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양 체제 간의 세계적 대결
    현 국제질서와 미·중(G2)의 성격②
        2017년 11월 27일 02:1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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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지난 호 글에서 중미관계(G2)가 갖는 두 가지 성격 중의 한 측면인 ‘신 국제질서 수립을 둘러싼 두 집단 간의 투쟁’에 관하여 살펴보았다.(관련 글 링크) G2가 의미하는 또 다른 측면은 바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양 체제 간의 대결이며, 중미 양국이 각각 대표하고 있는 것은 이 두 체제이다. G2가 갖는 이 같은 측면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중국사회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관건적이다.

    한국 언론이 전하는 중국의 모습

    지금 한국의 진보진영에서 중국이 사회주의 국가임을 인정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이것은 조금 기이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중국은 스스로 자신의 헌법과 국내외 공식석상에서 사회주의 국가임을 공공연히 천명하고 있고, 또 맑스-레닌주의를 자신의 공식 지도이념으로 당헌에 명시한 공산당이 정권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중국 헌법 제1장 제1조에는 “중화인민공화국은 노동계급이 지도하고 노농동맹을 기초로 하는 인민민주독재의 사회주의국가이다.” 라고 함으로써 국가의 계급적 성격과 사회성격을 분명히 하고 있다. 제6조에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사회주의경제제도의 기초는 생산수단의 사회주의공유제, 즉 전 인민소유제와 노동대중의 집체소유제이다.”라고 생산관계의 성격을 규정하고 있으며, 제7조에서는 “국유경제 즉 사회주의 전(全)인민소유제경제는 국민경제 가운데서 주도적인 역량이다. 국가는 국유경제의 공고화와 발전을 보장한다.”라고 명시함으로써 사회주의생산관계를 대표하는 국유기업의 주도성과 그 발전을 헌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다.(국무원법제판공실 편,<신편중화인민공화국 상용법률법규전서>,중국법제출판사, 2010년 판)

    이 같은 객관적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국제사회에서 많은 국가들이 중국을 사회주의 국가로 공식 분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학계와 진보진영은 유독 중국의 그러한 자기정체성 규정을 인정치 않으려 한다. 이러저러한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국내외 각종 언론의 부정적 보도 때문이라 보이며,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는 바로 중국의 ‘빈부격차’ 문제이다. 사회주의라면 중국처럼 잘사는 자와 못사는 자의 격차가 그렇게 심할 수는 없다는 당위적 논리를 제기한다. 물론 중국은 시장개혁을 채택한 이래 빈부격차가 과거 보다 많이 확대되었다.

    개혁개방 직전인 1970년대 후반 중국의 지니계수는 대체로 0.3 정도였으며 이는 주로 도시와 농촌의 격차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나 시장개혁 이후 최근 중국의 지니계수는 0.4 수준을 훌쩍 넘어서서 한 때 거의 0.5에 가깝게 다가선 통계기록이 나왔다. 여기서 ‘지니계수’가 단지 ‘소득’ 지표만을 기준으로 삼고 있고, 그 밖에 부동산이나 주식과 같은 자산은 포함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먼저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만약 이들 자산을 모두 포함할 경우에는 토지가 모두 국가 내지는 농촌집체의 소유이고, 또 대부분의 은행과 많은 유력 대기업들이 국유기업인 중국의 지니계수는 대폭 낮아지리라 생각된다. <21세기 자본론>의 저자 토마스 피케티가 밝혔듯이 시장경제 하의 빈부격차는 사실상 ‘월수입’과 같은 유동량보다도, 토지나 주식과 같은 고정자산의 소유 여부에 의해 결정되는 측면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어떻든 소득기준을 중심으로 한 지니계수가 확대되었음을 인정한다손 치더라도, 중국의 빈부격차는 국내외 언론에 의해 많이 부풀려진 감이 있다. 우선 몇 가지 사실만 보더라도 이들 언론에서 보도하는 “중국의 빈부격차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라는 말은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먼저, 지난해 중국의 해외관광객 수는 1억3천만 명을 기록하였다. 전체 인구의 거의 10%가 해외여행에 나섰다는 얘긴데, 그 많은 사람들이 어디서 돈이 나서 경비가 만만치 않은 해외여행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또 중국은 기본적인 주5일제 근무를 실시하는 외에도 국경절 휴무, 춘절(구정 설) 휴무, 청명절·5/1절·중추절 휴무 등 갖가지 노는 날과 장기 휴무가 많다.

