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휴일도 일하는 노동자
    절반 넘어, 휴일 차별 심각
    노동조합 없거나 중소영세사업장, 파견업체 노동자 등이 대부분
        2017년 11월 21일 09:20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휴식권은 헌법상 명문의 규정은 없으나 포괄적 기본권인 행복추구권의 한 내용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행복추구권은 헌법 제10조에 의하여 보장되는 것으로 포괄적이고 일반조항적인 성격을 가지며 또한 그 구체적인 표현으로서 일반적인 행동자유권과 개성의 자유로운 발현권을 포함한다” (헌법재판소 2001. 9. 27. 선고 2000헌마159 결정)

    명절이나 임시공휴일이 낀 황금연휴 때가 되면 어김없이 나오는 기사가 바로 연휴 때도 쉬지 못하는, 이른바 ‘휴일 차별’을 당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다. 실제로 공무원이나 대기업 노동자들을 제외하고 영세중소업체의 노동자들이나 마트 노동자들은 남들 다 쉬는 ‘빨간 날’에도 쉬지 않고 일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다. 이처럼 헌법은 노동자의 보편적 기본권인 휴일제도가 모든 노동자에게 평등하게 적용돼야 한다고 정하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 소속의 김요한 공공운수노조 전략조직부장은 21일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 제1간담회실에서 열린 ‘공휴일 유급휴일 법제화 토론회’에서 “노동자는 어느 사업장에 소속되었는지에 따라 공휴일을 휴일로 보장받게 된다. 휴일은 더 이상 전체 노동자들의 보편적 기본권으로 향유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토론회는 민주노총, 과로사 OUT 공대위(준),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 국민의당 김삼화·신용현 의원, 정의당 이정미 의원이 주최했다.

    공휴일 유급휴일 법제화 토론회(사진=민주노총)

    ‘휴일 차별’ 문제 심각…절반 넘는 노동자가 공휴일에도 근무
    “노조 없거나 중소영세사업장, 파견업체 노동자 등이 대부분”

    현재 법으로 정해진 휴일은 근로기준법 제55조의 주휴일과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에 따른 노동절이다. 반면 달력에 표시된 빨간 날, 즉 공휴일은 무급휴일인지, 유급휴일인지에 대해선 규정하고 있는 바가 없다. 이 때문에 노동법상 휴일이 아니라며 명절 당일이나 대체공휴일 모두 통상의 근로일이 될 수 있다는 일부 사용자들의 해석에 근거해 반드시 근무해야 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임시공휴일을 포함한 공휴일이 ‘공무원들의 휴일’이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공휴일이 유급휴일이 되려면 각 사업장에서 단체협약, 취업규칙, 근로계약 등으로 정해야 한다. 그러나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에서 사용자와 이런 협상을 거쳐 유급휴일을 얻어내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김요한 전략조직부장은 이날 토론회 발제를 통해 “노동자는 어느 사업장에 소속되었는지에 따라 공휴일을 휴일로 보장받게 된다”며 “노조가 없거나, 중소영세사업장이나 파견업체에 고용된 비정규직 노동자들 대부분이 휴일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이같이 말했다.

    민주노총이 올해 9월 7일부터 11월 12일까지 오프라인 서명지‧온라인 구글독스를 활용해 수행한 임시공휴일(10월 2일) 휴무 실태조사 결과, 표본 1,267명 중 “임시공휴일이 유급휴일로 보장된다”고 답변한 비율은 44.9%(569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 전략조직부장은 “공휴일을 유급휴일로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자의 비율이 절반을 넘어섰다”며 “노동자들 사이의 휴일 격차가 뚜렷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휴일을 유급휴일에서 제외하는 ‘휴일 차별’은 2008년 이명박 정부에서 본격화됐다. 이명박 정부 출범 시기에 노동부는 ‘표준 취업규칙’을 통해 공휴일이 사업장의 유급휴일에서 제외되도록 했고, 더 나아가 명절연휴와 같은 공휴일에 연차휴가를 사용하게 하라는 안내까지 포함돼있다. 이후 유급휴일에서 공휴일을 제외하는 작업은 대부분 편법적인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을 통해 행해졌다.

    김 전략조직부장은 “이때부터 파견업체를 중심으로 공휴일을 유급휴일에서 삭제하는 유행이 번져나가기 시작했다”면서 “공휴일에 연차휴가 사전 대체 제도가 악용되기 시작하는 데에도 크게 일조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공휴일에 연차휴가 강제
    “여름휴가 3~5일 보태면 전체 연차휴가 소진” “임금삭감 수단으로도 악용”

    공휴일을 연차휴가일로 사전에 지정하는 ‘연차휴가 사전대체 제도’는 명절 당일 등 모든 사람들이 쉬는 공휴일을, 어떤 보상도 없이 노동자들에게 일을 시킬 수 있도록 했다.

    연차휴가의 시기 지정권은 노동자에게 있지만 예외적으로 근기법 제62조는 사용자가 연차휴가 사용시기를 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김 전략조직부장은 “현재 해당 규정은 1년간의 공휴일 전체를 연차휴가일로 사전 지정하는 규정으로 악용되고 있다”며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상 공휴일은 선거일을 제외하고 연 15일 정도인데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부여하는 여름휴가 3~5일만 보태면 한 노동자의 전체 연차휴가일이 전부 소진된다”고 설명했다.

    물론 이 제도는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시행할 수 없도록 ‘근로자대표와의 서면 합의’라는 요건을 두고 있지만, 이 또한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에선 소용없는 내용이다.

    더욱이 연차휴가 사전대체 제도가 임금삭감 수단으로도 악용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 전략조직부장은 “입사 초년생 등은 휴가일로 사전 지정된 공휴일 수가 오히려 자신의 법정 휴가일보다 많을 때가 있는데, 이 때 일부 사용자들은 이른바 ‘마이너스 연차’라고 해서 공휴일 수와 법정 휴가일 수의 차이만큼을 임금에서 공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공휴일을 연차휴가일로 사전 지정하는 관행을 금지시키지 못한다면, 근로기준법을 개정해도 입법 효과도 대단히 제한될 것임이 분명하다”고 우려했다. 연차휴가 사전대체 제도를 법적으로 금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휴일의 유급휴일 법제화
    “노동시간 단축의 정책적 효과 굉장히 크다”

    지난해 기준 한국 노동자의 1인당 평균 노동시간은 2069시간이다. OECD 국가 중 멕시코에 이어 두 번째로 오래 일하고 있다. 이는 전체 평균보다도 305시간이 더 많으며 일본과 비교하면 44일을 더 일하고 있다. 때문에 한국의 장시간 노동문제 해결을 노동계의 숙원과제이다.

    문재인 정부가 가장 강력하게 주장하는 노동정책 중 하나가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노동시간 단축이다. 실제로 정부는 취임 초기부터 법정노동시간 68시간으로 해석해온 노동부의 행정해석을 폐기하고 52시간 법제화해야 한다는 기조 하에 국회에서도 이러한 논의가 지지부진하지만 진행되고 있긴 하다.

    이날 토론회에선 공휴일을 유급휴일로 법제화하는 것이 노동시간 단축에 큰 효과가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김 전략조직부장은 “노동시간 단축의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 근로일 자체를 줄이는 방식임은 주지의 사실”이라며 “이미 절반 넘는 노동자들이 공휴일을 유급휴일로 보장받고 있지 못한 현실에서, 공휴일을 유급휴일로 법제화 하는 것은 노동시간 단축의 정책적 효과가 대단히 클 것”이라고 강조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페이스북 댓글