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저지 불구 유엔 인권기구 출범
        2006년 03월 16일 12:4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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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집요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유엔의 인권위원회를 대체할 인권이사회 창설안이 15일 열린 유엔총회에서 회원국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됐다. 반대표는 미국과 이스라엘 그리고 태평양의 소국 팔라우, 마샬제도 등 4곳에서 나왔을 뿐이다.

    이날 통과된 인권이사회 창설안은 그간 유명무실했던 인권위원회를 안전보장이사회나 경제사회이사회와 같은 총회 산하 기구로 격상시켰다는 데 의미가 있다.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산하 위원회로 53개 위원국이 참가하는 인권위원회는 인권침해 논란을 빚은 몇몇 국가들이 참여해 국제사회의 비난을 피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또 1년에 한번만 소집되는 인권위원회가 세계 각지에서 발생되는 인권유린에 대해 즉각적인 대응을 취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일었다.

    이에 반해 신설되는 인권이사회는 회원국의 투표로 연임이 가능한 임기 3년의 47개 이사국을 선출하고, 인권유린을 저지른 이사국에 대해 회원국 3분의 2이상의 찬성을 얻어 제재를 가할 수 있도록 했다. 또 1년에 3번 이상 회의를 소집하고 필요시 특별회의를 열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미국은 그동안 이같은 인권이사회 신설안에 대해 집요하게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총회 당일에는 지연전술을 펴겠다고까지 위협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신설되는 인권이사회가 현재의 인권위원회에 비해 그다지 개혁적이지 않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미국은 회원국 과반수가 아니라 3분의 2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이사국 자격을 부여해야 수단, 짐바브웨, 버마와 같은 “상습적인 인권유린국가”의 이사국 참가를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또 이사국의 수를 47개국이 아니라 25~30개국으로 줄이고 연임제한 규정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논의 초기에는 아예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이 인권이사회 상임이사국이 돼야 한다는 억지까지 부렸다.

    일견 인권이사회의 위상을 강화하고 효율적으로 운영하겠다는 의도인 것으로 보이지만 미국의 속내는 달랐다.

    미국의 이사국 선출기준 강화에 대해 아프리카 국가의 한 외교관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191개 회원국의 과반수인)96표는 3분의 2만큼 얻기 힘든 표”라며 “또 비밀투표로 이뤄지기 때문에 더욱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비밀투표 제도 역시 미국에게는 불리한 방안이다.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관타나모 기지 등에서 인권유린 실상이 드러난 미국의 인권이사국 진출에 장벽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미국의 인권유린 문제는 오는 6월 출범하는 인권이사회에서 가장 먼저 다뤄져야 할 주요사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사국의 인권유린에 대한 제재수단이 부여됐음에도 불구하고 3분의 2이상의 찬성으로 이사국을 선출하자고 고집한 미국에 대해 회원국들 사이에서는 미국이 인권이사회의 출범 자체를 방해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제3세계의 한 외교관은 IPS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자국의 이기적인 이유로 유엔의 인권기구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약화시키려 한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결국 미국의 고집스런 심술은 인권이사회의 조속한 출범을 바라는 유엔 회원국의 염원을 이기지 못했고 인권이사회를 자기 입맛에 맞게 만들려는 속내가 들통 나는 창피만 당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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