    이 같은 휴무 때마다 해외로 나가는 여행객들 외에 국내 여행을 즐기는 관광객은 ‘인산인해’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참으로 장관을 이룬다. 겨우 소득 수준이 이제 8000달러(2016년)를 갓 넘어서 아직 1만 달러도 채 되지 않은 상태임에도, 필자가 보기엔 소득수준이 명목상 2만 달러인 한국 사람들보다 더 많이 놀고 더 많이 여행을 다니는 것 같다. 뭔가 ‘소수’만 부자이고 나머지는 대부분 빈곤하다는 국내 언론이 전달하는 이미지와는 맞지 않는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중국은 지난해 국내 자동차 판매대수가 2400만대를 기록하였는데, 이는 자동차의 나라라고 하는 미국의 역대 최고 판매대수 1500만대를 훌쩍 뛰어 넘는 수치이다. 전문가들의 예측에 따르면 2030년에는 중국의 자동차 시장은 대략 5000만대 규모가 되리라고 한다. 그렇듯 빈부격차가 심하다고 하는 나라에서 ‘중산층’의 상징인 자동차가 이렇게 많이 판매되고 있는 현실을 우리는 또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물론 단지 인구가 많다는 것만으로는 이유가 될 수 없다. ‘인구 대국’은 오히려 많은 경우 빈곤의 상징일 수 있으며, 현재 12억 명으로 중국과 비슷한 인구 규모를 가진 인도가 그 대표적인 실례이다.

    한국의 국내 언론은 중국이 산업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현상에 대해서도 일면적 시각에서 과장 보도를 하는 경우 또한 적지 않다. 예컨대 소위 ‘농민공(農民工)현상’이 그러한데, 중국의 수많은 농민공들이 도시에 나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것은 중국을 ‘3류 자본주의’라고 규정짓는 데 효과가 만점이다. 국내 진보적인 지식인이나 활동가들도 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의외로 적지 않다.

    하지만 우리가 조금만 생각을 해보면, 이 같은 중국의 ‘농민공’ 현상은 그 사회의 본질적 성격으로부터 나오기보다는, 객관적 생산력 수준과 관련된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에 따른 세계적인 보편적 현상임을 이해할 수 있다. 한국도 1960~1970년대 급격한 산업화를 통해 한 때 이 같은 과정을 경험한 바 있으며, 이미 산업화를 일찍이 완성하고 선진국에 진입한 일본·미국·영국 등도 과거에는 하나같이 그 같은 농촌에서 도시로의 대규모 인구이동을 수반한 과정을 경험하였다. 이 점은 산업화와 도시화가 한 사회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밟아야 할 객관적인 필연적 과정이며, 일정한 보편적인 경제법칙의 성격을 띠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무리 사회주의 사회라 하더라도 이 같은 객관적 경제법칙을 뛰어넘어서, 산업화와 도시화의 과정 없이 하루아침에 농촌사회에서 현대적인 산업사회 및 정보사회로 도약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다만 사회성격에 따라 그 과정과 경로가 얼마만큼 단축되고 또 상대적으로 ‘적은’ 고통만으로 진행될 수 있는지의 차이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 점에서 본다면 중국의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은 지금까지 인류 역사상 존재했던 그 어떤 나라의 그것보다도 모범적이라 할 수 있다.

    그간 30여년 기간 동안 중국의 도시 인구는 2억 명에서 7억 명으로 거의 5억 명이나 증가하였는데, 이는 매우 짧은 시간에 거둔 거대한 업적이라 할 수 있다. 또 중국의 대도시와 중소도시 어느 곳을 가보더라도 다른 개발도상국의 도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빈민촌이나 슬럼가를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이는 중국의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이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큰 고통 속에 진행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실례이다. 한국만 하더라도 1980년대 후반까지 대도시 주변에는 소위 ‘판자촌’ 혹은 ‘달동네’라고 하는 빈민촌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었다. 이처럼 중국에 빈민촌이 별반 형성되지 않는 이유는 어찌 보면 앞서 언급한 ‘농민공’이라는 존재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들 농민공들은 자신의 고향마을에서 모두 집체소유기관(촌위원회)로부터 일정 면적의 토지에 대한 경작권을 부여받는다. 그것은 언제든지 돌아 갈 수 있는 ‘든든한’ 후방기지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농한기에 이들은 도시에 나와 돈을 번 뒤 농촌에 돌아가서 그 돈으로 새집을 짓거나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금은 이 같은 농민공들의 존재 양식도 많이 바뀌고 있는데, 자신의 토지를 ‘농촌합작사’라고 하는 일종의 새로운 생산협동조합 형식의 집체경영 주체에 위탁한 후, 자신은 가족을 모두 데리고 도시에 나와 아예 ‘도시민’으로 정착하는 사람들이 점점 주류를 이루어 가고 있다. 전국적으로 대략 ‘2억 명’에 이르는 이들 유동하는 농민공 집단은 현재 중국정부의 산업구조조정과 도시화 전략의 주요 대상이 되고 있다. 각급 지방 정부는 이들을 순조롭게 도시민으로 안착시키는 사업에 역점을 두고 각종 지원정책을 내놓고 있다. 이는 중국 정부가 선언한 2020년까지 ‘전면적 소강(小康)사회 실현’이라는 목표 달성과, 더 나아가서 2030년까지 일차 마무리 지으려고 하는 야심찬 ‘국가현대화’ 전략의 중요한 고리를 형성한다.

