동조합이 임금격차 축소를 위해 스스로가 연대임금의 설계자가 되고, 신자유주의 체제 이후의 한국 사회 전망을 밝히는 집단적 지성으로 스스로를 교육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민주노총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현 시대를 과학적으로 비판하고, 노동자 전체를 대표해 의제를 설정할 수 있는 능력이다. 새로운 사회적 의제들을 잘 발굴하고 설정해야 민주노총이 살고, 노동자가 산다. 투쟁이냐, 교섭이냐, 노사정 대화냐 대정부 투쟁이냐 같은 전술적 선택은 의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외환위기 20년의 교훈을 잊지 말자.

    필자소개
    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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