    현재의 쟁점은 오히려 농촌 집체소유기관으로부터 부여받은 토지에 대한 권한을 상실할 것을 우려한 일부 농민들이 도시민이 되기를 주저하는 데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이들의 ‘농촌호적’에서 ‘도시호적’으로의 변경등록 사업이 얼마간 지체되고 있긴 하지만, 이 또한 지방정부의 새로운 도시 정착지에서의 적극적인 취업마련 대책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이처럼 중국의 복잡한 현지 실정에 대한 이해 없이 일부 농민공의 실태를 과장 보도하는 것은, 국내 언론이 그간 전반적으로 중국과 관련하여 의도적인 편파보도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을 수 없게 한다.

    한국의 언론은 중국사회의 부정적 측면의 보도에는 이렇듯 적극적이지만, 그 긍정적 측면에 대한 보도에는 매우 인색한데 그중 하나가 중국의 사회복지제도에 관한 것이다. 필자의 기억에는 한국 언론이 이와 관련해 보도하는 것을 거의 보지 못하였다. 중국의 사회보장제도 건설은 그 과정이 요란한 ‘증세논쟁’이 없이 비교적 조용히 진행되고 있는 것이 특징인데, 이 점은 한국과 서구 사회와는 매우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아마도 중국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수많은 국유기업과 국유자산 때문이리라 생각 되며, 이들은 사회의 복지기금 마련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중국 정부는 이미 2009년 말 도시공상(工商)의료보험, 도시저소득층의료보험, 농촌합작의료보험 이상 세 개의 의료보험 망을 통해 14억 인구 대부분을 의료보험체계에 포함시켰다고 공식 발표한 바 있다. 다시 말해서 한국의 복지론자들이 요구하는 소위 ‘보편적 복지’가 중국에서는 이미 14억이라는 거대한 인구를 대상으로 초보적으로 실현되고 있는 셈이다.

    한국의 국민연금에 해당하는 중국의 양로보험제도는 도시에 이어 2009년부터 ‘신 농촌양로보험’이라는 이름으로 농촌 전역으로 확대 실시되었으며, 2014년 10월부터는 그동안 특혜 논란이 있던 공무원양로보험과 일반 양로보험 간의 통합이 이루어졌다. 중국 정부는 제13차 경제개발 5계년계획이 종료되는 2020년까지 현재 성(省) 차원에 머물고 있는 이들 사회보장 항목들의 통합 수준을 전국 차원으로 끌어올림으로써 전국의 통일적인 사회보장제도건설을 기본적으로 마무리 지을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사회보장제도 분야에서의 이 같은 순조로운 진척은 그간 노동자들에 대한 지속적인 임금인상과 함께(아래표 참조) 중국의 민간소비를 진작시키는 데 있어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는 세계 금융위기 발발 이후에 국내소비가 수출을 제치고 중국경제를 떠받치는 첫 번째 요인으로 부상하는데 있어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이상의 몇 가지 실례만 보더라도 우리는 중국사회의 모습이 현재 한국 언론들이 과장 보도하는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으며, 그것들이 전하는 감성적 인상만 가지고서는 중국이 사회주의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데 무리가 따른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때문에 중국의 사회성격을 판단하는 데 있어선 보다 전문적인 객관적 지표가 필요하다. 이 문제는 다음 회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필자소개
    북경대 맑스주의학원 법학박사 , 노동교육가, 현재 민주노총 정책연구원 정책자문위원, 맑스코뮤날레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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